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스피노자의 형이상학-1 : <에티카> 1부 전반부 후기

지원
2018-01-11 22:34
711

     지난 1년 스피노자를 공부했지만, 여전히 <에티카>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스피노자의 단어나 개념들이 익숙해진 것은 다행입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에티카>를 읽지 않으신 분들에겐 이 강의가 얼마나 더 어려울까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걱정과는 달리 3시간에 달하는 강의시간에도 불구하고 다들 집중력이 대단하시더군요. 개인적으로는 강의가 너무 좋았습니다. 작년 1학기는 <에티카> 강독을 하면서 기하학적 글쓰기에 익숙해지는 시간이었고(무슨 말인지는 고사하고), 2학기는 마트롱과 함께 <에티카>를 읽으며 조금씩 그 뜻을 이해해보려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스피노자를 좀 더 세심하게 이해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강의가 시작되기 전에 이제부터는 스피노자를 세밀하게, 엄밀하게 읽어보아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진태원 선생님의 강의 스타일과 저의 다짐이 잘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려운 에티카

 <에티카>는 수많은 어려운 서양철학서 가운데에서도 어려운 책에 속합니다. 다른 이해 없이 읽기가 특히 어렵습니다. 진태원 선생님은 7강을 통해 <에티카>의 논증 내용과 전개방식, 그리고 이로부터 파생되는 주요쟁점들을 설명하시겠다고 말씀하시며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에티카>는 기하학적 논증 방식에 따라 진행되며, 총 5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부의 핵심 주제를 정리해보자면 1부는 형이상학, 2부는 심리철학, 그 중에서도 인식론을 주로 다룹니다. 3부 또한 심리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주로 인간의 욕망과 감정을 다룹니다. 4부는 이로부터 도출되는 인간 삶의 윤리적 문제, 윤리학이라고 할 수 있으며, 마지막 5부는 자유와 지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에티카>가 어려운 이유는 그것의 낯섦에 있습니다. 우리가 읽는 보통의 서적들과는 다릅니다. 서문이나 감사인사 따위는 생략됩니다. 첫 페이지부터 정의-공리-정리-증명으로 이어지는 낯설고 건조한 서술방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길을 잃기 쉽습니다. 이런 진행에서는 시대적 맥락이나 철학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스피노자가 무엇을 증명하고자하는 것인지, 증명이 확실한 것인지 알기가 쉽지 않죠. 게다가 <에티카>에는 다른 철학자의 이름이 딱 두 명, 세 번(데카르트와 키케로), 책 이름이 한 권(데카르트의 <정념론>) 나옵니다. 그러니 스피노자가 무엇과 어떤 방식으로 대결하고 있는지를 알기도 쉽지 않죠. 저에게는 작년 한 해 동안의 세미나가 이런 부분에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용어

 본격적으로 페이퍼에 들어가기에 앞서 진태원 선생님은 <에티카>의 기본적인 용어들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에티카>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정의, 공리, 정리, 증명…과 같은 용어들입니다. 용어 설명 중에서 제가 재미있게 느꼈던 것은 두 가지 지점이었습니다. 하나는 ‘요청’입니다. 이 용어가 <에티카> 전체에서 총 8번이 나오는데, 이것이 모두 ‘인간의 신체에 관한’ 내용입니다. 심신평행을 주장하는 스피노자가 윤리학을 말하기 위해서는 자연학이나 물리학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한데, 이 증명을 다 쓸 수가 없기 때문에 요청을 두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보충’, 혹은 ‘주석’에 대해 설명하며 들뢰즈가 <에티카>를 “두 권의 책”이라고 말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앞서 제가 건조하다고 했던 <에티카> 내용의 대부분과 달리 서문-주석-부록으로 이어지는 또 한 권의 <에티카>가 있는 것입니다. 스피노자는 여기서 문체가 확 바뀝니다. 강렬하고 열정적인(맑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조롱, 풍자, 비판의 문체! 그래서인지 1, 2학기를 막론하고 밑줄을 치는 것도, 감동을 받는 것도, 에세이를 쓸 때 참고하게 되는 것도 두 번째(?) <에티카>였습니다. 물론 더 엄밀하게 읽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개념들, 차이들

  진태원 선생님은 스피노자 형이상학의 주요 개념들을 살펴보고, 스피노자가 대결한 데카르트, 혹은 당시 일반적으로 쓰였던 개념들과의 차이를 짚어 주셨습니다. 1부의 전반부는 실체, 속성, 그리고 양태에 대한 내용입니다.

1)실체

 <에티카>는 ‘자기원인’에 대한 정의로 시작됩니다. 자기원인은 실존할 수밖에 없는 것, 부재를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을 뜻합니다. 간단한 정의인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스피노자는 시작부터 이 개념을 통해 기존의 학자들과 대결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초월성에 대한 비판입니다. 스피노자 이전의 학자들은 자연 만물이 초월적 존재인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자기원인을 말함으로서 신이라는 초월적 원인, 불가지의 영역을 가지성의 영역으로 끌어내리고, 신을 내재적인 것이라 말합니다. 신은 곧 자연이며, 오직 전체 자연, 혹은 실재들을 생산하는 법칙(인과연관의 체계)으로서의 자연만이 자기원인입니다.

 이어지는 정의는 ‘유한’에 대한 것입니다. 이 또한 데카르트의 ‘유한 실체’개념과의 대결입니다. 데카르트에게 실체는 ‘실존하기 위해 다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스피노자에게는 ‘실체’의 정의)이며, 여기에는 정신이나 물체가 포함됩니다. 유한 실체는 정신이나 물체이며 무한 실체는 신입니다. 그러나 스피노자에게 정신이나 물체는 언제나 다른 정신이나 물체를 필요로 합니다. 존재를 위해 다른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오직 전체 자연 뿐입니다. 스피노자에게 무한한 신-자연-실체를 제외한 모든 유한한 것은 ‘양태’가 됩니다. 또한 이는 심신평행론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 정의에서 정신과 물체의 상호 작용 불가능성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물체를 정신에 종속되고, 피동적인 것이라 정의했던 데카르트와의 큰 차이입니다.

2)속성

 ‘속성’은 실체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신에게는 무한한 속성이 있으나,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속성은 ‘사유 속성’과 ‘연장 속성’ 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을 구성하는 것이 그 두 가지 속성뿐이기 때문이지요. 스피노자 철학의 독특한 점은 ‘연장’을 신의 속성으로 정의한다는 것입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데카르트에게 연장(물체)은 피동적인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초월적 신이 요청됩니다. 그러나 스피노자에게 연장은 신 밖이 아닌, 신을 내재적으로 구성하는, 그 자체가 인과역량을 지니는 것으로 정의됩니다.

3)양태와 변용

 실체, 신이 자신의 모습을 변용하는 것,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것 안에 있으며, 다른 것에 의해 인식되는 것’을 ‘양태’라고 부릅니다. 1부에서 양태와 변용은 서로 교환 가능하게 쓰입니다. 양태로 쓰인 라틴어 modus는 방식을 뜻합니다. 방식은 곧 의존이고 깃듦이기 때문에 이렇게 바꿔 읽으면 양태의 의존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양태는 무한양태와 유한양태로 나뉩니다. 무한 양태는 다시 직접적, 매개적 무한양태로 나뉘는데, 바꿔 말해 무한양태는 속성들이며, 매개적 무한양태는 우주 전체의 모습입니다. 유한양태는 실존하는 개체들 각각입니다.

논증구조

 다음으로 정리들을 살펴보며 1부 전반부의 논증구조와 주요쟁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정리1~8은 실체는 무한하다는 것, 데카르트의 유한실체는 불가능하다는 내용의 증명으로 구성되며, 정리9~15는 실체는 단 하나만 존재한다는 내용의 증명입니다.

1)구별이론

 정리 1~5는 데카르트의 유한실체와 구별이론에 대한 스피노자의 비판이자 수정입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여기서 유한실체의 불가능성만을 비판하고 있으며, 아직까지 실체가 하나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았으므로, 실체‘들’이라고 씁니다. 데카르트는 실체와 실체, 실체와 양태, 실체와 속성 사이의 구별을 위해 실재적, 양태적, 사고상의 구별이라는 세 가지 구별 개념을 도입합니다. 그러나 스피노자에게 (1)실재적 구별은 실체들 간이 아닌 속성들 간의 구별이며, (2)양태적 구별은 같은 속성에 속하는 양태들 간의 구별이고, (3)사고상의 구별은 오직 실체와 속성들 사이에서만 가능합니다. 예컨대 데카르트에게 각각의 실체인 컵과 사과는 스피노자에게 연장이라는 하나의 속성으로 수렴됩니다. 따라서 컵과 사과는 연장 속성의 변용일 뿐이며, 변용들 사이의 차이를 통해서는 속성 혹은 실체의 차이를 구분할 수 없고, 속성은 실체의 본질이므로, 결론적으로 실체가 하나라는 (정리 5의)결론이 따라 나옵니다.

2)실체는 무한하다

 이어지는 정리 6~8. 실체는 다른 실체에 의해 생산(의존)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실체의 본성에는 실존함이 속하며, 스피노자의 실존함의 본성은 곧 무한, 영원성을 뜻합니다. 우주의 초월적 기원은 사라지고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영원의 우주가 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속성과 실체의 관계를 밝혀야할 때입니다. 실체는 왜 하나인가? 실체의 무한한 속성이 곧 무한한 실체를 뜻하는 것은 아닌가?

3)실체는 단 하나!
 진태원 선생님은 위 질문의 답변이 되는 정리9~11이 중요한 논증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일단 정리 9는 스콜라학파에서 데카르트로 이어지는, 속성과 실재성에 대한 전통적 전제를 끌어다 놓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 정리 10에서 불현 듯 “하나의[같은] 실체의 각 속성”이라는 말을 씀으로서 논리를 전환시키는 듯 보입니다. 스피노자의 동료 드 프리스 역시 이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이는 정리 10의 주석에서 풀립니다. (1)속성들은 각각 자율적이고 독립적입니다. (2)그런데 스피노자는 “실체가 지니는 모든 속성은 항상 실체 안에 함께 존재해 왔다”고 말합니다(이것이 모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3)각각의 자율성이 곧 각 속성의 실체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각 속성은 실체의 본질의 표현이며, 거꾸로 속성이 자신들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이 바로 실체라는 것입니다(충돌의 해소). 그리고 이것의 적절한 예시가 바로 다음의 그림입니다.  

KakaoTalk_20180111_222402014.jpg

변이 각각 존재하고, 삼각형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따로 있을 때는 도형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 하나로 합쳐졌을 때, 삼각형이라는 실체와 속성이 동시에 성립하게 되는 것입니다.

댓글 2
  • 2018-01-12 00:13

    저도 강의가 무척 좋았습니다. 지난 해 스피노자를 공부하면서 그의 저작들이 지닌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고 헤매던 때를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지원의 후기를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정리가 되면서 더욱 기쁘군요.

    전 강의 초반 스콜라철학이 부정했던 자기원인이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전복되고 있다는 부분에 확 끌렸습니다.

    예전에 한참 이른바 성서 공부를 할 때 가졌던 의문들이 풀리면서 말이죠. 그때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면 늘 비슷하게 나오는 말이 있었습니다. 표현이 조금씩 달라도 그 요지는 한결같이 바닷물을 하나의 종지에 전부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신의 존재는 인간의 이성으로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이 신이라는 것이죠.

    라틴어 어원의 ase 는 신은 자기자신으로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형이상학에 속하는 신을 인간이 손에 잡히는 무엇처럼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죠. 그러니 신의 존재가 원래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인간의 합리적 인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신을 거부하면서 자기원인으로서의 신이 결코 한계를 지닌 존재가 아님을 증명합니다.

    자기 원인 그 자체가 신이라는 존재를 작고 제한된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스콜라철학에서 자기원인을 부정한 것은 그들이 우주의 기원에 대해 갖고 있던 전제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갈릴레이 이전, 즉 자연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 스콜라철학은 우주가 유한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우주가 아무리 크다해도 유한하므로 모든 자연만물을 있게 한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언젠가 그 모든 것의 시초로서 시작점에 도달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닫힌 우주라는 설정 하에서는 결국 최종 원인으로서 이 우주를 있게 한 신에게 도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스콜라 철학의 입장에서는 신이 자기원인이라면 초월적이고 전지전능한 존재로서의 신의 능력과는 모순된 것일 수밖에 없지요.  그렇다고 스스로 존재하는 신이라는 개념이 신은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그 어떤 명쾌한 해명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스콜라철학은 스스로 존재하는 신에 대해서 그 어떤 논리적 설명도 할 수 없었지요. 신은 있지만 신이 어떻게 존재하는가는 그들로서도 설명할 수 없으니 인간의 유한한 능력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다는 식의 신비주의를 내세웠던 것입니다. 여전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믿을 수밖에 없다는 비논리가 성립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이를 뒤집어 버립니다.  스콜라 철학의 초월성과 닫힌 우주가 지닌 유한성을 비판하면서 무한하게 원인과 결과를 동시에 생산하는 열린 우주의 역동성을 자기원인으로서의 신이라는 전제로부터 증명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설명도 없이 하나의 명제로 던져진 신, 처음 에티카를 읽으면서 스피노자가 왜 신으로부터 시작하는 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신에 대한 개념부터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이제 조금씩 왜 스피노자가 신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알 것도... 같습니다. ㅎㅎ 

     데카르트가 자연을 기하학적,수학적, 양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자연으로부터 능동성과 역동성을 박탈하면서 스스로는 아무것도 산출할 수 없는 피동적 존재로 만들어버렸다는 진샘의 설명을 들으니 스피노자가 대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신의 존재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인과적 필연성 안에서도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질 수 있다는 사실이, 그래서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이 지닌 능동성과 수동성이 모두 긍정될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는 것이 아닐까요? 

  • 2018-01-13 23:59

    강의를 해 주신 진태원샘의 깊은 내공에 고개를 숙이고

    후기를 써 주신 지원님의 또 다른 깊은 내공에 고개를 또 숙입니다.

    스피노자 선생님의 깊은 내공은 언제나 고개를 숙이고 다니게 합니다.

    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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