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를 대신하여 - 조선시대의 상례

우연
2013-06-22 10:36
1988

후기를 대신하여

지난 번 배운 내용은 마음이 잘 정리해서 올려 줄 것이라고  믿고 저는 조금 다른 내용을 써 보려고 합니다.

숙제 댓글은 마음의 후기 밑에 달아 주세요.

언젠가 복습 시간에 3년상과 시묘살이에 대해 잠깐 이야기가 있었는데 우리 모두 정확히 아는 바가 없어 답답해했던 기억이 나시는지요?

하기사 이 날 복습 참여인원은 달랑 7명이었으므로 무슨 이야기인가 의이해 하는 동학들이 더 많기는 하겠습니다만 그래도 한 번은 알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간단하게나마 제가 알게 된 내용을 정리해 볼까 합니다.

 

조선시대의 상례

 

조선시대의 사대부들은 부모가 돌아가시면 3년상을 지냈다. 3년상이라함은 부모가 돌아가신 지 3년째 되는 날까지 상을 치루는 것으로 만으로 2년이다. 이 기간 동안 상복을 입고 지낸다. 3년상은 한 말에 1년상으로 대체되기까지 잘 유지되어져 왔다.

초상을 당하고 대략 석 달만에 장사를 지냈는데 장례일은 점을 쳐서 정했으니 시신을 집 안에 모셔두는 기간이 석 달을 훌쩍 넘어가는 경우도 비일비재 하였다.

요즘은 3일장이라 하여 만 이틀 만에 장사지내는 것을 보면 에 있어 지금의 하루가 조선시대의 한 달과 맞먹는 셈인가 보다.

돌아가시고 나흘 동안은 습, 소렴, 대렴등 여러 의식이 `가례`에 따라 진행되었다. 다시 살아날 것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바로 입관하지 않았다.

입관 후는 집 안에 빈소를 마련하여 장례 때까지 모셔두었으니 이 기간이 석 달을 넘어선다.

(개인적으로 시신을 석 달 넘게 땅에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외부와 완전 차단을 위하여 관에 송진을 바른다든가 옻칠을 하기도 하고 흙벽돌을 겹으로 쌓기도 하고, 재에다 술을 섞어 바르기도 하였다는데 이를 연구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조상의 과학적 기술은 우리의 생각을 넘어설 때가 많다. 가끔씩 발견되는 미이라가 이해되는 대목이었다)

빈소는 대청마루이기도 하였고 본채와 분리된 별실이기도 하였으며 집 밖의 장소이기도 하였다.

석 달이 지나면 장사를 지내는데 치장, 반곡, 우제, 졸곡제, 부제 등의 의식이 행하여졌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모두 설명할 필요는 없겠죠?^^)

가례에는 3개월이 지나면 장사지내도록 규정되어있으나 장지와 날짜를 정하기가 쉽지 않아 이를 넘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 7개월의 기간이 걸린 기록도 있다.

 

1년이 지나면 소상을 치르고 상주는 조석곡을 그치고 채소와 과일을 먹는다. 2년이 지나면 대상을 치르고 2달이 더 지나 상복을 벗는 담제를 지내면 모든 상례는 끝나게 된다. 대상을 치루면 술과 고기를 먹을 수 있고 아내와 잠자리도 같이 할 수 있다.

이 모든 절차는 `주자가례`에 의거했으나 `가례`가 중국인의 입장에 맞게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조선에 와서 조금 변형된 부분도 있다.

시묘살이는 가례에 언급이 없으며 조선의 예서에서도 공식적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사대부 사이에 일반화된 상례문화이다.

`가례`에 언급이 없어 조선의 학자들도 이를 따를 수 밖에 없었지만 조선조에서는 널리 유행하였고 국가에서 권장하기까지 하였다.

실제로 시묘살이를 하면 가례에 언급된 일부 규정이 제대로 지켜질 수 없어 예서에서 인정하기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효를 지상으로 여기는 국가이념과 맞아 떨어져 상층지식인들은 시묘살이를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고 이를 시행하였다.

`가례`의 규정을 절대시 하면서도 이에 언급이 없는 시묘살이를 중히 여긴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하지만 예의 실천상에 나타난 한국인의 특색이라 볼 수 있겠다.

 

상 중의 사대부들은 공식적으로 모든 관직에서 벗어나 있었는데 이 기간 동안 평소에 읽지 못한 책을 탐독하거나 저술활동 등을 통하여 학문의 발전을 도모하였다. 또 부친의 행적을 정리하여 행장을 만들거나 부친의 평상시 찬술한 기록 등을 모아 문고 초고본을 만들면서 시간을 보냈다.

 

왕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였다. 선왕의 승하 이후 6일 만에 빈소에서 옥새를 건내 받고 즉위식이 이루어지는데 이때는 상복이 아닌 면류관과 곤룡포를 입지만 즉위식 이후 상 기간 동안에는 상복을 착용한다. 부자관계는 3(2), 조손관계는 1년이며 관리들은 5일간 착복하였다고 한다. 왕의 공식적 업무 중단 기간은 26일이었지만 - 이 기간 왕은 여러 상례를 진행한다 - 국가업무는 단 하루를 중단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많은 융통성이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왕도 시묘살이가 가능하였는데 자리를 비울 수 없는 만큼 내시로 하여금 대신하게 하거나 궁궐에 가여막을 지어놓았다고 한다.

 

가례는 들의 예를 규정한 것이고 국가의 예는 `오례`에 표현되어 있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주자가례를 떠받들고 있었으나 이 역시 가례, 즉 사대부들의 예이므로 국왕의 예와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국가의 의례인 오례는 `국조오례의`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데 국가의 오례와 사대부들의 예인 주자가례가 어떻게 섞여있는지는 한 번 쯤 검토해 볼 일이다아무리 공자를 하늘같이 떠 받들고 있던 조선이라지만 공자의 주자가례는 어디까지 들의 예. 조선에 건너와 국가의 예에까지 영향을 주게 된 배경과 범위에 대해선 한 번 쯤 생각해 볼 일이다.

 

상 중에 사대부들은 곡만 하고 지내지는 않았다. 사람 사는 일이 다 비슷한데 어찌 그럴 수가. 다만 관직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것이다. 일상 생활과 집 안 관리는 평상시와 별 다를 바 없지 않았을까? 시묘살이 중에도 농사일도 관리하고 문중사람들과도 왕래하는 기록이 보인다. 그러면 과연 만 2년간 술과 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을까? 규정은 규정이고 현실은 현실일 뿐. `가례`에도 상중에 어른이 억지로 술을 권할 때 만약 사양하지 못하면 그 뜻을 따르는 것도 해로운 것이 없다고 하였고 어떤 책에는 체력이 약할 때는 음주와 식육을 허용한다고 하였으니 알아서 생각하시도록.

 

상례를 찾아보면서 그 규정의 방대함에 놀랐고 이에 맞춰 살아왔을 사대부들의 생활에 갑갑하였다. 조금 과장하여 조선은 산 자들의 세상이 아니라 죽은 자들의 세상이었구나 하는 생각조차 하였으니까. 상례를 지나 제례를 살펴보면 숨이 막힐 지경이 된다.

立於禮. 예에서 선다고 하였나? 도대체 예란 무엇인가? 조선은 무엇 때문에 이다지도 예에 집착하였던가? (빛내님의 `난 예가 마음에 안 들어`하는 그 표정이 계속 떠 올랐다.)

 

가례에 규정된 모든 상례와, 시묘살이 등은 조선인구의 10%도 차지하지 않은 사대부들을 위한 예이다. 인구의 90%가 넘는 일반 백성들은 이에 영향을 받지 않지는 않았겠지만 오랜 세월 내려온, 불교적 풍습과 연관된 그들의 생활 풍속이 있었을 것이다. 조선의 성리학과 이를 신앙처럼 믿고 살아온 조선 사대부들의 삶, 이와는 조금 다른 차원의 조선 민중들의 삶. 맹자가 끝나고 유교가 어느 정도 머릿 속에 윤곽을 남기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공부이다.

    

 



댓글 1
  • 2013-07-06 07:31

    이제야 읽어보네요...ㅎㅎ

    성리학과 그 복잡한 예법은 10%도 안되는 사대부들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오랜 세월 내려온 불교적 풍습과 생활풍속...조선 민중들의 삶! 궁금합니다. 담에도 올려주실거죠?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 올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삐딱한 눈으로 늘 궁금증을 안고 있는 우연님의 눈동자(모자)!

    매력적이에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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