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親복습단]논어글쓰기 6회- 제사에 대한 생각

바람~
2020-09-24 15:21
285

팔일 12장 祭如在 祭神如神在 子曰 吾不祭 如不祭

 

제사에 대한 생각 

 

어렸을 적 제사지내던 때가 떠오른다. 1주일 전에 생선을 사서 말리는 일부터 시작한다. 아버지는 귀하고 좋은 제물을 마련하는 것이 큰 정성이라 하셨다. 제사 지내는 동안에는 마치 눈앞에 귀신을 보시는 듯, 귀신이 지금 들어오시고 식사하고 숭늉 드시고 나가신다고 우리에게 이야기 해주셨다. 제사에는 돈을 보내는 것보다 참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도 하셨다. 귀신이 오실 밤에, 제삿날이 시작되는 밤 12시에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하셨다. 정리하고 나면 새벽 4시가 지나서야 제사는 끝났다. 소싯적에 논어 정도는 달달 외셨다던 아버지는 공자님 말씀을 기억하고 계셨던가. 

 

그렇게 정성과 의례를 강조하던 아버지도 20년 넘게 제사지내며 약간의 변화를 받아들이셨다. 평일에 새벽 제사를 지내러 오는 자녀들의 불편함을 보고 마음이 불편하셨던 것이다. 밤 12시 넘어야 차리던 상을 저녁 9시부터 차릴 수 있게 하신 것이다. 다시 10년 뒤, 제사 날짜를 아예 그 주 주말에 지내기로 했다. 모두 먼 거리에서 오다보니 하룻밤 잘 수도 있어서 여유로웠다. 이런 변화가 쉽지는 않았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서로 이해하고 여러 번 타협한 결과다. 물론 제사날짜를 옮기기 전 제사에서 귀신께 꼭 미리 알려드린 뒤에 실행한 것이지만 말이다. 제사에 엄청 엄격하셨던 아버지가 30년 사이 많이 달라지신 거다. 공자님은 '꼭 해야 하는 것도 없지만 꼭 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없다'고 하셨는데, 이것도 기억하고 계셨던가.

 

시댁은 천주교 집안이다. 하지만, 아버님 돌아가시고 3년간 제사를 지냈다. 시댁에서는 처음 지내는 제사라 인터넷을 통해 배운 제례를 더듬더듬 따라해 보았다. 아버지 딸이라서인지 나는 외국에 있으면서도 제사날짜에 맞춰 꼭 참석했다. 4년째부터는 어머니의 제안으로,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 뒤 집이나 산소에서 고인을 기리는 연도를 바쳤다. 연도는 고인이 하느님 나라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하느님께 비는 천주교식 기도이다. 형식은 다르지만 고인을 추모하고 애도하는 데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정성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은 없다.

 

양쪽 집안 모두 종가집이 아니라 큰 제사는 없었다. 다만, 어렸을 때 어쩌다 우리집에서 지내는 제사 준비로 며칠간 고생한 어머니와, 형편보다 늘 과도하게 준비하려는 아버지를 보며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함께 한 친척들과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 나누었던 추억은 괜찮았다. 고인을 추억하며 이야기 나누는 것이 좋았고, 친척들과 형제들도 그 때 아니면 자주 보기 힘들었으니까. 1년에 한 번 그날은 고인과 연관된 이들이 모일 수 있는 날이니 특별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제사가 딱히 아주 싫은 건 아니었다. 시아버지 돌아가신 뒤, 잘 모르고 대충 지냈어도 정성껏 상 차리고 연도 드렸던 제사도 나름 괜찮았다. 

 

나에게 제사는 고인보다 산 사람들이 중심이다. 고인을 기리며 함께 즐거이 나눌 수 있는 제사라면 어떤 형식이든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각자의 성의와 형편대로 정성을 다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고인과 인연이 있는 산 사람들이 기꺼이 모일 수 있는 자리라면, ‘마치 귀신이 같이 있는 듯’ 각자의 정성을 모아 그 날을 같이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중요한 바람은 형제들과 친척들이 제사에 함께 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덜 힘들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제사에 꼭 참석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 때는 귀신도 이해해주실 것이다. 2020년 코로나시대인 지금 공자님이 만약 계신다면, 제사에는 꼭 가라 하실까... 추석에는 부 모님을 꼭 찾아가라 하실까...

댓글 2
  • 2020-09-25 14:43

    제사는 산 사람 중심이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메뉴도, 진설도 이젠 산 사람 중심으로 바꾸면 좋겠어요. 냉동고에 들어갈 전, 만드느라 고생만 하지요. 조율이시 뒤바뀌어도 산사람 먹는데 전혀 지장없고요.

    • 2020-09-28 21:25

      맞아요. 누군가 얘기하고 서로 합의되면 바꿀수 있지요.
      준비하는 사람이 바꿔도 되구요.
      변화는 우리가 직접!
      추석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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