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은아 … … 동은샘~

진달래
2024-02-1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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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파지스쿨이 학생 모집에 실패하여 강제 연구년을 갖고, 가을 <마을 교사 워크숍 : 공부, 교사, 학교를 다시 생각한다>를 열였었다. 나는 노라샘과 ‘교사론’에 대한 글을 썼는데 다음은 그 글의 일부이다.

 

“나는 <파지스쿨>을 졸업한 제자 P와의 관계를 고민하면서 ‘교사, 선생님, 튜터, 스승……. 도대체 P에게 나는 뭘까?’라는 질문을 갖게 되었다. P는 <파지스쿨>을 졸업하고 문탁을 떠난 다른 파지스쿨러들과 달리 문탁에 계속 남아서 공부도 하고 활동도 했다. 그 사이 나는 P가 활동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 P의 공부를 계속 봐 주었다. 과제를 내주고, 글쓰기를 점검했다. 그러나 제 때 과제를 해오지 못하거나,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하는 P의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어르고 달래고 협박하고 혼내기를 반복했지만 P는 별로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내가 P의 엄마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제는 딱히 <파지스쿨>의 교사-학생관계도 아니고, 장인-도제관계도 아니고, ‘고참’이나 ‘선임’이라 부를 수도 없고... 우리 관계는 무엇일까?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여기에 등장하는 P는 다들 익히 알고 있듯이 동은이다. 처음 봤을 때 동은은 똘망똘망해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간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서 샘들을 꽤 고생시키기도 했다.

 

 

사실 함께 고전공부를 계속 해온 고은보다, 나와 동은과의 관계는 파지스쿨이라는 고리가 아니면 크게 있지 않았다. 동은이 계속 동양고전 공부를 하리라고는 생각해 본적도 없었다. 그러고보니 고전 공부를 같이 한 것도 파지스쿨에서 읽은 《논어》 공부가 전부인 듯하다. 어쩌다 <초등 천자문 수업>을 잠깐 같이 했었는데, 동은이 한자보다, 중국사를 너무 몰라서 당황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동은의 고전공부는 나랑 접근이 완전히 달랐다. 예술프로젝트에 등장한 동은의 한자는 내가 읽는 ‘글’이 아니라 ‘예술’의 형태로 등장했다.

 

 

“나는 내가 공부했던 《천자문》의 한자를 볼 때면, 나는 한자에서 특정한 장면이나 때로는 풍경이나 한자의 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만약 내가 보는 방식으로 다시 한자를 표현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내가 보는 것처럼 한자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 - ‘다른 20대의 탄생’ 중

 

그렇게 동은의 <한문이 예술>이 시작되었고 작품 활동으로 이어질 줄 알았는데.… 고은과 함께 청소년 프로그램으로 등장했다. 어쩌다보니' 길드다'가 해체되고 .… 내가 동은과 함께 올해 <한문이 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다.

일단 지난 달 진행했던 ‘겨울 캠프’는 매우 만족스럽게 끝났다. 많은 인원이 신청한 건 아니어서 뭐 그렇게 흥행에 성공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아주 잘 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눈여겨 본 건 참여한 아이들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동은이의 모습이었다. 7,8년 전에 보조 교사로 참여했던 청소년 프로그램에 메인 교사가 되어서 그 모든 걸 다 해내는 걸 보니, 이제 동은에 대한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제자 P 얘기로 돌아가 보자. P는 사실 이제 교사와 학생이라는 관계로 단순하게 말하기 어렵다. 나와 P는 문탁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함께 공부하며 활동한다. 우리는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하는 동학이며, 함께 <초등 천자문>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동료이다. 물론 여전히 나는 그의 선생이지만 그것은 어떤 맥락 속에서만, 어떤 국면에서만 그러하다. 더 많은 시간에서 그는 나의 동료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다. 그리고 P는 나에게서 뿐만 아니라 문탁의 다른 모든 활동과 더 많은 관계들 속에서 배워 나간다. - ‘마을교사 워크숍’

 

동은의 공부가 한자에서 인류학으로 조금씩 넓어지는 것을 보면서 언젠가 동은이 튜터로 세미나에서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캠프가 끝난 뒤로는 “동은샘”이라고 부르려고 노력하고 있다. 뭐 이런 느낌들이 어느 날 또 확 바뀌어 “동은아!!!”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함께 공부하는 가운데 이런 감동을 주고받을 수 있게 해준 것에도 고맙게 생각한다. 아마도 공부를 함께 하는 관계에서만이 얻을 수 있는 기쁨이지 않을까 싶다. 올해  <한문이 예술>은 동은이 2년 동안 공부한《주역》을 토대로 꾸며진다. 어떤 프로그램이 될지 기대가 된다.  그러니까 앞으로 '고전공부'도 <한문이 예술>도  잘 해 봅시다~

 

 

 

댓글 12
  • 2024-02-17 14:49

    파지스쿨을 졸업하고 파지스쿨러가 아닌 파지스쿨의 모든 사람들은 문탁에서 뭘까? 나는 파지스쿨 어떤 관계가 될수있을까?
    때론 파지스쿨 선생과 제자로, 어떨 때에는 같이 세미나를 하는 동학으로, 또 다른 때에는 인생의 선후배로 맺을 수 있을텐데 어떻게 하면 편향되지 않은 관계가 될수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던 게 문득 떠오르네용 샘들도 역시나 같은 고민을 하셨었지요
    문탁에 잠시 오지 않았던 파지스쿨 졸업생에 해당하다보니 동은언니와 달래샘의 지난 시간들이 더욱 귀해보에는 것 같아여 🙂 동은언니도 달래샘도 동은언니와 달래샘의 관계도 더 오래 함께 되길 바라요 🙂 홧홧팅

  • 2024-02-17 20:47

    진달래샘은 청년들이랑 무던하게 잘 지내시는 듯 해요. 공부도, 강좌도, 커피도...큰 소리 딱히 없이, 오래 같이 해내시고...

    그나저나 사진속 노라샘, 너무 젊고 예뻐서 놀랐어요!

  • 2024-02-17 22:06

    코끝이 찡합니다. 이렇게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이 있어 사는 게 즐겁습니다.
    그런데 동은아, 더 집중해서 공부해야 진달래샘이 배우러 오는 인류학 세미나 열 수 있지 않을까?ㅎㅎ

  • 2024-02-18 01:37

    토용샘 - 동은샘 - 진달래샘의 생일주간에 이런 글이 올라오니 더 감동적이네요~ㅎㅎ

  • 2024-02-18 10:19

    문탁에서의 시간이 참 길다면 길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ㅎ
    진달래샘이 청년들과 지내는 시간도 그 역사가 만만치 않구만요
    인류학 튜터, 사회학 튜터들을 기대하면서 무한한 응원의 마음을 보내봅니다

  • 2024-02-18 10:37

    동은아, 아니 동은샘!!
    이제 주방지기도 하셔야죠. 저랑 밥당번 좀 더 하시구요 ㅋㅋㅋ

  • 2024-02-18 13:58

    (존중과 감탄을 담아) 동은샘 다음 주 원고 마감입니다!

  • 2024-02-18 14:28

    믓지다 동은샘...!!!

  • 2024-02-18 18:56

    그 동은샘의 수업에
    이제 막 뺀질거리기 시작한 '하빈'이 예약이요 ~~~~ ㅎㅎ

  • 2024-02-18 20:11

    아 …;;
    ㅠㅠ…;;
    ^^…;;

    다음 문스탁그램 전데 으뜨케 쓰라고요 … (소멸)

  • 2024-02-19 10:25

    아하! 동은샘 뉴스레터도^^

  • 2024-02-19 23:11

    동은샘의 앳된 모습!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