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5일간의 외침] 34일째-바람 불어 시위하기 딱 좋은 날!

히말라야
2014-09-25 00:22
751

운이 좋아서, 오늘은 따가운 가을 햇살이  없네요. 물론 바람이 좀 불긴 했지만, 참 시원했고요.

우리가 늘 서 있던 그 자리, 땅이 꺼져버렸네요. 지하철공사는 우리의 탈핵운동을 반대하나봐요. ^^

그래서 대각선으로 길을 건너갔어요. 길은 넓지만 왠지 낯설고, 피켓들은 바람에 날아가고.

전단지 한장은 찻길로 휘리릭 날아가 버리는 바람에 잡지를 못했지요.

어딘가 멀리로 날아가 누군가에게 기쁜 탈핵 소식을 전해주기를!

히말라야2.jpg

같은 공간에 세 개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탈핵과 신제품 스마트폰 홍보와 아파트 분양 홍보.

돈 안받고 일 하는 사람들은 우리 뿐이었지만, 행인들에게 세 목소리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무수한 사람들이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과

자신의 삶에 꼭 필요한 것을 정의하는 기준..뭐 그런걸 생각해 봅니다.

1인 시위에서 우리가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은 아주 짧고, 공간도 제한됩니다.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설득에 대한 저항을 이겨보겠다는 다짐보다는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는 아주 작은 틈, 그 정도가 1인 시위에 어울리는 수식어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어리석다 하면서도 사람들은 그래도 의문을 품기 마련입니다.

전단지를 들고 갑자기 가까이 다가서면 왠지모를 저항감을 느껴 뒤로 물러서는 사람들도 

조용히 피켓을 들고 거리를 유지할 때 오히려 우리를 저항감 없이 바라봅니다.

신호대기에 걸린 차 안에서 갑자기 누군가 저를 부르며, 묻습니다.

"어디에서 나오셨어요?"

지난번에도 누군가 그렇게 물었었는데, 오늘도 그렇게 묻는 사람이 있네요..

'탈핵'하자는데 어디에서 나온 건 왜 중요한 걸까요?

그래서 오늘 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이라는 시가 다시 읽고 싶어졌습니다.

----------

어느 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요?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하지 않았다

십수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판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

탈핵을 외치고 있는 우리 앞 거대한 상가 건물에는

아주 커다란 휴대폰과  전자제품 판매 매장이 있었습니다.

탈핵이 전기를 안 쓰자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조금 더 적게 쓰고 약간 더 불편하게 살자는 건 맞는데...

 

어이쿠, 저도 지금 컴퓨터로 이 글을 쓰고 있네요. 빨리 끄고 자야겠습니다.

1인시위.png
  

댓글 6
  • 2014-09-25 06:34

    사진을 보니 문탁에서 가장 적게 먹고

    에너지도 가장 적게 소비할 것 같은

    두 사람이 탈핵시위에 나갔군요.

    여기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아마 요요님 정도?

    "적게 쓰고 좀 불편하게 살기"

    쉬운 일 같지만, 무신경하게 있다보면

    어느새 무언가는 낭비하고 있더군요.

    오늘부터 다시 정신 똑띠 차리고

    플러그 뽑고, 컴퓨터 작작 쓰고 살아야겠어요.

  • 2014-09-25 12:03

    어디에서 나오셨나요?

    그 질문에 대해 답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의 계보를 묻는 것,

    릴레이 시위는 많은 물음의 릴레이이기도 합니다 그려!!

    장소가 바뀌니 배경이 달라지는군요^^

  • 2014-09-25 17:55

    출근하는 바쁜 와중에

    무겁게 들고 가는 모습 보고

    미금역까지 태워다주고,

    1인 시위 하는 두 여인이

    핸드폰 깜빡 잊고 왔다는 말에

    사진까지 찍어 주고 간 단지님~

    고마워요 ~ 

     

    * 위 사진은 히말라야의 예쁜 딸이 찍어준 거예요 ~

  • 2014-09-25 18:03

    단지님이 찍어준 사진입니다 ~

  • 2014-09-25 20:06

    몇년전 어느정도 진보적이라 여겨지던 모임에 모처럼 참석했다가

    다들 초면인데 어느 대학 출신인지 묻는걸 보고...

    엄청 기분 상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길에서 전단지 나눠주던 분께 어디에서 나왔냐고 물었던 기억도 나고요... 

    이런 나는 뭐지? 애매~하군요.

    불편한 모습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내 속에 있네요.

    문득 늘 애매한 가운데 길을 찾나보다하는 생각을 히말라야 글을 통해 생각해봅니다^^

    시습님 히말라야님 수고하셨어요^^

  • 2014-09-27 12:49

    시습과 히말라야는 묘하게 어울려요.

    이번 765에 시습님이 정말 자주 보이네요.

    녹색다방의 힘이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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