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짜리 한 장을 놓고 멍하니 앉아 있다.

일월오봉도.

세종대왕이 계시니 뒤편에 그 그림이 있는 게 뭐가 이상하다고 호들갑이냐고?

난 이제야 태양과 달의 크기가 같게 그려져 있다는 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태양이라는 별의 한 행성 지구에서 살고 지구의 위성이 달이라고 배운 내게는 느낌이 딱 오지 않는다.

과학적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런 상징들을 찰떡같이 알아들었던 그 시절 사람의 마음을 느끼고 싶다는 갈증이다.

이번 괘는 유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濟家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단순히 순서와 규모의 이유로 濟家 이후 治國인 것은 아닌 것 같다는 게 고민의 시발점이었다.

정이천의 ≪易傳≫에서는 ‘괘가 밖은 巽이고 안은 離이니 불이 성하면 바람이 나온다. 바람이 불로부터 나옴은 안으로부터 나옴이니 집으로부터 밖에 미치는 象이다.’라고 써 있다. backdraft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겠지만 자연에서 불이 어떠한지 너무 잘 아는 사람들이 집안의 일을 ‘물’이 아니라 ‘불’로 상징하고 불이 성하면 바람이 나오듯 집으로부터 밖에 미친다하니 알듯도 모를 듯도 하다는 것이다.

해와 달을 같은 크기로 그렸다, 집안의 일을 불로 상징했다...

이게 걸린다 혹은 신선하다는 것은 좁고 단단한 울타리에 갇혀 있어서겠거니 하지만 나를 이렇게 바라보는 나한테도 묻고 싶다. 그래서 이제 어쩌면 좋을까?

세미나 시간에 지원이가 그랬다.

‘저는 한 남자의 내면과 외면으로 이 괘를 읽었어요’라고. 자신을 갈고 닦으며 사회생활을 해 나가는 오늘날의 청년으로 바로 대입해 읽을 수 있는 그녀가 부럽다.

고전과 일상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은 그녀가 왜 그렇게 멋있던지. 뭔가 물어보고 싶었는데 질문도 알아야 한다고 적절하게 떠오르는게 없었다. 암튼 예뻤다.

내게도 내 호흡과 결에 맞는 앎이 있을거라 다독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