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횡무진>5회차-중세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은주
2017-12-13 00:32
329

5부. 중세의 줄기가 피원낸 꽃 - 대서양 항로 개척, 르네상스 문화운동, 종교개혁

다른 세계를 향해

800년간 지속된 레콘키스타가 완료된 이베리아 반도의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는 그리스도교 문명을 새로 일굴 터전을 찾기 위한 종교적 동기와 지중해 경제권에서 밀려난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경제적 동기 등에서 새로운 항로개척에 나선다.

첫 실행에 나선 것은 포르투갈의 왕자 엔리케였고, 여러 번의 시도와 실패와 작은 성공 끝에 이후 주앙 2세 때에 이르러 마침내 희망봉을 발견한다.

에스파냐는 대서양 항로를 개척하기로 마음먹었고, 콜럼버스가 그 일을 성공시킨다.

이후 포르투갈은 탐험대-상선의 코스를 밟은 반면, 에스파냐는 탐험대-원정대(군대)라는 코스를 선택함으로서 알려진대로 중남미 문명(아즈택에 이어 잉카까지)은 몰락의 길을 걷게된다. 이교도의 문명은 문명이 아니라는 생각에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지극히 야만적인 행위들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신대륙에서 얻은 보물들 중 이후 구세계 전체가 가장 크게 혜택을 누리게 되는 것은 새로운 작물이었다. 옥수수와 감자, 강낭콩, 호박, 면화, 토마토 등은 유럽에 만연한 기아문제를 해결하였다. 더불어 당시 지구 전체의 모습을 알게 있는 것은 유럽인뿐이었기에 유럽문명은 세계의 중심이라는 지위를 획득하고 글로벌 문명을 선도하게 된다. 경제 또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다.


신에게서 인간으로

르네상스는 프랑스어로 ‘부활’이라는 뜻으로 그리스의 고전 문화가 부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르네상스는 서유럽이 1000년에 달하는 오랜 중세를 끝내고 근대사회로 접어드는 이행기의 성격을 지닌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지만 프랑스 학자들에 의해서 정리되어 프랑스어로 불리어졌다. (이탈리아말로는 ‘리나스키타’라고 함)

분권화된 중세 사회에 통합성을 부여하던 그리스도교의 통합력이 약해지면서 사람들은 점차 인간의 이성과 자유의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중세가 해체되고 있는 와중에 신을 정면으로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성으로써 신을 규정하는 르네상스 시대가 개막되었다.

단테는 처음으로 인간이 이성의 힘을 통해 신이 관장하는 세계를 그려낸 작품 <신곡>을 써내고 이후 고문헌을 연구해 인문주의경향성이 강한 작품을, 보카치오는 종교(성직자)를 통렬히 비판하는 작품을 내놓게 된다. 이들은 모두 지중해무역을 독점해 경제력을 갖추었던 북이탈리아 출신이었다. 북이탈리아는 이러한 경제적 배경과 더불어 고전문화의 전통이 강했고, 로마 시대의 유적과 유물도 많았던 곳이었다.

문학이 문을 연 르네상스의 정신을 이어받은 것은 미술이었다. 그 선두주자라 할 조토는 성서의 내용을 소재로 하면서도 각 인물을 개성을 가진 존재로 살려내는 사실적인 방법을 도입하였는다. 그의 사실성의 관점은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에게로 이어져 그는 원근법을 발명하게 된다. 이 원근법은 이후 새로운 사실성을 담아내기 위해 회화에 수용된다.

이러한 정신은 이후 피렌체 화가들에게 계승되었고, 소재도 그리스 신화에까지 확대되었으며, 르네상스의 3대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에게까지 이르게 된다.

한편, 북해 무역으로 경제력을 쌓은 플랑드르 지방에서도 반에이크 형제에 의해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진다. 어느 정도 전통과 고전으로부터 자유로운 수 있었던 플랑드르의 조건은 새로운 미술양식만이 아니라 새로운 인문주의도 가능케 했는데, 그 대표작가가 <우신예찬>을 쓴 에라스뮈스였다. 그는 기존의 권위있는 해석을 거부하고, 성서에 바탕을 둔 소박한 신앙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다.

르네상스 정신이 가장 큰 변혁의 바람을 일으킨 곳은 당시 교회의 모습이 집적되었던 독일이었고 이후 종교개혁으로 이어진다.


종교의 굴레를 벗고

프랑스 왕 필리프 4세가 로마 교황 보니파키우스를 납치, 감금했던 아비뇽 사태 이후 교황권이 급속히 추락하면서 신성이 세속을 지배하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었다. 교회와 성직자는 권위를 찾기보다는 점차 부패해 갔고, 외부에서는 비판의 물결이 높아져갔다.

최초로 비판하고 나선 것은 영국의 교수 위클리프였고, 곧이어 대륙의 후스가 그의 사상을 이어받아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들의 개혁 운동은 실패했지만 이후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교회가 진압에 성공하긴 하였지만 내부 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공의회를 상설화해 교회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로 한다. 하지만 각국이 교회를 국가 차원에서 통합하기 시작하면서 교회의 통합성은 완전히 깨어지고, 각국은 절대주의로 나아간다

하지만 이러한 추세에 뒤쳐져 친교황 정책을 시행하던 독일 지역은 여전히 가장 중세적인 지역이었고, 가장 중세적인 요소에 대한 반대의 바람이 일어나게 된다. 1517년 면죄부의 부당성을 폭로하는 반박문을 내건 마르틴 루터에서 시작되어 이후 영방군주들은 루터파와 반루터파로 갈라져 다투기 시작했고, 그 틈을 타 봉건제 철폐를 요구하는 농민전쟁으로 이어진다. 규모가 컸음에도 조직적이지 못했던  농민반란은 가혹하게 진압되고 이후 영방체제는 더욱 공고해진다.

한편, 교회를 프랑스와 영국처럼 국가 체제 안으로 포함시킨 루터파 군주를 압박하려는 카를 5세에 루터파 군주들이 강력히 저항하면서 '프로테스탄트(저항하는 사람)', '프로테스탄티즘'이라는 말이 생겨난다. 이는 황제파와 루터파의 내전으로 이어졌고 이후 루터파는 가톨리과 동등한 지위를 인정받게된다. 이후 종교개혁의 정신은 츠빙글리를 거쳐 칼뱅에 이르게 되는데 그의 교리의 핵심은 도덕과 규율이었고, 예정설이었다. 이는 순식간에 폭넓은 지지 세력을 얻었고, 특히 성실하고 근면하게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가르침은 신흥 시민층과 상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러한 종교개혁의 바람은 영국으로도 건너갔고, 헨리 7세의 결혼문제와 얽히면서 로마 교황청과 분리된 영국 국교회를 탄생시킨다. 

다음 12월 19일은 7부 열매2를 읽어오시면 됩니다.

댓글 1
  • 2017-12-13 00:49

    복습이 확실하게 되네요.

    유럽의 얽히고 섥힌 왕조사가 우릴 혼란스럽게 하지만

    띄엄띄엄 알았던 역사적 사실들이나 유명한 역사적 인물의 이야기를 대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어요~~

    담주면 서양사가 끝나네요.

    얼마나 머릿 속에 저장됐을까요~ㅠㅠ

    제대로 기억에 남기려면 앞으로도 계속 끊임없이 공부해야 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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