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 다시 읽기> 4강 후기 : 자혜

자혜
2014-01-29 13:05
741

문탁네트워크

874-6

<한국 근현대사 다시 읽기> 4강 (2014.1.28)

후지이 다케시

 

 

후기

자혜

2014.1.29

 

 

   가까운 역사가 더 멀게 느껴집니다. 생각의 정리를 방해하는 잡음들이 많아서일 수도 있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집단들의 이권다툼의 영향을 받아서일 수도 있지만, 사실 무관심과 회피가 가장 큰 이유라는 걸 강의를 들으면서 새삼스럽게 다시 깨닫습니다.

   어제 소개를 하다가 ‘공과계열 학생이라 인문학 강의를 거의 못 듣는다’고 말했는데, 그게 굉장히 낯부끄러운 말이라는 걸 집으로 걸어가면서 생각했습니다. 전공학점만으로도 16학점이 채워지고, 주어진 교양이라고는 공학소양이라는 타이틀을 단 일반물리, 일반화학 같은 것들이 전부라는 건 그저 변명일 뿐입니다. 진짜 문제와 마주하는 걸 끊임없이 외면해왔다는 걸 깨달은 다음에 찾아낸 게 고작 또 다른 핑계라니, 정말이지 절망적인 이야깁니다. 그래서 이제는 제가 마주한 문제를 회피하지 않기 위해 일단 강의를 들은 다음날 오전에 후기를 쓰러 학교에 왔습니다. 후기부터 회피할 수는 없으니까요.

 

 

 

   좋은 강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몰랐던 사실을 알아가는 기쁨보다 이걸 아직까지 몰랐다는 부끄러움이 먼저 오는 이유는 이것이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일 겁니다. 20년이 넘는 시간을 이 땅 위에서 살아왔는데, 저는 고작 6~70년 전에 이 땅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교과서가 말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실 교과서에 적혀있지 않다고 몰랐다는 건 자기변명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수없이 많은 아이돌의 이름을 외우고 소녀시대의 전곡을 다 아는 건 그게 교과서에 실려 있기 때문은 아니니까요. 모든 것이 무관심과 회피의 문제일 겁니다.

 

 

 

   유신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모두가 외쳐대도 그 시절처럼 많은 책들이 금서라서 아예 볼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까닭으로 현시대를 옹호하고자 하는 마음은 쌀 한 톨 크기만큼도 없습니다만, 우리에게는 분명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을 볼 자유가 있습니다. 가끔 이병박의 BBK나 박정희의 유신에 관한 허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을 지껄였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하거나 감옥에 잡혀가는 사람이 종종 있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그런 이야기를 찾아보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제게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속여 왔냐는 물음 이전에, 나는 왜 나를 속여 왔냐는 물음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왜 그들이 나를 속여 버리게 가만히 놔두었냐고 물어야 합니다. 나는 왜 무지렁이가 되기를 자초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짜증이 너무 나요.

 

 

 

   현대사의 재미있는 점은 그것이 지나치게 가까운 현대라서 우리가 그 잔재와 바로 마주할 수 있다는 겁니다. 더욱 더 재미있는 점은, 그래서 짜증이 나고 화도 나는데 별 다른 타개책은 보이지 않아서 피하게 된다는 겁니다.

   얼마 전에 부정선거가 있었습니다. 3.15 부정선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 문제에 관해서 정말 엄청나게 분노했는데, 화도 많이 냈는데, 정작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고조선의 역사는 아주 오래 전의 역사라서 그에 관한 정보를 아는 것에서 그치고 맙니다. 내 삶과 연결 될 부분들을 찾아낸다 해도 삶이 진동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근현대사는 현재까지 잔류하는 분노의 정서를 남깁니다. 이제껏 다른 이들이 나를 속여 왔다는 사실보다, 나는 계속 속임 당할 것이고 그 어떤 문제도 개선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이 제게 두려움을 안깁니다. 얼마 전에 치러진 선거가 그러했듯이.

   근현대사에 관한, 또한 앞으로 이어질 미래의 역사에 관한 두려움은 공포보다는 분노로 포장됩니다. 그래서 저는 결국 알기를 거부하는 쪽을 택해왔습니다. 유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는 것은 분노를 제 자신에게 선물하는 것과 같은 행위였습니다. 미쳤다고 새누리당을 찍는 일은 없을 텐데, 근현대사가 제 인생을 대체 어떻게 바꾸겠습니까. 그저 다른 분노만을 안길 뿐이죠. ‘아는’ 것만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건 그저 불쾌함만을 제공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가 그렇기 때문에 화요일 저녁에 874-6에 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분노하지 않고 세상 역시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는 호기로운 꿈을 꾸고 있습니다. 써 놓고 보니까 되게 이상하네요. 여하튼 그래서 제게 지금 주어진 과제는 ‘이제 내가 뒤집어버릴 수 없는 현대사 안에서 어떻게 분노하지 않고 내 삶을 영위해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일 겁니다. 분노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접는 것이 어리석인 일이라고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박영선의원의 기조발언을 듣고 있을 때 어머니가 집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저는 그 때 엄마에게 짜증을 냈습니다. 제가 어마어마하게 짜증을 내자 어머니께서는 그럴 때에 책을 읽고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웃긴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여태까지 살아왔던 만20년 4개월은 현대사에 관한 특별한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못했으니,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보는 것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겁니다. 제가 원하든 원치 않든지 간에 현대사로부터 영원히 벗어난 인생을 살 수 없다는 것을 결국엔 인정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역사를 왜 배우는가. 어렵지만 간단한 질문일 수 있습니다. 현재를 알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현재’ 아니면 ‘어떤 현실’을 알고자 하냐는 물음이 이어질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과거를 알고 싶은 욕망이 가지를 쳐나갔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파생되는 질문은 현재를 알면 대체 무엇이 바뀔 거냐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 공부를 시작으로 무엇이 바뀔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댓글 1
  • 2014-02-04 17:01

    그래요, 짜증이 나기도 하고 무력해지기도 하지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뚜벅뚜벅 내가 가야할 길을 가는 것 뿐인지도 몰라요.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일 수도 있구요.

    자혜의 공부와 소망을 지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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