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회> 입원기

현민
2024-03-16 00:38
354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선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예상보다 병원에서 지내는 기간이 길어지자 나의 나약한 정신력과 타지에서의 한정된 돌봄 자원이 체감됐다. 병원에서 하루를 지내니 집에 너무나 가고 싶어졌다. 가만히 있어야 붓기가 가라 앉는데, 기회만 되면 밖에 나가 담배 한대를 피려고 애를 썼다. 아빠가 입원했을 때가 떠올랐다. 모부의 집은 한 대학병원 근처에 있는데, 사고로 그 병원에 입원했던 아빠가 낮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집에 와 있었다. 그때 나는 아빠가 간호사들을 고생시킨다고 생각했는데 아파보니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나와 한집에 같이 사는 플랫메이트이자 남자친구인 니키는 사고가 났을 때도 나와 같이 볼더링을 하고 있었다. 다리가 부러진 줄도 모르고 집에 돌아가서 퉁퉁 붓는 발을 보며 피자를 시켜 먹고, 다음날 차를 빌려 같이 응급실에 갔다. 응급실에는 직계 가족이 아니면 함께 들어올 수 없어서 니키는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했다. 내가 ‘의사가 나 뼈 부러졌대 ㅋㅋ..’ 라고 문자를 보냈을 때 그 애는 간호사들이 주는 서류에 무작정 사인하지 말라고 답장했다. 하라는 대는 이유가 있겠지 라고 생각하는 편인 나와 반대로 그 애는 모든 게 믿을만한 정보인지 꼼꼼히 확인했다.

니키는 주로 홈 오피스를 한다. 낮에는 나와 함께 있어주기 위해서 병실에서 일했고, 내가 끔찍한 병원 밥을 먹지 않도록 매 끼니마다 밖에서 밥을 사왔다. 내가 먹는 약의 성분이 허튼 것은 아닐지 인터넷에 하나하나 검색했고, 간호사로부터 마땅한 돌봄을 받지 못했을 때는 대신 화를 냈다.

 

 

끔찍했던 병원 밥

 

아파서 화장실에서 혼자 팬티도 못 내리는 상황에 도움받을 곳이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내 주변 여자들은 모두 내게 위로를 전하는 동시에 니키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하루는 내가 한국식 죽을 먹고 싶다고 하자 니키가 집에서 죽을 만들어왔는데, 먹으면서 고마움에 눈물이 줄줄 났다. 하지만 동시에 정말 아찔한 기분도 들었다. 얘가 없었다면 이 타지에서 입원 생활을 어떻게 했을지. 애인이 독일인이 아니었다면 외국인으로써 얼마나 또 헤맸을지. 입원 후 독일의 친구들은 내게 위로 문자를 보내주고 병문안을 왔지만(그것만으로도 정말 고마운 일이지만), 하루종일 환자 옆에 붙어 그를 돌보는 일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국에 있는 엄마도, 독일에 있는 이모도 못 오는데 나의 사고로 인해 니키는 돈도 체력도 많이 썼다. 나는 일주일 후 퇴원했지만, 만약 더 큰 사고를 당해서 그보다 오래 입원을 해야 했다면 니키도 벅찰 일이었다.

 

수술 후

 

기다림 끝에 수술을 받았다. 수술 전 긴장되는 마음에 누군가 옆에 있어 주길 바랬는데, 니키는 집에서 일을 해야 했다. 그래서 용감한 척 할 수 밖에 없었다. 침대째로 옮겨져 수술 대기실 천장을 보며 묻는 말들에 답을 했다. 나를 수술할 의사들이 내게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고, 산소호흡기를 씌웠다. 숨을 몇번 들이 내쉬면서 마취제 냄새가 역겹다는 생각을 하다가 수술 후 눈을 떴다. 수술실 밖에 있었고, 몇 사람들이 내 생일을 물었다. 침대째로 자꾸 어딘가로 옮겨지는 게 짜증 난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내 병실에 돌아와 있었다. 그곳엔 니키가 있었다.

 

마취가 깨고 난 후, 절단됐다가 봉합된 신체를 느끼기 시작했다. 고통을 느낄 땐 얼굴을 마구 구기며 흐느꼈다. 잠시 고통이 가라앉으면 마취 후유증으로 메스꺼움을 견뎌야 했다. 내가 여러 번 진통제를 요구하자 간호사가 주사를 놓아주며 말한다. Nur vier mal am Tag kann man spritzen. 하루에 네 번만 진통제 줄 수 있어.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 말을 듣자 이 고통을 맨몸으로 견뎌야 한다는 사실에 막막해졌다. 몇 시간 뒤 아파서 엉엉 우는 나를 보다 못한 니키가 의사를 직접 찾아가서 진통제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에 네 번이 무슨 소리냐며 수술 끝난 후니 가장 쎈 걸로 네가 원하는 만큼 줄 수 있다고 했다. 그 간호사는 내가 그날 수술을 받았는지 몰랐던 것 같다. 자주 이런 일이 반복되자, 의료인의 직업적 스트레스가 엄청나다는 걸 알면서도 환자로서 간호사들의 무관심과 불찰에 화가 자주 났다. 간호사들은 자주 내 존재를 잊어버렸고, 내가 무언가를 물어보기 전에 이미 화가 나 있었고, 내가 무언가에 대해 물어보면 다들 잘 모른다고만 답했다.

 

가끔은 병실에 혼자 오랫동안 남겨지면 적막함에 돌아버릴 것 같았다. 가만히 앉아서 책이나 영상을 보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병실 안과 문 밖 복도 소리까지만이 내 세상이 된 것 같았다. 병실에서 괴팍해지는 노인들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이유 없이 눈물이 줄줄 났고, 오지 않는 니키가 미워졌다. 사실 니키가 그저 집에서 일한 뒤 내게 가져올 저녁밥을 만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혼자 그 애를 한참 미워하다가, 이건 뭔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일주일이었지만 아픈 몸과 함께 나는 금방 위태로워졌다. 니키만이 내 기분과 이 상황에 대한 불만족을 표현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한계가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나름 지내는 동안 집처럼 편히 지내라고 T가 벽에 붙여준 부채와 스카프

 

할머니

 

나는 운이 좋게도 거의 혼자 2인실을 쓰고 있었다. 하루는 새벽에 내 방에 중환자실에서 돌아온 한 할머니가 들어왔다. 할머니는 통증 때문인지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새벽 내내 울었다. 귀마개와 안대를 쓰고 자던 나는 거세지는 할머니의 울음소리에 깨 간호사들을 호출했다. 간호사들은 할머니에게 더 쎈 진통제를 투약했다. 나는 그들에게 상황은 이해하지만, 나도 자야한다고 혹시 남는 다른 방이나 집에 가도 되냐고 물었다. 그들은 남는 방도 없고 새벽엔 모든 환자가 병원에 머물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마음대로 이탈하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듣고 짜증이 제대로 난 나는 할머니의 살짝 작아진 신음소리를 들으며 어떻게 여기를 탈출할지 시나리오를 짜다가 잠들었다. 간호사가 점심을 가져다줄 때 즈음, 잠에서 깨 옆을 확인하니 그 할머니는 또 수술을 받으러 사라져 있었다.

 

퇴원하는 날 아침, 할머니는 병실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잠들어 있었다. 나는 책을 읽다가 가끔 움직임을 멈추고 할머니의 숨 쉬는 소리를 확인했다. 어느 순간 잠에서 깬 할머니는 부시럭 거리더니 몸 곳곳에 붙은 바늘과 줄들을 손으로 빼 던졌다. 피를 뚝뚝 흘리는 할머니를 보며 불안해진 나는 간호사를 호출했다. 늦게 등장한 간호사들은 할머니에게 줄들의 용도를 설명하며 다시 줄과 바늘을 삽입했다. 내가 하지 마시라고 했을 땐 무시하던 할머니는 갑자기 예의 바른 아이처럼 으응 그렇구나 하며 그걸 마치 몰랐던 마냥 다소곳해졌다. 그리고는 간호사들이 없어지자 같은 짓을 반복했다. 간호사들이 피에 젖은 환자복을 다 교체한 한참 후에야 그녀와 나는 둘이 남았다. 할머니는 힘이 있는 목소리로 내게 자꾸 무언가를 물었지만, 그녀의 독일어를 알아듣지 못해 답할 수가 없었다. 그는 내 핸드폰을 본 후 딸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 했는데, 딸의 전화번호를 끝까지 기억하지 못했다. 어느새 나는 퇴원을 도우러 온 T와 나갈 채비를 했다. 내 가방은 친구들이 가져다 준 꽃으로 가득 차 있었다. 떠나기 전, 할머니를 위해 튤립 한송이를 그의 자리에 두고 왔다.

 

병원에서 나서 입구 벤치에 앉아 T와 니키의 차를 기다렸다. 그리곤 그 할머니가 거의 죽음에 가까워보였다는 얘기를 나눴다. 문득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 적힌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날개 달린 영혼아, 너는 하늘을 춤추었고

새된 비명으로 새벽을 놀래켰지

닻들을 좇고 용감히 바다에 맞서고

다시 바람을 타고 내게 돌아왔지

 

날개를 부러뜨렸구나. 그 날개가 땅에 끌려

모래 위에 너의 흔적을 새겼구나

깃털이 부러지면 너는 날 수가 없지

하지만 죽을 때를 누가 결정한단 말이니?

 

(후략)

 

- 브랜든 비치의 상처받은 갈매기,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중.

 

퇴원하는 길, T가 메고 있는 나의 퇴원가방

 

그리하여 나는 집에 돌아왔다. 돌아온 날에는 인도인 플랫메이트 난디니가 커리를 만들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음식 먹는 즐거움을 잊고 지냈는데, 매운 커리가 혀에 착 감기면서 몸에 열을 냈다. 먹으며 식탁에 둘러앉아 사람들과 이야기하니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3층 집에서 목발 짚고 살기란 쉽지 않았다. 목발과 함께 계단을 오를 때면 조마조마했다. 한번 이동할 때 두고 온 것은 없는지, 뭐가 필요할지 미래의 욕구를 미리 계산해야 몸이 고생하지 않았다. 나는 살면서 아파본 적이 별로 없다. 감기에 걸려도 하루 이틀이면 낫고, 하룻밤 정도 새도 다음날 별 문제가 없다. 다리가 부러지니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너무 적었고, 혹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고, 누군가의 도움을 자꾸 받아야만 했다. 신체적 한계가 낯선 나는 자주 내가 마음대로 못 움직인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볼더링을 하다 떨어지던 순간에 대해, 그때 안될 걸 알면서 시도한 것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자유롭지 않은 신체를 경험하며 내 성질에 대해서 배우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어려서 그런가 회복력이 좋았다. 병원에서 돌아온 후로 진통제를 끊었다. 물리치료사부터 부러진 발을 앞뒤로 움직이는 걸 연습하는 숙제를 받았는데, 간신히 까딱거리는 걸 친구들에게 선보이면 돌아오는 칭찬이 가득한 저녁을 보내며 지낸다. 독일은 병원에서 퇴원하면 하우스 아츠트Hausarzt라고 불리는 종합의원에서 상태를 체크해야 한다. 어제는 하우스아츠트에 가서 실밥도 뽑았다. 잘려있던 피부가 붙어있었다 . 4월 초에는 발목의 철심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는다. 철심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으면 바로 걸을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은 부러진 왼발에 힘을 실으면 발 전체가 저릿한 통증을 겪는다. 다시 걸음을 연습할 때는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하다.

 

댓글 6
  • 2024-03-16 07:37

    아이고 워째....ㅠㅠㅠㅠㅠㅠ

    볼더링이 뭔지 몰라 검색했어. 암벽타기 같은 거더라구...
    떨어질 수도 있고 사고날 수도 있지만, 엄청 놀라고 힘들었겠다.

    이럴 땐 뜨끈한 국밥 같은 걸 먹어야 하는디... 빵과 햄이라니.... 속상혀...
    버뜨, 남친도 있고, 매운 커리도 있고, 친구도 있으니까....재활 잘하면 되지 않을까?

    잘 먹읍시다!

  • 2024-03-16 08:05

    볼더링 모르는 1인 추가 ㅋ, 병원 생활 과정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기분 상태에 저절로 공감이 가네, 재활 잘 해서 뼈가 잘 붙고 나면 다 지나간 일이 될거네. 몸 조심 하고 마음도 잘 보살피길~

  • 2024-03-16 11:31

    아이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고생많았어, 현민아!!
    게다가 햄과 빵이라니! 보기만 해도 한숨이 나오는구먼.
    그래도 회복이 빠르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맛난 것 챙겨먹으며 몸도 마음도 잘 추스렸으면 좋겠구나.

  • 2024-03-17 06:45

    나도 볼더링 찾아봤는데 ㅋㅋ
    고생했네 현민 ㅜ
    병원밥은 정말 ㅠㅠ
    그래도 운이 좋았네. 보험도 들고 남친도 있고 친구들도 있고 ㅎ
    씩씩한 현민얼굴 떠오르는데 4월에 철심제거하고 재활 잘 해서 다시 날아다니길 바래요~~^^

  • 2024-03-17 07:10

    입원얘기를 읽을 줄 몰랐네!! 많이 아팠겠다! 우여곡절이 많네.

  • 2024-03-18 18:29

    진짜 글을 읽는데 제 다리가 저릿하네요.. 타국에서 고생이 많아요 ㅠ 한동안 답답하겠지만 금방 뛰어다니길!!

일상명상
  매일 아침 명상을 한다. 5년이 좀 넘게 계속해 온 아침 의례다. 어쩌다 며칠 명상을 놓치게 되면 명상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마음을 집중하여 들숨과 날숨을 온전히 알아차릴 때 누리는 고요와 평화가 그립기 때문이다. 그럴 때 알게 된다. 일상에서 그럭저럭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매일의 명상 덕분이었다는 것을. 내게 명상은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면서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귀한 시간이다.   호흡관찰   나는 붓다가 가르친 ‘호흡 수행(아나빠나사띠)’과 ‘사념처 수행(사띠파타나)’에 의지해서 명상을 하고 있다. 경전은 이렇게 명상을 시작하라고 한다.   여기 숲으로 가거나 나무의 뿌리로 가거나 빈집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면전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가부좌 자세로 앉아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번다한 자극으로부터 물러나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할 때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산만하고 시끄러운지 더 잘 알 수 있다. 산만함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산만함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산만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대치법도 다르지 않다.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정도 내공을 갖추기 전까지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하며 힘을 기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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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2024.04.14 | 조회 262
기린의 걷다보면
30대 중반을 통과하던 무렵이었다. 신문에서 일본 시코쿠섬에 위치한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도보 여행가의 여행기를 보게 되었다. 1번 절에서 출발해서 88번까지 이르는 완주 과정 자체가 내게는 경이롭게 다가왔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방을 빼고 적금을 깨 여행을 떠났다는 이력도 그랬고, 여자 혼자서 그 길을 완주하는 실행력도 멋있어 보였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았고, 오랜 걷기로 발가락에 생긴 물집 터뜨리기에 점점 능숙해지는 변화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홀가분하게 떠난 그의 도전이 부러웠다. 언젠가는 나도 한 번 해 봐야지 다짐했다.     그렇지만 나는 하던 일을 때려치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다짐은 서서히 잊혔다. 시간이 지나 인문학공부를 하게 되면서 다른 일상으로 접어들었고, 타고 다녔던 승용차를 처분했다. 집을 나서서 걷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그사이 걷기가 점점 더 많은 이들의 관심 영역으로 떠올랐다. 제주도 올레길이나 산티아고 순례길 등을 걷는 이야기들이 더 자주 들려왔다. 시코쿠 순례길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끌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고향집을 통과하는 해파랑길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긴 트레일 코스로 50개 코스로 이루어진 750km의 길이었다. 고향집 주변 코스부터 몇 코스를 걷기 시작하면서 다시 예전의 그 다짐이 떠올랐다. 나도 한번 해 봐야지.       해파랑길을 검색하다보니 완주한 사람들의 사연도 올라왔다. 명예퇴직을 한 후 이 길을 완주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는 50대 중년의 이야기도 있었고, 전국의 길을 다 걷겠다는 의지를 실천하는 걷기의 달인도 있었다. 언젠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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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4.04.06 | 조회 301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1편       코에 흙을 잔뜩 묻힌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큰 귀를 곧게 세우고 어딘가를 응시한다.   뒤쪽엔 보다 작은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코를 땅에 대고 냄새를 맡고 있다.   루팅을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돼지들 위로 두 명의 고양이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한 명은 그릇에 얼굴을 묻고 무언가를 먹는다.   그 옆에 있는 고양이는 허리를 세우고 정면을 본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뭘 쳐다보냐는 눈빛으로.     -         봉봉오리님의 『지구에 살 자격』의 표지에는 돼지와 고양이 그림이 있다. 동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생의 어느 한 순간을 표현한다.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 있고 저마다 생기를 분출한다. 책 표지를 넘기면 봉봉오리님의 친필 문구가 보인다.     종차별 없는 연대를.     한 페이지를 더 넘기면 저자의 한 줄 소개가 있다.     동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동물해방을 그린다.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를 하며 봉봉오리님을 만났다. 봉봉오리님은 생추어리와 재개발구역을 오가며 돼지를 돌보고, 또 고양이를 돌본다. 돌봄 일지를 블로그에 공유하고, 동물들 그림을 그려 전시를 한다. 나는 어느날 봉봉오리님에게 재개발 구역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돼지를 만나온 나는 또 다른 동물 돌봄 현장이 궁금했다. 설 연휴로 날짜가 정해졌다. 같이 갈 사람들이 모였다. 봉봉오리, 그린, 이슬, 세원, 그리고 나. 이들은 새벽이생추어리 돌봄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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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2 | 조회 416
아스퍼거는 귀여워
  - 글 속에서 아이의 지칭을 ‘감자’로 변경. 감자를 좋아하는, 감자같이 귀여운 얼굴의 남자아이. 현재 초등학교 5학년생.     새 학기다. 초조하다. 애써 웃음 지어보지만, 마음 한구석은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무겁다. 우리 감자는 이제 5학년. 개학하기 2주 전부터 서서히 어둠이 도사린다.  “엄마, 학교는 왜 가야 하는 걸까요?”     몇백 번은 이야기 했을 텐데…. 모르는 게 아니지만 가기 싫은 마음으로 질문한다는 걸 안다. 또 답할 수밖에. 먼저 1단계 협박.    “응,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안 가면 엄마가 잡혀가.”     팩트 체크. 사실 감자는 때에 따라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구구절절 학교의 장점을 이야기해봤자 감자에게 와 닿는 건 없다. 학교 공부도 지루하고 친구도 없는 아이에게 먹힐 리가. 다음은 2단계 공감.    “근데…. 엄마도 진짜 학교 가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었어. 어릴 때 소심하고 친구도 없어서 맨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종이접기하고 그랬지.”  “진짜 엄마도 그랬어요?”  “그래 진짜지. 아빠한테도 물어봐.”     3단계 동조.    “그래 아빠도 그랬어. 근데 그냥 학교 가서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려워?”     에이 도움이 안 된다. 쩝, 다시 2.5단계 공감+희망.    “엄마도 그래. 쉬다가 약국에 일하러 가는 거 얼마나 가기 싫은 줄 알아? (오바) 몸이 천근만근이라고 (이 정도는 아님) 근데 막상 가잖아? 그럼 또 재미있다?”     협박과 공감과 회유 사이를 무한 반복하면서,...
  - 글 속에서 아이의 지칭을 ‘감자’로 변경. 감자를 좋아하는, 감자같이 귀여운 얼굴의 남자아이. 현재 초등학교 5학년생.     새 학기다. 초조하다. 애써 웃음 지어보지만, 마음 한구석은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무겁다. 우리 감자는 이제 5학년. 개학하기 2주 전부터 서서히 어둠이 도사린다.  “엄마, 학교는 왜 가야 하는 걸까요?”     몇백 번은 이야기 했을 텐데…. 모르는 게 아니지만 가기 싫은 마음으로 질문한다는 걸 안다. 또 답할 수밖에. 먼저 1단계 협박.    “응,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안 가면 엄마가 잡혀가.”     팩트 체크. 사실 감자는 때에 따라서 홈스쿨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구구절절 학교의 장점을 이야기해봤자 감자에게 와 닿는 건 없다. 학교 공부도 지루하고 친구도 없는 아이에게 먹힐 리가. 다음은 2단계 공감.    “근데…. 엄마도 진짜 학교 가기 싫고, 공부도 하기 싫었어. 어릴 때 소심하고 친구도 없어서 맨날 맨 앞자리에 앉아서 종이접기하고 그랬지.”  “진짜 엄마도 그랬어요?”  “그래 진짜지. 아빠한테도 물어봐.”     3단계 동조.    “그래 아빠도 그랬어. 근데 그냥 학교 가서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려워?”     에이 도움이 안 된다. 쩝, 다시 2.5단계 공감+희망.    “엄마도 그래. 쉬다가 약국에 일하러 가는 거 얼마나 가기 싫은 줄 알아? (오바) 몸이 천근만근이라고 (이 정도는 아님) 근데 막상 가잖아? 그럼 또 재미있다?”     협박과 공감과 회유 사이를 무한 반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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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 조회 376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나는 마젠마 회원~     우리 동네 금천에는 ‘마젠마’라는 단체가 있다. ‘마을에서 젠더를 마주하다’를 줄인 것이란다. 2013년부터 무려 글쓰는 엄마동아리로 시작해, 2015년에는 금천구마을활동가 모임으로 재구성했고, 2020년 여성의 사회적 성장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로 변신을 이어온 단체였다. ‘우와 우리 동네에도 이런 모임이 있다뉘’. 좀 놀라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있어 보이는 단체명을 가진 마젠마를 빨리 접하고 싶었다. 기회를 엿보다가 2023년 5월 23일, 함께 영화 보기 행사를 하는 것을 발견했다. 당근 신청했고, 당근 참석했다. 함께 볼 영화는 <와즈다>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에게 금지된 자전거 타기를 도전하는 소녀 와즈다의 이야기였다. 영화를 본 장소는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였다. 마을 공유공간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는 경험은 처음이라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었다. 그리고 마젠마의 대접도 융숭해 더 만족했었다.       그러다 여름에 마젠마 신입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고, 망설임 없이 바로 가입했다. 가입신청서를 낸 얼마 후 신입회원 환영회가 있었다. 상반기 활동을 공유하고 각자 자신을 표현하는 물건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입회원 웰컴 선물도 증정해줬다.^^ 마을에서 여성들끼리 이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위하는 모습에 몸과 마음이 훈훈했다. ‘이런 게 비빌언덕이지. 이런 단체가 하나쯤은 동네에 있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진짜 이런 단체가 우리 마을에 존재해줘서 고마웠다.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기존 멤버들과 나도 이제 같은 멤버라는 소속감에 마음이 든든했다. 나는 이제 마젠마 회원이다~.             그 후로도...
    나는 마젠마 회원~     우리 동네 금천에는 ‘마젠마’라는 단체가 있다. ‘마을에서 젠더를 마주하다’를 줄인 것이란다. 2013년부터 무려 글쓰는 엄마동아리로 시작해, 2015년에는 금천구마을활동가 모임으로 재구성했고, 2020년 여성의 사회적 성장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로 변신을 이어온 단체였다. ‘우와 우리 동네에도 이런 모임이 있다뉘’. 좀 놀라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있어 보이는 단체명을 가진 마젠마를 빨리 접하고 싶었다. 기회를 엿보다가 2023년 5월 23일, 함께 영화 보기 행사를 하는 것을 발견했다. 당근 신청했고, 당근 참석했다. 함께 볼 영화는 <와즈다>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에게 금지된 자전거 타기를 도전하는 소녀 와즈다의 이야기였다. 영화를 본 장소는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였다. 마을 공유공간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는 경험은 처음이라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었다. 그리고 마젠마의 대접도 융숭해 더 만족했었다.       그러다 여름에 마젠마 신입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고, 망설임 없이 바로 가입했다. 가입신청서를 낸 얼마 후 신입회원 환영회가 있었다. 상반기 활동을 공유하고 각자 자신을 표현하는 물건으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입회원 웰컴 선물도 증정해줬다.^^ 마을에서 여성들끼리 이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위하는 모습에 몸과 마음이 훈훈했다. ‘이런 게 비빌언덕이지. 이런 단체가 하나쯤은 동네에 있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진짜 이런 단체가 우리 마을에 존재해줘서 고마웠다.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기존 멤버들과 나도 이제 같은 멤버라는 소속감에 마음이 든든했다. 나는 이제 마젠마 회원이다~.             그 후로도...
김윤경~단순삶
2024.03.20 | 조회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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