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 정이천의〈四勿箴〉

토용
2023-02-12 21:09
301

『고문진보』 후집의 마지막은 경계의 말들이다.

정이의 사물잠(四勿箴), 장재의 서명(西銘)과 동명(東銘), 여대림의 극기명(克己銘)으로 끝맺는다.

 

사물(四勿)은 비례물시(非禮勿視), 비례물청(非禮勿聽), 비례물언(非禮勿言), 비례물동(非禮勿動)을 말한다. 공자가 인(仁)을 묻는 안연에게 극기복례를 말하고 그 조목으로 말한 것이다. 이천선생이 이것을 근거로 잠(箴)을 지어 경계의 말로 삼았다.

 

장재는 자신의 방 동쪽과 서쪽에 글을 써서 붙였는데, 원래는 오른편 서쪽 글을 정완(訂頑), 왼편 동쪽 글을 폄우(砭愚)라고 불렀다. 정완은 ‘악함을 바로잡음’이라는 뜻이고, 폄우는 ‘어리석음을 고침’이라는 뜻이다. 주자가 이것을 서명과 동명으로 바꿨다고 한다.

서명은 주로 효(孝)에 관한 내용이고, 동명은 말과 행동에 대한 것이다.

 

여대림은 장재의 제자인데, 극기복례를 가지고 극기명을 지었다.

 

이번에 사물잠을 다시 읽어보니 책상 위에 붙여놓고 계속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四勿箴〉

 

視箴(시잠)

心兮本虛 應物無迹 操之有要 視爲之則 蔽交於前 其中則遷 制之於外 以安其內 克己復禮 久而誠矣(심혜본허 응물무적 조지유요 시위지칙 폐교어전 기중즉천 제지어외 이안기내 극기복례 구이성의)

 

마음이여 본래 비어있으니 물건을 응함에 자취가 없다. 마음을 잡음에 요점이 있으니 보는 것이 법이 된다. 물건이 눈앞에서 가리워 사귀면 마음이 옮겨가니 밖에서 제재하여 안을 편안하게 하여야 한다. 사욕을 이겨 예로 돌아가면, 오래되면 저절로 될 것이다.

 

聽箴(청잠)

人有秉彛 本乎天性 知誘物化 遂亡其正 卓彼先覺 知止有定 閑邪存誠 非禮勿聽(인유병이 본호천성 지유물화 수망기정 탁피선각 지지유정 한사존성 비례물청)

 

사람이 떳떳하게 타고난 본성을 가지고 있음은 천성에 근본하였건만 앎이 물에 유혹되어 변하여 마침내 올바름을 잃게 된다. 드높은 저 선각자들은 그칠 곳을 알아 안정함이 있다. 사특함을 막아 성실함을 간직하여 예가 아니면 듣지 않는다.

 

言箴(언잠)

人心之動 因言以宣 發禁躁妄 內斯靜專 矧是樞機 興戎出好 吉凶榮辱 惟其所召 傷易則誕 傷煩則支 己肆物忤 出悖來違 非法不道 欽哉訓辭(인심지동 인언이선 발금조망 내사정전 신시추기 흥융출호 길흉영욕 유기소소 상이즉탄 상번즉지 기사물오 출패래위 비법불도 흠재훈사)

 

인심의 동함은 말로 인하여 드러나니 말을 하는데 조급하고 경망함을 금하여야 마음이 비로소 고요하고 전일하게 된다. 하물며 말은 중요한 추기여서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우호를 내기도 하니, 길과 흉 영과 욕이 오직 말이 부르는 바이다. 말을 쉽게 하여 잘못되면 허탄하고, 말을 너무 많이 하여 잘못되면 지루하다. 자기가 함부로 하면 남도 거슬리고 나가는 말이 거칠면 돌아오는 말도 도리에 어그러지니, 법이 아니면 말하지 않아서 훈계 말씀 공경히 받들지어다.

 

動箴(동잠)

哲人知幾 誠之於思 志士勵行 守之於爲 順理則裕 從欲惟危 造次克念 戰兢自持 習與性成 聖賢同歸(철인지기 성지어사 지사려행 수지어위 순리즉유 종욕유위 조차극념 전긍자지 습여성성 성현동귀)

 

철인은 기미를 알아 생각을 성실히 하고 지사는 행동을 힘써 하는 일에 지키니 이치를 순종하면 여유가 있고 욕심을 따르면 위태롭다. 어쩔 수 없이 급할 때라도 능히 생각하여 전전긍긍하여 스스로 잡아라. 습관이 천성처럼 이루어지면 성현과 함께 돌아가리라.

 

 

댓글 1
  • 2023-02-21 19:30

    구구절절 훌륭한 말씀.
    뼈에 새겨지도록 암송하면 그리되려나...
    그리되고나면 세상의 만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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