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고전학교] 역생육고 열전 후기

가마솥
2023-11-14 13:52
593

    이 편은 변설(辯舌)로 한고조의 모사가 된 진류의 고양 사람인 역생(酈生) 이기(食其)와 육가(陸賈) 그리고 초나라의 모사 주건(朱健)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진달래 샘은 한 고조 이후 관료형 지식인 시대가 오기 전에, 사마천은 이 열전에서 제자백가 중에서 마지막 유세가들을 소개한다고 보았다. 순자-육가-가의-동중서-사마천-유향-(유흥/왕망)....으로 이어지는 유가에서 황로학을 거쳐서 진화해가는 사상의 흐름을 설명한다.

 

역생은 유방이 항우와 세력 대결하는 동안, 제 나라를 취하는 곳이 패권을 잡게 되는 상황에서 그의 능력을 보여 준다. 제나라 왕에게 천하를 제패할 사람은 유방이니, 이에게 항복하여 제왕으로 봉해짐을 받아 살아가라는 제안을 한다. 그의 논리를 들어 보자.

 

한왕과 항왕(項王)은 힘을 합쳐 진을 공격해 함양(咸陽)에 먼저 들어서는 자가 왕이 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한왕이 먼저 함양에 입성하자 항왕은 약속을 저버리고 한왕에게 함양을 주지 아니하고, 한중(漢中)의 왕으로 삼았습니다. 항왕은 의제(義帝)를 내쫒아 죽였습니다. 한왕이 이 소식을 듣고서 즉시 촉한(蜀漢)의 군대를 동원해 삼진(三秦)을 공격하고, 함곡관(函谷關)을 나와서 의제를 살해한 죄를 따졌습니다. 그리고 천하의 병사를 수습하고, 각 제후의 후예를 세웠습니다. 성을 빼앗으면 바로 그 장수를 후(侯)로 봉하고, 재물을 얻으면 바로 그 병사들에게 나누어주어, 천하와 더불어 그 이익을 함께 해 영웅·호걸·현인·재사 등은 모두 한왕에게 기꺼이 기용되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제후들의 군대가 사방에서 왔으며, 촉한의 곡식이 지금 배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항왕에게는 약속을 배반했다는 악명과 의제를 살해했다는 큰 죄가 있으며, 또한 다른 사람의 공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서는 잊어버리지 않고, 싸워서 이겨도 상을 내린 적이 없으며, 성을 함락시켜도 봉토를 내린 적이 없습니다. 또한 항씨의 일족이 아니면 권력을 잡을 수가 없으며, 사람을 봉하기 위해서 후인(侯印)을 새겨두고 아까워서 달아 없어질 때까지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을 공격해 재물을 얻어도 쌓아둘 뿐 상으로 주지 않습니다.

 

이런 까닭에 천하의 사람들은 그에게 반기를 들고 현인과 재사들은 그를 원망하며 그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하의 선비들이 한왕께 돌아간다는 것은 앉아서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한왕께서는 촉한에서 군대를 일으켜서 삼진을 평정하셨고, 서하(西河)를 건너 상당(上黨)의 군대를 모아 정형(井陘)을 점령해 성안군(成安君)을 죽였으며, 북위(北魏)를 격파해 32개의 성을 함락시키셨습니다. 이것은 치우(蚩尤)의 군대와 같은 것으로 사람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늘이 내려준 복입니다.

 

지금 한왕께서는 이미 오창의 곡식을 차지하시고, 성고의 요새를 막으시고, 백마진을 지키고 태행산으로 가는 길목을 차단하시고, 비호의 입구를 장악하셨으니, 만일 천하에서 뒤에 항복하는 먼저 멸망할 것입니다. 왕께서 서둘러 한왕에게 항복하신다면 제나라의 사직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왕에게 항복하지 않으신다면 멸망을 선 채로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역생의 말이 통했다. 제나라 왕, 전광은 그렇다고 여기고 역생의 말을 따라 역하(歷下)의 병사를 거둬들인 뒤 역생과 날마다 마음껏 술을 마셨다. 그런데, 회음후 한신이 등장한다. 회음후는 역생이 수레 위에 앉은 채로 제의 70여 성을 항복시켰다는 것을 들고, 밤을 틈타 군대를 평원(平原)에서 황하를 건너게 해 제나라를 급습했다. 제 왕 전광은 한 군대가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역생이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하고 말했다. “네가 만일 한 군대를 멈추게 한다면 너를 살려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너를 삶아 죽이겠다!” 결국, 역이기는 죽임을 당한다.

한신이 왜 그랬을까? 사마현 샘은 한신의 변사 괴통(蒯通) 때문이었다고 한다. 『회음후 열전』에 부분이 자세히 나온다.

 

한신이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진격해 아직 평원(平原)을 건너기 전에 한왕이 역이기(酈食其)를 시켜서 이미 제를 달래어 항복받았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한신은 제 치는 일을 그만두려고 했다.

 

이때 범양(範陽)의 변사 괴통(蒯通)이 한신을 설득해 “장군이 조칙을 받고 제를 공격하려는데, 한왕이 단독으로 밀사를 보내 제를 항복시켰습니다. 그러나 장군에게 공격을 그만두라는 조칙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어찌 진격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역이기는 한낱 변사입니다. 그렇지만 수레를 타고 세 치 혀를 놀려 제의 70여 성을 항복시켰습니다. 그러나 장군께서는 수만의 무리를 거느리고 한 해가 넘도록 겨우 조의 50여 성을 항복시켰을 뿐입니다. 장군이 되신 지 벌써 여러 해가 되었는데, 보잘 것 없는 한낱 선비의 공보다도 못하다는 말씀입니까?”라고 말했다. 이에 한신도 이 말을 옳다고 생각했다.

 

그의 계책에 따라 드디어 황하를 건너갔다. 제는 이미 역이기의 말을 듣고 바로 머물게 한 뒤 술잔치를 벌여, 한에 대한 방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한신이 이 틈을 타서 역하(歷下)에 있던 제의 군대를 습격하고, 드디어 임치(臨菑)에 이르렀다. 제왕 전광(田廣)은 역이기가 자기를 속였다고 여기고 그를 삶아 죽이고 고밀(高密)로 달아나 초로 사자를 보내 구원을 청했다. 한신은 임치를 평정한 뒤에 드디어 전광을 동쪽으로 추격해 고밀 서쪽에 이르렀다. 초도 용저(龍且)를 장군으로 삼고, 20만이라고 일컬으면서 제를 구원했다.“

 

그렇다. 변사들의 논리에 왕과 장군들이 움직인 결과이다. 아마도 한신은 이 때부터 유방의 장수를 너머 한나라의 왕이 되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유방이 제 나라에 보낸 밀사, 역이기가 성공한 전략을 ‘우리에게는 명령이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뒤집고, 자신의 방식으로 제 나라를 항복시키니 말이다. 그나저나 유방에게는 사람들이 잘 모인다. 오죽하면 주막집에서도 유방이 오면 장사가 잘 된다고 그의 외상 장부를 주기적으로 삭제해 주었을까? 그에게는 사람을 볼 줄 알고, 그를 적재적소에 쓸 줄 아는 능력이 패자가 되게 하였다. 모든 게 자신의 능력이라고 믿는 항우와는 다르게......

 

사마현 샘은 세미나 시간마다 ‘굥’이 튀어나와 분개한다. 그도 그럴 것이 술 좋아하는 것만 호걸들과 비슷한 ‘굥’은 모든 게 자신이 다 알고 있는 듯이 행동하며, 세상사를 범죄의 눈으로 보고, 천하가 아는 사실을 자신만 모르고 있으니......

댓글 2
  • 2023-11-14 19:48

    한신이 만들어 놓은 유리한 형세가 있기에,
    역이기가 제나라에 가서 하는 말이 통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신의 옆에는 괴통이라는 모사꾼이
    순진한 한신에게 욕망을 속삭거리고,
    괴통의 말을 들어보니, 한신 또한 인간인지라 욕심을 품었다.
    역이기는 입으로 제나라를 무력하게 했으며,
    한신은 칼로 제나라를 끝장내 버렸다.
    유방의 입장에서는 나쁠게 없다.두명이 깔끔하게 일을 마무리 했다.
    하지만 유방은 역이기의 희생을 잊지 않았다.
    또한, 한신을 예전 만큼 믿지 않았다.
    나대지 마라 한신아.
    내가 시키는 것 만큼 만 나대라~~
    그렇지 않으면, 燔灼而喫也!
    괴통이 한신에게 최선을 다하듯이,
    한신은 유방에게 최선을 다했어야 만 했다.

    202003050019_228_역사인물.jpg

    • 2023-11-15 09:15

      그러네요. 한신이 50개 성을 무너뜨리고 제 나라에 거의 다 왔기에
      역이기의 변설이 통할 수 있었다고 생각되네요.
      이것을 유방 입장에서는 백묘흑묘 처럼 내 버려 두어서 일이 되게 하고,
      장군 한신에게 누가 주군인 지를 분명하게 하려는 의도로 읽으면......
      고도의 정치가이네요. 유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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