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철학에서 '트란스첸덴탈'의 번역에 대해-2

세븐
2024-02-19 12:42
227

'번역은 반역이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번역자(이기상)가 옮긴이의 말에서 번역의 고충을 설명하면서 인용한 문구입니다.
그만큼 외국어로 된 텍스트를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텍스트의 전체 맥락을 파악해야 하고, 그 텍스트의 배경지식도 갖춰야 합니다.

특히 칸트 책처럼 독특한 사유와 새로운 개념들을 따라가야 하는 경우에는 번역의 어려움이 더욱 클 것입니다.
핵심 용어를 그 사태 내용에 맞게 옮겨야 하고, 때로는 의역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 등 번역은 또 다른 형태의 텍스트 해석 작업이기도 합니다.
 

 이제 칸트 철학의 핵심 용어인 트란스첸덴탈(transzendental)이라는 단어를 둘러싼 '번역어 논쟁'의 한복판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먼저 세미나 텍스트인 <순수이성비판>(아카넷)의 번역자인 백종현 교수가 트란스첸덴탈을 '초월적'으로 옮기게 된 배경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백 교수는 2010년 6월 한국칸트학회 논문집(칸트연구)에 <칸트철학에서 '선험적'과 '초월적'의 개념 그리고 번역어 문제>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습니다.
그는 우선 아프리오리(a priori)를 '선험적'으로 새기는 게 가장 무난하다고 설명합니다.
직전까지 대세였던 최재희 교수가 박영사판에서 '선천적'으로 번역한 것을 고쳐 쓴 것입니다.
   

 그는 "아프리오리는 '먼저의', '선차적', '선행적' 등의 뜻을 갖는다. 아프리오리를 '선천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데카르트의 '본유관념'과 이것에 얽힌 애매함을 충분히 살피지 않은 탓으로 보인다"면서 "선험적으로 옮겨 사용하는 게 그 뜻에 가장 알맞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어 최 교수의 선천적이 '생래적' 또는 '태어나면서부터'로 해석될 수 있는 안게보렌(angeboren)과 구별하기 어렵다며 '선험적'의 차별성을 강조합니다. 

 

그럼 트란스첸덴탈을 '초월적'으로 옮긴 이유는 뭘까?
트란스첸덴탈은 '초월하다' 혹은 '넘어가다'의 뜻을 가진 라틴어 동사 트란첸데레(transcendere)에서 유래한 라틴어 형용사 트란스텐덴탈리스(transcendentalis)의 독일어 형태라고 합니다.
그래서 같은 어원의 트란스첸덴트(transzendent)는 '내재적' 의미의 임마넨트(immanent)와 짝을 이뤄 '초험적(또는 초재적)'으로 옮기고, 트란스첸덴탈을 '초월적'으로 새겨 양자를 구별해 주는 게 좋다는게 백 교수의 의견입니다. 

 

백 교수는 철학사적 맥락에서 스콜라철학에서의 '초월자(트란스첸덴치아.transcentia)가 라이프니츠의 계승자인 볼프(1679~1754)를 거쳐 칸트에게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음은 트란스첸덴탈을 '초월적'이 아닌 '선험적'으로 번역한 한국칸트학회의 입장입니다.
한길사의 <칸트전집> 간행사업단의 책임연구자였던 최소인 영남대 철학과 교수는 발간사에서 번역어 선정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칸트전집> 번역사업에는 칸트학회 소속 전문 연구자 34명이 참여했는데, 아프리오리를 음차를 그대로 써 '아프리오리'로, 트란스첸덴탈을 '선험적'으로 번역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두 차례 학술대회와 용어조정위원회 의견 수렴을 거쳐 번역어 합의를 끌어냈다고 합니다.
최 교수는 "'번역은 반역'이라는 말이 있듯이 완벽한 번역이란 불가능하며, 개별 번역자의 견해와 신념에 따라 번역 방식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며 번역어 선정의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앞선 내용이 트란스첸덴탈 번역을 둘러싼 논쟁 배경에 대한 간략한 소개입니다.

 

한길사의 칸트전집 일부가 출간된 직후 백종현 교수가 반박하면서 논쟁에 불씨를 다시 지폈습니다.
 백 교수는 학회가 번역 주체를 맡은 걸 비난한 뒤 아프리오리를 그대로 음차한 걸 두고는 "철학 고전 번역에서 한 낱말도 남김없이 자국어로 옮기는 노고를 기울이는 게 번역자의 책무"라며 적합한 한국어 번역어를 채택하지 않은 무책임을 꼬집습니다. 

 

 이에 대해 칸트학회 소속이자 <칸트전집> 발간에 참여했던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는 "거슬러 올라가면 학회에서 전집을 번역하기로 한 원인은 트란스첸덴탈을 '초월적'으로 심각하게 왜곡해 번역한 백종현 교수가 제공했다"고 직격합니다.
김 교수는 "칸트는 그 이전의 신과 영혼 같은 초월적 존재자들에 대한 사변을 파괴하고 철저히 내재적인 형이상학을 전개한 철학자다. 트란스첸덴탈을 현세적 차원과 내재적 지평을 뛰어넘는다는 뜻이 담긴 '초월적'으로 번역을 하니, 대다수 칸트 학자들이 도저히 동의할 수 없어 새로운 전집 번역으로 바로잡기로 한 것"이라며 오히려 백 교수가 번역어 논쟁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주장합니다. 
     

이후 논쟁은 두 쪽으로 나뉘어 번역자까지 가세하면서 싸움판이 커졌고, 양측은 치열한 공방을 벌였습니다.
처음부터 결론을 도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싸움이었기에 12차례 걸친 지상(紙上) 논쟁은 소득없이 끝났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논쟁을 따라가면서 철학사적 맥락에서 더 상세하게 설명한 김상봉 교수의 논리가 더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 교수는 칸트가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의 '초월적'인 부분을 탈피해 내재적 사유를 전개했다는 측면에서 트란스첸덴탈의 번역어로 '선험적'을 손들어줍니다.
트란스첸덴탈의 뿌리인 트란스첸덴탈리스(transcentalis)가 학술용어로 쓰이게 시작한 건 스페인의 철학자 프란치스코 수아레즈가 1600년 <형이상학토론>을 출판한 뒤부터였다고 합니다.
당시는 '초월적' 의미에 가까웠고, 칸트에게 영향을 끼친 테텐스(J.N Tetens.1736~1807)가 사용한 트란스첸덴테 필로조피(Transzendente Philosophie) 역시 '초월 철학'으로 부를 수 있다고 합니다.
   

칸트는 1756년 번역한 <물리적 단자론>에서는 비슷한 의미의 '필로소피아 트란스첸덴탈리스(philosophia transcendentalis)를 표현을 썼습니다.
그러나 1781년 <순수이성비판> 초판에서는 테텐스의 초월 철학과 구별해 처음으로 트란스첸덴탈-필로조피라는 독일어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측면에서 칸트가 이 단어에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했다는 게 김 교수의 시각인 것 같습니다.
김 교수는 2006년 <칸트연구>에 이런 내용을 담은 <선험론적 철학의 탄생: 볼프와 테텐스 그리고 칸트>라는 제목을 논문을 게재한 바 있습니다.

 

그는 백 교수를 겨냥해 "그의 주장과 글 어디에서도  칸트 이전의 초월철학의 역사에 대해 진지한 공부를 한 흔적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공부를 하려는 의지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주관적인 해석에만 의지해 그때까지 선험철학이라고 부르던 것을 초월철학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백 교수가 기존 대세였던 '선험적' 대신 '초월적'을 선택하게 된 건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은 현대 일본 학계의 동향과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일본 코분도 출판사가 1997년 출간한 <칸트사전>(이신철 역.도서출판 b)에는 트란스첸덴탈의 번역어로 초월론적'으로 표기하고 있고, 백 교수는 하이데거가 총장을 지낸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인연이 있다고 합니다.
   

이곳저곳에서 자료를 긁어모아 편집을 하다 보니 글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어쨌든 트란스첸덴탈 번역어로 '선험적'이 직관적으로 와닿기는 하지만 칸트 세미나의 텍스트가 백종현 교수의 책인 만큼 '초월적' 의미를 새기면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댓글 2
  • 2024-02-19 19:41

    세미나 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딱히 선천적(아프리오리)-선험적, 선험적-초월적 번역어 논쟁에 대해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각자 생각하는 역어대로 내면 되지'라는 입장입니다. 겨스님들이 '그렇게 번역하면 오해를 한다'는 그런 생각부터가 사실 오래된 계몽주의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각자의 역어에 관한 사정은 그저 각주에서나 봤으면 하는 바람이랄까요.

    어쨌든, 옮겨주신 논쟁과정에 비춰보자면 저는 '초월적'이라고 번역한 백종현선생님의 번역이 더 합당한 것 같습니다. 김상봉선생의 근거대로 칸트가 중세적 초월성을 거부하고, 내재적 사유를 전개하려고 했다고 한다면 오히려 더더욱 '초월적'으로 옮겨야지 않을까요? 그래야 독자가 칸트의 의도를 더 정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트렌스첸덴탈'이라는 동일한 단어에 실리는 중세와는 다른 칸트적인 함축이 있다는 걸 파악하는 건 역자가 할 일이 아니라 독자가 할 일이니까요. 오히려 같은 걸 다른 말로 번역해 놓으면 독자는 수아레스와 칸트가 동일한 단어로 다른 걸 말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칸트의 '특이성'은 다른 말로 다른 주장을 한 게 아니라 그 개념어의 의미를 풍부하게 확장-전환해 낸 것에 있는거죠. 게다가 칸트가 사변을 파괴한 내재성의 철학자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그 내재성이 스피노자나 들뢰즈 같은 내재성은 또 아니죠. 요컨대 초월적인 것이 칸트에게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는 겁니다. 게다가 하이데거의 영향 운운은 솔직히 좀 그렇습니다. 백선생님이 진짜 그런지 확인할 수도 없고, 나중에 때가 된 다음에나 해도 되는 이야기를 굳이...

    어쨌든, 세븐샘 덕분에 2024 철학학교는 아주 확실하게 아프리오리와 트렌스첸덴트를 머릿속에 넣고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2024-02-19 22:33

    뭐가 옳다라고 보태기는 우습지만, 그래도 제 입장을 보태자면, 읽는 사람이 맥락에 따라 해석하면된다고 여기니 정군샘과 가깝고, 그럼에도 백종현 선생의 초월은 생뚱맞고 직관적 독해를 방해하는 부분이 많아서 선험이 더 낫다라고 보는 측면에서는 세븐샘편입니다. ㅎ

    칸트의 혹은 백종현 선생의 극악무도한 문장들 다 읽고 목요일에 만나요…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798
[2024 철학학교 1] 순수이성비판 4주차 질문들 (10)
정군 | 2024.03.06 | 조회 290
정군 2024.03.06 290
797
[2024 철학학교 1] 3주차 후기: 지성! (17)
덕영 | 2024.03.01 | 조회 316
덕영 2024.03.01 316
796
[2024 철학학교 1] 순수이성비판 3주차 질문들 (9)
정군 | 2024.02.28 | 조회 265
정군 2024.02.28 265
795
[2024 철학학교 1] 2주차 후기: 칸트가 말합니다, 선험적 종합 명제는 이렇게 가능하지 (10)
호수 | 2024.02.25 | 조회 359
호수 2024.02.25 359
794
[2024 철학학교 1] 순수이성비판 2주차 질문들 (17)
아렘 | 2024.02.19 | 조회 338
아렘 2024.02.19 338
793
칸트철학에서 '트란스첸덴탈'의 번역에 대해-2 (2)
세븐 | 2024.02.19 | 조회 227
세븐 2024.02.19 227
792
칸트철학에서 '트란스첸덴탈'의 번역에 대해-1 (1)
세븐 | 2024.02.18 | 조회 215
세븐 2024.02.18 215
791
2024철학학교 1회차 후기: 칸트, 내겐 너무 어려운 그에게 한 걸음... (6)
봄날 | 2024.02.16 | 조회 310
봄날 2024.02.16 310
790
[2024 철학학교 1] 순수이성비판 1주차 질문들 (10)
정군 | 2024.02.14 | 조회 358
정군 2024.02.14 358
789
[2024 철학학교] 개강 공지입니다!!
정군 | 2024.02.06 | 조회 279
정군 2024.02.06 279
788
[2023 철학학교] 에세이데이!! 부제 모든 길은 칸트로 통한다? (15)
정군 | 2023.12.18 | 조회 494
정군 2023.12.18 494
787
[2023 철학학교] 완성된 에세이를 모아주세요! (13)
정군 | 2023.12.14 | 조회 398
정군 2023.12.14 398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