희공 3회차 후기 - 채에 대한 노여움을 숨기고 초를 공격하다

진달래
2023-06-13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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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환공과 뱃놀이를 갔다가 환공을 놀래키는 바람에 친정으로 쫓겨난 채희,

채나라는 이에 채희를 다른 곳으로 바로 개가를 시켰다. 환공이 화가 나서 채나라를 치려고 하자 관중이 막았다. 

"부부간의 일로 남의 나라를 친다는 것은 명분이 충분하지 않은 일이니 큰 성과를 얻기 어렵습니다. 하지 마십시오."

환공이 듣지 않자 관중이 다시 간한다. 

"반드시 그만 둘 수 없다면 초나라가 청모를 천자에게 조공으로 바치지 않은 지 삼년이나 되었으니 군주께서 천자를 위하여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를 치는 것만 못합니다. 초나라가 항복하면 그대로 군사를 돌려 채나라를 습격하고 이르기를 내가 천자를 위하여 초나라를 치는데 군사를 이끌고 따르지 않으니 그래서 멸한다고 하십시오. 이것은 명분이 있어 의가 되고 실제에 있어 이익이 되는 것이니 반드시 천자를 위하여 벌한다는 명분이 서고 원수도 갚는 실리가 있습니다."   - <한비자 외저설 좌상>

 

<좌전>을 보면 희공 4년 봄에 제 환공이 드디어 여러 제후들의 군사를 모아 채나라는 침략했다. 채나라 사람들이 도망을 가자 이어서 초나라를 정벌하였다. 

그런데 읽다보니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채나라 정벌이 실제 목적이라면 채나라 정벌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야 할 것 같은데 <좌전>에는 이렇게 채나라를 침략한 이야기는 한줄 나온다. 오히려 제나라 연합군과 대치하게 된 초나라의 이야기가 더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제나라 연합군을 맞이하게 된 초나라, <사기>를 보면 이 때가 초 성왕 16년 때의 일이다. 

초 성왕이 사자를 시켜서 물었다. "군주께서는 먼 북쪽에 거쳐하고 과인은 남쪽 끝에 거처하니 바람난 소와 말조차 미치지 않습니다. 군이 나의 땅을 밟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하였는데 어쩐 일입니까?"

여기에 대하여 관중이 대답을 한다. 이 말은 <사기, 제태공세가>에도 똑같이 실려 있다. 

 

"전에 소 강공이 우리 선대 임금인 태공에게 다섯 등급의 제후와 구주의 백 등의 잘못을 너희 제나라가 징벌하여 주 왕실을 보좌하라고 하셨소, 그리고 우리 선대 임금에게 동쪽으로는 바다에, 서쪽으로는 황하에 남쪽으로는 목룽에 북쪽으로는 무체에 이르는 땅을 밟게 하셨소, 초나라 공물인 포모가 들어오지 않아 왕의 제사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으므로 질책하러 온 것이오. 또 소왕이 남쪽으로 순수하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으셨으니 그것을 문책하러 왔소."

 

초 소왕이 이에 공물을 제대로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해 잘못을 시인했으나 소왕이 돌아가지 않은 것은 자기들도 모르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군대가 형땅에 주둔하자. 여름에 초 소왕은 굴완을 보내어 회맹을 하게 했다. 

 

초 성왕의 말처럼 멀다면 먼 초나라 땅까지 제나라가 중원의 여러 나라 군대를 모아 왔다는 게 아마도 이 장면에 숨어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초나라는 주나라 봉건 질서에 속하지 않았는데 초 무왕 때부터 왕이라는 이름을 참칭하며 중원으로 세력을 넓히고 있었다. 성왕은 무왕과 문왕 다음으로 영토 확장에 힘을 쏟는 중이었다. 어쩌면 이 장면이 초나라가 중원의 나라들과 정면으로 대치하게 된 첫번째 장면이 아닐까 싶다.  제 환공을 중심으로 뭉친 중원의 여러 나라들과 초나라의 대면은 일단 이렇게 평화적으로 끝났다. 하지만 초 성왕이 아니라 굴완을 내세워 맹약을 했다는 것으로 보아, 이 때도 초나라의 힘이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렇다면 <한비자> 등에서 말하는 것처럼 '채나라에 대한 노여움을 숨기고 초나라를 침략했다'기 보다 오히려 채나라를 빌미로 초나라를 친 것은 아닐까? 

 

채나라와 같이 작은 나라들의 신세가 참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제나라 군대가 돌아가는 길에 벌어진 에피소드를 통해서도 느껴진다. 

 

진(陳)나라의 원도도가 정나라의 신후에게 군대가 진나라와 정나라 사이를 지나간다면 두 나라에게 큰 고역이 될 것이니 동쪽으로 돌아가게 하자고 제안을 한다. 신후가 동의하자 원도도가 제 환공에게 그렇게 보고했다. 그런데 신후가 제 환공을 만나서 출병한 지 오래되었고, 동쪽으로 가다가 적이라도 만나면 어쩔까 걱정이 된다면서 진나라와 정나라 사이를 지나면 식량과 물자도 보급 받을 수 있고 좋지 않겠냐고 말한다. 그러자 제 환공이 이를 듣고 원도도를 잡아 들였다고 한다. 

 

채나라, 진(陳)나라, 정나라와 같이 작은 나라들은 이후에도 제와 초, 혹은 제와 진(晉), 또는 초와 진(晉) 등이 싸울 때 늘 이렇게 피해를 입는 나라들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보니 신후가 무슨 생각으로 제 환공에게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작은 나라들의 고충에도 서로 이익을 위해 화를 자초한 건 아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 2
  • 2023-06-15 18:04

    이걸 읽다보니 저는 현재의 우리나라 외교가 걱정되네요

  • 2023-06-17 14:34

    관중의 큰 그림! 채희의 재혼은 핑계일 뿐 부상하는 초나라를 억제하려는 목적이 관중에게 있었을 것 같아요.
    채희에 대한 분노로 펄쩍펄쩍 뛰는 환공에게 명분과 실리를 가르치려니 관중도 매번 힘들었겠다 싶네요.
    이쯤 되면 관중이 능력자가 아니라 진정한 능력자는 환공인 것 같아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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