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기 5회차 후기 - (양화편) 용기를 묻다

여울아
2021-08-23 04:27
297

자로가 말했다.

“군자는 용기를 숭상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의를 으뜸으로 여긴다. 군자가 용기만 있고 의가 없다면 나라를 어지럽힌다. 소인이 용기만 있고 의가 없다면 도적질을 하게 된다.”

子路曰 : “君子尙勇乎?” 子曰 : “君子義以爲上. 君子有勇而無義爲亂, 小人有勇而無義爲盜.”(양화편 23장)

 

<양화>편 23장에서는 왜 용기보다 의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을까? 

그리고 용기만 있고 의가 없으면 나라를 어지럽히는 소인이며, 도둑이라는 평가까지 나온 걸까.

 

<양화>편에서 공자는 양화(양호)를 비롯한 공산불뉴 등 일찌기 공자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했던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양호는 대부 계평자가 죽자 아들 계환자를 등에 업고 정나라를 치고 광땅을 빼앗았고,  

공산불뉴 또한 양호와 손잡고 양호가 쫓겨난 후에도 비땅을 거점으로 저항을 계속했던 인물이다. 

당시 공자 나이 50세 이전, 40대였다. 

 

그러나 <춘추좌전>에는 양호가 쫓겨난 후 공자가 정공(10년)을 모시고 협곡회맹에 참석했을 당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孔丘知禮,而無勇.

공자는 예는 알지만 용기가 없다. 

 

회맹에 참석한 제나라 대부가 제나라 임금에게 공자에 대해 평가한 말이다.

과연 그 대부는 왜 공자를 향해 이런 평가를 했던 걸까? 그 배경은 무엇일까? 

공자가 실권은 없는 이름뿐인 왕을 모시고 정치활동을 시작할 무렵,

소인과는 다른 군자의 책무에 대해 공자의 고민이 깊었던 것은 아닐까? 

그에게 진정한 용기는 의에 맞아야 한다. 양화, 공산불뉴의 제안에 인간적으로 흔들릴 지언정 

이들과 함께하지 않은 이유는 공자가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도둑질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이 사십이 되어서도 남에게 미움을 받는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子曰 : “年四十而見惡焉, 其終也已.” (양화 26장)

 

아이러니하게도 <양화>편 마지막 문장에서 공자는 용기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남에게 미움을 받는다면 끝장난다니... 말이다. 

나는 이 문장이 <양화>편 전편에 걸쳐 공자가 다른 이들과 대화에서 좀 엉뚱한 대답을 했던 것에 대한 

공자의 심중이 드러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양호에게는 "나도 장차 벼슬을 하겠습니다."라고 뜨드 미지근한 답을 한다. 

내가 장차 벼슬을 할 지언정 네 놈 밑으로는 안 들어간다고 화끈하게 말하지 않는다. 

닭잡는데 소잡는 칼을 쓰던 무성 땅 제자 자유를 향해서도 "앞서 한 말은 농담이었다"며

예(절)에 관한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대신 한발 물러선다. 

놀랍게도 나의 논리에 결정적 증거... <양화>편에는 재아의 삼년상 에피소드도 있다. 

재아가 자리를 물러나자 "저 놈은 부모의 3년 사랑도 모른다!!"고 뒷담화를 할지언정 

재아에게 직접적으로 비난의 말을 쏟아 붓지 않는다. 

유독 이 편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들이 연속된다..(유비 등등)

 

공자는 의에 맞는 용기를 추구하더라도 남과 적대적인 관계를 만드는 것을 경계했던 것이 아닐까. 

여기서 한 가지 헷갈리면 안 될 것이 있다. 

<논어>에는 공자가 제자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 가령 정신 못차린 옛친구의 장단지를 걷어차기도... 하는 등

직격탄을 날리는 장면이 많다.  그가 부득불 야단치는 경우는 이들과 적대적인 관계를 만들려는 의도가 없을 뿐 아니라

그럴 일 없는 관계인 경우에 국한되는 게 아닌가 싶다. 즉, 공자의  거절이나 호통을 직접 듣고

복수의 칼날을 갈만한 인물들과는 아예 상종을 하지 않은 셈이다. 

<양화>편에 반복해서 나오듯 "교언영색"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남에게 미움받을 짓"도 못하겠을 때 

공자는 용기없어 보일지라도 핑계를 대고라도 만남을 미루고, 대신 조용히 비파를 타며, 가르침을 이어간 것이다. 

하수들을 고단수로 상대하는 공자의 모습이 고상(高尙)해 보인다.  

 

**지앵님과 후기 순서를 바꿨어용~

이번 주 숙제는 공자세가/열녀전(유하혜와 접여처)/맹자공손추상과 만장상 유하혜 부분 읽어오기. 

댓글 3
  • 2021-08-23 10:29

    용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용기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라면 그건 상대방의 평가이겠지요^^

    고로 공자의 "고상"은 사실 용기의 변주에서 비롯되는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런 면에서 재아가 나가고 난 후의 공자의 반응을 비난의 문제로 해석하는 것은 좀 거시기 하군요^^

     3년상에 대한 당대의 여론을 접수하고 (재아와의 논쟁을 통해) 그 차이에서 느끼는 탄식 정도로 보아도 되지 않을까요?

    • 2021-08-23 10:50

      저도 비난의 말을 쏟아붓는 대신 뒷담화 정도로 그쳤다.. 고 썼어요.

      <사기>에서 재아가 제나라 가신이 되어 전상과 반란을 일으켜 멸족을 당했다고 기술한 것을 보면

      양화편에는 반란과 관련된 인물들이 많이 모아져있네요. 

  • 2021-08-23 20:25

    하여간 여울아의 시각은 참신해요 ^^

    덕분에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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