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2강> 한나라 팝송을 듣다- 악부시

문탁
2019-01-21 10:19
541

난 도대체 뭘 알고 싶었던 걸까?

  내가 한 큐에 한시의 역사를 꿰고 싶다는, 가당찮은 욕심을 품은 이유는  순전히 주자 때문이었다. 작년, 목침 두개 두께의 <주자평전>을 읽기 시작했는데 (음...1/10읽고 난 그만두었다. ㅋㅋㅋㅋ) 난 평전에 불과한 그 책의 초반부터 좀 헤맸다. 왜냐? 바로 이런 구절이 글자로만 읽혔기 때문이었다.

  "시가에서 주송은 초년에 이미 그 명성이 신안에 떠들썩하였고....그 때 그의 시학은 강서파의 길을 걸었으며..." (상, 96)

  "송이 남쪽으로 건너오기 전후의 시인들은 곧 시를 배우는 길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 강서파의 퇴폐한 풍조를 힘써 만회하려고 하였다. 한 갈래는 만당의 시를 배우는 쪽으로 돌아서서 만당의 온유하고 빼어난 기교로 강서파의 거칠고 호방하며 메마르고 깔깔한 폐단을 바로잡으려 시도하였는데... 다른 한 갈래는 <시경>의 전통을 근본으로 삼고 중간에 도연명, 사령운, 유종원, 위응물을 표준으로 삼아...강서파의 꾸미고 아로새기고 지나치게 전아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이는 이학가 시인과 이학 사상에 깊이 영향을 받은 문사들이 걸어간 시의 길로서 시 창작과 경전읽기, 시학과 경학이 통일을 이루었다. "(상, 97)

  도대체 뭐라는 거야? 시는 고대의 지식인에게 도대체 무엇이었던거야? 아니 도대체 이들이 말하는 시가 무엇이야? 경전과 시가는 언제부터 어떻게 분리된거야? 시도 배워야 하는 거야? '이학가 시인'은 또 뭐고, '이학사상을 가진 문사'는 또 뭐야?

  이런 거 알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걸까? 같이 세미나를 하는 자작이 추천해준 책은 <한시의 성좌>였다. 버뜨, 그 책은 한시 모음집!! 그래서 중국문학사를 두꺼운 것, 얇은 걸로 한 권씩 사봤다. 음...도움이 안 되었다. 우응순샘께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박장대소하셨다. 뻘짓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럼 샘이 강의를 좀 해주세요. 이렇게 되었다. 그랬더니 샘 왈, 그럼 이번 겨울엔 일단 시경하고 초사만 하자. 다시 나는, 안'돼요'. 시경부터 두보까지 쭉~~ 훑어주세요. 다시 샘왈, 뭥미? 그건 불가능해.
하지만 나는 "돼지", "돼지"를 연발했다. 나는 한시를 요점정리해줄 '코디네이터'가 필요했던 거시어따!!! ㅋ

한나라 팝송, 악부시

  지난 주 강의는 악부시가 뽀인트였다. 시경이 주나라 팝송이었다면 악부시는 한나라 팝송. 시경이 주나라 '채사관'이 민간가요를 수집하여 태사에게 바쳐, 그 태사가 다시 군주에게 전달한 것이라면, 악부시는 한나라 때 [악부]라는 관청을 설립하여 담당관리가 민간가요를 채집, 정리한 것이다.

  그러니 교과서적으로 이야기하면 악부시는 첫째, 시경을 직접적으로 계승한 한나라 팝송(노래)이고, 둘째, 그러니만큼 사람들의 감정 (사랑, 연애, 전쟁 등)을 질박하게 표현했고, 세째, 후대의 오언절구나 칠언절구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시경이 주로 네글자씩으로 되어 있는데 비해 악부시는 "고정된 장법, 구법 등이 없으며 길고 짧음도 마음대로"(<중국문학사>, 83) 였다고 한다)

  우리는 강의시간에 한나라의 대표적 악부시, 작자미상의 <십오종군정>을 함께 읽었다. 샘에 따르면 이 노래는 드라마 <사마의>의 ost로도 사용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난 처음에 이 시의 첫 구절 "열다섯에 출정했다가 여든에 돌아왔네"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좀 뻥 아냐? 뭐 이런 생각. 그런데 샘이 이건 '둔전제'와 함께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순간 뭔가 깨달음이 왔다. msn022.gif

  한무제((재위, 기원전 141-기원전 87). 동양의 알렉산더 대왕이(재위 BC 336∼BC 323)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팍스로마의 카이사르(기원전 100-기원전 44)-옥타비아누스라고 불러야 할까? 어쨌든 그 황제는 흉노를 서쪽으로 밀어내고 남쪽으로 월남을 복속시키고 동쪽으로는 한반도를 공략했다. 바야흐로 그레이트 '한제국'을 성립시킨 위대한 제왕! 그런데 이 제국은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이래서 생긴게 바로 '둔전제'. 변방을 수비하기 위해 병사와 농민이 함께 농사를 지어 군비를 자체조달하도록 만든 방법. 제국을 운영하는 최대의 노하우! 그렇다면 열다섯에 징병되어 변방에서 병사인지 농부인지 알 수 없는 삶을 살다가 80이 되어서야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우응순샘은 두보의  <무별가>와 비교해보라고 하셨는데, 찾아보니 두보의 <병거행>도 매우 유명한 시였다. 거기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或從十五北防河(혹종십오북방하), 便至四十西營田(지사십서영전).어떤 이는 열다섯에 북쪽 하수(河水) 방어하다 마흔에 서쪽으로 가 둔전 노역을 한다네 

去時里正與裹頭(거시리정여과두), 歸來頭白還戍邊(귀래두백환수변) 떠날 때 이장(里長)이 두건을 싸주었는데 돌아와 백발에도 다시 변방에 수자리 살러간다네
 https://blog.naver.com/swings81/220919716360

   도시국가에서 영토국가가 되고, 나아가 제국이 되면 이제 문제는 전쟁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 막대한 제국을 수비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고향을 떠난 낯선 곳에서 평생 '수자리'를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지금 식으로 이야기하면 디아스포라. 난민, 디아스포라-내부-난민들!! 그게 고대사회 민중의 모습이었던 모양이다.

싸비스로^^ 유투브에서 찾은 <십오종군정>을 올린다  (유투브에서 사마의의 십오종군정 ost도 찾아들을 수 있다)







뉴웨이브, 백거이와 이백


  그 다음 우리가 배운 것은 이백의 <악부시>였다. 강의자료에 따르면 이백 작품 1400여편 중에 악부시가 무려 147편이었다는 것이다. 로커가 포크송을 작곡하고 불렀다는 것인데, 도대체 왜?

  민중에 대한 사랑? (아, 뭔가 진부하다), 아니면 '아싸' 지식인의 자의식? (음, 이렇게 넘겨짚기엔 내가 이백에 대해 아는 게 없다. ㅋㅋ), 아니면 악부시의 장르적 특성이 이백과 맞았나? (이 역시 알 수 없는 노릇)

  이건 나중에 차차 알아가기로 하고, 이백과 더불어 당대 악부시 르네상스를 이루어냈다는 백거이(<장안가>의 그 백거이^^)의 경우는 이러했다고 한다.

"(자신의 <신악부서>에서) 모두 50편을 만들었다. 편은 구의 수를 정하지 않았고 구는 글자의 수를 정하지 않았으며, 짜임은 뜻에 매이게 했지, 형식에 매이게 하지 않았다. 맨 앞의 구는 강목을 제시하고 마지막 장은 뜻을 드러냈는데, <시경> 삼백편의 체제를 따른 것이다. 표현은 질갑하고도 곧게 해서 보는 사람이 쉽게 깨닫게 했다. 시어는 솔직하고 절실하게 해서 듣는 사람이 깊이 경계하도록 했다. 일은 실상에 근거하여 사실적으로 표현해서 채집자가 믿고 전하도록 했다. 체제는 순탄하면서 거리낌 없어 악장과 가곡으로 전파될 수 있게 했다. 개괄하자면 군주를 위하고 신하를 위하며 백성을 위하고 사물을 위하며 일을 위하여 지었지, 문채 자체를 위해 지은 것이다." (<한시의 성자>, 75)


  백거이의 이 말은 자신이 악부시를 지은 이유가 지식인의 사회적 사명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디.. 다시 머리가 복잡해진다. 도대체 한시는 미학적 대상인가? 아니면 정치적 탐구대상? 윤리적 탐구대상? (뭔가 올 하반기 <시경>을 읽을 때 지겹도록 생각하게 될 듯^^) 

  어쨌든 백거이의 이 말과 비교하여 다시 강의때 우리가 읽은 이백의 <채련곡>, 샘이 이백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표현법이라고 말씀해주신...


日照新妝水底明 햇살이 화장한 얼굴을 비추니 물바닥에 밝게 비추고

風飄香袂空中擧 바람이 향기로운 옷소매 불어 공중으로 날리네


  요런 구절, 얼굴이 예쁜데, 그게 햇빛에 반사되어 물에 어린다는 둥, 매혹적인 것은 바람에 날리는 옷소매라는 둥... 이런 구절을 읽어보니, 이것은 '문채'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라는 질문. 이런 시는 철저하게 심미적인 쾌감과 관련된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이백은 왜 악부시를 지었지, 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ㅋㅋ 


  그리고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난 왜 이런 구절에서 무릎을 탁 치게 되는게 아니라 뭔가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을까? 한시의 문외한이어서 그런가? 아니면 시적 흥취가 없는 메마른 인간이어서 그런가? 아니면 나와 이백이 안 맞나? ㅋㅋㅋㅋㅋ 

   어쨌든 한시강좌, 재밌다. 앞으로도 기대 만땅!!

댓글 3
  • 2019-01-22 08:55

    문탁샘의 희망에 이끌려 우리가 한시강좌까지 찾아오게 된 거군요.

    잘 하셨어요.ㅎㅎ

    처음 시경/초사를 배울 때와 달리 

    마음이 푸근해지는가 하면, 애절해지고, 답답해지는,

    시가 가리키는대로 감정의 방향타가 정말 잘도 움직이더군요.

    아무래도 시는 안되겠어요, 마음이 들킬까봐..ㅋㅋ

    그건 그렇고 유투브처럼 우리도 중국발음으로 한 구절 낭독해보면 어떨까요?

    성조가 뚜렷하게 있다는 게 참 색다른 감흥을 주네요.

    3강에서는 또 우샘이 내 마음을 어디로 데려다 주실지 궁금합니다.

  • 2019-01-22 10:10

    3강 한자발음표기한 파일입니다

  • 2019-01-22 12:36

    바리톤이나 테너의 성악가가 대중가요를 부를 때 멋지잖아요.., 민정이가 막춤 출 때도 재미지구요...

    이런게 지식인의 자의식인지는 몰라도^^

    십오종군정을 읽을때 둔전제는 이순신과 지금도 북한 방송을 보면 함경도 같은 오지에서는 군인과 주민이 함께 농사 짓고 함께 나누는 티비 화면이 떠오르더라구요

    日照新妝水底明 햇살이 화장한 얼굴을 비추니 물바닥에 밝게 비추고

    이건 또 인상파 화가들이 퍼뜩 떠오르고

    風飄香袂空中擧 바람이 향기로운 옷소매 불어 공중으로 날리네

    여기에선 중고등학교때 배웠던 시에서 시청각적인 효과 그러니까 여기에서는 후시각적인 효과...

    이렇게 저의 시강을 듣는 공부는 미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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