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주역이야기 13회] 택천쾌, 지금은 결단할 때

봄날
2024-01-08 02:12
330

우리 사무실은 한 사람의 후원자 A씨가 거액의 전세 보증금을 빌려준 덕에 월세 없이 5년여를 버텨왔다. 그런데 그 후원자가 그것을 돌려받고 싶어했다. 실은 이런 뉘앙스의 말을 일년 전부터 들어왔다. 하지만 월세가 얼마가 되었건 새로운 고정지출을 만드는 건 회사 운영에 큰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나는 듣고도 모른 체 해왔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동네서점’을 지향하며 청년 중심으로 운영되는 서점의 관리자 B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서점이 0월말로 전세기간이 만료돼요. 조금 더 공간이 크고,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옮길 생각인데...혹시 함께 공간을 얻을 생각이 있으신지요?”

 

한번도 이 문제에 대해 입밖에 낸 적도, B씨와 논의한 적도 없었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 제안에 끌렸다. 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던 A씨에 대한 부채를 해결하고픈 생각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공간을 함께 나누면 월세의 부담도 덜고, 초기 위험부담도 적어질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덜컥 동의를 해버렸고, 하루 이틀 사이에 신축건물 2층 공간을 발견하고, 며칠 사이에 월세계약까지 해치워버렸다. 누가 떠민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정해진 수순처럼 나의 결정은 거침 없었다.

 

택천괘(澤天夬)는 바로 이런 결정의 순간을 가리킨다. ‘결단하다’, ‘결정하다’의 뜻을 가진 쾌(夬)라는 글자는 활시위를 당길 때 엄지에 끼는 깍지나, 깍지를 낀 손의 형상에서 나왔다. 활은 쏘아 맞히는 도구이고, 시위를 당긴 화살은 언젠가는 쏘아야 한다. 쾌괘는 목표를 겨누었다가 깍지를 풀어놓는 그 순간의 상황이다. 겨눌 만큼 겨누었고 화살은 활을 떠났다. 활을 제대로 겨누었다면 쏜 화살은 목표를 맞추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이사 결정으로 나는, 우리 회사는 어떤 목표를 이루게 될까?

 

무엇을 결단하는가

쾌괘에서 결단하는 것은 무엇일까?

쾌괘의 괘상을 보면 무엇을 결단하는지 금세 알 수 있다. 쾌괘는 아래로부터 다섯 개가 모두 양효이고, 맨 위에 단 하나의 음효가 자리잡은 모양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하괘의 세 양효는 하늘(天)을 상징하는 물상을 가지고 있으니까, 양효 중에서도 기운이 센 양효이다. 숫적으로도 5대1이니 쾌괘는 양(陽)의 기운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다. 주역 괘를 해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시간의 흐름으로 보는 방법이다. 즉 맨 아래 효는 일의 시작, 태동으로 보며 이효, 삼효로 진행하는 과정을 시간적으로 따져보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 보면 쾌괘는 양의 기운이 생기고 자라서 대세적 양상을 보이고, 맨 위의 마지막 음효가 머지않아 사라질 상황으로 설정된 것이다. 마지막 남은 음효 하나마저 사라지면 세상은 순수한 양의 세상, 즉 중천건(重天乾)괘의 세상이 올 것이다. 그러므로 쾌괘에서 말하는 결단은 다가오는 양의 시대에 하나 남은 음을 처단하는 것이다. 정이천은 쾌괘의 결단은 군자의 도(道)가 성해져서 소인의 도가 처단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가오는 양의 시대는 그러므로 군자의 시대이다. 군자시대의 도래는 대세(大勢)이고, 이것을 막거나 거스를 수는 없다. 우리 회사에 도래할 양의 시대는 어떤 모습일까? 우선 내가 이사를 결정한 배경을 따져봐야겠다. 앞에서 말한 부채를 갚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회사가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립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으니, 이는 양을 지향하는 자세일 것이다. 그리고 햇볕이 들지않아 어둡고 추운 사무실 환경을 바꿈으로써,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근무의 질을 좋게 할 필요도 있었다. 사무실의 직원들은 모두 3,40대 청년들이므로 이들이 떠오르는 양들 자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양의 세상의 도래를 위해 화살을 쏘는 것,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것’은 대세에 부응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 결단하는가이다.

 

어떻게 결단하는가

 

夬 揚于王庭 孚號有厲 告自邑 不利卽戎 利有攸往

쾌는 왕의 뜰에서 드날리는 것이니 미덥게 호소하되 위태롭게 여긴다. 읍으로부터 고하고 군사를 움직이는 것은 이롭지 않으며 가는 바를 두는 것이 이롭다.

 

택천쾌괘의 괘사는 결단의 신중함을 몇 가지 요점으로 정리해준다. 첫째, 결단은 공적으로 해야 한다. 괘사에서 ‘왕의 뜰’은 공적인 것을 가리킨다. 쾌괘의 분위기는 이미 양으로 기울어졌다. 허나 아무리 대세가 기울었다 해도 내맘대로, 임의로 처리하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결단의 전과정은 ‘깃발을 휘날리듯이’ 누구나 다 볼 수 있도록 공정하게 치르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결단의 주체는 반드시 군자여야 한다. 이때 ‘읍으로부터 고한다’는 괘사의 뜻을 새기는 것이 좋다. 이 말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자신에게 내밀한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외부로 확대해나간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결단의 주체는 (군자처럼)스스로 높은 덕성을 갖추는 것이 기본이다.

 

또한 쾌괘의 괘사는 결단의 주체인 구오, 혹은 군자에게 조심해야 할 두 가지를 더 주문한다. 그것은 ‘지나침’, 즉 ‘과도함’과 ‘방심’이다. 괘사에서 말한 ‘군대를 쓰는 것이 이롭지 않다’는 것은 ‘벼룩 한 마리를 죽이는데 도끼를 집어드는 것’처럼, 처단의 과정이 과도하게 폭압적으로 전개되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기울어진 귀퉁이를 간신히 붙잡고 있는 음을 처단하는 것이 말 한 마디로도 가능한 상황에서, 지나친 무력의 남용은, 처단의 당위성이 설 곳을 잃게 만든다. 또 ‘미덥게 호소하되 위태롭게 여긴다’라는 괘사 부분은 ‘방심’을 경계하는 대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운동경기에서 승패가 이미 많이 기울어져 패색이 짙었던 선수가 ‘막판 뒤집기’로 의외의 승리를 거두는 장면을 적지 않게 본다. 또 산에 화재가 났을 때, 완전히 진화한 줄 알았는데 작은 불씨 하나가 다시 살아나 온 산을 집어삼키기도 한다. 모두 방심하여 완전히 결단하지 못한 결과 생긴 일이다.

 

결단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택천쾌에서는 아래에 있는 다섯 개의 양효가 모두 결단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결단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과 제대로 결단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다섯 양이 모두 양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 제대로 결단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동일한 존재는 아니므로 결단의 내용과 방식에서 각각의 양효가 처한 상황이나 능력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거나 그렇지 못하다. 가령 쾌괘의 시작 지점에 있는 초구는 자신의 대세를 이끌 수 있을만큼 성숙되지 못한 깜냥인데, 조급하게 처단을 서두르는 모습을 보인다.(초구의 효사는‘발꿈치가 강하니 , 가서 이기지 못하면 허물이 되리라’이다) 결단의 순간은 한번으로 끝나며 되돌이킬 수 없다. 충분히 겨누기 전에 활시위를 당기면 결국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한편 구사는 초구보다는 분명 결단의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자신이 처한 상황이 결단을 어렵게 만드는 위치에 있다. 구사 바로 위에는 강하게 결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구오가 있고, 주변에 자신을 도와 함께 할 사람이 없다. 그러니 모든 결단을 고스란히 온자 힘으로 해내야 하는 중압감을 가진 존재이다. 이럴 때일수록 결단의 정당함을 주변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중요한데, 오히려 자신만의 생각으로 밀어붙이는 독불장군이 되기 십상이다. ‘볼기에 살이 없어 행함을 머뭇거리니, 양을 끄는 것처럼 하면 뉘우침이 없겠으나, 말을 들어도 믿지 않는다’는 구사의 효사는 종종 독단에 치우친 결정을 하는 인간의 모습에 경고를 전한다.

 

결국 구오만이 제대로 음을 처단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주역은 말한다. 구오는 어떻게 결단할 수 있을까?

 

九五 莧陸夬夬 中行 无咎

구오는 현륙을 결단하고 결단하면 중(中)을 행함에 허물이 없으리라.

 

‘현륙’이라는 식물을 가지고 ‘군자의 결단함’을 상징한 것은, 결단이 얼마나 많은 것을 고려하며 신중하게 진행되어야 하는지를 대변한다. 현륙은 오늘날 비름나물 같은 들풀의 일종이다.비름나물은 줄기에 물이 많아 통통하고 쉽게 부러지는 성질을 가진다. 주역에서 물은 음의 성질에 배속되므로 현륙은 곧 상육을 가리킨다. 손쉽게 부러지는 모습은, 약할대로 약해진 마지막 음을 양이 처단할 때의 손쉬움을 그대로 표현한다. 그런데 효사의 뒷부분에 ‘중도를 행한다’는 ‘중행(中行)’을 넣은 것에는 깊은 뜻이 있다. 구오가 비록 결단의 주체이고 군주이지만, 상육과 매우 가까운 자리인 만큼 결단의 과정이 구오에게 쉽지는 않다. 상육과 구오는 각각의 삶의 여정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곁에서 영향을 주고받았던 존재이므로, 구오의 결단은 상육과 그간의 관계를 모두 끊어내는 일을 말한다. 결단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비름나물의 줄기를 ‘톡’ 부러뜨리듯 쉬운 일인데, 그 마음 먹기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오가 조금이라도 망설인다면 결단은 실패할지도 모른다. 주자는 거듭해서 구오가 어떻게 결단해야 하는지 경고한다. “구오가 쾌괘의 때에 결단하는 주체가 되었는데, 상육의 음과 매우 가까우니, 현륙과 같이 하여 만약 결단하고 결단하되 또 지나치게 포악하게 하지 않게 하여 중행에 합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나는 결단할 수 있는 사람인가

주역은 같은 텍스트를 가지고도 많은 해석이 가능하며,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상황이나 맥락에 따라 상반된 의미로 읽힐 수도 있다. 나는 쾌괘를 해석하는 내내, 내가 어떤 방식으로든 결단을 해야 하는 구오의 위치에 처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대표라는 직함은 무언가를 결정하고, 무언가를 포기하는 권한과 책임을 가져야 하니까. 마침 몇 달 전 새 직원이 들어오면서 회사의 분위기가 달라져서, 직원들끼리 고객사 응대라든지 회사 홈페이지 개편에 적극적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장의 구체적인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 모습에서 택천쾌괘가 상정한 양의 시대, 청년중심 조직의 시대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다. 어쩌면 내가 이사를 결정한 것도 이 움직임에 수반되는 ‘대세에 부응하는 결단’ 같은 것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나의 결단과정 중에 적지않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발견했다. 공간을 옮길 때는 무엇보다 구성원들과의 협의를 거쳐야 했다. 모든 일을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괘사 ‘왕의 뜰에서 휘날린다’의 의미를 정면으로 무시하는 처사였다. 공간을 다른 사람이 먼저 계약할까봐 서둘렀다는 변명의 이면에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직원들과 의견이 달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았던 몇 번의 경험이 있었다. 그들의 이해를 구하고 설득하는 일을 건너뛰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괘사처럼 공명정대하지도 않았고, 구오처럼 중도를 걷지도 못했다. 오히려 구사처럼 나 혼자만의 생각에 치우쳐 독불장군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구사 효사의 ‘말을 들어도 믿지 않는다’는 구절이 아프게 눈에 들어왔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미루고 남에게 떠넘기면서, 정작 결단의 순간에는 독단으로 움직였다는 자각이 밀려왔다. 택천쾌괘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거듭해서 독단의 결단을 반복하면서 구사처럼 행세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래하는 청년들의 시대, 내가 구오로서 정말 처단해야 하는 음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중도를 행할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지는 나날이다.

 

댓글 2
  • 2024-01-08 16:22

    결단이란 말은 굉장히 속도감있게 느껴지지만 쉬운 일이 아니군요. 봄날샘의 고민이 진솔하게 느껴집니다.

  • 2024-01-08 16:58

    봄날 이사장님의 결단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를......

한문이예술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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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
2024.03.26 | 조회 202
두루미의 알지만 모르는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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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4.03.26 | 조회 179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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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24.03.20 | 조회 282
주역64괘에서 42번째 풍뢰익(風雷益)괘는 산택손(山澤損)괘의 다음에 배치된 괘이다. ‘덜어낸다’는 뜻의 손괘와 ‘보탠다’는 뜻의 익괘를 보면 어딘지 경제적인 관점이 생기는 듯 하다. 그 관점으로 보면 손은 손해, 익은 이익으로 보게 되고, 결국 손괘는 안좋은 괘이고, 익괘는 좋은 괘라는 일차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 경제는 고대사회에서도 그 사회를 이루는 다양한 영역 중 하나였으니 주역에 경제개념을 다루는 괘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주역에서 다루는 손과 익은 기업의 ‘손익계산서’같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에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손괘와 익괘 모두 풍요로움, 풍성함, 여유있음을 상징하는 부(富)를 소재로 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리고 손괘의 손이라는 의미가 덜어내거나 빼는 마이너스(-)를 뜻하고, 익괘의 익이 더하다는 의미의 플러스(+)를 가리키는 것도 맞다. 하지만 손괘가 무작정 마이너스나 손해를, 익괘가 무한정한 플러스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주역은 부의 크고 작음, 부의 커지고 작아짐의 관점보다는, 오히려 ‘유동하는 부(富)’, 즉 고정되어 쌓이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는 부가 만들어내는 ‘효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덜어 아래에 보탠다는 뜻은 이천은 손괘와 익괘를 비교하면서 “손괘는 아래를 덜어 위에 더하는 것이며, 위를 덜어 아래에 더하면 익괘가 된다. 백성의 위에 있는 자가 은택을 베풀어서 아래에 미치면 익(益)이 되고, 아래의 것을 취하여 자신을 후하게 하면 손(損)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손괘와 익괘는 무언가 흐르는 방향이 정반대로 대비되는데, 흐르는 것이 부(富)라고 했을 때, 손괘의 부는 아래에서 위를 향하고(↑) 익괘의 부는 위에서 아래를 향한다(↓)는 것이다. 조금 더...
주역64괘에서 42번째 풍뢰익(風雷益)괘는 산택손(山澤損)괘의 다음에 배치된 괘이다. ‘덜어낸다’는 뜻의 손괘와 ‘보탠다’는 뜻의 익괘를 보면 어딘지 경제적인 관점이 생기는 듯 하다. 그 관점으로 보면 손은 손해, 익은 이익으로 보게 되고, 결국 손괘는 안좋은 괘이고, 익괘는 좋은 괘라는 일차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 경제는 고대사회에서도 그 사회를 이루는 다양한 영역 중 하나였으니 주역에 경제개념을 다루는 괘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주역에서 다루는 손과 익은 기업의 ‘손익계산서’같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에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손괘와 익괘 모두 풍요로움, 풍성함, 여유있음을 상징하는 부(富)를 소재로 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리고 손괘의 손이라는 의미가 덜어내거나 빼는 마이너스(-)를 뜻하고, 익괘의 익이 더하다는 의미의 플러스(+)를 가리키는 것도 맞다. 하지만 손괘가 무작정 마이너스나 손해를, 익괘가 무한정한 플러스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주역은 부의 크고 작음, 부의 커지고 작아짐의 관점보다는, 오히려 ‘유동하는 부(富)’, 즉 고정되어 쌓이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는 부가 만들어내는 ‘효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덜어 아래에 보탠다는 뜻은 이천은 손괘와 익괘를 비교하면서 “손괘는 아래를 덜어 위에 더하는 것이며, 위를 덜어 아래에 더하면 익괘가 된다. 백성의 위에 있는 자가 은택을 베풀어서 아래에 미치면 익(益)이 되고, 아래의 것을 취하여 자신을 후하게 하면 손(損)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손괘와 익괘는 무언가 흐르는 방향이 정반대로 대비되는데, 흐르는 것이 부(富)라고 했을 때, 손괘의 부는 아래에서 위를 향하고(↑) 익괘의 부는 위에서 아래를 향한다(↓)는 것이다. 조금 더...
봄날
2024.03.08 | 조회 194
토용의 서경리뷰
무슨 책을 읽을까?   한문강독세미나는 한문으로 된 동양고전을 강독하는 세미나이다. 2010년부터 시작했으니 문탁의 역사와 함께한 세미나라고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강독하던 책이 끝을 보일 무렵이면 다음 번 책을 두고 즐거운 고민을 시작한다. 『서경』을 시작하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강독 중이던 『근사록』이 끝나갈 무렵 다음 책을 두고 세미나원들간에 설왕설래가 시작되었다. 동양고전의 기본이 사서삼경인데 사서는 읽었으니 이제 삼경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시경』,『서경』,『주역』 중 무엇을 읽을까? 『주역』과 『시경』은 이문서당에서 읽고 있거나 읽을 예정이니 패스.(이문서당에서는 2018년에 『주역』을 2019년에 『시경』을 읽었다.) 자연스럽게 남은 것은 『서경』. ‘그래 너로 하자. 그렇잖아도 네가 많이 궁금했다.’ 큰 이견 없이 『서경』으로 결정되었다.   그동안 사서를 읽으면서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시왈(詩曰)’, ‘서왈(書曰)’에 당혹스러운 적이 많았다. 한자와 문장도 어려운데다가 앞뒤 맥락도 모르는데 한 구절 뚝 떼어다가 써 놓았으니 말이다. 그럴 경우는 대부분 주장하는 논리의 근거로 인용을 한다. 직접 인용을 하지 않았더라도 『서경』의 내용이 문장 속에 녹아 있는 경우도 많다.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인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게 마련이다.’의 출전도 『서경』이다.   『서경』은 공자가 성군으로 칭송하는 요순의 정치와 본받고 싶다던 주공의 교훈을 자세하게 싣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인지 『논어』의 마지막 편인 「요왈」은 제왕의 정치에 대해 『서경』에 나오는 요, 순, 탕왕, 무왕의 말을 간추려 전하고 있다. 맹자도 자신의 왕도정치를 주장할 때...
무슨 책을 읽을까?   한문강독세미나는 한문으로 된 동양고전을 강독하는 세미나이다. 2010년부터 시작했으니 문탁의 역사와 함께한 세미나라고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강독하던 책이 끝을 보일 무렵이면 다음 번 책을 두고 즐거운 고민을 시작한다. 『서경』을 시작하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강독 중이던 『근사록』이 끝나갈 무렵 다음 책을 두고 세미나원들간에 설왕설래가 시작되었다. 동양고전의 기본이 사서삼경인데 사서는 읽었으니 이제 삼경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시경』,『서경』,『주역』 중 무엇을 읽을까? 『주역』과 『시경』은 이문서당에서 읽고 있거나 읽을 예정이니 패스.(이문서당에서는 2018년에 『주역』을 2019년에 『시경』을 읽었다.) 자연스럽게 남은 것은 『서경』. ‘그래 너로 하자. 그렇잖아도 네가 많이 궁금했다.’ 큰 이견 없이 『서경』으로 결정되었다.   그동안 사서를 읽으면서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시왈(詩曰)’, ‘서왈(書曰)’에 당혹스러운 적이 많았다. 한자와 문장도 어려운데다가 앞뒤 맥락도 모르는데 한 구절 뚝 떼어다가 써 놓았으니 말이다. 그럴 경우는 대부분 주장하는 논리의 근거로 인용을 한다. 직접 인용을 하지 않았더라도 『서경』의 내용이 문장 속에 녹아 있는 경우도 많다.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인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게 마련이다.’의 출전도 『서경』이다.   『서경』은 공자가 성군으로 칭송하는 요순의 정치와 본받고 싶다던 주공의 교훈을 자세하게 싣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인지 『논어』의 마지막 편인 「요왈」은 제왕의 정치에 대해 『서경』에 나오는 요, 순, 탕왕, 무왕의 말을 간추려 전하고 있다. 맹자도 자신의 왕도정치를 주장할 때...
토용
2024.02.29 | 조회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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