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 4강 후기]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해봅시다!

히말라야
2015-02-01 01:44
361

 후기는 어쩔 수 없이 간접화법이다. 내가 기호가 아닌 원래의 것만을 전달할 줄 아는 꿀벌이라면, 수업의 진정한 내용을 전달해 줄 수 있을 텐데. 나는 꿀벌이 아니라서 내가 전달하는 것은 내가 지어낸 허구와 나의 욕망과 상상이 어우러진 나의 진리일 뿐이라는 것을 전제한다. 라깡의 말대로라면, 각자의 진리는 각자의 말 속에 있는 것이고, ‘진리는 말하는 자에게 있다’. 그것을 뒤집어서 다시 말해본다면, ‘말하지 않는 자에게는 그 어떤 진리도 없다는 것이므로, 수줍더라도 우리는 계속 말해 봐야하고 틀릴지라도 후기를 써봐야 한다. 다행히도 우리는 혼자 공부하고 혼자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부하고 함께 말을 하고 있으므로. 함께 말하는 만큼만 우리는 틀릴 수 있고, 틀리는 만큼만 알 수 있음을 믿자.

 

사랑은 사탕이 아니고, 사람이 아니다!

  라깡이 도난당한 편지로 설명하는 것은 지난번 구조화된 오이디푸스에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표현한 상징계인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말하는 기본개념을 알아보자. 보통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기표, 시니피앙)이 사랑이라는 개념(시니피에)을 표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구조주의 언어학에서는 사랑이라는 말이 사탕이나 사람과 같은 말과 다르기에 의미작용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려운 말로 하면 시니피앙 이펙트’) 강아지는 송아지, 망아지가 아니어서 강아지인 것이다. 강아지라는 말에는 전혀 강아지라는 동물이 없다는 것이고, 사랑이라는 말에는 사랑하는 마음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언어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각자의 차이로 존재하며, 요소들은 언어라는 구조를 이룬다. 이것은 비단 언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배라는 구조물은 배의 각각의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요소를 새로 바꾸어도 배라는 구조물은 바뀌지 않는다. 회사라는 구조 역시 사장과 사장이 아닌 차이들의 요소로 구성되어, 혼자 있어서는 회사가 되지 않으니 회사는 구조의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완벽한 사장은 없기에, 모든 요소의 합( ) 은 늘 구조전체보다 작다는 슬픈 사실!

 

내 말은 내 말이 아니고 네 말도 아니다!

  도난당한 편지에서 나타나는 장면들 역시 구조화 되어 있다. 장면마다 각 요소에 배치되는 인물은 달라지지만 아무것도 못 보는 사람’(, 경찰)-‘숨기는 사람’(왕비, 장관)-‘숨긴 것을 아는 사람’(장관, 뒤팽) 이라는 구조는 계속 반복된다. 여기서 똑같은 인물인 장관은 비록 본질적으로는(?) 동일인이지만, 구조 속에서 다른 요소가 되면 다른 요소들 간의 차이때문에 다른 역할을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라깡은 이를 욕망의 법칙이라고 표현한다. 마치 a+b=1이라는 수식은 무수히 많을 a,b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1이라는 답이 정해져 있듯, 욕망도 인물의 내부가 아니라 인물이 하나의 요소로서 위치되는 구조 속에서 정해진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가면 나도 모르게 그 자리가 요구하는 욕망을 욕망한다. 부모가 되면 부모처럼, 교사가 되면 교사처럼, 상사가 되면 상사처럼, 되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다. 주체의 욕망-무의식을 결정하는 것은 구조다. 우리는 구조 속에서 연극을 상연하고 있다. 내 입을 통해서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구조가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주체) 우편배달부일 뿐이라는 슬픈 사실!

 

말의 진리는 말하는 자에게 있다!

  라깡은 도난당한 편지에서 각 인물들이 사건(구조가 말한 것)다시 전달함에 주목한다. 담론의 반복은 증상의 반복이다. 주체들 간의 의사소통은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며, 다른 면을 보면서 같은 것을 이야기한다는 상상적 허구를 동반하기에 전달하는 자와 전달받는 자는 같은 진리를 가질 수 없다. 모든 개념에는 판단과 추론이 결합되며, 그러한 진리가 만들어지는 상징계 안에서는 그 진리가 진리임을 보장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사기꾼의 거짓말과 신하의 불안과 벌거벗은 임금님의 욕망 속에서는 임금님이 진실로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보장해 줄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과 같다고 해야 할까. 도단당한 편지의 첫 번째 대화는 보편적 언어인 랑그이지만, 두 번째 대화부터는 개별적이고 특수한 파롤의 언어가 되며 이것은 정확한 진리가 아닌 진리의 등록소가 된다. 그 때부터 말의 진리는, 원래의 진리가 아니라, 말하는 자에게 있는 진리가 된다. 축구경기가 진행 될수록 주인공이 축구선수가 아닌 공이 된다는 것과 같은, 슬픈 사실!

 

강아지는 강아지를 살해한다!

  도둑맞은 편지는 숨김 속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도둑맞은 편지의 사건 진행 속에서 편지의 내용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내용이 드러나지 않는 편지는 경찰들이 이 잡듯이 뒤져봐도 그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편지를 뒤팽은 관계속에서 찾아낸다. 존재하지만 부재하고 부재하지만 존재하는 편지는 기표이며, 기표를 마치 실재처럼 경험적으로 찾으려고 하는 경찰은 매번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불이라는 말에서 뜨거움을 찾으려 하고, 종이라는 글자 위에 글씨를 쓰려는 것처럼 아둔한 것이다. 기표는 사물을 대체하고 사물을 숨기고, 살해한다. 내용을 다 읽었다고 해서 연애편지를 버려버릴 수 없는 것처럼, 기표는 결코 우리에게 정보를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또한,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그것을 말하는 순간 우리는 경찰과 같은, 아둔한 리얼리스트가 되고 만다는 슬픈 사실!

 

절대반지는 나를 포기시킨다!

  편지의 정체를 알고 왕비를 속였던 장관은 그 편지를 손에 넣는 순간 그 편지를 가졌던 왕비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주체가 편지의 그늘에 들어가 편지가 주체를 장악하며, 주체가 편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편지가 주체들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편지를 소유한 장관은 편지를 잊으려고 하지만, 더욱더 편지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며 편지에 의존한다. 편지는 직접적으로 전달되지 않고 멀리 우회하면서 의미를 지연시키고, 누군가가 절대적으로 소유할 수 없도록 옮겨 다닐 때 기표가 되며, 그것을 소유한 자에게 우월성을 부여한다. 마치, 반지원정대의 절대반지처럼! 장관의 태도는 장관의 의식적인 태도가 아니라 편지를 지닌 자의 어찌할 수 없는 태도-무의식의 효과다. 상징계 안에 있는 주체들은 기표들이 지정한 자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자기답지 않게 가장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슬픈 사실!

 


 정리해 보면, 도난당한 편지=기표=팔루스=무의식=욕망=구조다. 그것은 숨겨져 있는 드러남이면서 동시에 훤희 보이는 숨김이며, 절대반지처럼 자체적으로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며, 벌거벗은 임금님의 벌거벗겨진 몸 같은 것이다. 라깡은 거대한 구조인 기표라는 목자에게 우리 따위의 작은 요소인 주체들은 순한 양이 되어 고분고분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슬픈 사실을 이처럼 5가지나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구조가 우리를 얽어맨다고 해도 우리는  아둔하게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바보처럼 소리치거나 누군가 그러는 것을 들을 수도 있고, 도둑맞은 편지를 또 다시 찾아 낼 다음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다. , 구조에서 동일함의 법칙을 발견할 줄 아는 똑똑한 라깡도 있지만, 명랑하게 그래도, 다시 한 번!’ 이라고 영원회귀를 외치는 미련한 니체가 있다는 것도 알고, 거대한 구조를 조각조각 파편화하는 쪼잔한 푸코가 있다는 것도 알고, 구조 속에서 같음 보다는 차이를 발견하는 사차원의 들뢰즈가 있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그 밖에도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또라이들이 있을진데 구조가 견고하다고 , 문제 있나? 그저, 재미가 있지!


댓글 1
  • 2015-02-01 21:50

    후기 잘 읽었어요. 결석생한테는 사막의 오아시스였답니다^^ 거기다 재미까지.....

    일본어강독팀에서 사사키 아타루의 <<야전과 영원>>을 열심히 헤매면서 읽고 있는 중인데, 사사키가 라캉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동안 읽은 내용을 번역해서 교정중에 있어요.  마무리되면 꼭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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