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고전학교]<회음후열전> 후기

도라지
2023-10-10 23:04
676

 

장량, 소하와 함께 건한삼걸로 불리는 한신은 유방을 도운 한나라의 개국 공신. 중국 역사에서 손꼽히는 명장이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이름을 떨치기까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평민 출신으로, 가난하고 품행이 좋지 못해 관리로 천거되지도 못했고 항상 남의 집에 붙어먹고 얻어먹으면서 살아 많은 사람들이 싫어했다. 마을의 한 젊은이는 칼을 차고 다니는 한신을 비웃으며, “네놈이 죽일 수 있으면 나를 찌르고, 죽일 수 없으면 내 가랑이 사이로 기어 나가라!” 라고 모욕을 주었다. 한신은 허리를 굽혀 그 가랑이 사이를 기어나갔다(과하지욕袴下之辱). 그 일로 사람들은 그를 비웃으며 겁쟁이로 여겼다.

 

 

이후 항량이 회수를 넘어 북상하자 그의 휘하에 들어갔으며, 항량이 장한과 싸우다 죽자 항우의 밑에서 낭중(郞中)이 되어 자주 간언했지만 항우는 그 책략을 쓰지 않았다. 한왕이 촉으로 들어가자 한신은 초나라를 떠나 한나라로 갔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연오(連敖)가 되었다가, 법에 걸려 참형에 처해질 처지가 된다. 하지만 등공 하후영에게 “주상께서는 천하를 차지하려고 하시지 않습니까? 어찌 장사를 죽이려 하십니까?” 라고 말하였고 그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하후영이 그를 기특하게 여겨 유방에게 천거해 치속도위(治粟都尉)가 됐다. 그러나 바로 유방에게서 인정받지는 못했다. 한신은 한나라 승상인 소하와 자주 대화했고, 소하에게서 드디어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이후 소하의 도움으로 한신은 유방에게 인정받고 대장군이 된다.

 

 

사마천은 회음후였던 한신을 세가로 기록하지 않고 열전에 기록했다. (진섭도 세가에 있는데 말이다...) 진달래쌤은 그 이유를 생각해보자고 하셨는데,  과연 그 이유가 뭘까? 사마천은 "...한신의 한나라에 대한 공훈은 주공, 소공, 태공망 등에 비할 수 있고 후세에 사당에서 제사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되려고 힘쓰지 않고 천하가 이미 안정된 뒤에 반역을 꾀했으니 온 집안이 멸망한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라고 적고 있다. 판세를 잘 읽고 적절한 타이밍에 처신하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있는 듯 하다. 

 

 

한신이 제나라를 접수했을 때. 어쩌면 이때가 한신이 천하 쟁탈전에 직접 뛰어들 수 있었던 결정적인 기회였을 것이다. 제나라는 영토도 컸고 풍부한 물자를 갖고 있었으며 바다를 끼고 있다는 지리적인 이점까지 있었으니 한신이 마음을 먹었다면 제(齊)의 맹주로써 유방의 한(漢), 항우의 초(楚)와 함께 천하를 다툴 수 있었다. 책사 괴통이 한신을 부추기긴 했지만 한신은 명분과 의리에 얽매여 괴통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방에게 신세진 것이 많은데 어떻게 그를 배신하느냐는 것이 한신의 대답이었다.

 

 

천하를 다툴 기회를 놓친 한신은 결국 유방의 신하로써 최후를 맞는다. 천하통일 과정에서 자신의 공을 지나치게 과신해 유방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에 실패, 끝내는 목숨마저 잃고 만다. 천하를 손에 넣은 유방에게 능력자 한신은 가장 껄끄러운 존재였을 것이다. 토사구팽은 어찌 볼 때 정해진 수순이 아니었을까? 유방으로서 정국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제거해야 할 첫 번째 인물은 바로 한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신은 이러한 변화를 내다보지 못했다. 유방이 거액의 현상금을 내건 종리매의 목을 베어 유방의 환심을 사려고도 했지만 유방과의 관계 개선에는 아무런 효험을 발휘하지 못했고 친구만 잃었다. 한신은 명분도 실리도 챙기지 못한 것.  포박되어 수레를 타고 가면서  한신은 후회한다. 유방은 한신의 공을 생각해 목숨은 살려주고 회음후로 삼는다. 이후 한신은 강후나 관영 등과 동급으로 떨어진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면서 허송세월했다. 그때라도 자신의 처지를 냉정하게 인식하고 미래를 준비했으면 그에게 또 다른 기회가 있었겠지만 한신은 그마저도 활용하지 못한 채 어설프게 반역을 꾀하다가 결국 삼족이 멸망당하고 만다.

 

기회를 얻는 것은 어렵지만 잃기는 쉽다! 이 말이 딱 맞는 인물.  바로 한신이 아닌지...

뭐랄까... 읽는 이에게 한구석 아쉬움을 남게 하는, 괜히 돌아보게 하는 짠한 한신이었다.

 

 

 

->만화 십팔사략에 나온 한신은 좀 서늘하니 멋지게 나왔더라고요. ^^

 

댓글 4
  • 2023-10-11 21:24

    열전을 읽으면서는 좀 정신이 없었는데 잘 정리 해 주셨네요^^
    이번에 진시황제, 항우, 한신을 읽으면서 과연 '영웅'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2023-10-11 22:16

    사마천은 한신이 자신을 업신여긴 마을 사람의 가랑이 밑을 지나기 전 '오랫동안 쳐다봤다(숙시熟視)'는 말을 넣었다고 하죠. 그럼으로써 가랑이 밑을 지나가는 굴욕적인 행동보다 그전에 한참 동안 쳐다보며 화를 가라 앉혔다는 반응에 방점이 찍힌다고. 이 부분을 그냥 지나치면 한신이 크게 성장하는 속깊음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고. <기록자의 윤리, 역사의 마음을 생각하다>에서 그랬었어요. ㅎ 그리고 유방을 배신할 기회야 사실 여러번 있었지만 그래도 유방이 자신을 잘 알아주었기에 그럴 수 없다고 거절하던 한신의 모습이 더 기억에 남구요. 속도 깊었건만, 너무 기(奇) 했기에 토사구팽 당했나... 저도 한신이 참 짠했다능...

    • 2023-10-11 23:24

      아! 저는 숙시(熟視)를 놓쳤군요!
      곰곰쌤 덕에 챙겨갑니다~~~🤭

  • 2023-10-13 10:09

    스스로 야망을 구축하는 한신은 능동적이다.
    빽이나 출신이 아닌 출중한 실력으로 대장군이 되었다.
    나를 인정안해 그럼 말고,,,,라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깡이 쎄다.
    (하지만 한신아~~판이 깔려야 그 위에서 뽐내지 않겠니!!)
    그런 면에서 유방의 用人은 가히 놀랄만 하다.
    어찌 보면 유방은 소하를 전적으로 신뢰해서 그런 것 같기도하고,
    눈을 돌려 '天下'를 품은 시기가 이 시기와 맞닿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이력서에 경력사항 한 줄도 없는 한신을, 대장군으로 등용하고 ,군대를 맡기고,역사에 이름도 남기게 했으니,,,,
    한신은 더이상 여한이 없어야 한다.
    유방은 기존의 장군들의 입도 한큐에 막았다.
    믿는 만큼 날개를 단 한신은, 최대한 날 수 있는 만큼 날기 위해 땅을 박차 오른다.
    두개의 동력은 미친 듯이 동진을 하고,
    백성들은 대의명분의 정치를 한 유방을 지지했다.
    그 난세에 유방은 백성들에게 '희망'을 준 것이다.
    그 희망이란, 농지에 씨를 뿌리게 하고,가을에는 배곯지 않겠구나!
    내가 경작한 씨의 결실을 내가 거두겠구나!
    가족들과 둘러 앉아 밥을 먹겠구나! 하는, 그런 소박함이다.
    그저 그런 일상의 평범함이다. 그런 것이다......ㅠㅠ
    이 미친 정신병자 군주들아~~~`
    이제 그만 땅에 파 묻고, '화살받이'(Human Shield)도 그만 시켜라.

    무언가를 받으면, 꼭 갚는 한신의 성격상, 천하를 유방의 손에 올려 준 것도,
    자기를 인정한 유방에 대한, 보은이지 않을까,라고 쓰고
    이 또한 한신의 '오만'이라고 생각한다.

    천무이일(天無二日) : 하늘에 해가 둘 있을 수 없다.
    쓰임이 다했으니, 한신은 이 판을 떠나야만 했다.
    개인의 야망을 이루었으니, 다수의 희망에게 자리를 내어 줘야 만 했다.
    (위공자처럼 산속에 들어가 술만 마셨으면 族까지는.......ㅠㅠ)
    한신에게 죄가 있다면, 한나라를 개국한 과정의 術을 너무 사랑해서, 미련을 가진 罪!!
    유방이 천하를 평정했을 때, 한신은 너무 젊은 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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