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5회차 후기

공이
2016-06-13 08:12
507

구름님께서 5회차에서 배운 지천태와 천지비 괘사에 대해 자세히 풀어주셔서

저는 수업 듣고 난 후 생각되던 것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천지비괘의 상황에서도 군자가 형통하는 길이 있음을 주역은 말하고 있는데요,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의 정리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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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5회차> 후기/ 2016. 6. 13./ 공이

 

 

                                                             막힌 시대에 형통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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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역>을 읽는다. 대략 3500여 년 전 사람들이 쓰던 한자로 쓰여 있다. 읽기도 어렵고, 해석은 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다. 인생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맞이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64가지의 괘로 압축하여 정리했고 이를 다시 풀어 놓았기 때문이다. 인생사, 우리는 복잡하고 어렵다고 아우성이지만 실제로 정리해 보면 64가지 상황을 넘어서지는 못할 성 싶다. 한 사람의 인생으로 좁혀서 보면, 실제로 몇 개 안되는 괘의 상황을 겪다가 죽음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주역은 아주 옛날에 한 나라의 임금님이 나라의 중차대한 문제를 앞에 두고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하늘의 뜻을 묻는 것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점을 치는 것에서 시작된 책이다.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이 시대, 비과학의 정수(精髓)인 점() , <주역>을 읽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읽는 것 마저 쉽지 않고, 의미 역시 난해한 이 책을 우리는 왜 읽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점술을 대표하는 주역과 사주명리를 공부한다고 하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똑똑한(?) 사람인줄 알았더니 무지하고 미신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대들은 점을 치지 않는지.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러 저러한 성격 분석’, ‘강점 분석’, ‘주식의 동향 분석등등, 이런 것들이야 말로 신종 점의 형태는 아닐까? 현대인들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빅 데이터에 기초한 통계학적 분석틀을 주로 사용한다. 분석과 통계학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매우 과학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주역이나 사주명리 모두 빅 데이터에 기초한 일종의 통계학적 분석틀이다. 서양의 애니어그램보다 사주명리의 경우의 수가 훨씬 더 많다. 역사를 관통하여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도 음과 양두 개에서 분화된 64개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스스로 과학적이라고 자부하지만 옛사람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지혜로웠음을 알고 있다. 현대의 동서양의 사상은 3000여 년 전 성인들의 그 철학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인정하는 옛 지성인들이 주역을 읽고 또 읽었단다. 왜였을까?

 

  옛 지성인들이 주역을 읽었던 이유는 우리 현대인들이 심리학과 자기치유의 책을 읽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이 추구하는 바로 그것, 잘 사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의 의미가 시대마다 나라마다 다를 수는 있어도, 삶을 잘 살고자 하는 염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한 것이 아니겠는가. 인생 중에 만날 수 있는 길흉화복. 그 중에서 길과 복을 불러들이고, 흉과 화를 면해보고자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않을까? 그 옛날 임금님들이 나라에 복을 불러오고 싶어 했던 바로 그 마음이 이 주역에 들어있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주역이 무슨 복을 불러오는 비술을 말해주는 책은 아니다. 산 속에서 길을 잃으면 그 상황에서 길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이럴 때 위에서 내려다보면 자신의 위치와 길이 한 눈에 훤히 보인다. 주역은 마치 이와 같다. 자신이 지금 어느 좌표에 있는지 알려주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현대인들이 주역과 사주명리를 미신적인 점으로 치부해 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인간과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아닐는지. 예전 사람들은 사람의 일을 생각할 때 항상 하늘과 땅을 함께 사유했다. 천지인(天地人)은 항상 함께 고려되었지 인간만 따로 떼어내어 단독적으로 사고하지 않았다. 사람은 천지가 소통하면서 생겨난 만물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사는 하늘()과 땅()이 만들어낸 상황과 조건 속에서만 고려되었다. 아무리 좋은 일도 하늘의 뜻이 함께 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고, 성인의 덕을 갖춘 군주도 천지의 베풂 없이는 그 뜻을 펼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중요한 일을 할 때마다 천시(天時)를 살폈던 것이다.

 

  반면, 현대인에게는 인간이 만물, 나아가 우주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역사 발전의 주체인 인간에게 할 수 없는 일이란 없다고 전제한다. 다만 시간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안 되면 되게 하라와 같은 구절들은 항상 현대인들의 심장을 울린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도뜻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무모함을 자신감과 긍정성이라고 추켜세운다. 이렇듯 천지의 상황이라는 것이 의미를 상실한 현대인들에게는 행위 주체의 의지와 열정만이 남는다. 그래서 그들은 점을 칠 필요가 없다. ‘모든 상황에서 긍정적으로,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된다. 아마도 이것이 자기계발서가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이유일 것이다.

 

  여하튼 이런 현대인들에게 점을 치는 행위, 즉 주어진 상황(天時)을 인정한다는 것은 열등하고 어리석은 행위일 뿐이다. 그런데 인생 고비에서 한번쯤 넘어져서 크게 코가 깨져 본 사람은 안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때가 있음을. 능력과 열정, 의지의 문제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음을. 그리고 그런 때에는 행동 전략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을.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상황에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천지를 돌아보게 된다. 나의 노력과 열정, 그리고 그 무엇으로도 넘을 수 없는 거대한 힘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비로소 인간은 하늘 앞에 겸손해지는 것이다. 주역을 읽는다는 것은 그렇게 육체가 소진되고 영혼이 너덜너덜해진 다음에가 아니라, 미리부터 하늘의 뜻을 살펴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주역을 읽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겸손이고 지혜이다.

 

지난 시간에 배운 <지천태>의 때와 <천지비>의 때를 보자. 지천태의 때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이 소통하여 만물이 태평한 때이다. 이럴 때 백성들과 배운 자들은 뜻을 펼치기 위해 세상 속으로 힘 있게 나아간다. 길거리 돌멩이도 쓸 곳을 있음을 알기에 온갖 괴이한 사람들과도 손을 잡는다. 그리고 빙하를 건너는 만용도 서슴지 않는다. 군주 역시 자기보다 뛰어난 인재들을 고루 고루 등용하고, 파격적인 결혼을 통해 대 화합과 소통의 길을 활짝 연다. 위에서나 아래에서나 성인의 덕을 활짝 펼칠 때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행동 전략은 거리낄 것 없이 대담하게 열정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될 것이다.

 

  그에 비해 천지비의 상황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하늘과 땅이 자기 입장에서 한발자국도 서로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오히려 하늘은 점점 더 위로, 땅은 점점 더 아래로 멀어지니 만날래야 만날 수 없는 아주 꽉 막힌 상황이다. 이러한 때 군자들은 덕을 숨겨야 한다. 자신의 능력을 믿고 덕을 펼치겠다고 나서는 순간 소인들에게 잡아먹힌다. 그러므로 한미한 자리에서 겨우 목숨이나 부지할만한 녹봉으로 살아가기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안 되면 되게 하라와 같은 말들은 생각하지도 말아야 한다. 백성들은 어떠한가? 그들 역시 때가 불리하므로 섣불리 봉기해서는 안 된다. 그대로 그 자리에 꼼짝 말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꽉 막힌 천지비의 괘를 얻음이 어떻게 잘 사는 길과 연결되는가? 우리는 점을 쳐서 나오는 괘를 통제할 수 없다. 길한 괘도 흉한 괘도 나오는 대로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 흉한 괘가 나와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억울하다고 하소연해도 어쩔 수 없다. 점을 쳐서 얻는 괘는 사실 우리 인생과 많이 닮아 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해서 이 시대, 이곳에 이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아마도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환경과 조건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우리가 우리의 태어남과 상황과 조건을 선택할 수 없었듯이 괘 역시 선택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일단은 그 괘를 받아들여야 한다. 옛사람들의 지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말이다. 로마의 노예 철학자로 유명한 에픽테토스도 같은 말을 했다.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과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을 나누는 것에서부터 자유와 행복으로 가는 길이 열리기 시작한다고 말이다.

, 다시 천지비괘의 예로 돌아가 보자. 천지비 괘의 육이의 효사는 다음과 같다.

 

六二包承이니 小人大人이라.

(육이는 포용하여 이음이니, 소인은 길하고 대인은 비색하니 형통하니라.)

 

  소인이 판치는 불통의 시대, 대인 즉 군자가 형통하는 길이 있으니 바로 비색해지는 것이다. 비색해진다 함은 뜻이 막히는 것이다. 소인배가 주름잡는 시대에 군자가 그 뜻을 펼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러므로 대인은 막힌 걸 알고 그 길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을 욕망하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할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닦고 바름(, 혹은 )을 추구할 것이다. 험이(險易)와 상관없이 어느 때에라도 사람이 형통의 길을 열기 위해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스스로 바름을 추구하는 일일 것이다. 그 상황에 맞는 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주역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모든 시대에 형통하는 길일 것이다.

 

 

댓글 4
  • 2016-06-13 23:20

    꽉 막힌 괘에서 곰곰 생각하게 되는

    " 험이(險易)와 상관없이 어느 때에라도 사람이 형통의 길을 열기 위해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

    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공이님의 주역 괘 설명을 읽고 있으니

    새삼 주역 괘와 일상이 엮이는 느낌이네요^^

     

  • 2016-06-14 07:16

    와..멋지네요. 잘 읽었습니다

  • 2016-06-14 07:59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주역을 읽는 마음가짐이 정리가 되었어요.

  • 2016-06-14 22:12

    저는 공이님의 뒤꼭지와 커피컵만

     바라보는 자리에 앉아있는데,

    후기가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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