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신화> 전반부 후기

곰곰
2019-10-19 02:05
102

에른스트 카시러 <언어와 상징> 첫시간이다. 처음 들어본 철학자에 처음 보는 책이었다. 그래도 책이 작은 편에다 두껍지 않아서 첫 인상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 그런데 너무 어려웠다. 다시금 나의 난독증에 무기력함을 느끼면서 힘겹게 발제를 하긴 했는데…세미나를 마친 지금까지도 여전히 찜찜하다. 에휴... 반성 먼저.

이번 세미나엔, 인식론은 관심 없다시면서 열심히 공부하시는 루욱샘이 결석하셨고, 우리 세미나에서 가장 공부 많이 하신 히말샘도 (책을 잘못 찝으셨다며 ㅋㅋ) 한 시간 지각을 하셨다. 그래도 언제나 쉬운 설명으로 잘 풀어주시는 씀샘과 매 시간 메모로 공부 내공을 발휘 중인 초희씨, 철학 공부는 처음이시라지만 (나처럼) 책 어렵다고 앓는 소리 한번 안 하시는 아나샘과 "장님 코끼리 만지듯" 세미나를 시작했다.

 

먼저 상징철학, 상징형식, 상징적 기능. 

카시러는 인간을 ‘이성적 인간’이 아니라 ‘상징적 인간’이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인간 현실에 대해 기존의 방식, 오직 ‘사실들’에 관한 인식 이론으로 탐구하는 것이나, ‘논리적’이라 부르는 추상적 지각 형식으로는 제대로 얘기할 수 없다. 대신 신화와 언어(상징형식들)의 정신성을 살펴봄으로써 인간의 문화적 정신적 배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가 보기에 인간은 모든 사물이나 상황을 정신적으로 표현하여 상징형식으로 만든다. 어떤 사물을 보거나 상황을 경험하다 보면, 번뜩이는 생각, 감정이 솟구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고 그렇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생각이나 감정이 반복되면서 특유의 형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 특유의 형태가 상징형식이고, 곧 문화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신화, 언어, 예술, 종교, 도덕, 경제, 과학 등은 모두 상징형식이다. 상징형식들은 세상을 보는 각각의 고유한 파악방식이다.   

 

그 중 가장 오래된 두 가지, 신화와 언어에 대하여.

눈에 보이고 만져질 수 있는 실재만 인정하고 신화는 허구, 무지의 산물로 여기는 통상적인 시각에 대해 카시러는 신화 역시 실재라 말한다. 생각 자체, 언어 자체가 실재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사물의 참된 본성(본질)을 재현하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것이고 언제나 ‘개념’이라는 틀에 집어넣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징을 통해 세계를 간접적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형식들 자체(상징형식들)를 기준과 평가로 삼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필요하다. 상징형식들 그 하나하나는 고유한 세계를 형성하고 위치를 정해주는 정신적 힘이다. 

책 전반부에서 카시러가 주로 인용하고 있는 헤르너 우제너의 연구는, 신이 ‘순간의 신’에서 ‘특수한 신(기능적 신)’으로, 그것이 다시 ‘인격신’으로 발전해감을 보여준다. 

  1. '순간의 신'은 순전히 순간적인 것으로 생겨나자마자 소멸되는 심적내용(감정과 인상)이 객관화된 것이다. 목마른 자가 발견한 물, 사람을 숨겨준 흰개미 무덤 등은 이런 현상을 경험한 당사자에게 신으로 표현될 수 있다. 
  2. '특수한 신(기능신)'은 인간적 활동에서 유래한다. 더 적극적이게 된 인간이 자발적 의지로 자기의 필요와 희망에 맞추어 만들어낸다. 신의 명칭이 가진 의미의 한계가 ‘특수한 신’의 한계다. 
  3. '인격신'은 인간의 문화, 생활이 변하고 언어도 변하면서 신의 명칭이 원래의 의미를 잃게 되었을 때, 하나의 고유명사가 된다. 한 인간에게 주어진 명칭과 같이 인격의 개념을 내포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새로운 존재는 그 자신의 법칙에 따라 계속 발전한다. 지금의 유일신들이 이러한 인격신에 해당할 것이다.   

언어도 이러한 신화적 관념화와 유사하다. 언어 역시 돌연히 마주치는 직관(주관적 상태)에 포착되고 속박되었다가 하나의 독립된 존재(객관적 형태)가 되어 방출되는 순간 인간의 정신에 하나의 굴곡점이 생기고, 그 이후 객관화 작용은 끊임없이 진행되어 끝내는 점진적 체계화와 보다 분명한 표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카시러의 철학이 음...뭐랄까 전반적으로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는 알 것도 같다?

 

그러나 신화와 언어에 대한 기존의 설명방식을 비판하는 부분들은 어렵다. 실재론자들이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들의 오류라든가, 전통 논리학과 이론적 인식 관점에서 신화나 언어를 해석하는 태도를 비판하는 부분들에선 나도 그만 순환에 빠지고 만다.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다. 나 역시 분석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이 익숙하지, 전체성으로 조망하는 방식은 낯설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몇몇 소개하기도 한다. 플라톤이 신화해석 반대 투쟁에 앞장서 왔지만 신화해석이라는 지적유희는 그 후로도 수세기 동안 지속되었다는 이야기나, 신화가 사실은 언어의 내재적 결함(동음이의성과 같은 애매성)에 의해 조건 지어지고 결정된 것이라는 이야기 등은 새롭고 재미있었다. 

 

예전 과학세미나에서 에델만의 <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계>를 공부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에델만이 경험선택 => 재입력지도화 라는 과정을 통해 사고하는 과정을 설명했던 것이 문득 생각났다. 먼저 감각적 인상에 대한 지각 범주화(새 경험 입력)가 이루어지고, 전면적 지도화(기존의 내 경험들과 전체적으로 다시 엮이는 상태)가 이루어질 때 개념적 능력이 생긴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지점 어디에선가 카시러의 상징철학과 통하는 것 같다. 에델만이 우리가 외부세계를 감각하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내부모형’을 통해서만 세계를 보며 그것이 우리의 진화에 유리했음을 지적한 부분도 그렇고... 그럼 카시러가 말한 상징철학이 신경과학적으로도 설명된 건가? 그 당시에도 복잡한 이론에 엄청 괴로웠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다시 카시러의 철학과 비교하면서 읽으면 분명 다르게 다가올 것 같다. (아, 신난다 또 공부할 게 생겼다 ㅜㅜ)

 

아무튼 다음 시간에 <언어와 신화>를 다 읽고 오구요. 발제는 초희씨가 하기로 했어요. 다음주에 뵈요.

(p.s. 우리 반장님, 여행 잘 다녀오세용~)

 

댓글 5
  • 2019-10-19 15:25

    제가 참석했어도,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격이었을 것 같아요 ㅋㅋ
    넘 어렵고, 이해도 잘 안되니 투정만 부렸네요...다음 주 봬요 ~~

  • 2019-10-19 15:29

    '언어와 사고' 에 대해 찾아 보다가 좋은 들귀가 있어 인용해봅니다.

    언어는 가능한 온갖 표현들의 주형鑄型이다.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을 확정하고 조직하는 것은 사람이 말할 수 있는 상황이다. 즉 사람이 사유할 수 있다 함은 언어에 영향을 받는다는 이야기이다. 언어는 사고를 직접 규정하진 않고 여기에는 뭔가 다종다양한 장場이 설정되어야 하는데, 그 장은 인간의 능력. 문화의 일반적 조건, 사회적 조직 체제와 결부되어 있다.

    언어가 존재의 형이상학적 정의에 방향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리스어 중에 ‘있다’ 라는 동사는 존재에 상응하는 말로서, 이것은 객체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개념이 되어 주었다. 이 ‘있다’ 라는 말은 언어가 사고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좋은 예이다.

  • 2019-10-21 22:21

    무척이나 어렵게 읽은 내용을, 이렇게나 정리를 잘해주셨네요 ^^
    저도 여러번 읽었는데 아직도 명확히 들어오지는 않아요.
    그래도 왠지, 철학적으로 언어를 그리고 신화를 설명해내고 싶은 마음만은 좀 알것 같기도요.

    읽으면서, 나카자와 신이치가 이야기한 대칭성 인류학 생각도 나고
    그동안 읽었던 이성적이 아닌 감정과 감각에 더 많이 관련된 꿈에 대한 내용들도 생각이 났어요.

    그런데 거기에 스피노자가 더 많이 생각이 나더라구요.
    스피노자 역시 관념이 실재한다고 이야기하고 관념의 대상은 눈에 보이는 사물이 아니라 사물로서의 관념 그 자체이며,
    우리 안에서 어떤 관념이 생성된다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한 긍정이라고 했거든요.
    스피노자는 진리를 어떤 관념과 눈에 보이는 연장적 사물과의 일치로 보지 않고,
    관념들간의 적합한 질서를 만들어 가는 것으로 보았지요.

    카시러도 언어를 단순히 사물을 재현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신화의 비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보지 않잖아요.
    우리 안에서 창조된 새롭고 독특한 관념을 타자와 공유하기 위해서는 객관성을 띤 언어가 필요한데
    그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신화적인 언어가 탄생하는 것 같아요. 시도 마찬가지일테고요.

    낯선 철학자 카시러... 끝까지 함께 못읽어 아쉽습니다. 잘 다녀올께요~ ^^ 모두들 화이팅하세요~

  • 2019-10-21 23:45

    이번 책은 정말 어려웠고 솔직히 뒷부분 읽을 자신이 없긴하네요 ㅠㅜ 단어들 하나하나가 다 낯설다 보니 문장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ㅠㅜ '신화''언어''상징''이성' 이런 단어 하나하나가 구체적으로 뭘 지칭하는지 애매했습니다. 다시 읽어봐도, '이성'과 '상징'을 분리하는데 그 둘이 어떻게 다른지 '이성'과 '언어', '관념'.. 다 똑같은 얘기처럼 들려서읽다보면 멍해지더라구요. ㅠㅜ 그래도 그날 샘들의 설명을 들으니 조금은 알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다시 봐도 도루묵이긴 합니다. 초보에게는 조금 무리이긴 한듯합니다 ㅋㅋㅋ 고생해서 발제하시는 곰곰샘과 초희샘께 감사합니다. ^^

  • 2019-10-25 21:12

    다시 정리해서 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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