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1강 후기

요산요수
2018-09-09 15:09
454

게으르니샘은 영상자료로 사마천이 태어나고 묻힌 한성(韓城)을 둘러보는 걸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황하를 빨아들이는 병입구라는 뜻의 후커우(壺口) 폭포의 장관에 감탄하며 

황하를 거슬러 올라가니 등용문이 나오더군요.

잉어가 거센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면 용이 된다는 곳입니다.

그렇게 용이 된 사람, 사성(史聖)이라 일컬어지는 사마천이 태어난 곳이 등용문 근처입니다.

저는 <사기> 책을 펴 본 적도 없으면서

문탁 여기저기에서 주워들은 사마천과 사기에 대한 이야기들이 머리 속에 뒤죽박죽 난맥상을 이루고 있는지라

이번 4회의 강의를 들으며 줄거리나 잡아 볼까 생각하며 이 강의를 신청했더랬습니다.

역시! 잘한 선택인 것 같습니다.

사마천과 <사기>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 나오는 

게으르니샘의 우렁찬 목소리를 그저 듣고 있기만 해도

우리는 <사기>의 세계로 저절로 빨려 들어갈 수 있으니 말이지요.^^

마치 황하의 물을 빨아들이는 후커우 폭포처럼 말이지요.(아마 그래서 그 영상을 보여준건가 싶기도 합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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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삶은 세 개의 키워드로 요약되더군요.

독서, 여행, 그리고 치욕을 견디고 사기를 완성하다.

사마천의 집안은 대대로 천문, 역관, 역사와 관계된 관직을 맡아온 가문.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은 공자의 춘추 이후 제대로 된 역사서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싹수가 있어 보이는 아들 사마천을 공들여 키운 듯 했습니다.

사마천은 10대부터 책을 가까이하고 좋은 스승에게 배웁니다.

그는 당대의 걸출한 학자인 동중서에게 <춘추공양전>을 배우며 역사에 대한 관점을 세웁니다.

20세부터 2년간 사마천은 하은주, 춘추전국시대, 진나라와 한고조 유방의 전적을 답사하며

눈과 발로 공부하고,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들을 수집합니다.

모름지기 여행은 사마천처럼! 

아버지의 관직이 600석이니 별로 높은 자리도 아니었을텐데

어떻게 여행경비를 마련했을까, 쉬는 시간에 우리는 이 문제를 탐구하기도 했습니다.^^

워킹 할리데이였을까, 무전여행이었을까, 아들을 부탁한다는 아버지의 소개서가 있었을까.

사마천의 삶은 전한의 5대황제인 한무제와 떼려야 뗄 수가 없더군요.

30대의 그는 황제와 가까운 곳에서 황제를 보필하면서 낮에는 일하며 궁중도서관에서 자료를 수집하면서

밤에는 아버지의 유훈을 받들어 혼자 역사서를 쓰기 시작했던 듯합니다.

그러다 40대 중반에 이릉의 화를 입어 궁형을 당합니다.

감옥에서 보낸 몇 년간 사마천은 고문으로 인한 고통과 두려움을 겪으며

아마도 인간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똑똑한 청년으로 나름 평탄하게 살아왔던 그에게 그 순간은 인간의 바닥을 보고, 

인간의 삶과 역사를 더 깊게 이해하게 되는 시간들이 아니었을까요?

열전의 첫번째 백이숙제편에서

"천도는 있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쓰디쓴 경험과 숙고의 시간이 닥쳐온 것이지요.

감옥에서 풀려난 그의 능력이 아까웠는지 한무제는 그를 바로 등용합니다. 

환관으로 낮에는 궁으로 출근하여 일하고 밤에는 집에서 역사서를 쓰는 작업이 계속됩니다.

그야말로 읽고 정리하고 쓰는 삶이지요. 어쩌면 쓰지 않을 수 없는 삶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밤의 글쓰기 덕분에 그는 환한 대낮의 삶을 살 수 있었을테니까요.(제 멋대로 상상해 봅니다.)

<사기>는 사마천이라는 한 위대한 인간이 만든 결실일까요?

그의 집안이 대대로 축적해 온 지식과 아버지 사마담로부터 아들에게 이어진 미션과 

한무제의 제국건설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결과물일까요?

아마 그 모든 것이 교차하며 사마천이라는 인간을, <사기>라는 놀라운 결실을 만들어 냈겠지요.

어쩌면 그렇게 사마천의 <사기>는 사마천 이전의 중국의 역사를 보는 틀을 만들고

<사기> 이후 동아시아에서 역사서를 쓰는 하나의 전범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역사서 기술에서 모든 것을 빨아들인 후커우 폭포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사마천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성이 되었지만, 잉어에서 용이 된 그 길은 

황하의 급류를 뛰어오르려는 위험천만한 도전이 없었다면 아마도 불가능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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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2018-09-10 00:46

    후커우 폭포는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강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저 곳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천도는 있는가'란 질문은 제 삶과도 이어지는 질문입니다

    앞으로 남은 3강동안 게으르니샘을 잘 따라가보겠습니다^^

  • 2018-09-14 00:40

    머내 영화제에서 필름이다가 상영한 스틸 라이프에도 후커우 폭포 얘기가 언급되더만요.

    처음 그 영화를 볼 땐 들리지도 않더니만 ㅎㅎ

    새로운 역사 서술법인 기전체의 한 축인 열전을 공부하는 거라 앞으로 더 재밌어질 것 같아요.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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