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던 영혼, 돌아오다

요요
2024-02-21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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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1234 계획을 세울 때는 마치 계시처럼 진화생물학 관련 책들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올해도 그랬으면 좋으련만!!  올해 1234 계획을 세울 즈음에 마침 800쪽짜리 빨간 책 <신유물론>을 읽고 있었다. "옳지!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몇명을 골라서 읽어볼까?"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그래서 사놓고 읽지 못하고 있는 책도 꺼내보고, 새로 책을 사기도 했다. 그 책들을 쌓아놓고, 일단 두꺼운 책은 패쓰!!(가령 라투르의 <존재양식의 탐구> 같은 책.^^) 얇지만 중요한 책들을 몇권 골라냈고, 첫 책은 제인베넷의 <생동하는 물질>로 해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신유물론 세미나가 끝나자 마자 감기로 몇 주 앓으면서 무리한 계획이라는게 금방 밝혀졌다. 개강을 기다리며 읽어두어야 할 세미나책도 여러권인데다가, 3월말까지 쓰겠다고 한 글도 아직 한 글자도 못쓰고 있다.  "이러면 안되지, 정신 차리자!" 그러다 우연히! 새책 소개에서  <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아마존의 목소리>를 발견했다. 나는 신간 안내를 보고 읽고싶다는 생각이 들면 곧바로 책을 주문하는 편이다.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책값은 아끼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하고, 인문학 출판사와 번역자, 저자들을 향한 동지애의 표현이자 연대라 생각한다. 그렇게 산 책을 당장 읽는 경우는 사실 거의 없다. 책을 사는 건 지금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젠가는 읽기 위해서다.

 

그런데 <아마존의 목소리>는 얇아서  집어들어 그 자리에서 단번에 읽어버렸다. 그 책을 읽고나서 작년에 사둔 카렌 암스트롱의 <성스러운 자연>을 꺼내 읽었다. 이 책에서 내 맘을 사로잡은 것은 <욥기>에 대한 카렌 암스트롱의 해석이었다. 욥은 마지막에 가서 하느님이 내린 고통에 대해 자신이 무죄라고 변론하거나 그 고통을 저주하지 않고,  자신의 손으로 입을 가리며 침묵했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은 욥이 자연에서 신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난 이런 독해는 처음 보았기에 더 흥미로웠다.) 카렌 암스트롱은 구약에서 <욥기>는 매우 이질적이고 특별하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인은 역사에서 신성을 발견하는 민족이지, <욥기>처럼 자연에서 신성을 발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을 그저 자원으로만 보는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욥기>의 저자처럼 자연에 대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를 외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룩하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런 의문으로 오래전에 읽었던 멀치아 엘리아데의 <성과 속>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성과 속>은 신화야말로 성스러운 공간과 시간을 우리의 삶속에 되돌리고 반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신화와 의례는 다시 창조의 시간으로 우리를 데려가고 우리를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그러나 근대인은 그런 성스러움의 감각을 잃어버렸다. 성스러움을 잃어버린 근대인의 시공간이 균질한 이유이다. 균질하다는 것은 공간도 시간도 양화할 수 있는 것으로, 오직 하나의 척도만으로 계산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건 몸이 회복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니 좋은 징조다. 뭔가 성수를 몸과 마음에 뿌리는 듯한 이 기분.. 기분이 좀 나아지면 잠시 독서 삼매에 빠지곤 하다 문득 "이렇게 이 책 저 책 뒤적이고 있으면 1234 준비는 어떻게 하나?" 현실로 돌아왔다. 잠시 꿈을 꾸었나? 그야말로 세미나를 위한 것도 아니고, 글쓰기를 위한 것도 아니고, 그 무엇을 위한 것도 아닌 무용한 독서, 그러나 즐거운 책읽기의 꿈에서 깨어났다. 이제 몸이 다 나았으니 휴식모드에서 일모드로 전환해야 할 때!!! 3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종말을 늦추기 위한 아마존의 목소리>를 읽었다. 얇은 책을 고른 건 탁월한 선택이었지만, 침대에 누워서 휘리릭 읽을 때와 달리 1234 리뷰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읽으니 어려웠다!!! 이 책에는 저자인 아이우통 크레나키의 책에 대한 에두아르두 비베이도스 지 카스트루의 후기가 실려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1234리뷰를 위해 <식인의 형이상학>을 꺼냈다. 뒤늦게 이 두권의 책을 읽고 1234준비를 하기로 결심했다. 몸이 회복되면서 여기저기 정처없이 방황하던 영혼도 돌아온 게 확실하다. 그러나 영혼이 돌아왔다고 글이 잘 써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올해 첫 1234가 이제 열흘도 남지 않았다.

 

각자의 사연과 우여곡절과 난관을 뚫고 올해 첫 1234를 준비하고 있는 문탁 공부방 회원 여러분! 모두 힘냅시다!!ㅎㅎㅎ

댓글 6
  • 2024-02-22 13:44

    앗, <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아마존의 목소리>군요.
    저도, 1월 강의와 깊은 연관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강의가 아니더라도 <향모를 땋으며>라든가, <식인의 형이상학>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바로 구입!

    그리고 35살에 했다는, 얼굴에 검정칠을 하고 한 그 유명한 연설의 사진을 (책에 나온 거 말고) 더 보고 싶어서 구글이미지를 막 뒤졌었지요.
    그때도 멋있고, 지금 나이든 아이우통 크레나키도 멋있더라구요.

    그리고 그거 아세요? <향모를 땋으며>의 북아메리카 인디오인 로빈 월 키머러와 이 책의 저자, 브라질 인디오인 아이우통 크레나키가 1953년생 동갑이에요. ㅎㅎㅎ (까스투르는 1951년생^^)

    ailton-krenak-ao-inves-de-operar-na-paisagem-devemos-nos-confundir-com-ela_3-tile.jpg

  • 2024-02-22 16:10

    저도 엘륄에서 멈퍼드로 갈아 탈 때, 좀 더 과감하게 책 사이즈를 줄였어야 한다는 생각이.... ㅠㅠ
    그런데 멈퍼드는 정말 글을 잘 쓰더라고요. 읽는 것 자체는 숨이 좀 가쁘긴 하지만, 글은 정말 잘 읽히고 재미있습니다.

    아까 공부방에서 요요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요, 요즘들어 부쩍 ‘철학’ 자체보다, 인류학이나 기술(사회)학 같은 교차적 학문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멈포드와 타르드를 같이 읽고 있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요컨대 ‘인간’이 점점 문제화되고 있다고 봐야겠죠. 에효... 그러나 저러나 저도 빨랑 써야 하는데 ㅠㅠ

  • 2024-02-23 10:17

    2024봄분기 1234가 공부방에 휘몰아치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는 요즘, 뭘 쓰시나들 궁금했는데 ㅋㅋ 3월1일 발표날 초대해 주실거죠^^?

  • 2024-02-25 06:53

    책을 사는건 언제가 읽기 위해서 ㅎㅎ 공감되었지만,
    책을 읽는 게 몸의 회복시기시라니 믓지십니다..
    시간되면 꼭 1234 발표 보러 가야겠어요 ~!!

  • 2024-02-25 07:16

    요요샘 곡간에 쌀(?)이 그득 쌓이셨네요!!

  • 2024-02-26 11:18

    웰컴백!
    근데요, 요요샘이 감기로 못나오시는 한동안 공부방이 썰렁~할 줄 아셨죠?
    아니더라구요.
    여기저기 요요샘 목소리유령이 돌아다니면서 군기를 잡더군요.ㅋㅋㅋ
    다들 요요샘이 없는데도 자꾸 요요샘 이야기를 하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