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느티나무
2022-12-09 01:59
231

작년 9월 2일부터 <고문진보>와 함께 한문강독을 시작했다.

그리고 1년 3개월이 지났고 책은 몇 장 남지않았다.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두꺼운 책을 다 읽어 냈으니 내가 대견스럽다.

학이당을 시작으로 한문공부를 끊지 않고 이어오는 이유 중에는

훌륭한 글들을 읽는 것을 수행으로 삼고 또...

낭만적인 시골 생활에 대한  로망 때문이다.

자연을 벗삼아 한가로이 고문을 읽는 모습...

상상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듯하다.(여기저기서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 ㅋ)

 

옛날에는 학문이 높은 선비가 과거를 보지 않고

임금의 부름을 받아도 끝내 벼슬에도 나아가지 않으며

고고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일러 '처사'라 부르며 매우 존경했다고 한다.

하지만 처사가 되기란  쉽지 않으니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 읽은 장뢰가 쓴 ‘진소장을 전송한 서’의 주인공인 진소장은

아마도 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나보다.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으나 만족하지 못하였다.

집이 가난하여 아버지의 원하는 바에 따라 억지로 과거 공부를 하였고

관직을 얻어 받은 녹봉으로 식구들을 봉양해야 했다.

가지 못한 길은 늘 아쉬운 법,

간혹 자신이 좋아하는 고문을 짓고 글에 재주가 있음을 아니 아쉬움이 더했다.

그러니 남보다 일찍 관직을 얻었음에도 그는 즐거워하지 않았다.

장뢰가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나는 세상의 꼿꼿한 선비입니다. 성품에 즐겁게 여기지 않는 것을 하지 못하며, 말이 합하지 않는 사람을 사귀지 못하며 음식과 기거, 동정과 모든 행위를 억지로 남을 따르지 못하였는데, 이제 한번 관리가 되자 모든 일에서 나 자신을 잃고 오직 남이 하는 대로 따라야 하여 조금이라도 스스로 뻣뻣하게 굴면 후회와 재앙이 메아리처럼 이릅니다. 지난날에는 이 한 몸이 부모에 기대어 길러졌는데 지금은 처자식이 나를 우러러 먹고사니, 관리가 되지 않고자 하여도 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 이후로는 (끈적끈적한) 옻으로 머리를 감으면서 머리카락을 풀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자 장뢰는 그에게 글을 지어 따뜻하게 위로한다.

“무릇 만물은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재목을 이루지 못하고, 사람을 어려움을 겪지 않으면 지혜가 밝아지지 못하는 법이다.”

“그대의 지난날은 봄날의 초목이고, 오늘날의 그대를 괴롭게 하는 것은 갈대가 서리를 맞는 것입니다. 무릇 사람의 본성은 오직 편안하고자 하는 법입니다. 편안함이라는 것은 천하의 큰 우환거리니, 그런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이 귀합니다. ... (중략) 밥을 미루어 남에게 줄 수 있는 자는 일찍이 굶주렸던 자이고, 거마를 사양하는 자는 걷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입니다. 만약 굶주림을 두려워하고 걷기를 싫어하면 장차 구차히 얻으려는 마음이 생기리니, 해가 되는 것이 매우 많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서리가 내려도 죽지 않는 것은 식물의 재앙이고, 편안함과 즐거움으로 생을 마치는 것은 사람의 복이 아닙니다.”

한문으로 읽는 것보다 해석을 옮기면 내용의 이해는 좀 더 쉽게 되는 것 같지만

글을 읽는 맛은 덜하다. 

이 글의 앞부분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터라  옮기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추계에 천지에 비로소 소살의 기운이 돌아 찬 기운이 이르려 하니, 

바야흐로 이때 천지간에 식물들이 봄여름의 비와 이슬을 맞은 뒤에~~~~~

역시 원문을 읽는 것만  못... ...

한문강독 경력 1년짜리의 치기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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