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세키의 외침_(나는 고양이로소이다 2회차 후기)

Micales
2021-04-20 20:31
152

 

 지난번 후기는 타인들의 노련함에 의해서 쓰게 되었다. 이번에는 나의 노련함으로 인해 쓰는 후기가 되었다. 그렇다. 이번에는 나의 노련함이 만들어낸 후기다...어쨌거나 노련하든 아니든, 후기는 후기인 것같다. 뭐 어떻하겠는가. 그저 쓰는 수 밖에 (^^). 

 

 어쨌거나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이번에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고있다. 소세키를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루쉰과 비교적 동시대에 살았다는 것인데, 문제는 루쉰이 일제시대 당시의 중국의 변화에 대해서 사유하고 있었다면, 소세키는 그 반대 지점에 서서 아시아에 변화를 가져오며 자만심에 부풀어 있는, 즉 루쉰이 제압 당하는 쪽의 사유를 보여주었다면, 소세키는 제압을 하는, 패권을 쥐고 있는 쪽에 서 있다. 그리고 그러한 서 있는 환경의 차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둘은 차이점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듯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쉰은 일본에 의해, 그리고 서양에 의해, 소세키 또한 서양에 의해 새로운 문물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문명들이 들어오며 구체제가 붕괴하는 시기 당시의 변화는 두 작가 모두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의 시기를 포착한 두 작가는 서로 각기 다른 종류의 문체를 통해 이를 그려내고 있다.   루쉰의 문체는 조금 더 날카롭고 급박한, 혹은 메마른 표면들을 보여주는 가운데,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굉장히 느긋하고, 동시에 풍부한 말장난(?)들이 난무한다. 루쉰에게서는 변화의 느낌이 나는 장면들이 있지만, 소세키에게서는 오히려 전쟁은 커녕 평화로운 시대를 살아나가는 듯한 모습들이 보여진다. 하지만 책의 중간 중간에서는 인물들에게서 서구 문물들에 대한 영향들을 확인할 수 있다.

 각각의 인물들은 그것이 서양에서 넘어온 것이던, 혹은 일본의 고유의 것이던, 서양을 향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던, 동양으로 향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던지 간에 서로가 교류를 하며,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다양한 가치 속에서 부딫히는 모습들은 일찍부터 영문학 등 서양에 대한 수용이 빨랐던 일본에서 서구문물과 동시에 일본의 고유 시 하이쿠 등에 빠지며 자기 정체성의 혼란을 내제하고 있던 소세키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그래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이름조차 없는)고양이의 시점에서 사람들을 바라본다. 이러한 시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동물의 시각을 빌려 인간들을 풍자한 것이라고 하지만, 단순히 그러한 견해 말고도, 어쩌면 소세키 자신이 이러한 다양한 가치 속에 파뭍혀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러한 가치들 안에서 새롭게 변화하는 일본의 모습애서 전통과 진보, 그 모두를 비판하기 위해서 사용한 것은 아니었을까?

  책 속의 고양이는 인간들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말을 들을 수는 있다. 또한 고양이는 어느 하나의 생각을 주장하기보다는, 이리저리 쏘다니며 여러가지 본 것들을 말해준다. 그리고 인간들을 보며 여러가지를 배우기도, 조소하기도, 궁금해하기도 한다.

 어느날 고양이는 주인인 쿠샤미 선샌과 사립학교 학생들 간의 싸움을 목격한다. 아이들은 선생의 집에 계속하여 공을 던지고(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구샤미가 사는 동네의 가네다 씨라는 부자가 아이들에게 이를 사주하는 바람에), 쿠샤미 선생은 화가 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른다. 이때 선생의 오랜 동창 스즈키는 서양식의 자본주의적 사고, 즉 '손님이 왕이다'와 같이, 돈이 최고이며 힘을 가진 자에게 굴복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말한 뒤 떠난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는 아마키 선생, 즉 의사는 그에게 최면술로 치료를 하려 들지만 보기좋게 실패하고 물러난다. 그리고 그 후 또다른 동창인 '철학자'는 그에게 마음을 작게 가지라고 조언한다. 서양식의 사고가 마치 길을 가로막고 있는 산이 있으면 어떻게든 산을 뚫어 길을 내는 적극주의라면, 그것에 대항하여 산이 길을 가로막으면 산을 가지 않을 궁리, 이유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마음만이 우리가 유일하게 조종할 수 있는 것이며 이의 소극적인 수양을 통해 남의 말이나,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자세를 가지라고 말을 한 뒤, 그는 떠난다.

 

 "스즈키 씨는 주인에게 돈과 다수를 따르라고 일러주었다. 아마키 선생은 최면술로 신경을 가라앉히라고 조언했다. 마지막 손님은 소극적인 것의 수양을 통해 안정을 얻으라고 설법했다. 주인이 어느 것을 택할지는 주인 마음이다. 다만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는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고양이는 여기서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생각하게 된다. 어느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스즈키는 서양식 자본주의의 선봉자다. 따라서 그는 자본지상주의를 고수한다. 그러나 이는 결국 기회주의로 접어들 수 밖에 없는 소지를 가지고 있다. 또한 그에게 결국 대의나 가치는 규범적인 의미를 가지지 않는 것이된다. 즉, 그는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고 따라가는 자인 것이다. 여기서 소세키는 서구식의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을 비판하는 듯하다. 서양식 사고방식을 따르는 스즈키를 통해 소세키는 세상을 바꾸려하지 않고, 가치성을 잃은 채 돈을 따라다니는 (현재의 여러 상황들과도 매우 흡사한) 서구의 방식을 비판한다. 이는 현재에 와서도 크게 달라진 것이 있을까.

 그렇다면 마지막 손님인 '철학자'는 어떤가. 그는 서양에 의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그에 상응하는 사고방식, 즉 소극주의를 찾아낸다. 이는 현재의 변화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일본 문명식 사고의 회귀를 말한다는 점에서 전통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세키는 앞서 나온 스즈키와 같은 당시 일본의 진보적 물결뿐만이 아니라, 보수적인 물결, 철학자의 생각조차도 비판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확실히는 모르나 옛날 어느 스님이 누가 자신을 베려고 하자 '칼을 번뜩이며 나를 벤들 봄바람을 벤 것이나 마찬가지, 깨달음을 얻은 중의 생명을 끊을 수는 없다.'하는 재치 있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네. 수양을 쌓아 마음을 소극의 경지에 이르면 이런 활력있는 작용이 가능하지 않겠나. 나 같은 사람이야 그렇게 어려운 것은 잘 모르지만, 어쨌든 서양인풍의 적극주의만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좀 잘못된 것 같네"

 

 철학자의 소극주의 또한 서구식 적극주의와 반대에 서 있다 말하지만, 외부적인 상황을 바꾸려는 의지가 없다는 점에서는 그 둘이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세키는 어쩌면 무기력하고 외부에 대한 저항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 두가지 흐름을 모두 비판하는 것은 아닐까? '옛날 어느 스님'을 죽음으로 부터 막은 것은 그 스님의 생각이 아니다. 그의 죽음을 막은 것은 칼날을 거둔 자였다.

 물론 이것이 소세키가 진보적 물결에 대한하는 새로운 사고를 제시한 것인지, 아니면 이 둘다를 모두 비판한 것인지를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소세키는 이 두가지 물결 사이에서 수많은 고민을(마치 루쉰처럼) 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삶과도, 당시의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미시적인 의미와 거시적인 의미 모두에게서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소세키가 마치 루쉰의 연장선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루쉰만큼이나 소세키도 자신만의 방식을 통해 '외침'을 하고 있는 것같다.

 

 

댓글 2
  • 2021-04-20 20:41

    소세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외침'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후기, 멋집니다.^^

    재하님의 후기를 읽고나니 루쉰과 소세끼를 읽으며 그들의  '외침'만이 아니라

    우리 각자는 어떤 '외침'을 하고 있는지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군요!

     

  • 2021-04-21 15:24

    극락주의든 소극주의든

    그것도 '외침'일 수 있겠네요

    소세키가 내다본 미래가 크게 다르지않은 오늘날이니 그의 통찰력도 루쉰 못지않은듯 하네요

    우리의 외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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