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이 돌아왔다 4회] 유튜브, 빨간 박스에 담긴 기게스의 반지

새털
2018-08-21 06:54
1040

[플라톤이 돌아왔다 4회]

유튜브, 빨간박스에 담긴 기게스의 반지

-국가』 2

 

 

 

 

 

 

 

문탁에서 공부하고 생활한 지 어느새 9년째다. 시간은 정말 자~알 간다. 정신없이 후딱 지나갔다

세미나에서 오고간 말들을 모아서 ‘10주년 자축이벤트를 준비중이다. 거기엔 분명 당신의 생각도

단팥빵의 앙꼬처럼 들어있다는 사실을 이 연재를 통해 확인해보시라 

 

 

 

새털 프로필02.jpg

 

:  새털

 

 

 

 

문탁샘도 아닌데 문탁에 왔더니 쪼는인간으로 살고 있다

요즘 먹고 사는 시름에 젖어 쪼는 각이 좀 둔탁해졌다

예리해져서 돌아갈 그날을 꿈꾸며 옥수수수염차를 장복하고 있다

 

 

 

 

 

 

 

 

 

 

 

 

1. 흑기사 형제의 질문, 누가 진정 행복한 자인가

1권의 끝에서 소크라테스는 어떻게 불의가 이익이 되니?”라고 트라시마코스의 의견에 반박했지만, 그 승리의 쾌감은 석연치 않았다. 마치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순정 100%의 질문을 던질 때, 모두의 가슴이 아릿하면서 답답해지는 것과 같다. “어떻게 불의가 이익이 되니?”라는 소크라테스의 고지식한 논리보다 정의는 강자의 편익에 불과하다는 트라시마코스의 사이다발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를 것이다. 설득력이 부족한 소크라테스를 구출하기 위해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 형제가 흑기사로 나섰다. , 소크라테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올바르지 못한 것보다는 올바른 것이 모든 면에서 더 낫다는 것을 저희한테 설득하신 듯이 보이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아니면 진정으로 설득하시기를 바라는 겁니까?” 이렇게 해서 정의(正義)에 대한 진검승부는 2권에서도 이어진다.

글라우콘은 정의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데, 이것은 그의 생각이라기보다 흔히 일반 대중이 생각하는 정의에 대한 상식 또는 통념이다.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 형제는 소크라테스에게 반대의견을 내세우지만, 이들은 소크라테스의 흑기사라는 점을 잊지 말자. 이들은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논리를 마음껏 펼쳐놓을 수 있도록 적군을 자처했을 뿐, 소크라테스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신체 단련이나 환자의 치료받음, 그리고 의료행위나 기타 돈벌이(~) 이런 것들이 수고롭기는 하지만, 우리를 이롭게 하는 것들이라고 말하거니와, 우리가 이것들을 수용하려하는 것도 그것들 자체 때문이 아니라, 보수라든가 그 밖에 그것들에서 생기는 결과 때문입니다.(~) [정의도 사람들에게] 수고로운 종류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된답니다. 즉 보수 때문에 그리고 평판을 통한 명성 때문에 실천해야 된다는 것이지, 그 자체 때문이라면 까다로운 것으로서 기피해야만 될 종류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2357d~358a)

 

 

글라우콘의 의견에서 정의에 대한 논의는 논리의 영역에서 심리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사람들이 정의를 지키는 것, 예를 들어 교통법규를 지키고, 거래의 계약을 이행하고,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것은, 그것을 지키지 않았을 때 돌아올 평판이나 처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키는 차선의 선택이라는 말이다. 원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어겼을 때 돌아올 비난과 벌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키는 것이 소위말하는 정의라는 것이다. 이러한 글라우콘의 의견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직관이 그 근거로 깔려 있다. 인간은 누구나 들키지만 않는다면 멋대로 자기 이익을 늘리려는 본성을 갖고 있다는 통념이다. 누구나 할 수만 있다면, 자기 이익을 최대로 늘리려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는 논리다. 이것은 강자의 논리를 말하는 트라시마코스의 입장과도 유사하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확인여부를 떠나 주목해봐야 할 점은, 우리는 경험적으로 정의로운 일은 현실적으로 이익이 되지 못한다는 불일치를 확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살면서 양심적인 부자를 본 적이 별로 없다. 법을 어기고도 떵떵거리며 잘 사는 사람들도 종종 본다. 우리는 양심적으로 살 것인가 자기 이익을 챙기며 살 것인가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인간적으로갈등한다.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는 우리의 고민을 이해한 듯 매우 흥미로운 제안을 한다. 최고로 불의한 자는 불의하면서도 정의롭다는 평판을 듣는 사람이다. 이 사람의 반대편에는 최고로 정의로워서 불의한 자라는 평판을 듣는 사람이 있다. 드라마 속 악당처럼 조폭의 돈으로 정재계 거물이 되는 사람이 있고,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이웃에게 내주고도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는 의인도 있다. 이 불일치의 끝판왕, 완벽하게 불의한 자와 완벽하게 정의로운 자의 인생을 비교해보고 누가 진정 행복한 자인가 판정해보자는 것이 흑기사 형제의 제안이다. 여기까지가 국가전체로 보자면 서론에 해당된다.

흑기사 형제의 질문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대답은 9권에 가서 들을 수 있다. 이렇게 오래 이야기를 끌고 가려면 소크라테스선생은 정말이지 스토리텔링의 달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를 재미있게 읽은 팁 가운데 하나는 소크라테스 혹은 플라톤의 스토리텔링에 집중해보는 방법이다. ‘전설의 고향수준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국가는 철학책이 아니라 설화와 민담집처럼 느껴진다. 나는 시인 추방설을 외친 플라톤이야말로 진정한 신화와 전설의 수집가이고 이야기 애호가였다고 확신한다. 2권에서도 기게스의 반지라는 매력적인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2.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

글라우콘은 인간의 본성상 누구나 들키지만 않는다면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려 할 것이라 전제하면서, 그 근거로 기게스의 반지 전설을 가져온다. 목동 기게스는 우연히 반지 하나를 얻게 된다. 이 반지를 끼고 목동들의 모임에 나갔다가 기게스는 신비로운 경험을 한다. 반지를 손바닥 아래쪽으로 돌리자 그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 되었다. 반대로 반지를 손바닥 위쪽으로 돌리자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반지의 신비한 능력을 알게 된 기게스는 왕궁으로 들어가 왕비와 간통을 한 후에, 왕비와 모의해서 왕을 살해하고 왕국을 장악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반지와 목동이라는 설정은 플라톤의 창작이라고 짐작된다. 이 이야기의 원래 출전은 헤로도토스의 역사이다. 헤로도토스는 기원전 484년생으로 플라톤은 기원전 428년생으로 추정되는 것을 감안할 때, 역사국가보다 2세대 정도 앞선 저작이다. 역사에 수록된 기게스의 이야기는 플라톤의 것과 대동소이한데, 몇 가지 디테일의 차이가 있다. 기게스는 목동이 아니라 왕의 신뢰받는 신하였다. 왕에게는 너무나 아름다운 왕비가 있었다. 왕은 완벽한 왕비의 몸매를 자신만 알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기게스에게 제안을 한다. 침실의 문을 몰래 열어놓을 테니, 살짝 들어와 왕비가 옷 갈아 있는 모습을 훔쳐보라는 것이다. 왕은 이렇게 해서라고 왕비의 몸매를 기게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이것이 왕의 욕망이다. 제안을 받고 기게스는 완강히 거부했지만, 왕은 강건했고 결국에는 왕의 코치대로 왕비의 벗은 몸을 훔쳐보게 된다. 여기서 기게스의 욕망은 반반이다. 왕비의 벗은 몸을 보고 싶은 욕망과 왕의 신임을 얻고 싶은 욕망, 그의 행동에는 이 두 가지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사단은 이 모든 사태를 왕비가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왕비는 몰래 기게스를 불러 뜻밖의 제안을 한다. 감히 내 벗은 몸을 보았으니 이 자리에서 죽든가 아니면 나와 함께 왕을 죽이자는 제안이다. 물론 기게스는 그 자리에서 죽을 수 없으니, 왕비와 함께 거사를 치루고 왕이 되었다.

여기서 왕비의 욕망은 무엇일까? 자신을 모욕한 왕에게 응징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기게스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싶었던 것일까? <span style="font-family:Arial, Helveti

댓글 6
  • 2018-08-22 12:00

    '소선생님'의 노하우를 연재하는 새선생의 안내도^^



    문탁내 '유선생'급 아니겠소~~ ㅋㅋㅋ





    그나저나.... 저 욕망의 특급열차에서 내리지 않으면^^



    "우리는 온전히 수명을 마칠 수 없다"



    는 이 결론이 어찌 이리 익숙하지?



    이건... 분명 노자 냄새야...



    새선생? 요즘... 어디 기웃거리는 중? ㅋㅋ






    그나저나2...



    저 욕망을 성취하는 동력으로 제시된 '성실성'



    인욕과 성실의 동침은 괴물을 낳는다?



    존천리 거인욕을 부르짖은 주자님이 



    거봐라.... 내 말이 맞지? 라고 할판!






    새선생^^ 재밌게 읽었습니다~

  • 2018-08-22 12:44

    게샘! 중요한 걸 그 뻔한 가르침을 우리는 구비구비 돌아서 이해하게 될 거란 점이요^^정답을 아는 게 정답이 아니라는 거지요~

  • 2018-08-22 23:04

    어째서... 새털쌤도 오프보다는 온라인에서, 아니 아니

    라이브보다 글로하는 강의가 더 쏙쏙 이해가...^_____^

    그런데 ‘국가’가 원래 이렇게 재밌었나요?

    쌤 글이 ‘국가’에 대한 오해를 부르는 듯...

  • 2018-08-23 18:24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당근 다음 기대합니다

  • 2018-08-25 01:04

    먼... 훗날 새 선생님의 유튜브 이야기가 소선생님의 스토리텔링같이 느껴지는 날이 올까요?ㅋㅋㅋㅋㅋ

    재미있게 읽고 있는 일인 추가요~^^

  • 2018-09-05 09:55

    아 정말 인터넷 시대는 너무 자유로워서 되려 속수무책이 되어버려요. 잘 읽고 있습니다!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청량리
2024.04.14 | 조회 218
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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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
2024.04.09 | 조회 247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띠우
2024.03.31 | 조회 257
한문이예술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동은
2024.03.26 | 조회 242
두루미의 알지만 모르는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두루미
2024.03.26 | 조회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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