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1분기 7회차 후기

가든
2018-04-09 18:03
270

주역 7회차 후기

 

주역을 처음 접한 건 2년 전 감이당에서였다. 일주일에 한번, 종일 여러 수업을 듣는 프로그램이었기에 하나하나의 강좌가 뭔지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다. 1학기 첫날 첫수업이 주역이었다. 그렇게 아무런 관심도 준비도 없이 얼떨결에 마주친 주역은 짧은 기간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건 선입견으로 생각하던 점치는 책이 아니었다. 주역은 내게 처음부터 생각의 역사였다. 괘상이, 그리고 괘사가, 효사가 모두 인간이 옛적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에 대한 단서였고 기록이었다.

올해 다시 만난 주역은 여전히 내게 생각의 역사로 다가온다. 애초 주역을 만들어낸 고대인의 생각에 더해, 오랜 세월 그것을 해석하고 또 해석해온 지식인들의 생각의 역사가 거기 담겨있다. 주역을 읽으면 나는 역사의 한 점이 되어 무한히 작아지기도 하고, 또 무한히 커지기도 한다. 우리가 지금 믿는 가치가 그때도 믿었던 거라는 데 대해, 혹은 옛사람이 간곡하게 전하는 가치가 내게 와 간절하게 공명하는 데 대해 때로 감동한다.

 

지난 시간에는 곤괘의 문언전과 수뢰둔괘를 공부하였다. 인상적인 부분을 중심으로 정리해보겠다.

 

다른 고전도 그렇지만 주역에도 사자성어를 비롯해 우리가 흔히 들어온 글귀들이 그 원출전으로서 많이 등장한다. , 문언전도 그러하다.

먼저 至柔至靜이다. 지유지정은 곤의 성질을 묘사한 말로, 지극히 유순하며 지극히 고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유순한 가운데 움직임이 강하며, 지극한 고요함은 깊어야만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깊이가 없으면 출렁일 수밖에 없고 고요함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유지정은 수동적인 듯 하지만 능동적이고, 유한 듯 하지만 강하다.

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 이라는 글귀도 우리에게 익숙하다. ‘선을 쌓은 집안은 후손에게도 복이 미친다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그 다음 구절이 섬뜩하다. ‘불선을 쌓은 집안은 후손에게까지 재앙이 미친다, 저절로 뒤를 돌아보고 자세를 낮추게 되는 말이다. 불선은 악행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깃들어있는 쫀쫀하고 못된 심보라고 한다. 남이 잘되는 걸 배 아파하는 것, 뒤에서 남을 비꼬거나 욕하는 것 같은 사소하고도 일상적인 일들인데 그래서 더 무섭다. 악행과는 달리 내가 결코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언전은 直 方 大라는 곤의 성질에 라는 덕목을 끌어들여 설명한다. 경은 자기 내면에 집중하는 것이요, 의는 그 상황에서 최상으로 적합한 일을 행하는 것이라 한다. 그러니 敬以直內義以方外이다. 그리하면 덕이 외롭지 않게 된다. 옛 지식인들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닦는 일을 강조하였다. 요즘엔 단어조차 낯설어진 인격미가 오랜 세월 동아시아에서 추구해온 아름다움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지 인격미라는 말이 와 닿는다. 잘 늙어야겠다고, 나이에 먹히지 말고 내가 나이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해본다.

 

수뢰둔 괘를 시작하면서는 드디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로를 헤매듯 건/곤이 계속되니 그만 다른 괘도 구경하고 싶었던가 보다.

수뢰둔은 상괘에 괘가, 하괘에 괘가 자리 잡은 괘다. 감은 주역에서 빠지다, 위험하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진은 움직임의 의미를 강하게 품고 있다고 한다. 은 가득 차 막혀있다는 뜻으로, 천지가 생겨나고 만물이 질서가 없이 천지간에 꽉차있는 상태를 이른다. 밑에 있는 이 위쪽에 구름으로 뭉쳐있는 을 흔들고 있으니 막혀 답답하지만 한편으로는 해결과 해소의 가능성을 품고 있기도 하다. 일의 시작 단계나 건국 초기 혼란기에 해당되는 상황이라 하겠다. 처음 일을 시작하여 할 일은 많고 풀리지는 않는 경우를 묘사하는 天造草昧라는 성어도 여기에서 나왔다.

屯 元亨 利貞 勿用有攸往 利建侯

둔은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하는 것이 이로우니, 갈 바를 두지 말고 (, 혼자 다 하려 하지 말고) 조력자를 구하는 것이 이롭다. 둔괘의 괘사다. 둔이 막혀있다고 해서, 불가능의 시대는 아니다. 오히려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하면 이롭다고 첫 구절부터 가능성을 활짝 열어두고 시작한다. 주역은 무한긍정의 세계요, 무한변용의 세계인가보다. 다만 둔의 시대를 만났으면 의욕을 앞세워 달려 나가지 말고 상황을 살피고 살피며, 도와줄 사람을 구하라, 개혁을 하더라도 한꺼번에 많이 하지 말고 천천히 조금씩 하라는 게 둔의 조언이다.


주역을 공부하고 나면 나도 조금쯤 긍정형의 인간으로 변할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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