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고전학교] <항우본기> 후기 - 힘은 산을 뽑음 직한데...

곰곰
2023-10-16 13:36
622

<항우본기>를 함께 읽었다. 항우는 진나라 멸망과 한나라 건국 사이에 가장 열일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열전’이 아니라 ‘본기’에 실렸기 때문에 문제가 된 항우. <한서>에서는 항우를 일개 무장으로 보아 열전 자리에 놓았지만, 사마천은 <세가>도 아니고 <본기>에 실었으니 항우를 대왕으로 인정했다는 의미다. 사마천은 진나라가 망하고 한나라 유방이 황제로 등극하기까지 5년의 기간동안 항우가 실질적인 지배자로 보았다. 휘하의 장군들을 모두 왕으로 임명해 토지를 나눠 준 사람이 항우였다. 서초패왕이란 지위가 그의 위치를 말해준다.

 

1. 진 왕조를 쓰러뜨리기 위해 군사들이 일어나다 - 한(漢)나라의 형성 과정

진시황 사후 진섭의 반란을 시작으로 각지에서 진(秦)에 대한 반란이 일어난다. 진승과 오광이 일으킨 대규모 농민 반란이 일어났고, 이를 빌미로 과거 제후와 장군들도 반기를 들게 되었다. 그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낸 것이 항량, 항우 세력으로 이전의 초(楚)나라를 배후로 한다. 유방이나 한신, 경포와 같은 인물들도 처음에는 모두 항량(후엔 항우)의 휘하에서 진나라와 싸웠다. 기원전 206년, 진을 멸하였다.

 

2. 거록전투 - 항우의 화려한 등장

책사 범증의 말에 따라 항우는 초나라 마지막 왕인 회왕의 손자(옹심)를 찾아내 초회왕으로 받아들였다. “초나라를 재건하자!”는 것이 봉기의 명분이었다. 그런데 초회왕이 상장군에 임명한 송의와 항우는 전투 스타일이 맞지 않았다. 송의는 진나라 장함의 군대가 조나라와 싸우다 지치면 끼어 들겠다고 했지만, 항우는 지금 싸워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던 차에 송의가 아들의 성대한 송별회을 열어주자 항우는 대로(大怒)하여 그를 죽이고 군권을 장악한다. 여기서 유명한 ‘파부침주(破釜沈舟)’(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배를 가라앉힌다) 전술을 구사하는데, 막사도 불태우고 3일치 군량만 가지고 전투에 임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 초나라 군사들은 전력의 열세에도 사력을 다해 싸우고 진의 대군을 물리친다. 이로써 항우는 대세의 향방을 좌우하는 결정적 주도권을 쥐기에 이른다. 항우의 강력한 리더십이 가장 빛나는 장면!

그런데 중대 변수가 생겼다. 초회왕이 관중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을 왕으로 봉하겠다고 약속한 것. 항우를 견제하기 위한 조치였을 수도 있고 진나라 수도를 하루 빨리 점령해 진나라를 무너뜨리려고 한 의도였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어쨌든 항우의 대권 가도에 변수가 생겼다. 이 변수의 와중에는 유방이 있었다. 

 

3. 항우와 유방, 각각 북쪽과 남쪽에서 함양으로 진격하다

진 장함의 토벌대가 주로 북쪽을 향하던 사이, 유방은 남쪽에서 함양을 향해 진격한 결과 가장 먼저 관중에 입성했다. 그 사이에 장량 등 여러 인재도 발탁했다. 함양에 들어간 유방은 참모들의 조언에 따라 진사람들을 너그럽게 처우하면서 가혹했던 모든 법률을 폐지하고 세 가지만 남긴다는 ‘약법삼장(約法三章)’을 공포한다. 약탈과 살인을 금하며 민심을 수습했다. 그 무렵 40만 대군을 이끌고 함양에 도착한 항우. 그는 함곡관으로 오기 전 신안에서 포로로 잡은 진 병사 20여만 명을 모조리 산 채로 땅에 묻어 죽이고 진나라를 평정했다. 그런데 유방이 먼저 입성했다는 소식을 듣자 대로(大怒)한다. 전력 면에서 절대 열세였던 유방은 자신이 먼저 함양에 입성한 것은 항우를 위해서라고 둘러댄다. 항우는 유방에게 정식으로 자신을 찾아와 해명하라며 홍문에 술자리를 마련해놓고 그를 초청했다. 그 유명한 ‘홍문지연(鴻門之宴)’이다.

 

4. 항우, 함양을 점령한 유방을 암살하려 하다

유방과 정면으로 만났으나 유방을 제거할 절호의 기회를 무산시킨 만남. 사마천이 이 장면을 연극처럼 아주 공들여 묘사한 것은 여기서 항우와 유방의 앞날이 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상승곡선을 그리던 항우가 멈추게 되고 유방이 상승기류를 타게 된다. 유방이 큰 뜻을 품고 있음을 알아챈 범증은 “유방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번 기회에 반드시 없애버리겠다고 한다. 하지만 항우는 유방의 태도가 워낙 공손하기 때문에 죽일 생각이 없었다. 보다 못한 범증은 항장에게 검무를 핑계로 유방을 죽이라고 지시하지만 항백이 이를 막고 번쾌까지 연회장에 뛰어들어 유방은 무사할 수 있었다. 유방은 참 운도 좋다. 

 

 

그 후 항우는 유방이 떠난 함양에서 유방이 살려놓은 자영을 죽인 것은 물론 닥치는 대로 궁을 약탈하고 불 질렀으며 죄없는 백성을 살육했다. 이 불이 무려 석 달을 타올랐다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니 항우의 만행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항우는 약탈과 살육으로 관중의 민심을 크게 잃게 된다. 진나라와 초나라가 원수지간이긴 했지만 진나라의 민심을 얻지 못하면 천하를 통일해도 통치가 힘들텐데, 항우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하다. 어린 나이에 봉기해 서른 즈음에 대권을 눈앞에 둔 항우는 기고만장했던 것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민심은 완전히 유방에게 넘어갔을 법하다. 전력은 항우가 우세했지만, 유방에게는 사람들이 따랐다.

 

5. 항우의 잇따른 실수

항우는 회왕을 의제로 높여 부르는 한편(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의제를 살해해 또 한 번 명분과 인심을 잃는다) 제후들을 분봉하는 논공행상을 시행한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격한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가 된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요지에 봉하는 등 무원칙하고 정치적 배려가 전혀 없는 논공행상이었기 때문이다. 분봉에 불만을 품은 제후들이 속속 항우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특히 제나라 지역에서는 내부의 분란까지 겹쳐 제나라 땅은 삼제로 분열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 틈에 유방도 한중을 나와 관중을 평정하는 등 재기했으나 항우의 공격을 받아 형양까지 쫓겨갔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전세에 몰린 유방은 형양을 지키며 진평의 계책을 받아들여 항우의 진영을 분열시키는 반간계를 구사했다. 그 결과 항우는 가장 믿는 범증마저 의심해 그의 권한을 조금씩 빼앗기 시작했다. 화가 난 범증은 자리를 던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다 등창(a.k.a. 화병)으로 죽고 말았다.

또다른 실수는 함양을 모두 불태우고 초나라로 돌아간 일이다. 이러한 항우의 무모함은, 유방이 함양에 입성했을 때 소하가 궁전에 보관된 문서들, 즉 진나라의 정교한 행정체계가 만든 국가 문서를 챙긴 것과 비교하면 더 도드라진다. 천하를 다스릴 정보를 확보하고자 한 선견지명이 돋보이는 행동이었다. 이에 견주어 보면 항우에게는 어떤 비전이 있었을까. 관중을 떠나기 전 항우에게 간언한 선비가 있었다. 관중은 요새지역이기도 하고 토지가 비옥하니 천하를 제패할 도읍으로 삼으라고. 항우는 말을 듣지 않았고 조언을 한 선비는 초나라 사람을 빗대 원숭이처럼 조급하고 난폭하다고 말했다가 죽는다. 항우가 생각한 천하는 진 제국 이전 육국시대로 돌아가 초나라가 패권을 유지하는 구도였기 때문에 초나라로 돌아갈 생각이 강했다. 반면 유방은 관중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해 끝내 천하를 통일한다. 항우의 철수는 유방에게 유리한 지역을 내준 패착이었다. 

 

6. 고단한 전투 - 항우와 유방의 화평, 유방이 공격을 재개하다

기원전 203년, 항우는 유방의 아버지와 처자를 석방하며 화평을 청했고, 항우는 동부를, 유방은 서부를 지배한다는 천하 양분의 정전 회담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유방은 항우군이 피곤해진 바로 지금이 승리를 차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겨 약속을 깨고 공격을 재개한다. 결국 항우군은 해하에서 포위당하였다. 항우는 '사면초가(四面楚歌)'의 노랫소리를 듣고 최후의 때가 다가왔음을 느끼며 사랑하는 우미인과 이별의 술잔을 나누며 노래를 불렀다.

힘은 산을 뽑고 기운은 세상을 덮었네 / 때가 불리하니 추도 나아가지 않는구나 / 추가 나아가지 않으니 어찌하겠나 / 우여, 우여, 어찌하겠는가

 

7. 항우의 죽음

항우는 애마 추와 800여 기병만 거느리고 포위를 돌파했다. 몇 차례 추격하는 한의 군사를 악전고투 끝에 물리쳤지만 28기만 남았다. 여기서 항우는 유명한 말을 한다 “하늘이 나를 버린 것이지 용병을 잘못한 죄가 아니다” 결국 항우는 유방의 군대 속으로 다시 뛰어들었고 스스로 목을 그어 자결한다. 이로써 햇수로 5년에 걸친 초한쟁패는 절대 열세였던 유방의 역전승으로 끝나고 천하는 다시 통일되었다.

 

8. 농민 출신 유방, 천하를 평정하다

유방의 승리는 운이 따랐다는 말로만 설명하긴 어렵다. 이유가 있다. 하늘을 원망한 항우의 태도와 대조를 이룬다. 천하를 평정한 후 유방은 이렇게 말했다. “군 지휘관으로서 나는 한신에 미치지 못하고, 작전 계획에서는 군사인 장량이 나보다 훨씬 뛰어나며, 보급면에서 나는 소하만한 수완이 없다. 내가 천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을 잘 부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우는 범증 한 사람을 가졌는데 그를 쓸 줄 몰랐다. 범증은 항우가 전쟁 치를 동안 뒷감당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건만 항우의 짧은 안목은 그를 볼 줄 몰랐다. 아니, 자신의 능력을 너무 믿은 결과였는지 모르겠다. 항우는 전투에 몰두했고 유방은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전쟁과 건국(나아가 치국)은 다른 문제다. 항우가 진나라를 무너뜨리는 데는 성공했으면서도 건국에 실패한 것은 이 둘이 다르다는 사실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 아닐까. “말을 타고 전쟁을 할 순 있지만 말 위에서 국가를 경영할 수는 없다”

 

덧. 항우의 어린 시절 이야기

“항우는 어릴 때 글을 배웠으나 끝내지 못했고, 검술을 배웠으나 이 또한 마치지 못했다. 항우는 “글은 이름을 쓸 줄 아는 것으로 충분하고, 검은 한 사람만 상대하는 것으로 배울 것이 못 되니 만 명을 대적할 수 있는 것을 배우겠습니다”고 했다. 그래서 항량은 항적에게 병법을 가르쳤다. 항적은 아주 좋아했으나 역시 그 뜻만 대략 알고는 끝까지 배우려 하지 않았다”

항우의 성격은 단도직입적이었다. 또한 무엇이든 끝까지 배우는 법이 없었다. 물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공부를 굳이 끝까지 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적어도 항우가 그리 끈기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상당히 오만했다. 진시황의 행차를 본 어린 항우는 서슴치 않고 “저 자의 자리를 대신 차지할 수 있다”라고 호언했다. 이를 자신감으로 볼 수도 있지만 지나친 자신감은 큰일을 그르치는 법이다. 거록에서 공격을 망설이는 송의의 목을 주저 없이 베어버리고 진나라 군대를 공격해 승리할 때까지는 그런 성격이 긍정적으로 발휘되었다. 하지만 정치 방면에서는 항우의 급하고 자주 대로(大怒)하는 성격은 부정적이다. 정치는 민심을 얻느냐로 그 승부가 결정되는데, 항우는 무고한 백성을 숱하게 죽였다. 항복한 적군도 살려주는 법이 없었다. 인심을 잃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죽는 순간까지도 항우는 그런 기질을 드러냈다. 그는 70번 전투에 나가 진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어째서 해하 전투에서 딱 한번 지고 몰락했는가. 항우는 자신의 과오가 아니라며 하늘 탓으로 돌렸다. 재기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항우에게 실패란 단어는 없었고, 실패를 견뎌내고 다시 일어설 끈기가 애당초 없었던 것이 아닐까.

댓글 4
  • 2023-10-17 07:11

    실패의 경험이 없는 항우의 몰락이라....
    뭔가 요즘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커 보입니다.

  • 2023-10-17 21:11

    항우는 싸움 하나는 끝내주게 잘한다.
    동, 서양 통틀어 최고! 1등
    진나라를 무너뜨린 사람은 항우이다.
    진나라는 초나라의 원수이다.
    초회왕을 억류해서 죽게 만든것도 진이다.
    항우의 할아버지인 항연을 죽인 나라도 진이다.
    하여 항우는 신안에서 항복한 진군을 학살한다.
    항우는 천하를 품은 것이 아닌 복수혈전을 한 것이다.
    항우는 군주가 되는 것이 아닌 장군이나 했어야 했다.
    백기가 장평에서 포로를 학살한 일과 함께 두명의 비열함은 우열을 가릴 수 없다.
    항우는 그때 이미 몰락 한것이다.
    다 죽이면 그 나라에는 누가 사는 거니??
    항우는 부하를 의심을 하고
    군주가 의심을 하면 부하는 배신을 한다.
    당연하다.
    예전의 나랏님은 그래도 낭만이라는 게 있었네....
    요즘은 택도 없다. 기현상이다.
    진실은 없다 진실 너머의 나의 신념이면 정리가 된다. 끝

  • 2023-10-22 22:05

    잘 정리된 항우 본기를 읽는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다만, 한자 크게 화를 내다. 대로(大怒)인데요.
    '怒' 자는 '성낼 노(로)'인데, 글자 맨앞에 오면 두음법칙이 적용되어 '노'로, 뒤로 가면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으니 '로'라고 적고 그렇게 발음합니다.
    따라서 대로(大怒)로 적어야 할 듯 합니다.
    원문도 是時, 漢還定三秦. 項羽聞漢王皆已幷關中, 且東, 齊、趙叛之:大怒. 이네요.

    • 2023-10-25 23:08

      어머낫 ㅋㅋ 그러네요 제가 왜...그랬을까요 ㅋ 얼렁 고쳐두었습니다. 히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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