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2분기 2회차] 有爲에 대해 생각하다

기린
2021-05-17 09:20
247

헌문편 1장에서 원헌이 부끄러움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님은 나라에 도가 있을 때 녹봉을 받고, 나라에 도가 없어도 녹봉을 받는 것이 부끄러움이라고 가르쳤다. 도가 있을 때는 벼슬길에 나아가 녹봉을 받으라, 그러나 도가 없을 때 그만두는 처신의 도를 발휘하지 않고 여전히 녹봉을 받음, 이것이 부끄러움이다 라는 것이다. 주희는 이 문장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나라에 도가 있을 때 능력을 발휘하여 나라의 안위를 보존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도 부끄러움이라고 해석했다. 우샘께서는 공자님의 제자 중 많이 가난한 제자로 알려진 원헌이 그 ‘가난’에 머무는 것에 대해 능력을 발휘하는 有道한 세상에 기여함(有爲)에 좀 더 힘쓰라는 우회적 가르침 아닐까 라고 덧붙여 주셨다.

 

수업 시간에 이런 해석을 좇아가면서 새삼 ‘有爲’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유가 사상을 대표하는 개념이면서 도가 사상의 ‘無爲’와 대척점에 있는 개념 말이다. 동시에 유도한 세상이 전제되어야 유위를 할 수 있는가? 유위를 해서 유도한 세상이 되도록 해야 하는가? 유가 사상의 유위는 이 사이 어느 지점의 중도를 지향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이렇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헌문 9장을 배웠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외교문서를 만들 때 비침은 초안을 잡고, 세숙은 토론하고, 외교관 자우가 첨삭하고, 동리 자산이 아름답게 다듬었다.”

子曰 : “爲命: 裨諶草創之, 世叔討論之, 行人子羽脩飾之, 東里子産潤色之.” (헌문 9)

 

이 문장에 나오는 비침, 세숙, 자우, 동리 자산은 모두 鄭나라의 신하들이다. 정나라는 춘추시대 소국으로 분류되는 나라이다. 주변 강국인 진 (晉), 초(楚), 제(齊)의 사이에 끼어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다 기원전 375년 경 한(韓)나라에 멸망했다고 한다. 위의 문장은 주변국의 틈바구니에서 나라의 안위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신하들이 합심해서 외교적으로 어려움을 돌파하려는 노력을 알 수 있는 문장이라고 한다. 춘추 5패의 영토 확장과 관련 무력에 무력으로 맞설 수 없는 소국들은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여 나라의 위기에 대처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신에게 보내는 외교문서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비침이 초안을 만들어서 틀을 짜면, 세숙은 다른 자료 등을 찾아서 연구하면서 논의를 거듭했고, 자우는 더할 건 더하고 뺄 것은 빼는 첨삭, 자산은 그 문장들을 더 다듬어 아름답고 부드럽게 만드는 작업이었다. 무력으로는 상대할 수 없다는 상황적 인식에 근거한 소국의 신하들이 머리를 맞대고 문장의 토씨 하나를 두고도 수백 가지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모습이 눈에 그려진 달까. 우샘은 노(魯)나라의 사정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공자가 나이 오십에 넘어 사구 벼슬에 나가서 제나라와의 외교에 주력한 것도 이런 맥락과 연결시켜볼 수 있을 것이다. 노나라의 신하로써 나라의 안위를 위해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제나라에서는 어마어마한 물량을 투입하여 미인계 등으로 노나라를 위협하는 정국이었다. 노나라 제후는 그 수작에 놀아나는 줄도 모르고 천지분간도 못했다. 이런 시국에서 무도하다며 미련 없이 벼슬에서 물러나는 처신의 도를 쓸 것인가? 온갖 능력을 발휘하여 그 무도함에서 길을 찾을 것인가? 유가의 유위(有爲)는 유능한 능력을 발휘하여 길을 찾으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실력을 갖추어서 무도한 세상에서 방도를 찾는 것, 그것이 공자님 당대의 유위(有爲)아니었을까? 도가는 그런 유위(有爲)로 바뀔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는 냉철한 인식을 전제로 해서 무위(無爲)라는 사유를 밀고 나간 것이고.

 

결국은 인식의 문제다. 지금 현재 내가 살고 있으며 나를 존재하게 하는 조건에 대한 인식,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행위의 방향을 정할 수 있게 된다. 공자님이 오랜 공부의 시간을 보내고 오십이 넘어 세상에 나설 때 공자님이 인식한 세계를 짐작해본다. 도가 행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탄식을 떠올려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나서는 행동을 선택하는 순간, 더 이상 유도와 무도, 유위와 무위라는 판단 기준은 넘어선 것 아닐까. 다만 배운 대로 행동하는 실천의 장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시간을 살았을 뿐. 그럴 때 공자님이 계속 그 판단의 근거로 되새김했던 이미 살았던 사람들의 또 다른 기록들, 시(時) 서(書) 역(易). 공자님은 그 기록들을 애틋이 품으면서 눈 앞의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는 과정에서 정(鄭)나라 신하들의 고군분투에서 배우고 익히는 시간을 지속했을지도 모르겠다.

댓글 2
  • 2021-05-17 19:50

    처세의 두 방향, 有爲와 獨善!

    저도 유위에 대해 새롭게 더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어요

    세상은 대부분 치국지도가 없는 세상이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찾아갈 것인가를 고민했던  공자님

    '세상이 부패해 어지러워져도 이를 해결해나가게 될 것이므로 형통하다'는 <주역>의 산풍고괘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 

     

  • 2021-06-17 09:09

    도식적으로 유위와 무위를 생각하다가 저도 후기를 쓰다 공자님이 왜 유위에 좀 더 다가갔는지 알 거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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