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잡설 - 位, 應, 比 중 뭐가 더 쎈가요?

문탁
2016-06-06 15:52
528

이문서당 반장의 피눈물나는 읍소에도 불구하고 주역으로 후기를 쓴다는 것, 더구나 주역의 괘로 글쓰기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듯!

그래도 아침부터 문자로 또 다시 읍소하는 반장님을 보니, 뭐라도 '응답'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시유.

하지만 사전세미나도 못하고, 복습세미나도 못하고, 게다가 본 수업조차 한번 결석했으니,  우쌤의 수업을 들어도 뭔 말인지 감도 잘 안 오더라구요. 그러니 이건 그냥 떠오르는 단상?  혹은 아무 맥락도 없는 질문? 뭐 그런겁니다. ㅋㅋ

 

1. 그 사람이 누군지 알려면 그 사람이 어디에서 누구와 노는지 물어라 (位, 應, 比)

 

  우리는 누군가가 누군지를 그가 무엇을 먹는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누구랑 노는지를 보면서 압니다. 그가 자기가 누구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소용없어요. 그는 자기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이웃들(친구들)에 의해서 표현됩니다.

  <주역>이 어마무지하게 멋진 텍스트인 것은 바로 이 점을 철저하게 보여주는 데 있는 것 같아요. <주역> 64괘를 구성하는 384개의 어떤 효들도 자기 혼자서는 아무것도 표현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누군지 각각의 효들은 말할 수 없어요. 그 효가 누군지 말해주는 것은 그 효가 어디에 있는지 (位), 누구랑 호응하는 지(應), 이웃이 누구인지(比)입니다. 우리는 그걸 신영복샘에 따라 '관계론' 이라 부를 수도 있고,  들뢰즈에 따라  '배치'(혹은 '내재적 사유')라고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기억하시죠? 2016년 이문서당의 주제가  <중국사유: 그 내재성의 장>이라는 걸!!

 

 33.jpg

                                                      채플린-우연히 줍게 된 깃발 - 시위대의 계열화

                                                      (이 결과 채플린은 공산주의 선동가가 되어버렸지요^^)


 

    전 오랫동안 공동체를 하면서 누가 일을 잘 하는가 아닌가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본래의 능력이나 품성만큼이나,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그가 어떤 역할을 맡았는가, 그가 그 일을 어떤 사람과 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정말 많이 깨달았습니다. 주술밥상의 팀웍이 좋다면 새털처럼 요리를 못해도 새털은 멋진 밥티스트가 될 수 있지요.  반대로 주술밥상이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면 아무리 요리를 잘 하는 고로케라도 역량발휘를 하기가 힘들겠죠. 또 다르게 말해본다면 각각 저의 구박댕이들이었던 바로, 고은, 동은이가 '100일 수행팀'이 되고, 또 그 팀이 이층까페와 계열화되면 각각은 전혀 다른 인물로 변신할 수 있는 거지요. 

 

   어쨌든 다시 <주역>으로 돌아와서, 궁금한 점 하나. 위와 응과 비 중에서 뭐가 가장 힘이 센가요?

   신영복샘의 책을 보면 "失位도 咎요, 不應도 咎다. 그러나 실위이더라도 응이면 무구이다"라는 것을 인용하면서 위보다 응이 더 상위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우리가 지난번 배운 수뢰둔 괘에서 六二는 음효이면서 음의 자리에 있으니까 '득위'이구, 六五의 자리에 있는 양효와도 음양으로 호응하지만, 初九와의 관계에서(比) 초구의 양효가 워낙 쎄기 때문에(초구가 발목을 잡고 늘어져서^^) 육오에게 못 간다는 거잖아요?  그럼 이웃관계(比)가 더 쎈건가요? 

   근데 꼭 그렇게 볼 수도 없는게 이 경우엔 전체가 둔괘이니까  (둔괘니까 하괘가 진괘이고 진괘의 덕이 動이니까 초구인 양효의 움직임이 아주 강력한 거잖아요?)  그런 것 같기도 하단 말이예요. 

   <주역>에서 위와 응과 비를 통해 각 효를 해석해야 하는 건 알겠는데 '종합판단'은 무진장 어려워 보이네요. ㅋㅋㅋㅋ

 

 

2.  둔괘, 혹은 둔난지세!

 

저는 지난 시간 배운 둔괘가 세 가지 차원에서 참 재밌더라구요.

 

하나는 자연과학적으로 둔괘는 초기 지구를 묘사하는 것 같았어요.

 

우선 수뢰둔의 모습이 상괘는 물이고 하괘는 우뢰인데,  우뢰(=천둥=소리를 동반한 번개)가 원래 대기 중의 수증기(물) 덩어리인 구름의 방전현상이니까 일단은 괘상과 괘명이 확~~ 이해가 되죠.

 

 수뢰둔~1.JPG  Forces_Of_Nature_Storm__01.jpg

 

 

빅뱅. 그리고 하나의 전자와 하나의 양자. 둘이 수소를 만들고 그리고 생겨나는 우주의 물질들. (단전: "강유가 비로소 만나 어려움이 생기며 험한 중에 움직이니...불라불라불라~~~")

그런 우주의 시공이 펼쳐지는 가운데 46억년 전에 원시 지구가 탄생했죠.  대기권이 생기고 지구가 서서히 식으면서 지각이 생겨났어요.  초기 지구는 마그마 바다가 끓고, 하루종일 번개와 천둥이 치는 곳이었다죠. 지독한 카오스! 생명탄생의 우주적 조건!

 

44.jpg

 

 

두번째는 둔괘의 효사들이 다 말타는 비유인 게 이제 약간 감이 잡힙니다.

 

수업시간에는 진짜 뭘 모르니까 "왜 사슴을 좇나요?"라고 질문하다가 쫒겨날 뻔 했지만^^,  다시 둔괘를 복습하다보니 아, 하괘의  덕이 動이니까 자꾸 승마의 비유로 해석한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전체 형세를 못 읽고 자꾸 움직이고 싶어하는 초짜(진괘를 추동하는 초구)의 치기 혹은 패기!!

우쌤도 가르쳐주셨지만 둔괘에 '乘馬班如' (말에 올라타나 엇갈린다=말에서 떨어진다?..ㅋㅋ..)가 세 번 나오잖아요?  육이, 육사, 상육.

그런데 다 의미가 다르죠. 전 육사의 효사가 맘에 들었어요. 왜냐? 그것은 음효지만 일단 정위이고, 무엇보다 초구와 호응하잖아요? 초짜의 움직임을 치기가 아니라 패기로 만들어주는 자리가 육사의 자리 같더라구요. 전 문탁에서 육사처럼 해야겠어요. 그런데 그러려면 패기만만한 초구들이 있어야 하는데 문탁의 초구들은 도대체 누구일지..... (초구가 있어야 장단을 맞추든, 호응을 하든, 나를 밟고 가라고 기꺼이 등을 내주든 할터인디...ㅋㅋ..)

 

 

66.jpg77.jpg

                                                             혹시 니네들 초구냐?

 

세번째는  둔난지세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요? 라는 막막한 물음.

 

우쌤이 그러셨죠. 둔난지세는 군자가 뼈골이 빠지는 시대라구.

전 정말 깊이 공감이 가더라구요. 지금과 같은 문명사적 전환기에, 매일 매일 참담한 일들이 벌어지는 이 때에

뭔가 하려고 말에 올라타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매번 말에서 내려올 수 밖에 없는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걸까, 라는 막막한 물음!!

 

 

 

질문도 단상도 좀 더 있지만 일단 오늘 낙서는 여기까지.

 

댓글 2
  • 2016-06-06 16:04

    아..루쉰 에세이 써야 하는데...자꾸 인터넷 클릭만 하게되는 이 심정!

    지금이 바로 '둔난지세'!

    그나저나 초구인 고은이의 표정이 완죤 귀엽게 나왔네. ㅎㅎ

  • 2016-06-07 06:43

    문탁샘의 낙서가^^ 둔괘에 대한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네요.

    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친구가 더 큰 영향을 준다는?^^

    당장은 比가 힘이 세보이지만 결국은 應이 더 세지 않을까요?

    굳이 누가누가 힘센가로 해보자면  ㅋㅋ

    그러나 역시 해석은 누가 더 센가로 하는건 아니겠지만요...

    어려워요...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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