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횡무진 서양사> 4회차. 18장-22장 후기

곰곰
2017-12-01 13:05
334

문명의
탄생에서 중세의 해체까지를 다루고 있는
 <종횡무진
서양사>
1권을 끝냈다.



역사책이면서
때로는 소설처럼
, 때로는 야사처럼 
재미있게 읽었기에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2권의 이야기도 기대된다.



이제
서서히 무너져가는 중세로 돌아가보자
.




중세 문명의 성격은 크게 그리스도교와 봉건제로 압축된다. 


로마 문명이 중세의 뿌리로 자라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교를 공유했기 때문이며 게르만족과 노르만족 역시 그리스도교로 개종했기에 서양 중세를 형성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한편, 봉건제는 기본적으로 게르만 전통에 따른 사회체제라 할 수 있다. 군주와 가신 간에 주종관계를 맺는 종사제와 군주가 좋은 조건으로 토지를 대여해주는 은대지제가 그 원형인데, 은대지는 이후 대대로 세습되는 봉토로 바뀌게 되었고 맏아들 토지 세습 전통은 훗날 십자군 전쟁을 유발하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서유럽 군주들은 불입권을 가지고 계약이라는 방식으로 자신의 독립적인 권력 기반을 다졌기 때문에 국제질서는 분권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종교적으로는 중앙집권적이었다. '하늘의 중앙정부'를 두고 있는 셈이었으니 교황권이 성장함에 따라 교황이 본격적으로 세속적인 질서에도 개입하기 시작했고 그 최대 성과가 '십자군'이었다. 



중세가 안정기에 접어들자, 교회의 필요성은 약해졌고 교회 내부 타락도 심해졌다. 이에 클뤼니 수도원에 의해 교회 개혁 움직임이 일어났고 그 결과 교회는 영주로부터 자립권을 주장, 11세기 후반에는 실질적인 교황과 황제의 대결에까지 이른다. 이 대결은 무승부인 듯 끝나지만 사실상 교황이 서유럽 세계의 유일한 종교적 지도자임을 재확인시킨 일이었고 뒤이어 더욱 힘을 키운 교황 우르바누스2세는 그리스도교권의 단결을 위해 성지탈환 명분으로 십자군 전쟁을 기획한다. 1차 원정대는 승승장구하며 3년만에 예루살렘에 입성,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성했지만 그 이후에는 지지부진하다 1291년, 이집트 술탄이 십자군의 근거지를 완전히 소탕함으로써 200년에 걸친 십자군 전쟁은 실패로 끝났다. 


비록 실패한 전쟁이었지만, 이로써 서유럽 세계는 이슬람권에 비해 힘의 우위에 있음이 입증되었고 원하던 지중해 무역권을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 내부적으로는 교황권이 약화되는 결과를 낳았는데, 이는 서유럽의 그리스도교적, 중세적 통합성이 허물어지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8세기 이후 이슬람의 지배에 있던 이베리아 지역은 이슬람의 퇴조와 1차 십자군의 승전보에 힘입어 국토수복운동(레콘키스타)를 벌여 그라나다를 제외한 지역을 회복한다. 이제 에스파냐는 비로서 서유럽 세계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지만 여전히 후진국에 머문다. 하지만 오히려 지중해 무역권을 상실한 덕분에 대서양으로 진출, 이후 대항해 시대를 열게 된다. 또한 영국 역시 십자군 시대에 서유럽 세계로 편입된 곳이다. 정복왕 윌리엄은 뒤늦게 봉건제를 실시했지만 유럽의 어느 군주보다도 강력한 왕권, 직속토지, 막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다. 이후 프랑스 역사와 복잡하게 얽힌 끝에 영국의 왕은 귀족의 요구사항인 대헌장에 수락하게 되고 이로써 유럽 최초의 의회가 탄생했다. 영국의 왕은 왕권을 잃었지만 영국인은 서유럽의 주인공으로 도약할 계기를 얻은 것이다. 한편 독일은 왕권이 크게 약화, 계속 분권화의 길로 나아갔다. 프리드리히 1세가 중소 귀족들을 제압하며 강력한 독일을 만들고자 했으나 그가 죽자 좌절되었으며 황제 없는 대공위시대를 거쳐 합스부르크 왕조가 문을 열게 된다. 


 


대헌장으로 귀족의 힘이 강해진 영국에서는 헨리 2세의 세금 징수 문제로 왕과 귀족의 대결이 벌어지고, 결국 왕권은 귀족들로 구성된 15인 위원회로 넘어갔다가, 에드워드 1세 때 귀족-성직자-도시 대표장들의 통치기구, 모델의회가 창설되었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절대왕권이 시작된다. 영토를 확장해 프랑스를 강국으로 만든 필리프2세의 성과를 바탕으로 생 루이는 대내적 안정을 취했다. 재판소를 운영했고 고등법원을 설치했으며 대외적 분쟁에도 개입해 남프랑스를 획득하고 영국과의 오랜 갈등도 해결한다. 이런 업적과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설치한 삼부회는 왕권 강화에 기여했다. 강력해진 왕권을 바탕으로 교황과의 대결에서도 승리를 거두면서 프랑스인을 다음 교황으로 세우고, 교황청도 프로방스 아비뇽으로 옮겼다. 쌓여가던 영국과 프랑스 간의 앙금은 영국의 스코틀랜드 정복전쟁에서 프랑스가 스코틀랜드 지원에 나서면서 마침내 폭발해 1452년, 백년전쟁으로 이어진다. 결국 프랑스의 승리였지만 양국은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프랑스는 절대 군주의 밑거름을 닦았고, 영국 역시 장미전쟁이라는 또 한번의 내분을 거친 후 절대주의가 시작된다. 절대주의와 국민의식의 성장으로 봉건국가의 특성은 거의 사라졌다. 한편, 독일은 여전히 여러 영방국가로 쪼개져 있었다. 러시아는 몽골의 식민지로 막대한 조공을 바치다가 15세기 후반에 이르러 그 지배에서 벗어난다. 러시아는 주변 주요 공국들을 통합하며 힘을 키웠고 비잔틴 정교회의 뒤를 이어 러시아 정교회가 됨으로써 동방교회의 최고자리에 오른다. 에스파냐는 그라나다까지 정복하면서 콜럼버스의 항해 지원요청을 허락한다. 이로써 지중해를 대체하는 대서양 항로를 개발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은 서유럽의 후발주자에서 일약 '세계화'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유럽의 중세는 완전히 끝났다.  



분권화된 중세 서유럽의 통합성을 유지해 준 것은 전적으로 교회였다. 수도회는 학문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그 곳에서 창설한 대학과 신학 공부는 순식간에 확산되면서 종교적 영향력도 커졌다. 12세기 토마스 아퀴나스는 스콜라 철학을 집대성하는데, 인간은 이성을 통해 신의 뜻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정치권력이 약한 해상무역 요지(이탈리아/플랑드르)에서는 상공업 도시가 생겨났다. 이로써 이탈리아 상인들의 재력을 밑천으로 르네상스를 일어난다.




이번 부분에서도 너무나 많은 일이 생겼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되겠다.... 


다음 시간에는 2권 5부까지 읽어 만나기로 합니다~!

댓글 0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307
스피노자 게릴라 세미나 1차 후기 (4)
최현민 | 2017.12.31 | 조회 473
최현민 2017.12.31 473
306
스피노자 세미나 1차 후기 (6)
동구멍 | 2017.12.30 | 조회 514
동구멍 2017.12.30 514
305
<스피노자와 근대의 탄생>A반 첫시간 발제입니다. (3)
히말라야 | 2017.12.28 | 조회 316
히말라야 2017.12.28 316
304
<종횡무진서양사>7회차, 전쟁과 혁명의 시대 19,20세기
코스모스 | 2017.12.19 | 조회 348
코스모스 2017.12.19 348
303
<종횡무진 서양사>26장~30장 후기 (1)
여름 | 2017.12.17 | 조회 339
여름 2017.12.17 339
302
<종횡무진>5회차-중세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1)
은주 | 2017.12.13 | 조회 329
은주 2017.12.13 329
301
[초단기세미나] 스피노자와 근대의 탄생 (33)
히말라야 | 2017.12.12 | 조회 1214
히말라야 2017.12.12 1214
300
<종횡무진 서양사> 4회차. 18장-22장 후기
곰곰 | 2017.12.01 | 조회 334
곰곰 2017.12.01 334
299
<종횡무진> 로마제국부터 원시 유럽의 원형까지(12~17장)
| 2017.11.24 | 조회 824
2017.11.24 824
298
<학교 없는 사회> 에세이 발표 후기 - 모두에게 감사드리며! (9)
강수아 | 2017.11.17 | 조회 326
강수아 2017.11.17 326
297
<학교 없는 사회> 단기 세미나 에세이 모음!
지원 | 2017.11.16 | 조회 214
지원 2017.11.16 214
296
<종횡무진서양사>2회차 후기 (2)
코스모스 | 2017.11.15 | 조회 295
코스모스 2017.11.15 295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