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으로부터 - 이계삼 0923

문탁
2014-09-27 09:24
692

안녕하세요. 이계삼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추적추적 비가 내립니다.

 

오늘 923일은 여러모로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다름아니라, 한국전력이 밀양시 4개면 구간 52기의 철탑을 3000명의 공권력을 앞장세워 시작한지 딱 1년만에 52기의 철탑을 완공한 것입니다. 이제 헬기로 저 철탑들 사이사이로 송전선을 걸면 올 12월부터는 고리 원전과 연결되어 송전하고 있는 신고리 1~2호기의 전력을 먼저 송전하게 될 것입니다.

 

작년 이맘때가 생각납니다. 101일 공사재개를 앞두고 국무총리가 밀양을 다녀가고 전운이 감돌 무렵, 공사 재개로 인한 파국을 염려하는 분들의 중재안들이 저희들에게 던져질 무렵이었습니다.

그때, 관련 정부 부처의 1급 공무원 두 사람을 만날 일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의 전력산업을 총괄하는 이에게 제가 물었습니다.

신고리 3~4호기의 제어케이블 부품성적서가 위조되었다. 현재 재시험중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불합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알고 있다. 그렇게 되면 지금 신고리 3~4호기의 준공은 2년 이상 뒤로 밀리게 된다. 지금 공사할 필요, 솔직히 없지 않으냐?”

그 이전까지 청산유수로 답변하던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짧은 순간 양 미간을 찌푸리고는 서둘러 다른 말로 이어갔습니다. 저는 그때 말갛게 잘 생긴 젊은 1급 공무원의 얼굴을 스쳐가던 비굴한 기운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보름 뒤에 산업통상자원부는 신고리3~호기 제어케이블 재시험 결과 불합격을 발표하였습니다. 그 때는 이미 공사를 재개하고 보름이 흘렀고, 수십명의 어르신들이 현장에서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가는 대출혈을 겪은 뒤였습니다. 우리는 당장 전세버스 두 대로 상경해서 정부종합청사와 한전 본사 앞에서 포효했지만, 그들은 끝내 공사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 밀어붙이는 것이었습니다. 정당성도 아무런 명분도 없었습니다. 두 달 뒤, 유한숙 어르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저들이 공사 재개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신고리3~4호기의 준공은 지금도 아무런 기약이 없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속이는 일, 국가가 국민을 힘으로 짓밟는 일, 이제는 너무 많이 겪었고, 너무 많이 지켜봐서 이골이 난 일입니다.

방외인들은 체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체념을 묻어두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두억시니처럼 닥쳐오는 거대한 철탑의 실루엣을 언제나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등 뒤로 100미터 넘는 철탑이 따라다니는 것 같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철탑을 바라보며 농사짓고 철탑을 등 뒤에 느끼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오늘, 철탑 공사 완료일을 맞아 230여명의 밀양시청 앞에서 어르신들이 모였습니다. 주민들은 기죽지 않으려는 듯 오늘은 철탑 뽑는 공사 첫 날이다. 우리는 끝까지 싸우겠다고 외쳤습니다. 어르신들의 그 울분같은 외침을 앞장서서 선창하던 저도 금세 목이 쉬었습니다. 그리고, 170여명의 어르신들은 넓은 식당에 모여 씩씩하게 쇠고기전골 한그릇씩을 뚝딱 비우며 소주 한잔씩들을 걸치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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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 일곱 되시는 도곡마을 말해 할매가 식사를 마치고 나가시는 길에 저를 보시더니 내는 저 철탑 뽑는거 보고 죽을기다. 참말로 욕 본다.’며 제 손을 꼬옥 잡아주셨습니다.

 

오늘 집회를 마치고, 어르신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 대추들이 익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습니다. 짧지만, 어떤 감상적인 생각들이 스쳐갔습니다. 하늘이 얼마나 맑고 높은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가을운동회 연습을 마치고 혼자 집까지 뛰어가다 실내화 주머니와 응원도구를 들고서 올려다보던 높은 하늘을 생각했습니다. 벌써 30년이 훌쩍 넘어버린 그 시절의 호수처럼 푸른 하늘이 제게 안기듯 닥쳐왔습니다. 이 싸움에 뛰어든 몇 년동안 벼려왔던 슬픔을 저 푸르른 하늘 호수에 풍덩 빠뜨릴 수 있을 것 같았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대책위의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이 이메일을 받는 분들께 밀양 가을 농활을 제안드리고 싶습니다. 어르신들은 당장 일손이 너무 부족해서 제게도 전화를 주십니다. 제가 담임했던 동화전마을의 은화 할머니가 제게 전화주셔서 대추 터는 데 손이 부족해서 난립니더. ‘농화리를 좀 보내주이소하십니다.

밀양에서 철탑이 우뚝 내려다보는 산 아래 마을에서 함께 어르신들과 일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어르신들의 굴곡진 슬픔을 굵은 땀방울로 보듬어드리고 싶지 않으십니까?

 

이렇게 저렇게 저희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제 감정에 겨워 무람없이 띄우는 긴 편지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과 평안을 빕니다.

 

밀양에서 이계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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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 2014-09-27 09:28

    제가 중국에서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스팸지우기...ㅋㅋ...ㅠㅠㅠ...

    두번째로 한 일은? 바로 이계삼샘 멜 읽기.

    이계삼샘이 개인메일로 대책위와 밀양소식을 계속 보내주고 계십니다. 중국에 있는 동안 무려 세개의 메일을 보내셨더군요.

    이걸 혼자만 꿀꺽 할 수도 없고,  성명서나 보도자료같은 메일까지 매번 올려놓기도 거시기하고...어찌해야 하는지 좀 고민입니다.

    녹색다방여러분 방침을 내려주세요^^

  • 2014-09-27 09:38

    깻잎순 보니 낯이 익네요.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농활이면

    농활 한번 가죠^^

  • 2014-09-27 12:04

    중국은 못갔으니 밀양은 가야겠습니다.  축제끝난 11월 말쯤은 어떤가요?

    • 2014-09-28 15:10

      농활은 때가 있지요.

      11월이면 이미 농사가 다 끝날 것 같은디요

      가려면 빨리가야할 듯...

  • 2014-09-28 11:03

    가을 농활 가요~

    근데 저는 사진 엑박 나네요.

  • 2014-09-29 13:50

    메일을 문탁쌤이 올리주시니 한결 맘 편합니다.

    저는 메일오면 이걸 올리지 말지 그냥 제가 판단해서 선별했는데

    가끔씩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정보의 원천봉쇄는 문제가 있잖아요. ㅋㅋㅋ

     어떤 활동이  아니라 일상의 밀양소식을 어떻게 전할지 애매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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