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다방 릴레이 18주차- 뭐, 대충...

스마일리
2015-08-22 21:28
838

2015820일 목요일 아침 나는 담양 죽녹원 숙소에서 대나무 잎에 비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늦게 여름휴가를 잡은 남편과 휴가를 보내는 중. 떠나기 전 휴가 일정 중 내가 녹색다방 릴레이 당번이라는 것을 뒤늦게 발견, 당번 순서를 바꿔보려고 했지만 급하게 일정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뭐 어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리산 자락으로, 담양으로 돌아다녔다.


, 사람이란 게 25년 이상 알고 지낸 사이였는데도 일상에서는 변화를 알아차리기가 힘들었던 모양. 거의 열흘 휴가 기간 동안 붙어지내던 남편은 나의 변화를 집어냈다. ‘성의가 없다’, ‘대충대충이라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남편의 지적대로 대충, , 어찌 되겠지하는 마음이 되어간다. 이번 휴가도 녹색다방 릴레이 당번 순서를 바꾸지 못하면 애초에 그렇게 멀리 떠나지 않았을 텐데 시간 맞춰 서울에 못 오면 녹색다방 릴레이 빵꾸내는 거지, 하는 심정이었던 것.


다행히 남편이, 담양에서 돌아다니고 싶은 일정을 포기하고 릴레이를 이어가는 것이 얼마나 중차대한 사안안지 느끼고 4시간 가량을 달리고 달려 동천동 집에 3시 좀 넘어 도착, 평상시에는 녹색다방 릴레이 같이 하기 어려우니 휴가의 의미있는 마무리를 위해 광화문 앞으로 같이 가자는 권유에는 정중한 거절, 최고 속도로 달리고 달려 나를 제시간에 데려다 주는 데까지만 본인의 일이라고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자고, 잘 다녀오라고(이렇게 멋있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대충 이런 뜻). 4시반 5500번을 타고 광화문으로 향할 수 있었다.

시간이 급해 문탁에 들르지 못했으니 잘 생긴 영덕대게 그림을 들고 올 수 없었으므로 뭐, 대충 녹색당에서 들고 온 피켓 들고 서있거나 한 시간 찌라시 돌리면 되겠구나 생각.

  원안위1.JPG


오늘은 녹색당 실무자들이 좀 널널한 날이었는지 원안위 앞에 여러 명이 우르르 도착, 8명 쯤? 언제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듯 흐린 날이었는데 대충대충의 마음으로 우산 없이 있으려니 비가 내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햇볕이 쨍하지 않고 흐린 날이어서 덥지 않으니 집회하기 좋다고, 가을이 오는지 선선해진 날씨를 인사 삼아 오가는 말들도 기쁘다.


노란 조끼 입고, 빨간 대게 모자 쓰고 퇴근 길 사람들에게 전단지 돌리는 일부터 시작.

안녕하세요? 영덕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합니다.” 인사하며 돌린다. ... 너무 내 생각만 강하게 전달하는 문장인가 싶어서 안녕하세요? 영덕 핵발전소 건설을 막아주세요.” 호소형 문장으로 전달하다가 사람들 반응이 더 좋지 않아서 다시 앞의 문장으로.


원안위2.JPG


광화문 앞에서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할 때마다 그렇지만 나는 정말로 사람들이 안녕한가 궁금하다. 하루 종일 에어컨이 펑펑 나오는 사무실에서 일하면 얼마나 눈이 뻑뻑하고 머리가 무거울 것인가, 저렇게 바쁜 걸음걸이는 정말 시간을 아낄 수 있는 삶의 방법인가, 전단지를 받은 사람은 한 번 읽어보고나 버릴까, 어색한 표정으로 전단지를 거부하는 사람은 거부의 표현인가, 무관심의 표현인가... 지나고 생각하니 나에게 그 시간은 놀이처럼 흥미진진하여 급 몰두하게 되고 다른 활동가들이 무엇을 하는지, 어떤 발언을 하는지 모른 채 시간이 흘렀다.


, 대충의 절정은 후기에 쓸 사진을 찍을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역시 문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는 녹색당 활동가 한 명이 사진도 찍어주고, 이메일로 보내주겠다고 친절하게 내 메일주소도 적는다. , 그러고 보니 게으르니가 꼭 나와 같이 릴레이 하겠다고 다짐하더니만 광화문에 나타나지 않았구나, 이런, 못 믿을 사람이로고...


전단지 나눠주기에 이어 바람에 날아가려고 들썩이는 피켓을 들고 고요히 서있는다. 옆에 같이 서있던 활동가 한 명이 자유 발언을 하라며 마이크 쪽으로 나를 떠미는데 나는 극구 사양. 내 육성으로 인사 건네며 전단지를 나눠주기는 하겠지만 마이크를 이용해 큰 소리로 전달할만한 뭐, 그런 거창한 메시지는 없다. 문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오해한 그 활동가는 요요 선생님에게 전화해서 다음 당번부터는 자유 발언을 준비해 오도록 요청하겠다는 말을 한다. 그 전화를 받으신 요요샘은 녹색다방 회의에서 자유발언 준비를 명하시고 회의에 참여할 5인은 자유발언 준비를 하게 될까? ‘자유발언을 준비한다고?


원안위3.JPG


나란히 서있는 동안 문탁에서의 꾸준한 공부를 부러워하고 꾸준한 참여를 고마워하는 말을 듣는다. 녹색당이 매주 목요일 정당연설회라는 이름으로 원안위 앞에서 탈핵활동을 하겠다고 알리고 여러 단체의 참여를 부탁했을 때 다들 선뜻 좋은 일이라고 함께 하겠다고 말 한단다. 그러나 한 번 참여한 이후에는 각 단체의 다른 (급한)일정 때문에 다시 오지 못한다고. 그런데 문탁은 용인, 그 먼 곳에서 꼬박꼬박 오시는 게 너무 고맙다고, 문탁에서 오시는 덕분에 녹색당도 빠질 수 없고 계속 할 힘이 된다는 말을 듣는다. 우리는 이제 서로에게 거울 같은 존재가 되었다. 내가 공부하니까 너도 공부하고 싶어지고, 네가 활동하니까 나도 활동하게 된다. 네가 오면 내가 안 갈 수 없다. 서로에게 힘이면서 긴장을 유지하게 하는 특별한 사이.


대충 시간 맞으면 하고, 늦으면 빵꾸 내고, 준비물 없이 한 시간 뭐, 대충 뭐든 되겠지 싶었는데 남편이 도와주고, 녹색당이 도와주고, 하늘도 도와서(집에 돌아올 때까지 비 안 내림) 무사히 릴레이 유지.


댓글 3
  • 2015-08-22 21:48

    못 믿을 사람 여깄쏘~~~~~

    음 이번 릴레이에는 이런 사연이있었군요^^

    못간 나도 사연은 있으나 이미 다 지나갔으니

    다음을 기약 해야겠네요......

  • 2015-08-22 22:29

    아~~~ 결국 휴가를 일찍 끝내고 돌아오셨군요~~!!! 

    자유 발언!!! 저도 다음엔 꼬~옥 하겠다고 잠시를 모면했었는데... 진짜 다음엔 준비해 가야 하는 건가요?

    꼭 하라하심... '얼씨구 절씨구 한전 때매 내가 내가 못살겠네~!!' 를 궁둥이와 함께 부르고 오면 안될까요? 걱정이고만요~~~

    뭐.... 대충 하면 되겠지요..

  • 2015-08-23 13:06

    흠! 대충한게 확실하군요.

    스마일리의 시위복장.. 이건.. 평소와는 달라도 너무 달라요. 대충인 티가 확 나는구먼.. 호호호

    늘 어떻게든 되게 하는 것.. 그게 대충대충의 요충!!

    대나무잎에 비 떨어지는 소리 듣다가 달려와서 릴레이를 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운전해주신 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려요.(꼭 전해주세요~)

    아마 담주 선수는 강현님이죠?

    하하하 자유발언은 저절로 될 것 같은데요.

    뭐 대충 어떻게 되겠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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