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대로42길 16회] 우리에게 ‘사과’가 필요할 때 / <시>(2010)

청량리
2022-04-30 21:09
358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사과가 필요할 때

시 Poetry(2010) | 감독 이창동 | 주연 윤정희 | 135분 | 15세 이상

 

 

 

 

 

 

영화는 개천에서 떠내려 오는 주검을 한 아이가 우연히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미’ 우리는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럴 때 스토리는 ‘누가, 왜 죽였는지’ 밝혀나가는 방식으로 대부분 전개된다. 이는 어쩌면 우리의 관심 역시 대부분 그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해자가 누구인지, 범행 동기는 무엇인지, 어떻게, 어디서, 왜!!!

그러나 이 영화의 질문은 애초부터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같은 마을에서 중학생 손자와 함께 낡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66세 미자(윤정희). 그녀가 '시'를 배우기 시작한 건 자신이 알츠하이머 초기임을 의심한 이후였다. 스스로 ‘시인 기질’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해보니 잘 안 써진다. 그러나 그건 사물의 이름이나 적절한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 그녀의 증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자가 참가하는 문예교실에서 김용택 시인(극중 김용탁)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사과를 진짜로 본 게 아니에요. 사과라는 것을 정말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로 보는 거예요.”

그럴 때 느껴지는 무언가를 적은 것이 바로 '시'란다. 집으로 돌아온 미자는 식탁에 앉아 사과를 바라보거나 혹은 나무 밑에서 앉아 시가 떠오르길 기다리지만, 여전히 ‘진짜’를 보지 못하고 그들을 어떤 ‘대상’으로 바라본다. 그것들은 아직 그녀의 시를 위한 사과이고, 나무일뿐이다.

 

 

이어서 영화는 앞서 죽은 아이가 미자의 손자와 같은 중학교 여학생이며, 손자가 성폭행 가해자 중 한 명임을 담담하게 드러낸다. 등교 전 손자의 아침밥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했던 미자는 충격에 빠진다. 이번에는 죽은 여학생에 대한 애도의 시를 써보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여학생의 사진을 훔치고 그 아이의 집을 찾아가 보지만, 김용택 시인의 관점을 빌리자면 그 아이는 미자에게 아직 제대로 보지 못한 ‘사과’에 가까웠다. 이 사건을 통해 감독이 말하려는 시의 의미는 무엇일까? 진짜로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 <시>(2010)는 이창동 감독의 전작인 <밀양>(2007)과 함께 ‘구원’의 문제를 다루는 연장선에 놓여있다. 정치가 영화를 선동적으로 다루는 방식과 유사하게 종교 역시 영화를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종교영화’는 대부분 특정 종교의 복음과 전도를 목적으로 하며, 신에 대한 믿음이 곧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임을 강조한다.

영화 <밀양>에서 원하는 돈을 못 받은 유괴범은 신애(전도연)의 아들을 죽이게 되고, 이미 교통사고로 남편마저 잃은 그녀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절망에 빠진다. 이때 그녀 앞에 교회의 문이 열리고 신애는 새 삶을 얻은 듯하다. 신에 대한 그녀의 믿음은 무엇으로 보장받을 수 있고, 그녀는 어떻게 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을까? 아들을 죽인 유괴범을 용서하는 것이 자신에게 보여준 신의 응답이라 생각한 신애는 감옥을 찾아간다.

그러나 철창 너머의 그 유괴범 역시 자신도 하나님을 만나 용서를 받았다는 신앙고백을 듣자 신애는 혼란스러워한다. 그를 용서하는 건 자신이어야 했다. 그게 신이 자신에게 보여준 구원의 길이라 생각했다. 남편과 아들을 데려갔고 자신마저도 구원하지 않는 하나님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때부터 신애는 삐뚤어지기 시작한다. 집에서 ‘사과’를 깎아 먹던 칼로 자신의 손목을 그으며 위를 바라본다. “(하나님) 보고 있어요?” 당신의 구원 따위는 이제 필요 없어.

두 영화에는 유사한 실패가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유괴범(밀양)과 여학생(시)을 ‘진짜로’ 보지 못하고, 구원과 시의 ‘대상’으로 마주했기 때문에 신애는 구원받지 못했고, 미자도 아직 시를 쓰지 못한다.

인간에게 삶과 죽음은 어려운 난제다. 종교는 인간들에게 평온의 안식처를 제공하는 듯하다. 종교영화는 그러한 신앙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재현한다. 그러나 거대한 핵무기나 아주 작은 바이러스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그 해답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요점을 놓치고 있다. 누군가 신에게 인내를 달라고 기도하면 신은 그에게 인내심을 줄까, 아니면 인내심을 발휘할 기회를 줄까? 사랑을 주세요, 라고 한다면 묘한 사랑의 감정을 줄까, 아니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줄까?”(영화 <브루스 올마이티> 중에서) 신애와 미자의 실패를 돌이켜보면, 결국 풀리지 않는 난제의 ‘해법’이 아닌, 그 앞에서 흔들리는 자신의 태도와 마주하려 할 때 성찰이 일어나는 건 아닐까?

<밀양>과는 달리 <시>에서는 기독교나 교회에 대한 직접적인 배경도 없지만, 그러나 두 영화 모두 짙은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다. 이창동 감독은 <시>에서 종교적 성찰의 문제를 더 깊숙이 파고 들어간다. “시가 죽어가는 이 시대에, 시라는 것은 말 그대로 시일 수도 있고, 영화일 수도 있고, 우리의 눈에 미처 보이지 않는 작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란 아름다운 것이다. 작지만 가치 있는 것,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자는 죽은 소녀를 떠올리기 위해 몸을 던진 다리를 찾아간다. 그러나 애꿎은 모자만 강물에 빠진다. 노트를 꺼내보지만 비까지 쏟아지자 미자는 온몸이 젖은 채 허망하게 휘둥거린다. 도대체 이게 뭐람. 비에 젖은 노트를 들고 바위에 걸터앉아 흘러가는 강물을 말없이 바라보는 미자. 그때 그녀를 스치고 지나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날 미자는 자신이 간병하고 있는 김노인을 찾아가 노골적으로 원하던 그의 성적욕구를 해결해 준다.

 

 

이 부분은 <밀양>에서 신애가 유괴범을 만나러 감옥으로 찾아가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자신에 대한 어느 정도의 신세한탄과 김노인에 대한 약간의 연민 그리고 성폭행당한 소녀를 이해하고픈 다소의 절박함이 버무려져 있다. 난 김노인보다는 나은 인간이니까. 그러나 그 껍데기를 벗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죽은 소녀의 사진을 외면하는 손자의 태도를 마주했을 때, 죽은 소녀의 엄마 앞에서 치매증상으로 시답지 않은 꽃타령이나 늘어놓았을 때, 합의하겠다고 찾아온 그 소녀의 엄마를 정신 차리고 마주했을 때, 그러나 돈이 없다는 핑계를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을 때, 미자는 다시 김노인을 찾아가 돈 5백만원을 요구한다. 지난 번 대가로 날 협박하는 거냐는 김노인의 말에 그러든가 말든가, 미자는 어떻게든 소녀의 엄마에게 합의금을 줘야했다. 소녀의 죽음으로 마주한 건 아름다운 시 한 편이 아니라 냉혹한 현실이었다. 미자는 이제 소녀에게 시 한 편을 건넨다. ‘아네스의 노래’

“아니에요. 시를 쓰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시를 쓰겠다고 마음을 갖는 게 어려워요.”

<밀양>에서 신애는 결국 정신병원에 가지만, <시>에서 미자는 시 한편을 완성한다. 아무래도 이창동 감독은 존재론적 문제를 종교적(외부적) 구원이 아니라 내면적(종교적) 성찰을 통해 찾으려 하는 듯하다. “예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아서 드러내는 것인데, 시야말로 그런 예술의 의미를 담고 있죠. 예술을 한다는 것이 눈앞에 보이는 현실의 고통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미자가 시를 쓰느냐, 소설을 쓰느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당연히 시를 써야 하죠.”

여기에 예술과 종교의 공통분모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드러나지 않는 것들을 응시하며, 그러한 태도로 현실과 마주한다. 종교가 현실의 문제를 외면한 채 개인의 구원으로 나아갈 수 없듯이, 예술도 현실에 발을 딛지 않고는 지속될 수 없다. 어쩌면 영화가 종교든 정치든 그 수단으로 포섭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이 그러한 현실에 바탕을 둔 예술성이 아닐까? 그렇기에 예술이 그리는 세계가 더욱 절망적일수록 희망 없는 세계와는 정반대의 꿈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 양미자 ‘아네스의 노래’ 중에서 -

 

 

 

댓글 3
  • 2022-05-01 10:45

    <밀양>도 대단한 영화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시>가 더 좋았어요.

    저도 영화 <시>에 대해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늘 가득해요. 늘 실패하지만^^

    청량리 글 잘 읽었어요. 고마와요

     

    피에쑤: 근데 문단별로 한 줄씩 띄는 게 더 가독성이 있을듯^^

  • 2022-05-02 09:46

    전 영화 <시>를 보고나서 한동안을 미자에 감정이입되서....

    전 영화도 다큐처럼 보나봐요..🍎

  • 2022-05-03 07:33

여울아의 알지만 모르는
"내가 아는 줄 알았지만 몰랐던 이야기" 여.알.모. 두 번째 순자 이야기     죽은 이를 기억하는 방법     누구를 위한 의례인가 할머니의 장례식장은 북새통이었다. 내가 만삭의 몸으로 장례식장에 들어섰을 때 찬송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할머니의 막냇동생분의 아들이 해남 어디선가 개척교회 목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가 천국에 갈 수 있도록 한참을 통성기도 하신 후에야 주위는 조용해졌다. 어느 틈에 도착하셨는지 집안의 먼 친척 비구니 스님이 엄마의 손을 꼭 붙들고 망자의 한을 달래야 한다고 하셨다. 우리 엄마 아빠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할 기세였다. 그렇게 장지로 떠나기 전 할머니의 천도재(薦度齋)가 결정되었다.     할머니는 생전에 죽어서라도 훨훨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하셨다. 뼛가루는 산에 들에 뿌리고, 장례도 간소하게 치루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뇌졸중으로 몇 번을 쓰러지시고, 또 그때마다 재활에 성공하셨지만 할머니는 늘 당신의 마지막을 준비하셨다. 나는 부모님께 왜 할머니의 평소 소원대로 장례를 치르지 않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나까지 보태어 부모님을 비난할 수 없었다. 몇 달 전 새벽 할머니가 사라진 후 부모님은 생업을 전폐하고 매주 전국각지 보호소를 찾아 헤맸다. 당시 서울 살던 내게는 주말마다 바쁘다고만 하시고 할머니의 부재를 한참이나 지나서야 알리셨다. 그 몇 달 사이 아버지는 이가 몽땅 빠지고 엄마는 앞머리가 듬성듬성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공무원의 실수로 할머니를 행불자로 이미 가매장했다는 소식을 접했고, 그 공무원을 고발하지 않기로 서약서를 쓴 후에야 할머니는 주검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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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아
2022.05.31 | 조회 456
논어 카메오 열전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루는 번지가 공자에게 인(仁)이 무엇인지 물었다. 공자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愛人)’라고 알려 주었다. 번지는 다시 안다는 것(知)은 무엇인지 물었다. 공자는 ‘사람을 아는 것(知人)’이라고 알려 주었다. 그런데 번지의 얼굴을 얼핏 보니, 자기가 해 준 말이 무슨 말인지 영 감을 못 잡은 듯하였다. 공자는 “정직한 사람을 등용하여 모든 부정한 사람을 버리면, 부정한 사람을 바르게 만들 수 있다.”고 다시 한 번 말해주고 그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번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침 지나가고 있던 자하를 불러 물어보았다. 내가 이러이러한 것을 물었더니 스승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는데 이게 무슨 뜻일까? 그 말을 듣고 자하가 말했다.   “훌륭한 말씀이군요! 순임금이 천하를 다스리실 때 많은 사람 중에 선발하여 고요를 등용하시니 어질지 못한 사람이 멀리 사라졌습니다. 탕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 많은 사람 중에 선발하여 이윤을 등용하시니 어질지 못한 사람이 멀리 사라졌습니다.” (樊遲問仁 子曰 愛人 問知 子曰 知人 樊遲未達 子曰 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 樊遲退 見子夏 曰 鄕也吾見於夫子而問知 子曰 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 何謂也 子夏曰 富哉言乎 舜有天下 選於衆 擧皐陶 不仁者遠矣 湯有天下 選於衆 擧伊尹 不仁者遠矣) 『논어』 「안연,22」   번지가 안다는 것(知)이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 공자가 대답한 ‘사람을 안다는 것(知人)’은 『논어』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다. 그래서인지 1편인 「학이(學而)」에는 첫 장에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다.(人不知而不慍)”라는 문장이, 마지막 장에는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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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2022.05.29 | 조회 320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함께 그러나 불안정하고 모호한 결혼이야기 Marriage Story(2019) | 감독 노아 바움백 | 주연 스칼렛 요한슨, 아담 드라이버 | 137분 |         통상적으로 ‘가족’은 결혼으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주거와 생계를 유지하는 단위로서의 ‘가구’와는 달리 가족은 혈연이나 혼인 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가족을 구성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가구와 가족의 구별은 사적 사회구성의 서로 다른 형태일 뿐, 그 구성원(들)의 밀도나 결속력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내밀함’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지 않을까. 쉽게 말해, 현관문을 열면 바로 방이 보이는 ‘원룸’구조와 현관문, 중문, 방문, 전실을 통해 들어가야 하는 ‘안방’이 다르게 배치되는 이유다. 가족이라는 ‘스위트홈’에서 가장 내밀한 영역의 안방, 그곳에 거주하는 이들이 ‘부부’다. 이때 문제는 그들의 관계가 정말 내밀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내밀함을 가족 혹은 부부의 ‘견고함’으로 받아들이는데 있다.   어린 아들을 둔 부부, 찰리(아담 드라이버)와 니콜(스칼렛 요한슨)은 서로에 대한 장점과 애정을 편지로 써서 읽어주려 한다. 그러나 니콜은 이혼조정 전문가 앞에서 그 편지를 읽지 못한다. 이미 벌어진 틈을 과거의 감정으로 메울 수는 없었다....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함께 그러나 불안정하고 모호한 결혼이야기 Marriage Story(2019) | 감독 노아 바움백 | 주연 스칼렛 요한슨, 아담 드라이버 | 137분 |         통상적으로 ‘가족’은 결혼으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주거와 생계를 유지하는 단위로서의 ‘가구’와는 달리 가족은 혈연이나 혼인 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가족을 구성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가구와 가족의 구별은 사적 사회구성의 서로 다른 형태일 뿐, 그 구성원(들)의 밀도나 결속력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내밀함’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지 않을까. 쉽게 말해, 현관문을 열면 바로 방이 보이는 ‘원룸’구조와 현관문, 중문, 방문, 전실을 통해 들어가야 하는 ‘안방’이 다르게 배치되는 이유다. 가족이라는 ‘스위트홈’에서 가장 내밀한 영역의 안방, 그곳에 거주하는 이들이 ‘부부’다. 이때 문제는 그들의 관계가 정말 내밀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내밀함을 가족 혹은 부부의 ‘견고함’으로 받아들이는데 있다.   어린 아들을 둔 부부, 찰리(아담 드라이버)와 니콜(스칼렛 요한슨)은 서로에 대한 장점과 애정을 편지로 써서 읽어주려 한다. 그러나 니콜은 이혼조정 전문가 앞에서 그 편지를 읽지 못한다. 이미 벌어진 틈을 과거의 감정으로 메울 수는 없었다....
청량리
2022.05.29 | 조회 332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매력적인 악동, 페드로 알모도바르 - 내 어머니의 모든 것(2000)/페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ovar)     전 세계에서 주목받던 초현실주의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1900~1983) 이후 몰락해가던 스페인 영화에 혜성같이 등장한 인물이 페드로 알모도바르(1949~)다. 그는 현재 7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활동으로 우리나라 감독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영화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런 가운데 올해 들어 우리나라에서 알모도바르 감독의 특별전이 연이어 열리면서 신작 영화 <페러럴 마더스(2022)>도 볼 수 있었다. 1980년대 후반 ‘유럽 영화계의 악동’ 혹은 ‘호모 영화 작가’라고 불렸던 페드로 알모도바르. 그가 여전히 거장으로 불리며 작품 활동을 계속하는 모습이 좋지만 후기 작품들 속에서 사라져가는 그만의 생동감이 그립기도 하다.   젊은 날, 그의 공격성이 좋았다   잡지 『스크린』에 처음 소개되었던 그의 영화는 <신경쇠약직전의 여자(1988)>였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나 ‘에밀 쿠스트리차’처럼 독특한 영화를 찍는 감독들에 꽂혀있던 나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1992년작 <하이힐(1991)>을 극장에서 보고 나서 <마타도르(1986)>나 <신경쇠약직전의 여자>를 찾아보았다. 우리나라에서 그는 도발적이고 강렬한 색채와 소재로 인해 음지에서 인기를 얻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냥 영화 자체가 멋있게 보였다. 36년간 프랑코 정권의 긴 독재의 끝에서 벗어난 스페인 사회는 남성권력이 상징하는 가부장적 질서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매력적인 악동, 페드로 알모도바르 - 내 어머니의 모든 것(2000)/페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ovar)     전 세계에서 주목받던 초현실주의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1900~1983) 이후 몰락해가던 스페인 영화에 혜성같이 등장한 인물이 페드로 알모도바르(1949~)다. 그는 현재 7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활동으로 우리나라 감독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영화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런 가운데 올해 들어 우리나라에서 알모도바르 감독의 특별전이 연이어 열리면서 신작 영화 <페러럴 마더스(2022)>도 볼 수 있었다. 1980년대 후반 ‘유럽 영화계의 악동’ 혹은 ‘호모 영화 작가’라고 불렸던 페드로 알모도바르. 그가 여전히 거장으로 불리며 작품 활동을 계속하는 모습이 좋지만 후기 작품들 속에서 사라져가는 그만의 생동감이 그립기도 하다.   젊은 날, 그의 공격성이 좋았다   잡지 『스크린』에 처음 소개되었던 그의 영화는 <신경쇠약직전의 여자(1988)>였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나 ‘에밀 쿠스트리차’처럼 독특한 영화를 찍는 감독들에 꽂혀있던 나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1992년작 <하이힐(1991)>을 극장에서 보고 나서 <마타도르(1986)>나 <신경쇠약직전의 여자>를 찾아보았다. 우리나라에서 그는 도발적이고 강렬한 색채와 소재로 인해 음지에서 인기를 얻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냥 영화 자체가 멋있게 보였다. 36년간 프랑코 정권의 긴 독재의 끝에서 벗어난 스페인 사회는 남성권력이 상징하는 가부장적 질서와...
띠우
2022.05.17 | 조회 630
봄날의 주역이야기
전쟁에 정당한 명분은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뉴스가 매일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와의 개전선언 이래, 우크라이나, 특히 동남부 돈바스, 마리우폴을 비롯한 각 지역은 포화에 휩싸여있다. 인구가 밀집된 도시지역을 빠르게 점령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던 러시아의 예상은 빗나갔고, 강력한 우크라이나의 저항으로 전쟁은 석달째로 접어들었다. 이 지역의 90%이상의 집들은 파괴됐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길 위에 내던져졌다. 많은 지역에서, 어제는 러시아의 탱크가 도로를 질주했다가 오늘은 우크라이나 군대가 탈환하는 일진일퇴의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은 지옥에 다름없다. 얼마 전, 이 전쟁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니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알자는 심정으로 <봄날의 살롱>이 열렸다. 속시원한 대답이나 해결책이 있을리 만무였고, 우리는 전쟁이라는 참상 앞에서 무기력한 슬픔을 나눌 뿐이다. 아무도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났고 그 피해는 오롯이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돌아갔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이번 전쟁의 원인에 대해 여기저기 말이 많다. 그 원인은 간단하지 않다. 전쟁의 대의는 아주 복잡하고 오래된 역사적 기반으로 세워진 것이기도 하고, 나토-미국의 연합과 러시아-유라시아 진영간의 격돌의 장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어떤 명분을 앞세운다 하더라도 전쟁이 참혹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떤 명분이건 간에 먼저 전쟁을 도발한 자는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국민이라는 이유로, 하릴없이 쏟아지는 포탄 속에서 매일을 견뎌야 하는 운명, 부모가 죽고 자식이 죽고 집을 잃고 굶주림과 공포에 떨어야 하는 운명을 지운 사태에 대해 어떤 명분이 정당한가.  ...
전쟁에 정당한 명분은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뉴스가 매일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와의 개전선언 이래, 우크라이나, 특히 동남부 돈바스, 마리우폴을 비롯한 각 지역은 포화에 휩싸여있다. 인구가 밀집된 도시지역을 빠르게 점령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던 러시아의 예상은 빗나갔고, 강력한 우크라이나의 저항으로 전쟁은 석달째로 접어들었다. 이 지역의 90%이상의 집들은 파괴됐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길 위에 내던져졌다. 많은 지역에서, 어제는 러시아의 탱크가 도로를 질주했다가 오늘은 우크라이나 군대가 탈환하는 일진일퇴의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은 지옥에 다름없다. 얼마 전, 이 전쟁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니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알자는 심정으로 <봄날의 살롱>이 열렸다. 속시원한 대답이나 해결책이 있을리 만무였고, 우리는 전쟁이라는 참상 앞에서 무기력한 슬픔을 나눌 뿐이다. 아무도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났고 그 피해는 오롯이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돌아갔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이번 전쟁의 원인에 대해 여기저기 말이 많다. 그 원인은 간단하지 않다. 전쟁의 대의는 아주 복잡하고 오래된 역사적 기반으로 세워진 것이기도 하고, 나토-미국의 연합과 러시아-유라시아 진영간의 격돌의 장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어떤 명분을 앞세운다 하더라도 전쟁이 참혹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떤 명분이건 간에 먼저 전쟁을 도발한 자는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국민이라는 이유로, 하릴없이 쏟아지는 포탄 속에서 매일을 견뎌야 하는 운명, 부모가 죽고 자식이 죽고 집을 잃고 굶주림과 공포에 떨어야 하는 운명을 지운 사태에 대해 어떤 명분이 정당한가.  ...
봄날
2022.05.12 | 조회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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