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공 12차 후기 : 가죽이 없는데 털이 장차 어디에 붙겠습니까?

진달래
2023-09-04 12:56
120

노 희공 13, 14년의 기록에서 중요한 일은 진(晉)나라가 기근이 들었을 때 진(秦)나라가 쌀을 구하도록 해 주었는데 다음 해에 진(秦)나라가 기근이 들었을 때 진(晉)이 쌀을 주지 않은 일이다. 

이는 진(晉) 혜공(이오)의 됨됨이를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먼저 진(晉)나라에 기근이 들었을 때 진 목공이 신하들과 의논한 내용을 보자 

이 때 진나라의 신하 두 사람이 등장하는 데 한 사람은 자상이고 한 사람은 백리해이다. 

진 목공이 곡식을 주어야 하는가를 묻자 자상이 먼저 대답했다. 

 

“거듭 은혜를 베풀었다가 보답을 받는다면 임금께서는 다시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그러나 거듭 은혜를 베풀었는데도 보답하지 않는다면 진(晉)나라 백성의 마음이 반드시 혜공에게서 떠날 것이니, 백성의 마음이 떠난 뒤에 토벌하면 그를 돕는 무리가 없어서 반드시 패망할 것입니다.”
 
백리해에게 다시 묻자 그가 대답을 했다. 
 

“천재가 유행하는 것은 나라마다 번갈아 있는 일이고, 재난을 구제하고 이웃 나라를 구휼하는 것이 도리이니, 도리를 행하면 복이 있을 것입니다.”

 

백리해는 오고대부(五羖大夫)라고도 불리는데 진(秦) 목공의 파트너로 유명하다. 원래 우나라 출신으로 진(晉)헌공이 우나라를 멸망 시킬 때 포로로 들어왔다가 목희가 진秦나라에 시집을 갈 때 잉신으로 갔다. 중간에 초나라로 달아났는데 진 목공이 검은 양 다섯 마리의 가죽을 주고 사 왔다고 해서 '오고대부'라고 불렸다. 

 

이 때 진晉나라의 대부 비정의 아들 비표가 진秦나라에 망명해 있었는데 진 목공에게 진晉나라를 치기를 청한다. 목공은 이를 거절하고 "군주는 미워하지만 백성에게는 무슨 죄가 있겠느냐?"고 말하고 곡식을 진晉에  보낸다. 

 

다음해 진秦나라에 기근이 들어서 진晉나라에 곡식을 청했다.  그런데 진晉나라 사람들이 곡식을 보내주지 않았다. 

이 때 대부인 경정과 괵사가 혜공에게 진언을 한다. 

먼저 경정이 말한다.

 
“은혜를 저버리는 것은 무친無親이고, 재난을 다행으로 여기는 것은 불인不仁이고, 탐욕스럽게 아끼는 것은 불상不祥이고, 이웃 나라를 노하게 하는 것은 불의不義니, 이 네 덕을 모두 잃는다면 무엇으로 나라를 지키겠습니까.”
 
괵사가 말하였다.
“가죽이 남아 있지 않는데 털이 장차 어디에 붙겠습니까?”
 
괵사는 진晉 혜공의 외숙부로 이 말은 가죽(皮)은 원래 진(秦)나라에 주기로 했던 성을 말한 것이다.  또 털(毛)는 진秦나라에 주어야 하는 곡식을 말하는데 괵사의 말은 이미 주기로 한 성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곡식을 준다고 해도 원수가 된 진秦나라의 화를 덜 수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가죽도 없는데 털을 어디에 붙이겠느냐는 말은 이미 상한 신뢰가 곡식을 준다고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정은 이에 신의를 배신하면 결국 나라가 망하게 될 수도 있다고 간언하지만 혜공은 그의 간언을 듣지 않고 곡식을 주지 않았다. 
경정은 끝내 조정에서 물러나면서 혜공이 이 일을 후회하게 될 날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춘추의 '미언대의'가 이런 것일까? 
사건에 대한 여러 입장의 대부들이 등장하는 것은 현실을 반영한 흐름과 결국 그 흐름이 도덕을 해치면 어떤 결과를 가져 오는가를 보여주는 장치로 보인다.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답답한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길어올려 하는지 고민하게 되는 장면이다. 
 
댓글 2
  • 2023-09-04 20:42

    봉건질서를 벗어나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날것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이럴거면 규구회맹은 왜 했나 모르겠네요. 흉년든 나라에서 쌀 사는 걸 막지 말자고 해놓고서는. 완전 쑈쑈쇼였네요.

  • 2023-09-05 06:04

    새로운 질서 앞에 과거의 '명분뿐인 회맹'이 종이짝처럼 외면되는 <역사, 눈앞의 현실>을 보고 있는 거죠.
    요새 들어 더욱 이런 '과거에는 지켜졌으나 지금은 지켜지지 않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도처에 보이는 듯...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77
희공20회차 후기: 가뭄에 대비하는 법
봄날 | 2023.11.10 | 조회 66
봄날 2023.11.10 66
76
희공 19회차 후기 : 송 양공 그렇게 안봤는데... (1)
토용 | 2023.10.31 | 조회 78
토용 2023.10.31 78
75
희공18회차 후기 : 송양공의 시대를 열다 (1)
진달래 | 2023.10.29 | 조회 75
진달래 2023.10.29 75
74
17회차 후기: 권력무상, 관중과 환공의 죽음 (1)
봄날 | 2023.10.18 | 조회 91
봄날 2023.10.18 91
73
희공 16회차 후기 : 길흉은 사람 때문에 생긴다. (1)
토용 | 2023.10.16 | 조회 78
토용 2023.10.16 78
72
희공 15회차 후기 - 그래서 원전(爰田)이 뭐래요? (1)
진달래 | 2023.09.26 | 조회 130
진달래 2023.09.26 130
71
희공14회차후기: 독한 여자 (1)
봄날 | 2023.09.25 | 조회 105
봄날 2023.09.25 105
70
희공 13회차 후기 : 한원전쟁 (秦대晉) (1)
토용 | 2023.09.10 | 조회 90
토용 2023.09.10 90
69
희공 12차 후기 : 가죽이 없는데 털이 장차 어디에 붙겠습니까? (2)
진달래 | 2023.09.04 | 조회 120
진달래 2023.09.04 120
68
눈깔진의 내전은 아직도 진행중!(좌전이 노나라 역사책 맞아?!) (1)
봄날 | 2023.08.28 | 조회 99
봄날 2023.08.28 99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