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고전학교]<사기- 혹리열전> 후기

도라지
2023-11-28 17:16
316

 

<장탕은 정말 혹리였을까?>

 

혹리열전은 혹독하고 무자비한 관리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강직하고, 융통성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으며 오직 법조문에 따라 엄중히 통치하는 그들에 관한 이야기는 재미없어야 할 것 같지만, 노~노~ 의외로 재미있게 읽힌다. 한무제의 시대가 기원전 141년부터 기원전 87년까지이니, 대략 지금으로부터 무려 2천 하고도 160년 전의 일이다. 그간 시대가 변하고 정치 사회 시스템이 발전되어 왔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은 사람들 사는 이야기인 모양이다. 혹리열전 안에서 펼쳐지는 한무제를 둘러싼 인간군상을 보자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들은 과연 혹리가 맞을까? 염리는 아니겠지만 충신 같기도 하고 간신 같기도 하고... 특히 장탕이 더 그렇다.

 

 

혹리열전에는 장탕 말고도 질도, 영성, 주양유, 조우, 의종, 왕온서, 윤제, 감선, 두주 등의 인물이 나온다. 태사공은 이들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들 중에 청렴한 자는 모범으로 삼을 만하다. 그들의 방책과 모략은 후세 사람들을 가르쳤고 간사하고 사악한 일을 금지시켰으니 모든 행위도 적절하게 어울려 소박함 속에 문무의 자질을 겸하고 있었다. 그들은 참혹하기는 하나 그 지위에 알맞은 인물이었다."(사기열전2-김원중-P.645)

 

청렴한 혹리, 엄격한 법집행자, 문무를 겸한 충신 같은 간신... 사마천은 그들의 어떤 점을 가르켜 '혹리'라고 이름한 것일까? 혹리열전에서 가장 분량이 많은 장탕을 짧게 살펴보자.

 

"장탕이 입조하여 사안을 보고할 때나 국가 재정에 관해 이야기할 때 마다 천자는 해가 저물어도 식사마저 잊었다.... "(p,624)

 

장탕은 하급관리에서 시작해서 어사대부까지 오른 인물로, 청렴과 엄정한 법 적용의 대명사다. 무제의 신임이 깊어 '天下事皆決湯(천하사개결탕: 천하의 모든 정치가 장탕의 손에서 결정되었다.)'이란 말이 회자될 정도였다고 한다.

장탕이 무제의 신임을 얻은데는 무엇보다 진황후무고사건이(여기서 무고는 巫蠱: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주하는 일)있었다. 장탕은 무제의 황후였던 진황후(陳皇后)를 폐위시키는데 결정적인 임무를 수행한다. 이 사건은 당초 진황후의 권세로 결과가 예상된 수사였지만 장탕은 사건의 전말을 낱낱이 밝힌다. 이 수사로 처형당한 자만 무려 3백여 명. 가혹한 판결 같지만 무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장탕을 태중대부(황제의 고문?)로 임명한다. 하급관리였던 장탕의 파격 승진은 인재 기용에 관대했던 무제의 성향도 작용한 바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이 판결이 무제가 원한 결과(무제는 진황후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후 장탕은 법령을 세밀하고 엄격하게 하여 관리들을 단속하였고, 무제가 문학에 관심을 두면 '상서'나 '춘추'에 정통한 자로 史를 삼아 의심스러운 법조문을 평결하게 했다. 항상 무제의 의향을 미리 파악하여 일을 진행하였으니 무제가 장탕을 총애한 것은 인지상정이었다

 

장탕과 함께라면 해가 저물어도 식사마저 잊고 그가 아프면 문병까지 갔던 무제와는 달리, 장탕은 당시 백성들에게는 지탄의 대상이었다. 백성들은 생활고가 심하여 소요를 일으키기 일쑤였고, 법에 의한 준엄한 일처리는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과연 무제의 총애는 장탕에게 좋게만 작용했을까? 총애를 받는 사람은 계속 공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황제를 위해서라면 없는 법도 만들고, 판결을 통해 교묘하게 대신들을 타격하여 자신의 공적으로 삼은 장탕의 행실은 그에게 원한을 품는 사람들을 만들어냈고 결국 장탕은 그들의 모함으로 죽음에 이른다.

 

무제의 입장에서 보면 장탕을 혹리라 칭하기는 석연찮은 구석도 있겠지만 백성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사심을 채우기 급급했던 법기술자였다. 그의 죽음 이후 그가 사유재산을 불리지 않았음에 살짝 염리였나?...로 마음이 기울 뻔했지만 이 또한 끝까지 무제의 마음을 사기 위한 계획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쥐에게 책형을 처하고 있는 장탕

댓글 2
  • 2023-11-29 13:15

    장탕....
    오직 왕에게만 충성하는 면에서 혹리라고 했을까요?
    상세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 2023-12-01 13:56

    그러게요. 선인과 악인이라는 평면적인 구분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일정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다음주 7일에는 '화식열전'을 하고 에세이 개요(혹은 초안)을 가지고 옵니다.
    12일 화요일 오후 1시30분에 에세이 피드백을 합니다.
    14일에 에세이 발표입니다.
    시간이 별로 없어서 좀 급작스럽기는 하지만 잘 하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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