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글을 후기라고 올려도 될까 싶은 <식인의 형이상학> 첫 시간 후기

노란벨벳글라라
2018-12-16 20:39
446

본문에 이름이 잘못되었다면 말씀해주세요

첫만남이고 자기 소개도 안한 터라

미루어 짐작해 썼습니다.

대략난감 에두아르두

 

난감한 책을 만난 것이 반가워,

이렇게 못 알아먹겠는 책은 세미나 하라고 출판한 것임이 분명하다며,

신나게 세미나를 신청하고,

세장 읽으면 겨우 한 줄 알아듣는, 자다 깨다하는 책 읽기를 마치자 토요일이 되었다.

이거 뭐 지들끼리 알아듣는 암호같지 않냐는 뒷담화 의기투합으로 초면의 미지샘과 안면을 텄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은 역시나, 자매애를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

 

뻔하지 않은 인류학

 

1 세계인들에게 인류학은 언제나 타자의 탐구였다. 그러나 그것은 타자 속에서 또 다른 자기의 모습을 보는 것이기에 나르시스적일 수밖에 없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타자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이다. 지은이는 이것을 뒤집고 싶어한다. ’뻔하지 않은 인류학을 통해 안티니르시스에 닿고자 하며 이를 위해 아마존 원주민의 인식론이라고 할 수 있는 관점주의다자연주의로의 이행을 제안한다.

 

다자연주의적 관점주의는 정신(문화)의 단일성과 신체(자연)의 다양성을 전제한다. 인간, , 동물, 죽은 자 따위의 존재자는 모두 같은 종류의 영혼을 가지고 있지만 신체적 차이에 의해 제각각 다른 관점들로 존재한다. 재규어와 인간을 예로 들어보면 둘은 같은 종류의 영혼을 지니므로 둘 다 자신을 (대명사로써)인간으로 보고 맥주를 마신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인간과 맥주는 같은 자연적 대상을 지시하지 않는다. 즉 재규어와 인간에게 자연은 동일하지 않다. 이것이 다자연주의다. 인간은 라고 보지만 재규어는 맥주라고 보는 미지의 X는 없다. /맥주 다양체는 관점들의 수만큼 늘어날 수 있다. 관점주의는 이런 식으로 다자연주의를 함축한다. 다자연주의적 관점주의는 불변의 한가지 인식론과 가변적인 존재론을 전제한다. 재현들은 동일하지만 대상이 다르고, 의미는 유일하지만 지시대상은 여럿이다

 

뻔뻔하게 이해하기

 

열다섯 살 즈음, 어떤 해질 녘에 나는 버스틀 타고 가는 중이었다. 문득 알게 된 게 있었다. 나의 세계에서는 24시간 동안 내가 주인공인데, 내 세계의 보잘 것 없는 엑스트라인 내 친구는, 그의 세계에서 주인공이겠지. 지나가는 저 많은 사람들도 다 주인공이겠지? 세계는 참 나란하구나.

그때의 나에게 에두아르두는 이런 해설을 들려준다. 우주에는 신체만큼의 관점이 있으며. 그것은 인간 이라는 종을 넘어서 평등하다고. 재규어에게는 재규어의 문화가 있으며 그것은 나의 문화와 같다고. 다만 달라지는 것은 대상이라고.

나는, 내 마음대로 이것을 애니미즘의 대반격’, ‘끝장 상대주의’, ‘극단적인 평등주의라고 부르며 알겠다 싶었는데 에두아르두는 동일한 사물인 피를 재규어와 사람이 다른 방식으로 본다고 말해서는 안된다고 주의를 준다. 그러니까 나의 피가 재규어에게는 맥주구나라고 이해하면 안된다는 얘기다. 이런 해석이 나르시시즘이고 문화상대주의이며 뻔한 인류학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재규어가 피를 보는 방식과 사람이 맥주를 보는 방식이 동일하다고 이해해야 한다. , 여기 나란한 세계가 있다. 각 세계의 관점들은 양립불가능하고 서로 분리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관점주의적인 번역은 우리 언어와 다른 종의 언어를 연결, 분리하는 기만적인 동음이의어의 내부에 숨겨진 차이를 놓치지 않는 것이란다. 관점을 번역하는 것, 즉 두 세계를 오갈 수 있는 것은 샤먼뿐이라는데, 에두아르두는 뻔하지 않은 인류학자가 그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액체로 번역한다는 것

 

인류학자의 일이 미지의 세계, 다른 세계를 번역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두 인류학자다. 날마다 나의 언어로 세상을 번역하고 오역하느라 바쁘지 않은가. 그런데 나의 언어로 번역하지 말라하면 어떻게 세계를 이해하라는 것인가. 내가, 내가 아닌 것이 되기가 가능한가, 샤먼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내가 아닌 것이 되지 않으면 닿을 수 없기는 하다.

 

요요샘은 일본의 스즈카 공동체 견학의 경험을 떠올리며, ‘나의 언어로 그들을 번역하는 한, 그들에게 닿는 방법은 영영 없다고 했다. 아주 친한 사람과 단 둘이 마주 앉았을 때 조차 늘 네 사람이 만나고 있다는 생각을 해왔다. 나와, 그가 바라보는 나와, 그와 내가 바라보는 그는 늘 홀로그램처럼 핀이 안 맞은 채 붕 떠 있다. 그래서 나와 그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다른 세계(예를 들면 재규어의 세계, 혹은 한번도 만난 적 없는 태평양 한가운데 어느 부족의 세계)에 다가가려고 노오오력하지만 닿을 수는 없다(는게 내 생각이다). 그들의 삶을 나의 언어로 번역하지 않으려고 노오오력하지만(이것도 심히 난망한 일이지만) 한 순간 닿았구나 싶다가도 이내 떨어지고, 이어졌다 끊어졌다를 반복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그래서 관점의 번역(만일 번역이 가능하다면)은 고정되지 않는 액체와 같다. 핀이 안 맞는 홀로그램 같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일곱페이지나 되는 뚜버기샘의 발제문이 흘려보내도 되는 것꼭 잡아야 하는 것을 잘 가려주었다(고 믿는다). 발제문을 함께 읽는 것이 복습이고 공부였는데, 역시나 내 뇌는 책을 읽을 때처럼 켜졌다 꺼졌다, 접속, 비접속을 반복했다. 주파수가 맞았다 안 맞았다 하는 라디오를 틀어 놓고, 들리는 순간을 받아쓴 것을 후기라고 남기자니 오해의 기록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풀려야 할 오해라면 풀릴 것이고(주변에서 가만 안 놔둘 것이므로), 안 풀려도 무해하다면 뭐 나쁜가. 하나의 신체는 하나의 관점인데 말이다.

 

그런데 내가 나에게 닿았던 적이 있기는 한가, 그런 생각이 새삼 들어서 길을 한참 잃은 김에 아예 딴 길로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난감하기만 한 게 아니라 도움이 1도 안되는 후기다.

댓글 3
  • 2018-12-17 10:35

    우리가 세미나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쌤 소개만 받고 다른 분들 소개를 안했군요.

    뜨거웠던 세미나의 현장을 보여주네요. ㅎㅎ

    노란벨벳님(저는 이렇게 부르려구요^^) 의 후기가 첨부파일로만 되어 있어서 제가 빼내서 올렸어요.

    첨부파일은 사람들이 잘 안 읽고, 쌤의 후기는 사람들이 꼭 봤으면 좋겠어서요^^ 

    다음 시간에도 기대되어요. 모든 분들의 대략난감인 표정들도, 강사의 발제문도, 노란벨벳님의 학구적 열변도... 

  • 2018-12-17 14:01

    아, 좋군요! 노란님(저는 그 때 그 때 이렇게도 저렇게도 마구 부를려구요. 그 때 그 때 글라라와 노란과 벨벳이 하나인지 여럿인지 심히 헷갈리면서요..^^)의 후기를 읽는 동안 세미나에서 어지럽게 뒤섞이던 대화를 복기해봤어요.

    여전히 다자연주의적 관점주의가 이런건가 저런건가 헷갈리기는 하지만 

    아무튼 저는 번역의 애매함의 지대에 대해 당분간 생각하게 될 것 같아요.

    되기란, 끊임없는 변이의 운동이 아닐까요?

    모두가 샤먼이 될 수 없으니 샤먼-되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샤먼이 되든 못되든 샤먼-되기의 운동 속에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안티 나르시스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요.

    아는 말보다 모르는 말이 더 많은 텍스트 속에서 같이 길을 잃고 방황하는 즐거움을 계속 누려보아요.^^

    그래서 좋네요! (뚜버기님의 발제가 길을 잘 안내해 줄테니 걱정안해도 되고요.^^)

  • 2018-12-17 14:02

    노란벨벳 글라라님 만큼이나 이름 어디메서 잘라 읽어야 할 지 애매한 저자 비베이루스 지 까스뚜르는
    뒷부분 어디에선가 "시선의 상호감염"을 이야기 하더라고요.
    어찌보면 노란벨벳님이 말씀하신 액체로 번역한다는 것과 닿는 것 아닌가 싶어요.

    하나의 영혼이라고 말할 때 그거는 혹시 재규어에게도, 인간에게도 문화는 같은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영혼이 다른 환경에서 다르게 표현된다는 걸 말하는 듯 한데.....다문화와 다자연의 다름을 아는 게 저한테는 숙제인거 같아요.

    또 우리가 샤먼이 아닌 이상 재규어가 될 수는 없지만, 다른 관점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굳이 다른 관점으로 봐야 되는가? 그러면 뭐가 달라질까? 이런 질문들을 가지고 갑니다.

    뒤로 가면서 들뢰즈의 철학적 개념들이 나오면서 더 어렵기도 하지만 또한 들뢰즈의 개념을 이 책을 통해 만나고 감을 잡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이원론의 세계, 동일자와 타자로 분리되는 세계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식인의 형이상학>과 함께 더듬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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