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이 돌아왔다 5회]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새털
2018-10-02 14:30
777

[플라톤이 돌아왔다 5회]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국가』 3

 

문탁에서 공부하고 생활한 지 어느새 9년째다. 시간은 정말 자~알 간다. 정신없이 후딱 지나갔다

세미나에서 오고간 말들을 모아서 ‘10주년 자축이벤트를 준비중이다. 거기엔 분명 당신의 생각도

단팥빵의 앙꼬처럼 들어있다는 사실을 이 연재를 통해 확인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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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털

 

문탁샘도 아닌데 문탁에 왔더니 쪼는인간으로 살고 있다

요즘 먹고 사는 시름에 젖어 쪼는 각이 좀 둔탁해졌다

예리해져서 돌아갈 그날을 꿈꾸며 옥수수수염차를 장복하고 있다

 

1. 철학은 디테일의 차이다

가장 정의로워 심지어 불의한자처럼 보이는 자와 가장 불의한 자라 심지어 정의로워보이는 자의 인생을 비교해보고, 정의란 무엇인가 파악해보자는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 형제의 제안을 소크라테스는 다시 리모델링한다. 시력이 좋지 못한 사람에게 먼 거리에 있는 작은 글씨를 읽도록 지시했다고 생각해보자. 그가 혹시 다른 곳에 같은 글씨가 더 큰 글씨로 적혀있다는 것을 기억해서 그것을 먼저 읽게 된다면, 먼 거리에 적힌 작은 글씨는 훨씬 수월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이야기를 꺼내며, 개인의 정의를 살펴보기 전에 보다 큰 국가의 정의를 살펴보고 그것을 통해 개인의 정의를 정리해보자고 제안한다. 이런 추론이 가능하려면 개인과 국가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의 대화에서 누구 한 사람 소크라테스의 새로운 제안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개인의 정의와 국가의 정의가 단지 크기의 차이에 불과하다고 이들 모두 동의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어떤가? 일단 우리는 개인과 국가의 관계를 긴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세금을 납부하고 복지 및 행정 서비스를 제공받는 국민이라고 생각하지, 나와 국가를 동일시하거나 내 문제와 국가의 경영이 직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과 법을 위반하는 사람들 정도. 그 밖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되도록 세금은 덜 냈으면 좋겠고 공무원들이 나름공정하게 행정처리 해주기를 바라는 정도의 정의를 기대한다. 그리고 세금과 행정 서비스의 영역을 넘어선 부분에서는 각자의 재량이나 판단이 국가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 구분이 근대적개인의 표상이다. 여기서 우리는 플라톤의 시대와 혹은 소크라테스의 시대와 우리 시대의 개인과 국가의 감각이 다르다는 점을 눈치 챌 수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2500년 전의 사람들과 우리의 감각이 같다는 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와 2500년 전 사람들은 어떤 감각의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 디테일한 차이에 대한 확인은 다음으로 미룬다. 이 디테일의 차이가 바로 우리가 2500년 전의 책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정답지를 확인하는 보람찬 일은 잠시 아껴두도록 하자.

 

 

    

2. 세 가지 나라돼지들의 나라, 부은 나라, 그리고 이상국가

국가의 정의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국가란 왜 그리고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우선 살펴봐야 한다. 플라톤은 국가를 필요의 산물로 본다. 인간은 자족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생존을 위해서는 함께 살아야 할 필요가 있고 그렇게 모여 살게 된 것이 국가의 기원이다. 여기서 플라톤이 생각하는 정의로운 국가의 궁극적인 원칙이 제시되는데 각자 자기 일을 잘하는사회적 분업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집을 잘 짓는 사람과 빵을 잘 굽는 사람, 그리고 농사를 잘 짓는 사람이 있다. 이들이 모두 똑같이 집을 짓고 빵도 굽고 농사를 짓는 것보다 각자 잘하는 일을 전담해서 하는 편이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한 국가의 규모가 만들어진다. 농부가 10명이면 제빵사는 20명 건축가는 3명 정도의 비율로 각 직업군이 구성되어야 국가의 자족성이 유지될 수 있다. 물론 국가의 자족성을 위해서는 제화공, 목수, 대장장이, 중개상인, 소매상 등 보다 더 많은 직업군이 필요하다. 이렇게 국가가 유지될 수 있는, 즉 꼭 필요한 필수재로만 구성된 최소한의 국가에 대한 설명을 듣고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는 돼지들의 나라라고 실망한다. “소크라스테스 선생님, 국가는 그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군요. 그런데 필요한 욕구만 충족될 수 있는 나라는 사는 재미라고는 찾을 수 없는 돼지들의 나라네요. 그보다 좀 풍요로운 나라는 없을까요?”

살맛나는 나라가 되려면 우선 먹는 재미가 있어야 하니, 고급 식재료와 향신료가 필요하고, 그것을 구해오기 위해서는 국가 간 교역도 일어나야 하며, 멋진 요리를 담을 은식기와 도자기들도 필요하다. 만찬에서 여흥을 즐기기 위해서는 가수와 악사가 필요하고, 무대의상을 만들어줄 제단사와 분장사도 필요하다. 가수가 먹고 살기 위해서는 순회공연을 다녀야 하는데, 나라의 규모가 크지 않으면 가수 한 명 먹여 살리기 힘들다. 소크라테스는 이를 사치스런 나라라고 명명하는데, 사치스런 나라는 결국 나라 간 전쟁을 불러온다. 한 나라의 규모만으로는 사치재의 수급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더 넓은 땅을 얻기 위한 정복전쟁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플라톤이 제시하는 국가의 기원은 철저히 논리적 순서에 따른 것이지 역사적 순서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 역사 속에 플라톤이 제시한 나라는 없다. 플라톤은 국가의 기원을 통해 전쟁의 필연성을 도출하고 있는데, 전쟁은 그것을 전담할 수호자라는 직업군을 필요로 한다. 전쟁은 국가의 자립과 자족의 결정적인 요인이기 때문에 수호자의 책임이 막중해진다. 그렇다면 누가 수호자가 되어야 할까? 플라톤의 정의로운 국가의 원칙은 각자 자기 일을 잘하는 것이기 때문에, 농부나 제빵사가 수호자를 겸업할 수는 없다. 플라톤은 수호자에 맞는 적임자를 찾고 그에게 적합한 교육과 실전의 기회를 준다면 정의로운 국가는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소박한 원리가 그 유명한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이다. 물론 여기에도 아름다운 디테일들이 조각되어야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은 빛이 난다. 이 디테일에 대한 확인도 잠시 미루어두자. 이 부분이야말로 국가의 모든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제는 수호자를 잘 뽑고 잘 교육시키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사치스런 나라는 필연적으로 부은 나라로 귀결된다. 플라톤의 시대에 현실 속의 아테네는 염증이 만연한 부은 나라로 의사의 치료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무절제와 질병이 이 나라에 넘칠 때, 많은 법정과 의원이 문을 열 것이고, 또한 이와 관련해서 자유민들조차 많이들 그리고 몹시 열을 올릴 때에는, ‘법정 웅변술과 의술이 엄숙하고 진지한 체하겠지?” (3405a)

 

목수는 자신이 병이 나면 의사한테서 약을 받아 복용함으로써 그 병을 토해내거나, 설사를 하게 만들거나 소작 또는 절제 수술을 이용해서 병에서 벗어나게 되기를 기대하네. 그러나 만약에 어떤 사람이 그의 머리를 펠트 모자로 감싸주며 이에 따른 조처를 하고서는, 그에게 장기간의 섭생’(식이요법)을 지시한다면, 그는 자신이 병에 신경을 쓰느라 자기 앞에 있는 일을 소홀히 하면서 병을 앓을 여유도 없으며, 그렇게 사는 것이 유익하지도 않다고 대뜸 말할 걸세. 그런 다

댓글 2
  • 2018-10-08 11:49

    플라톤의 '수호자'가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


    "그들의 자손들의 혼에 그것들 중의 무슨 성분이 혼합되어 있는지부터 지켜보는 것" 이라면 말이오...


    그 자손들이 수호자의 자격에 미달된다는 판단이 서면?


    수호자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하는지도 알려주는지? 그게 궁금하네요^^


    (정답지를 확인하고 싶은 성급한 마음? ㅋ)


    그래야 상류사회라고 구별짓기된 그들의 세상에 흘러넘치는


    "이 비대칭적인 '감정의 불평등'을 바로잡을" 팁이라도 하나 상상해 볼 수 있을듯 하여...

  • 2018-10-08 16:06

    플라톤은 그런 문제에 대해 쿨하게 답하지.

    수호자의 자식이라도 자격 없으면 

    생산자의 일을 해라...

    자격 있는 자가 통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음^^

    그때 자격은 지혜를 사랑하는 자여야 하지!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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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24.04.14 | 조회 228
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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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
2024.04.09 | 조회 254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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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우
2024.03.31 | 조회 270
한문이예술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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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
2024.03.26 | 조회 249
두루미의 알지만 모르는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두루미
2024.03.26 | 조회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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