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4를 마치며

부러진
2014-03-16 09:55
1648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은 가능한 사실이었고, 자명해 보이는 것들은 사실 자명하지 않은 것이다”

과학사 시즌을 마치고 내린 결론이다.

 

요즘이야 학습만화가 발달하여 웬만한 초등학생들도 상대성이론하면 “쌍둥이 역설”하고 나온다고는 하지만, 내가 고등학교다닐때는 그리 쉽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냥 그런게 있다고 알기만 해도 고급지성이었고, 그 내용을 안다는 것은 거의 천재였다. 그런 내용을 눈을 반짝이며 우아하게 긴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하는 아이가 있었고, 우연히 끼어들은 나는 도무지 뭔소린지 알 수 없어서 심한 지적 열등감을 느끼게 했던 그 장면은 30년도 넘은 지금도 회상되는 기억 속의 그림이다.(나중에 알고보니 소위 IQ 측정이 불가능한 천재였다고 한다. 그러니 다들 위안을 삼자. 별로 위안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런 상대성 이론을 얼추 개요라도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은 지난 30년간의 지적 열등감을 씻는 계기였다 라고 말하는 문장이 이어질 거라고 기대했다면, 그건 TV 힐링 콘서트 류의 프로그램을 너무 많이 봐왔다는 반증일거다. 오히려 상대성이론을 수식으로 전개하는 무담님이나 그 식의 전개과정에서 이렇게저렇게 개입하는 세미나회원들에게 느끼는 감탄이 더 어울린다. 문과, 이과로 구분하는 학적 체계의 구분에 평소 심한 거부감을 느끼지만, 이과생들(저 빼고 모두다)은 생판 문과생과 틀렸다. 기초 지식의 부족으로 세미나 시간 내내 엉뚱한 질문만 일삼거나 회원들간의 논의 때는 과묵한 모습을 보이기 일쑤였다. 물론 뒷풀이 시간에도 과묵했다는 건 아니지만...

하여튼 시간과 공간이 균질적이라는 인식속에서 살고 있던 3차원의 직장인에게 운동속도에 따라 제각각의 시공간이 주어진다는 상대성이론이나 빛이 직진하지도 않고, 속도가 일정하지도 않으며, 입사각과 반사각이 동일하지도 않는다는 양자역학은 모든 불가능함이 실제로는 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가령 파동확률은 한 개의 광자가 안드로메다에서 발결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심지어 광자는 과거로도 여행한다. 시간과 공간을 모두 넘나드는데 불가능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가령 나 같이 여러개의 분자가 모인 “인지능력을 가진 고깃덩어리”라도 벽을 뚫고 통과할 수 있다. 물론 1초에 한번씩 벽에 부딪친다해도 우주의탄생 기간(한 130억년?)만큼 시도해야 가능한 확률일 수도 있겠지만, 그게 꼭 130억년이 지나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지 않는가? 시도하면 한번에 될 수도 있는게 확률아닌가?

이런 확률론적 양자역학에 반대하여 “신(神)은 주사위놀음을 하지 않는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에 “거 좀 신(神) 좀 놔두쇼”라고 응답했다는 보어의 인식은 실재론, 내지는 결정론적 환원주의에 대한 반대일 것이다.

 

그럼 자명한 것은 어떻게 자명하지 않았다는 결론은 어떻게 유래했는가?

이과생 회원들에게는 나름 괜찮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문과생인 나에게 “간추린 수학사”는 결코 좋은 텍스트가 아니었다. 수식이나 배경에 대한 설명은 부족했고, 사회,경제적 요인과 수학의 인과관계는 어설펐고, 문장은 어색했다. 별 수 없이 다른 책을 뒤적이다 괴델의 불완정성 정리를 알게되고, 그로인해 절대적 무류(無謬)라고 믿어왔던 수학의 확실성에 금이 간 것을 발견하였다. 개인적인 호들갑인지 모르겠지만 난 그렇게 받아들인다

이전부터 왜 어떤 사람들은 자명한 것을 자명하게 받아들이지 않는가 라는 궁금증이 있었다. 그 원인이 아는 게 부족하다거나, 잘못된 지식의 탓이라고 하면 학습을 하면 된다. 의식화 학습이 그런 걸게다. 그런데도 바뀌지 않으면? 가치관의 문제일 거다라고 생각했다. 그럼 그 가치는 어디에 기반하는 건데 라는 물음이 이어지면 그건 믿음일 거다라고 생각했다. 믿음에는 원래 근거가 희박하지만, 수학만큼은 확실성에 기초한 것일 거라는 막연한 신뢰가 있었다. 그런 믿음에 빵구난 거다. 원래 운전 중 앞바퀴 펑크난 것은 쉽게 감지할 수 있지만, 뒷바퀴 펑크난 것은 잘 모르는 것처럼 수학의 확실성에 빵구난 것 모르면서도 대충 살아왔다. (실제 뒷바퀴 펑크난 채로 40km를 달려온 적이 있었다, 그것도 평균 100km로. 주차하고서야 뒷바퀴 주저앉은 것을 발견했다. 원래 무식하면 용감한 법이다) 그런데 자명한 것은 실제 자명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 진실이었던 거다

 

그럼 남은 게 뭔가? 옛날에 자주 보던 그 문구 기억나시는가?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르른 생명의 나무이다” 물론 이 땅의 시인은 이렇게 갈파한다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라고. 그래도 살아갈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밥에는 원래 대책이 없는 것이다"  삶은 원래 예술인 것이다

댓글 2
  • 2014-03-23 12:29

    정신없는 한 주를 보내고 이제야 들어와 봅니다.

     자연과학적 사고체계에서 한 걸음 물러난 신선한 질문을 해주시는 부러진님 덕분에 뻔하지 않은 세미나가 되었던 점 좋았어요^^

    그리고 언제나 서브텍스트를 찾아보시고 추천해 주시는 그 열정! 저번에 말씀하신 파인만의 QED강의 꼭 읽어보겠습니다. 

    다음에 다른 세미나에서 또 뵈어요!!

    • 2014-03-25 00:30

      "무식한 문과생"데리고 세미나 진행하신 회원 여러분께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덕분에 일생에 기억될 만한 4개월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꾸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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