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카메오 열전 15회] 노 애공, 공자에게 묻다

진달래
2024-02-08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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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공(노나라 임금)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백성이 복종합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정직한 사람을 등용하고 모든 부정한 사람을 버려두면 백성이 복종합니다. 부정한 사람을 등용하고 모든 정직한 사람을 버려두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습니다.” (哀公問曰 何爲則民服 孔子對曰 擧直錯諸枉 則民服 擧枉錯諸直 則民不服)「위정,19」

 

공자 말년의 군주

 

공자가 14년의 주유를 끝내고 노(魯)나라에 돌아왔다. 이제 막 약관의 나이를 지나고 있던 애공(哀公)은 68세의 공자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의 옷차림은 유자(儒者)들의 복장인가요?”

공자가 대답했다.

“제가 어려서 노나라에 있어서 소매통이 넓은 노나라의 옷을 입었습니다. 커서는 송나라에 있어서 송나라의 장보관을 썼습니다. 제가 듣기에 군자는 널리 여러 곳을 다니며 배우지만 고향의 옷을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유자들이 복장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魯哀公問於孔子曰 夫子之服 其儒服與 」孔子對曰 丘少居魯 衣逢掖之衣 長居宋 冠章甫之冠 丘聞之也 君子之學也博 其服也鄉 丘不知儒服)

 

이는 『예기(禮記)』 「유행(儒行)」의 첫 장면으로 이후, 애공이 유자들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묻고 공자가 이에 답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애공과 공자의 문답으로 이루어진, 이런 글의 형식은 일종의 글쓰기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애공과 공자가 만나 실제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주를 단 정현(鄭玄,127년~200년)은 이때를 공자가 주유를 막 끝내고 노나라에 귀국한 직후라고 보았다. 당시 공자는 성공한 정치가는 아니었지만 명망 있는 인사였다. 그런데 공자를 만나자마자 애공이 처음 물은 것이 그의 옷차림이라니. 이를 통해 애공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나름 상상해 볼 여지가 있는 듯하다.

애공(哀公)의 이름은 장(將)이다. 혹 장(蔣)이라고도 한다. 정공(定公)의 아들로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고 3년 뒤에 즉위했다. 28년간 재위했으며 말년에 노나라의 실권자였던 계강자가 죽자 삼환과 대치하였다. 당시 강국(强國)으로 부상하고 있던 월(越)나라의 도움을 받아 삼환을 정벌하려고 했으나 역으로 이들에게 쫓겨났다. 결국 노나라로 돌아오지 못하고 월나라에서 죽었다. 그의 시호인 애(哀)는 시법(諡法)에 따르면 ‘공인단절(恭仁短折)’ 즉 ‘공손하고 어질기는 하지만 단명했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애공은 열 살쯤에 즉위했다고 한다.

따라서 공자를 처음 만났을 때 애공은 아직 20대 초반의 나이였지만 즉위한지는 11년이나 지난 뒤였다. 애공 16년, 공자는 노나라에 돌아온 지 약 5년 뒤에 죽었다. 그 사이 애공과 공자가 몇 번이나 만났을지는 알 수 없다. 『논어』에는 애공이 다섯 번 나오는 데, 세 번은 공자와 직접 대화를 나누고, 두 번은 공자의 제자인 재아(宰我) 그리고 유약(有若)과 문답을 나눈다.

그러면 『논어』에 애공과 공자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먼저 애공은 공자에게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복종하게 되는지를 묻는다. 두 번째, 애공이 공자에게 제자들 중에 누가 배움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세 번째, 이번에는 공자가 애공에게 제나라 토벌을 청하러 갔다. 애공 14년에 제나라에서 진성자가 제 간공을 시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를 듣고 공자가 애공에게 토벌을 해야 한다고 간언한 것이다. 그러나 애공은 공자의 청을 들어 주지 않고 세 대부 즉, 삼환(三桓)에게 가서 말하라고 했다. 당시 노나라는 삼환의 세력이 막강했기 때문에 애공이 이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물론 공자가 이런 상황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자는 한 때 노나라에서 대부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군주에게 이를 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2년 뒤 공자가 죽었다.

 

 

하늘이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니

 

“하늘이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구나. 이 한 노인마저 남겨두지 않으시다니. 나 한 사람을 도와 임금의 자리에 있도록 하지 않으니 나는 외롭게 병들어 있는 듯하도다. 아아, 슬프다 이보(공자)여! 내가 본받을 사람이 없게 되었도다.”(旻天不弔 不愸遺一老 俾屏余一人以在位 煢煢余在疚 嗚呼哀哉 尼父 毋自律)

 

공자가 죽자 애공이 뇌문(誄文)을 내렸다. 뇌문은 애도문의 일종으로 그 내용이 『공자세가』, 『춘추좌전』, 『공자가어』 등에 남아 있다. 뇌문의 내용이 이렇게 기록으로 남은 것으로는 이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공자는 대부(大夫)의 신분도 아니었고, 당시 관직에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명망 있는 나라의 원로였다고 하지만 지위도 없는 자에게 군주가 뇌문을 지어 보낸다는 것은 예법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뇌문 아래에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의 코멘트가 함께 실려 있다.

 

“군주께서는 노나라에서 제 명에 돌아가시지 못하겠구나. 공자께서 ‘예를 잃으면 어두워지고 명분을 잃으면 허물이 생긴다.’고 하셨다. 뜻을 잃으면 혼미해지며, 그 잃은 바가 허물이 된다는 것이다. 공자께서 살아계실 때는 등용하지 않으시고 돌아가신 뒤에야 뇌문을 지으시니 예에 맞지 않는다. 또 ‘나 한 사람’이라 칭하시니 명분에도 맞지 않는구나. 군주께서는 두 가지를 잃었다.”(君其不沒於魯乎 夫子之言曰 禮失則昬 名失則愆 失志為昬 失所為愆 生不能用 死而誄之 非禮也 稱余一人 非名也)

 

자공은 공자의 말을 빌려 애공의 뇌문이 예법에 맞지 않고, 그가 자기를 칭하면서 천자를 칭하는 말인 ‘나 한 사람(余一人)’이라고 한 것이 명분에도 맞지 않는 일임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자공의 말을 살펴보면 이미 애공이 노나라에서 쫓겨나 월나라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쓰인 글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즉 후대에 만들어져 삽입된 이야기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애공이 직접 썼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애공과 공자의 관계는 단순한 군신관계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

이전에 공자가 노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정공과 손을 잡고 삼환의 힘을 약화시키려고 했던 일이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공자는 14년이란 기간을 나라 밖에서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제자 염구가 노나라와 제나라의 전쟁에 큰 공을 세운 뒤, 그가 스승인 공자의 귀국을 청하였고, 그제야 공자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일설에 의하면 당시 권력자였던 계강자는 공자에게 귀국을 허락하는 대신에 노나라 국정에 직접 참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공자는 문헌 정리와 후학 양성에 전념했다. 이를 바탕으로 보자면 공자와 애공의 만남은 군주와 신하의 관계라기보다, 나라의 원로를 가끔 뵙는 정도에 그쳤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에 노나라의 정치는 모두 계손씨가 장악하고 있었고 공자의 제자들 역시 상당수가 계손씨 밑에서 벼슬을 하고 있었다. 이렇듯 정치적 권한이 거의 없는 애공이었는데, 그가 공자와 혹은 공자의 제자들에게 묻는 내용은 ‘정치(政)’에 관계된 것들이다. 힘도 없는 군주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그가 지금은 힘이 없지만 장차 권력을 되찾기 위한 야망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혹은 아직 젊은 군주에게 공자가 그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공자가 애공에게 제나라를 토벌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굳이 애공을 군주의 지위로 대우한 듯하기 때문이다. 애공이 공자의 죽음에 ‘하늘이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구나’라고 하고, 이제 ‘내가 본 받을 사람이 없다’고 한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애공이 공자에게 묻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런 애공과 공자와의 문답식 글들이나 위의 뇌문 등은 대체로 후대에 만들어져 끼워 넣어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경전(經典)이라고 부르는 고전의 대부분은 주로 한(漢)나라때 정리된 것이다. 진(秦) 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이후, 분서갱유(焚書坑儒) 등의 사건을 거치며 많은 문헌들이 유실되고 흩어졌다. 한(漢) 무제는 유교를 정통 사상으로 승인했는데 동중서(董仲舒/기원전176?~104?)의 건의를 바탕으로 오경(五經)박사제도를 도입하고 문헌들을 수집, 정리하도록 했다. 제국의 풍모를 갖춘 한나라는 정본(定本)을 확립하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현재의 『논어』도 이 때 정리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공자의 지위는 점점 높아져 성인(聖人)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사기(史記)』를 편찬한 사마천은 공자의 지위를 ‘소왕(素王)’으로 높여서 그를 「열전(列傳)」이 아니라 제후들의 기록인 「세가(世家)」에 넣었다. 전한(前漢) 중기 이후에는 이러한 분위기가 더 심해져 공자를 ‘흑룡의 정기에 감화되어 태어난 신인(感黑龍之精所生)’에 까지 이르게 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공자를 터무니없이 높이는 것에 반대하는 학자들에 의해 공자의 위치는 주공(周公) 아래로 떨어졌다. 그와 더불어 경전(經典)의 지위도 고대 사료로 격하되었다. 하지만 이후로도 공자의 지위는 시대를 관통하는 스승으로 꾸준히 유지되어 왔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孔子曰)’, 또는 ‘애공과 공자의 문답(哀公問)’ 역시 이런 분위기에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공자와 만났던 여러 군주들 중 애공이 특히 많이 등장하는 것은, 애공과 공자와의 관계가 다른 군주들과 다르게 설정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아직 나이 어린 군주와 노년의 공자는 군주와 신하라기보다, 제자와 스승의 모습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애공은 공자와 약 40세 이상 차이가 나고 이는 공자 말년의 제자들인 증자(曾子), 자장(子張), 자유(子游) 등과 비슷한 연배다.

또 이런 설정은 후대의 유학자(儒學者), 또는 사대부(士大夫)와 같은 이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데 한 몫을 하게 된다. 이들은 교학(敎學)으로 세상의 풍속을 바꾸어 선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때 가르치고 배우는 대상은 그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적용된다. 즉 애공과 공자의 관계처럼 군주 역시 ‘공부해야 하는 자’로 ‘가르침을 받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애공이 공자에게 정치를 묻다(哀公問政)”로 시작되는 『중용』 20장의 내용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士)에게 군신관계는 때로는 군주를 올바로 이끄는 자로써 군주와 함께 정치를 이끌어 가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고 받는 관계가 아니었다.

 

 

논어를 어떻게 읽는가

 

‘노 애공’편을 끝으로 15편의 ‘논어 카메오 열전’을 끝내게 되었다. 돌아보니 시작한 지 근 3년이 지났다. 어쩌다보니 『논어』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고, 거기에 『낭송 논어』를 풀어쓰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논어를 읽다보면 마치 처음 보는 듯한 문장들이 튀어나와 깜짝 깜짝 놀라곤 한다.

처음 논어에 대한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공자와 그의 제자들에 대한 것이었다. 카메오 열전은 여기에 연장으로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먼저 인물에 대한 글을 쓰게 된 것은 논어 자체는 재미없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그 속에 인물들을 면면히 살펴보면 훨씬 쉽고 흥미롭게 논어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보다 ‘카메오 열전’을 쓰면서 이런 저런 공부를 해서인지 등장인물에 대한 것뿐 아니라 시대적 맥락을 훨씬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빈약하지만 여러 자료들을 비교하며 쓰는 재미도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고전의 이야기를 어떻게 나에게 연결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점점 설명하는 글이 되어 간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이 글들을 읽으면서 누군가는 『논어』를 한 번쯤 읽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동안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9
  • 2024-02-09 10:35

    진달래님의 논어카메오 열전을 읽으면서 <논어>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들의 시대에 대한 맥락이 더 풍부해진 것 같아요.
    진달래님 덕분에 아는게 많아졌으니 다시 논어를 읽게 된다면 훨씬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연재하느라 고생많으셨어요. 고맙습니다!!

  • 2024-02-09 10:40

    3년이군요! 덕분에 얼핏 들어본 이름들에 대해 조금은 이해가 깊어졌습니다. 감사해요^^ 애쓰셨습니다~

  • 2024-02-09 10:55

    진달래샘과 함께 논어 공부를 다시 한번 한 느낌?
    3년간이나 쓰셨다니 놀랍네요 ㅎ
    수고많으셨고 언젠가 논어에 대한 더욱 심도깊은 글이 또 연재되기를 기대해봅니다 ㅎㅎ
    수고많으셨어요~~

  • 2024-02-10 19:31

    어언~젠가 논어를 공부하게 되면 진달래샘의 열전이 문득문득 떠오를것 같은 예감! 이 얘기 어디서 들었더라 ᆢ 하면서~

    수고하셨어요 쌤!

  • 2024-02-10 23:45

    와! 짝짝짝!!
    나중에 책 읽다가 카메오 등장하면 다시 샘 글 찾아 읽어야겠어요.
    수고하셨습니다~

  • 2024-02-11 11:54

    그동안의 까메오가 잘 기억나진 않지만 1회가 안영이었다는 것은 또렷이 기억나네요.
    공자와 대조적인 알맞은 선택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잘 기억 나지 않는 다른 까메오들도 제 머릿속 어딘가에는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덕분에 저의 논어도 훨씬 풍부해 졌을 거구요.
    그동안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조그마한 선물 드리고 싶어요~^^

  • 2024-02-13 09:43

    3년의 글쓰기, 그 묵묵함 대단^^ 이제 다음 글쓰기로 ㅋㅋ 고고~~ 함께 가야쥐~~

  • 2024-02-16 12:52

    와~~~완주, 마침표...수고 하셨어요~~

  • 2024-02-17 00:12

    진달래샘, 고생하셨어요. 나도 얼른 문을 닫아야 할텐데...부럽다!

한문이예술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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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
2024.03.26 | 조회 202
두루미의 알지만 모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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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4.03.26 | 조회 179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청량리
2024.03.20 | 조회 282
주역64괘에서 42번째 풍뢰익(風雷益)괘는 산택손(山澤損)괘의 다음에 배치된 괘이다. ‘덜어낸다’는 뜻의 손괘와 ‘보탠다’는 뜻의 익괘를 보면 어딘지 경제적인 관점이 생기는 듯 하다. 그 관점으로 보면 손은 손해, 익은 이익으로 보게 되고, 결국 손괘는 안좋은 괘이고, 익괘는 좋은 괘라는 일차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 경제는 고대사회에서도 그 사회를 이루는 다양한 영역 중 하나였으니 주역에 경제개념을 다루는 괘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주역에서 다루는 손과 익은 기업의 ‘손익계산서’같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에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손괘와 익괘 모두 풍요로움, 풍성함, 여유있음을 상징하는 부(富)를 소재로 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리고 손괘의 손이라는 의미가 덜어내거나 빼는 마이너스(-)를 뜻하고, 익괘의 익이 더하다는 의미의 플러스(+)를 가리키는 것도 맞다. 하지만 손괘가 무작정 마이너스나 손해를, 익괘가 무한정한 플러스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주역은 부의 크고 작음, 부의 커지고 작아짐의 관점보다는, 오히려 ‘유동하는 부(富)’, 즉 고정되어 쌓이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는 부가 만들어내는 ‘효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덜어 아래에 보탠다는 뜻은 이천은 손괘와 익괘를 비교하면서 “손괘는 아래를 덜어 위에 더하는 것이며, 위를 덜어 아래에 더하면 익괘가 된다. 백성의 위에 있는 자가 은택을 베풀어서 아래에 미치면 익(益)이 되고, 아래의 것을 취하여 자신을 후하게 하면 손(損)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손괘와 익괘는 무언가 흐르는 방향이 정반대로 대비되는데, 흐르는 것이 부(富)라고 했을 때, 손괘의 부는 아래에서 위를 향하고(↑) 익괘의 부는 위에서 아래를 향한다(↓)는 것이다. 조금 더...
주역64괘에서 42번째 풍뢰익(風雷益)괘는 산택손(山澤損)괘의 다음에 배치된 괘이다. ‘덜어낸다’는 뜻의 손괘와 ‘보탠다’는 뜻의 익괘를 보면 어딘지 경제적인 관점이 생기는 듯 하다. 그 관점으로 보면 손은 손해, 익은 이익으로 보게 되고, 결국 손괘는 안좋은 괘이고, 익괘는 좋은 괘라는 일차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 경제는 고대사회에서도 그 사회를 이루는 다양한 영역 중 하나였으니 주역에 경제개념을 다루는 괘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주역에서 다루는 손과 익은 기업의 ‘손익계산서’같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에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손괘와 익괘 모두 풍요로움, 풍성함, 여유있음을 상징하는 부(富)를 소재로 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리고 손괘의 손이라는 의미가 덜어내거나 빼는 마이너스(-)를 뜻하고, 익괘의 익이 더하다는 의미의 플러스(+)를 가리키는 것도 맞다. 하지만 손괘가 무작정 마이너스나 손해를, 익괘가 무한정한 플러스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주역은 부의 크고 작음, 부의 커지고 작아짐의 관점보다는, 오히려 ‘유동하는 부(富)’, 즉 고정되어 쌓이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는 부가 만들어내는 ‘효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덜어 아래에 보탠다는 뜻은 이천은 손괘와 익괘를 비교하면서 “손괘는 아래를 덜어 위에 더하는 것이며, 위를 덜어 아래에 더하면 익괘가 된다. 백성의 위에 있는 자가 은택을 베풀어서 아래에 미치면 익(益)이 되고, 아래의 것을 취하여 자신을 후하게 하면 손(損)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손괘와 익괘는 무언가 흐르는 방향이 정반대로 대비되는데, 흐르는 것이 부(富)라고 했을 때, 손괘의 부는 아래에서 위를 향하고(↑) 익괘의 부는 위에서 아래를 향한다(↓)는 것이다. 조금 더...
봄날
2024.03.08 | 조회 194
토용의 서경리뷰
무슨 책을 읽을까?   한문강독세미나는 한문으로 된 동양고전을 강독하는 세미나이다. 2010년부터 시작했으니 문탁의 역사와 함께한 세미나라고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강독하던 책이 끝을 보일 무렵이면 다음 번 책을 두고 즐거운 고민을 시작한다. 『서경』을 시작하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강독 중이던 『근사록』이 끝나갈 무렵 다음 책을 두고 세미나원들간에 설왕설래가 시작되었다. 동양고전의 기본이 사서삼경인데 사서는 읽었으니 이제 삼경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시경』,『서경』,『주역』 중 무엇을 읽을까? 『주역』과 『시경』은 이문서당에서 읽고 있거나 읽을 예정이니 패스.(이문서당에서는 2018년에 『주역』을 2019년에 『시경』을 읽었다.) 자연스럽게 남은 것은 『서경』. ‘그래 너로 하자. 그렇잖아도 네가 많이 궁금했다.’ 큰 이견 없이 『서경』으로 결정되었다.   그동안 사서를 읽으면서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시왈(詩曰)’, ‘서왈(書曰)’에 당혹스러운 적이 많았다. 한자와 문장도 어려운데다가 앞뒤 맥락도 모르는데 한 구절 뚝 떼어다가 써 놓았으니 말이다. 그럴 경우는 대부분 주장하는 논리의 근거로 인용을 한다. 직접 인용을 하지 않았더라도 『서경』의 내용이 문장 속에 녹아 있는 경우도 많다.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인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게 마련이다.’의 출전도 『서경』이다.   『서경』은 공자가 성군으로 칭송하는 요순의 정치와 본받고 싶다던 주공의 교훈을 자세하게 싣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인지 『논어』의 마지막 편인 「요왈」은 제왕의 정치에 대해 『서경』에 나오는 요, 순, 탕왕, 무왕의 말을 간추려 전하고 있다. 맹자도 자신의 왕도정치를 주장할 때...
무슨 책을 읽을까?   한문강독세미나는 한문으로 된 동양고전을 강독하는 세미나이다. 2010년부터 시작했으니 문탁의 역사와 함께한 세미나라고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강독하던 책이 끝을 보일 무렵이면 다음 번 책을 두고 즐거운 고민을 시작한다. 『서경』을 시작하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강독 중이던 『근사록』이 끝나갈 무렵 다음 책을 두고 세미나원들간에 설왕설래가 시작되었다. 동양고전의 기본이 사서삼경인데 사서는 읽었으니 이제 삼경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시경』,『서경』,『주역』 중 무엇을 읽을까? 『주역』과 『시경』은 이문서당에서 읽고 있거나 읽을 예정이니 패스.(이문서당에서는 2018년에 『주역』을 2019년에 『시경』을 읽었다.) 자연스럽게 남은 것은 『서경』. ‘그래 너로 하자. 그렇잖아도 네가 많이 궁금했다.’ 큰 이견 없이 『서경』으로 결정되었다.   그동안 사서를 읽으면서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시왈(詩曰)’, ‘서왈(書曰)’에 당혹스러운 적이 많았다. 한자와 문장도 어려운데다가 앞뒤 맥락도 모르는데 한 구절 뚝 떼어다가 써 놓았으니 말이다. 그럴 경우는 대부분 주장하는 논리의 근거로 인용을 한다. 직접 인용을 하지 않았더라도 『서경』의 내용이 문장 속에 녹아 있는 경우도 많다.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인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게 마련이다.’의 출전도 『서경』이다.   『서경』은 공자가 성군으로 칭송하는 요순의 정치와 본받고 싶다던 주공의 교훈을 자세하게 싣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인지 『논어』의 마지막 편인 「요왈」은 제왕의 정치에 대해 『서경』에 나오는 요, 순, 탕왕, 무왕의 말을 간추려 전하고 있다. 맹자도 자신의 왕도정치를 주장할 때...
토용
2024.02.29 | 조회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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