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양생프로젝트 에세이 발표의 현장

기린
2023-12-1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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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9일 오전 10시, 이 시간을 위해 1년을 달려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순간, 2023 양생프로젝트 파이널 에세이 발표 시간이다! 12월은 공동체의 공부를 추수하는 달, 갤러리들의 호기심어린 몸짓을 보라~~진심어린 응원과 예리한 비판 사이에서 흔들리는 동학의 기운이 뿜뿜^^ 11월의 활활 댄 화기(火氣)로 잊지 못할 워크샵을 보낸 우리들의 마음을 다독이러 오신 인디언님과 가마솥님의 다정함에 감동하면서 에세이 발표를 시작했다.

 

 

 

첫 발표는 윤경님, 스프링님, 경덕님

 

세 분은 해러웨이의 저작들을 횡단하며 벼린 생각들과 자신의 현장들을 엮어서 에세이를 썼다. <금천에서 실뜨기를!>_윤경/ ‘나의 개’ 이야기_스프링/ 난잡함 선언_경덕 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해러웨이의 문체 자체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면서 중구난방으로 더듬이를 뻗치다보니, 그의 사유를 정치하게 벼리는 만만치 않은 도전들이었다. <트러블과 함께하기> <반려종 선언> 등의 텍스트들 이었다.

 

이들에 도전에 응답하는 갤러리들의 질문들이 쏟아졌다.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난다고 하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 아닐까요? 해러웨이의 ‘소중한 타자성’을 이렇게 전유해도 될까요? 에세이는 ‘부족한 진득함’에 대한 성찰을 담았는데, 여전히 느껴지는 ‘조증적 열광적 사랑’의 기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런 질문들이 글쓴이들을 긴장시키기도 했지만 그 사이에 웃음도 끊이지 않았다. 한 달 여의 여정으로 쓰고 피드백 받고 고치고를 거듭한 이들의 성심(誠心)에 응답하는 화기애애한 시간이었다.

 

 

 

두 번째, 겸목님, 모로님, 코투님, 서해님

 

네 분은 2학기 텍스트들 중에서 <짐을 끄는 짐승들> <망명과 자긍심> 등에서 단초를 잡은 생각들을 밀고 나가 에세이로 완성했다. <지연된 7분은 어떤 시간인가>_겸목/ <장애, 세상을 다르게 보는 시선>_모로/ <낯설고도 아름다운>_코투/ <장애인활동지원사가 된다는 것은>_서해 였다. 주제가 드러나는 제목으로도 텍스트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고민이 짐작이 된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어떻게 세상과 연결시킬 수 있는지 묻는다. “장애는 단순히 결핍이 아니라는 것, 반드시 효율성, 진보, 자립, 이성을 중심에 두지 않는 삶의 방식들에서 가치를 찾도록 추구한다고. 장애는 해방적일 수도, 신나는 일일 수도, ‘정상적이기’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벗어나는 자유의 장소”(모로님의 에세이 중) 일 수도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밝혀보는 글들이었다.

 

주제 자체가 생각을 복잡하게 하는 측면이 있는 터라 갤러리들의 질문도 조심스러운 면이 있었다. 이 에세이들 전체에서 언급되는 생산성의 문제, 생산성이 나쁘기만 할까요? 다른 생산성을 발명해내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까요? 2달러의 딜레마, 현실은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장애인활동지원사의 실제에 대해 좀 더 알려주세요. 장애의 몸을 표현하는 언어들의 풍부함을 배웠습니다. 사회적 구조가 장애를 장애로 만드는 현실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온 몸으로 드러내는 투쟁에 함께 하며, “장애가 만들어낸 체현, 인지, 다양성을 받아들임으로써 더 창조적인 내가 되는 경험”(서해님의 에세이 중)을 기대하는 마음이 충분히 전해지는 시간이었다.

 

 

 

 

 

 

 

 

 

세 번째, 무사님, 둥글레님, 기린님

 

끝으로 발표한 이들은 <세계 끝의 버섯> <장애학의 도전> 등등을 참고해서 쓴 글들이었다. <군대와 장애가 만날 때>_무사/ <세계 끝의 약국>_둥글레/ <내가 알고 있던 자본주의는 없다>_기린 이었다. ‘세계 끝의 군대’를 상상하는 무사님의 글은 인문학을 공부하는 공동체에 접속해서 쓴 군대 3부작을 마무리 하는 에세이라는 소감을 밝혀서 친구들의 응원을 받았다. 세 번째 글에서 드러난 군과 관련 무한 애정에 대해 반문하자, 무사님은 ‘애증어린 장’이었다는 소회를 밝혔다. 이제 곧 퇴직할 그 곳에 보낼 마지막 기고문으로 보내라는 친구들의 제안에 ‘군대에서 장애 역량을 재사유하기’의 상상이 무럭무럭 부풀어 올랐다.

 

 

약국 개업 3년차, 자본주의와 비자본주의 사이에서 고민이 많은 둥글레님은 송이버섯을 채집하는 이들의 ‘자유’를 접하면서 “생각해 보면 그들처럼 나 또한 어떤 ‘자유’를 수행하고 있었다. 자본주의로부터의, 임노동으로부터의, 이전의 삶으로부터의 ‘자유’. 일리치 약국을 열면서는 의료권력으로 부터의 ‘자유’를, 그리고 건강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실천을 수행하고 싶었다.”(둥글레 에세이 중)는 자신의 다짐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고 했다.

 

자유와 관련해서 저자의 논증과의 연결고리를 이렇게 확장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질문이 있었다. 텍스트에 의하면 저자(애나 칭)는 자유에 대해 ‘경계물’이라는 사회학적 용어로 접근했다고 했다. 즉 “각각의 사회 집단 구성원은 세계에 대한 서로 다른 관심이나 인식으로 인해 사회 현실을 서로 다른 의미로 해석하는데, 그 집단들 사이의 의사소통은 그들의 세계관에 공통으로 속한 물질인 경계물을 통해 서로 연결됨으로써 가능해진다.”는 의미로 쓴 개념이었다. ‘자유’의 실천 양식은 다 다르더라도 공통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의미였다. 마지막으로 발표한 기린님의 에세이는 <세계 끝의 버섯>의 서평이었다. 방대한 내용을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을 중심으로 써 본 서평에세이인데, 거리낌 없이 쓰는 자기도취형의 글쓰기에서 벗어나야 하는 난제 앞에 놓인 심경에 대해 엄살을 떠는 소감을 남겼다.

 

 

 

티키타카 하는 질문의 장이 열리기도 하고 감동의 소감을 나누고, 각자의 공부를 나누는 선물의 시간이었던 에세이 발표는 이렇게 끝났다. 갤러리로 참석했던 친구들은 양생 프로젝트 에세이들은 ‘현장성’이 생생하게 느껴져서 좋았다는 총평을 남겼다. 에세이가 끝나고도 그런 의미의 다른 표현들을 몇 번 더 접하게 되었다. 그러자 친구들이 느낀 ‘현장성’은 과연 뭘까? 궁금해졌다.

 

1년의 시간을 함께 ‘취약한 몸들의 연대와 돌봄 사회’를 주제로 선정된 책들을 읽으며 세미나를 했다. 대부분의 책들은 밀도도 높고 어려운 개념들을 좇아가느라 애써야 했다. 돌봄을 사유하는 개념들이 얽혀있는 그 다양한 난맥상을 푸는 과정은 늘 벅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저마다의 자리에서 마주치는 곤경이나 질문이 그 사유의 어느 가지에 연결되었다. 이러한 연결을 통해 우리의 일상은 관성어린 결말을 뚫고 다른 언어를 길어내며 재해석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위치한 일상은 어떻게 읽고 무엇을 써내느냐에 따라 언제든지 자기 삶을 연구하는 장으로써 ‘현장’이 될 수 있다. 그 ‘현장’에서 생산해낸 글들의 활기는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오염’시킨다. 자기 돌봄의 기술로서 읽기와 쓰기의 가치를 새삼 재발견한 시간이었다.

 

 

 

끝으로 양생프로젝트 에세이 발표 시간에 오셔서 이 ‘현장’의 활기에 크리터들이 되어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문탁 식구들, 에코 실험실 식구들, 그리고 1학기에 함께 한 우정으로 와 준 묘선주님, 루틴님, 특별한 손님 규문에서 스프링님과 함께 공부하는 이미영님도 너무 너무 반가웠습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공부하면서 겪은 애로들을 마음껏 호들갑 떨며 즐거운 발표시간을 누렸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도 공부의 ‘현장’에서 만나요~~

댓글 6
  • 2023-12-11 12:26

    우왕 에세이 데이의 열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후기입니다.
    우리의 일년의 노고가 그대로 들어간 에세이를 많은 문탁동학님들과 나눠 영광이었습니다.
    내년에도 또 따로 같이 공부해요.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 2023-12-11 12:32

    세미나 없는 토요일 1주차가 시작되고 있어요!! 다들 여유 만끽하시고 내년에 또 같이 공부해요~

  • 2023-12-11 12:36

    후기 넘 좋아요 ^^

  • 2023-12-11 13:38

    와~ 기린샘의 정성어린 후기 덕분에 치열했고 다정했던 그날의 풍경이 다시 떠오릅니다ㅎㅎ
    튜터님, 반장님, 동학님들 모두 감사했습니다^^
    저는 이제 그동안 쌓아놓은, 읽고 싶었던 책들 속으로 푸욱~

  • 2023-12-11 14:39

    오지 않을 것 같은 에세이 발표 날도 벌써 지나갔네요. 올 하반기는 좀 뜨거웠죠? ㅎㅎ 기린샘 글로 마무리하는 것도 좋네요. 올 한해 모두 고마웠습니다.

  • 2023-12-12 18:08

    우와~ 이건 준비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품격있고 아름다운 후기인걸요? ^^
    그날의 현장도 좋았지만 후기에도 감동!
    그리고 올해 저의 새로운 친구로 나타나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