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와 생명의 역사를 읽고...

무담
2011-06-15 18:11
2316

굴드와 도킨스 책을 번갈아 본 후 둘의 대결을 다룬 킴 스티렐리의 책까지 읽고 마침내 굴드와 도킨스에 대한 글을 쓸 차례가 되었다. 둘의 다툼을 놓고 가만히 생각하니 갑자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갈등의 역사가 떠오르면서 둘을 이해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두 당은 얼핏 비슷해 보이는데다가 한 때 한솥밥을 먹기까지 했으면서도 참 엄청 싸운다. 싸움의 뿌리도 깊어 80년대를 누비던 NL, PD의 주도권 다툼이 두 당 사이의 갈등의 시작이었다. 참 같이 어깨동무하기 내키지 않는 얄미운 존재다. 그런데 그렇다고 서로가 서로에게 적이고 다른 점이 또 그렇게 많은가?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적은 누가 보아도 한나라당 같은 보수 세력이지 서로가 아니다. 둘은 다른 점보다는 비슷한 점이 훨씬 많다. 사람들은 둘의 주장을 들으며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고민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닥합(닥치고 합쳐)’ 같은 말을 훨씬 많이 한다. 결국 두 당은 힘들게나마 ‘닥합’의 길을 걷고 있다.


도킨스의 매력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엄청난 추동력과 진화의 결과 남게 되는 이기적인 유전자, 그리고 이 이기적 유전자와 연결된 수많은 생명의 현상들에 대한 시원스럽고 명쾌한 설명에 있다. 하지만 자칫 잘못 읽으면 원인과 결과가 전도되어 이기적 유전자의 치밀하고 음모로 갖가지 생명 현상이 벌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목적론적이며 이기적인 생명현상에 대한 심한 반감이 들 수도 있다. 설마 굴드가 이런 오해 때문에 서로의 이견을 앞에 놓고 즐겁게 한 잔 하면서 차분히 토론하고 풀어나가기보다 감정 싸움으로 보일만큼 대립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은 아니겠지? 내가 읽은 바로는 분명히 이기적 유전자는 생존과 번식에 유전자가 살아남고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자연 선택 과정의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이다. 또한 도킨스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기적 유전자의 이기성이 많은 경우 이타성이 형태로 발현됨을 역설하고 있으니 누구든 도킨스의 주장을 자신의 이기성에 대한 면죄부 부여로 착각해서도 안 될 일이다.


굴드는 도킨스에 비하면 훨씬 시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이 넘쳐나는 문장가이다. 캄브리아기 초기에 이미 진화의 큰 줄기가 형성되었고 종의 다양성은 늘어날망정 더 이상 새로운 문이 나타난다든지 하는 큰 변화는 이미 닫혀버린 상태라는 굴드의 선언은 곱씹어볼수록 충격적이다. 정말 그럴까? 그럴 것 같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하다. 하기야 캄브리아기 이후 5억년이 넘게 지났고 페름기 말기, 백악기 말기의 두 번의 대멸종의 참사 속에서도 새로운 문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말이기는 하다. 캄브리아기는 원핵생물 출현 후 약 30억년, 진핵생물 출현 후 약 10~20억년을 지나면서 힘들게 쌓아온 진화의 탑이 어느 문턱을 지난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정말 생명의 유전자는 이 시기에 중요한 문턱을 넘어서서 생명 형태의 큰 줄기를 정해 버렸고 그 이후는 그저 다양한 변주곡을 감상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지구상의 생물은 정말 앞으로 몇십억년이 될지 모르는 미래의 역사 속에서도 새로운 문을 열어갈 잠재력을 상실한 굳어진 생명체들이란 말인가? 원래 이미 가진 것이 많은 자들은 변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구에 대참사가 벌어져 대부분의 생물종이 가진 것 없는 빈털터리 신세가 된다면? 인류가 많은 다른 동물종들을 동반 파멸시키면서 자멸의 길을 간다면? 그런 경우에라도 지구에는 새로운 생명들이 나타나 지구를 다시 채우고 인류의 멸망은 지구에는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지구를 다시 채울 생명체들은 대재앙에서 살아남은 일부 생명체의 후손으로서 또 다른 변주곡들? 이처럼 나의 삶 안에서 절대 확인해볼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종류의 미래에 대한 궁금증은 과학 공부에서 가장 사람을 애타게 만드는 대목이다.

댓글 1
  • 2011-06-16 00:01

    무담샘이 글을 일찍 올려 주시는 바람에

    영지버섯과 새털은 부리나케 '초치기 글쓰기'를 했네요^^

    담에는 꼭 '재봉선 없는' 글쓰기가 되기를 다짐해봅니다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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