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쓰기1234] 유소감의『장자철학』에서 도와 소요론을 중심으로

여울아
2023-06-07 01:01
212

유소감의『장자철학』

(도와 소요론을 중심으로)

 

『장자철학』은 유소감의 박사논문이다. 그는 장자 철학이 노자에 기원하고 있으며, 장자에 이르러 도가 학파가 큰 발전을 이루었다는 입장이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소요유>의 절대 자유가 도(道)의 개념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탐구하기 위함이다. 그에 따르면 장자의 도에 대한 혼동이 장자 철학 전반에 대한 오해를 낳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 천(天), 명(命) 등을 철학적인 범주로 분석하고, 이를 안명론(安命論), 소요론(逍遙論), 제물론(濟物論 )등 사상적(학설) 측면에서 분석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내가 여기서 중점적으로 다룰 내용은 장자의 도 개념과 소요론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이 둘 간의 관련성에 관해서이다. 먼저 지난 번 1234에서 다뤘던 장자의 해체 전략을 간략히 정리하고 여기서 내가 건진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해보자.

 

 

  • 장자의 해체 전략

저자 정용선은 『장자』의 <소요유>편이 해체 전략의 오리엔테이션 같은 역할을 한다고 평가한다. 대붕우화로 시작해 무하유지향으로 끝을 맺는 이 편은 비현실적이고 과장적인 에피소드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거대 담론을 첫 머리에 배치한 이유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좁은 시각을 벗어나 “시각의 전환”을 도모하기 위한 해체 전략이라고 저자는 풀이한다. 여기서 “대붕의 비상”은 시각을 달리하여 더 큰 것을 볼 수 있다는 장자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과장적 비유’이다. 따라서 해체 전략에 따르면, 비상이나 소요(유)는 그 자체로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자신의 경험치를 초과하는 어떤 상태(경지)로 해석해야 한다. 이것이 ‘초탈적 자유’이며, ‘매순간 자신을 해체하는 과정만 있을 뿐 절대자나 절대 자유와는 다르다.’

 

그렇다면 소요유를 “절대 자유”라고 해석하는 출발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작년 제자백가 세미나에서는 주로 실존주의와 같은 서양 철학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의 책을 읽었다. 『장자, 고대 중국의 실존주의』 저자 후쿠나가 미쓰지(복영광사)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에는 유소감의 『장자 철학』을 통해 노장 철학의 도 개념과 장자의 자유(소요론)에 대한 연관성을 탐구하고자 한다.

 

  • 철학적 범주 측면에서의 도

저자는 장자의 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세계의 근원으로서의 도이다. 이러한 해석의 기원은 장자가 아니라 노자에 있다. 선진 시대 유가, 묵가, 법가 등 다른 사상가들도 도를 말했지만, 이들이 말하는 도는 만물을 관통하는 보편 법칙으로서의 도이다. 그러나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고 말하는 노자의 도는 천지의 생성과 만물의 존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저자는 장자를 선진 시대 도가를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한다. 따라서 장자의 도는 만물에 작용하는 도라는 의미에서 보편 법칙을 함축하지만 보다 객관적 실재로 작용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도는 사물의 조건이지만 도 그 자체는 다른 어떤 조건에도 의지하지 않는 “무조건성”이다. 도를 제외한 모든 만물은 도에 의존하지만, 도는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이것을 도의 절대성이라고 한다. 도의 절대성은 무조건성, 영원성, 초월성, 추상성, 무차별성 등으로 표현된다.

 

둘째는 최고의 인식으로서의 도이다. “옳고 그름이 드러나면 도가 이지러진다”는 <제물론>의 문장이 대표적이다. 장자의 도에서 추구하는 인식은 사물이 있으나 구별하지 않는 것이고, 다름이 있으나 시비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무차별성은 도의 추상성으로부터 나온다. 추상성이란 어떤 사물이나 개념에 대한 추상이 아니라 내용이 전혀 없다는 의미에서의 추상이다. 따라서 도에는 현실적인 내용이 없고 일상적인 지식이 포함되지 않는다. 이러한 도의 추상성 때문에 도는 설명될 수도, 보여줄 수도 없는 신비한 성질을 갖는다. 이러한 도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지인(至仁)이라고 한다.

 

 

그런데 저자는 장자의 도가 이렇듯 자연적인 의미와 인식론적인 의미에서 둘 다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별하지 않으면 지인의 “주관적 경지”가 “땅을 생기게 하고 하늘을 생기게”할 수 있다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인의 정신세계는 천지를 생성하는 도가 아니다. 대부분 장자 철학의 오해는 이렇듯 서로 다른 두 가지 의미의 도가 섞여 사용되기 때문에 발생한다. 저자는 특히 60년대 풍우란이 장자의 도를 “완전함(全)”으로 해석한데 대해 우려를 표명한다. 풍우란은 장자의 도가 노자를 계승한 세계 근원임을 간과하고 이를 현실의 어떤 구체적인 사물이나 기존의 관념으로 인식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로써 도를 완전함으로, 만물을 치우침(偏)으로 해석하게 되고, 이 둘은 대립 관계로 왜곡된다. 저자 유소감은 만물의 치우침이 결과적으로 도의 완전함을 파괴하는 것 아니냐고 문제제기하기에 이르는데, 풍우란의 이러한 해석이야말로 인식론적인 도와 자연적인 도를 억지로 합친 데서 온 근본적인 오류라고 주장한다. 이렇듯 세계의 근본과 지인의 주관적 경지를 혼동하지 않기 위해서는 도의 두 가지 의미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 사상적 측면에서의 소요론

장자의 소요론(逍遙論)은 먼저 장자의 안명론(安命論)을 전제해야 한다. 안명론은 도에 대한 깨달음(자득)을 얻은 달관한 인생관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객관적인 필연성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자유는 없으며, “그때그때마다 마음을 편히 갖고 변화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갈 뿐이다. 그러하기에 무심(無心), 무정(無情)할 수 있고, 자기를 잊고 만물과 하나 되는 경지에 들어설 수 있다. 이런 물아일체의 경지에서 지인은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데, 이것은 정신세계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저자는 이러한 소요론이야말로 장자의 특색 있는 자유론이라고 평가한다.

 

저자의 소요유(逍遙遊) 풀이를 구체적으로 따라가 보자. 일반적으로 소요(逍遙)란 산책처럼 편안히 즐기며 몸을 배회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장자에서는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에서 소요한다는 의미를 정신적인 자유라고 풀이한다. 여기에 유(遊)라는 글자를 더하여, 노닌다는 의미를 강조한다. 장자에게 노니는 주체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그가 일찍이 시비가 뒤섞인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이로부터 도피하고자 택한 장소는 무하유지향이라는 정신세계인 것이다. 즉, 소요유의 주체는 마음이고 노니는 곳은 환상 속의 무하유지향인 셈이다. 따라서 장자의 자유에는 현실 세계의 부조리를 적극적으로 간섭하려는 의지가 없다. 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필연)을 편안히 따를 뿐이다. 그래야만 현실의 모순과 마찰을 피하고 일체를 잊고, 일체를 초월할 수 있다고 인식한다. 이것이 저자 유소감이 해석한 장자의 자유론이다.

 

또한 저자는 이러한 장자의 정신적 자유를 아큐식 정신 승리법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한다. 장자는 현실에 대한 깊은 인식을 기초로 해서 초현실적인 인격의 독립을 추구한 인물이다. 그에 비하면, 아큐는 감각이 무디고 사리에 어둡고 절개라고는 조금도 없는 인물이다. 장자의 자유가 현실 도피적이긴 하지만 아큐의 노예식 자유와는 전혀 다르다. 장자는 어떤 사람에 의해서도 지배받지 않음으로써 인격의 독립을 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에 복종하지 않는 절개는 곧 정신적인 자유와 초탈의 표현인 것이다.

 

  • 왜 절대 자유인가?

지금까지는 저자 유소감의 『장자 철학』 중에서 장자의 도와 자유론(소요론)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다. 저자는 장자의 도가 노자의 도를 계승하기 때문에 만물 생성의 도로써 절대성, 영원성, 무차별성 등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장자의 자유란 객관적 필연이라는 세계 인식에 근거하기 때문에 엄밀히는 “개인적인 자유는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장자의 자유가 현실 도피적인 “정신적 자유”라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장자의 소요론을 “절대 자유”라고 할 때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책에서는 범주적인 측면에서 도라는 개념어를 다루고 있을 뿐 “도가 어떻게 정신세계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대신 <부록>에서 저자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자유론과 장자의 자유론을 비교하면서, 이들 자유가 실천적이지 못한 “절대 자유”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절대”라는 말에는 무조건적이고 무한하며 영원하다는 의미가 있다. 장자의 도는 그 자체로 존재할 뿐 어디에도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절대적이라고 한다. 그러면 장자의 소요론(자유)은 어떠한가? 장자의 자유는 마음대로 얻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건적이다. 도를 얻기 위한 “수양”이 필수적이다. 저자는 장자의 자유를 “절대화된 자유”라고 부르며, 자유 그 자체를 획득하는 과정은 조건적이지만, 그가 획득한 자유의 경지는 절대적이라고 해석한다. 여기서 절대성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난 상태를 의미한다. 저자는 이를 “속세의 모순과 현실의 속박을 초탈하여, 텅 비고 고요한 데로 들어가서 절대적인 조화와 즐거움을 누리는” 정신세계라고 표현한다.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장자의 도는 장자의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절대화된 자유의 경지란 정신세계 밖이 어떤 혼란에 빠져있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렇듯 인간의 인식이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나면 시시비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 장자의 도와 자유가 일치하는 측면이다. 대붕의 비상을 생각해보자. 멀리 나는 대붕은 자신의 한계에 갇히지 않고 더 멀리 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비상을 절대적 경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비상이라는 날갯짓은 결코 멀리 보는 행위 혹은 정신세계로의 진입과 결코 별개일 수 없기 때문이다. 날갯짓과 멀리 보기를 따로 뗄 수 없듯이 현실과 정신세계는 이분법적으로 나뉠 수 없다. 나는 “절대 자유”란 저자의 우려대로 세상 만물을 낳는 도와 인식론적인 도를 혼동했기 때문에 정신의 경지에 절대성을 부여한 오류가 아닐까 추측한다.

 

장자는 전쟁의 시대를 살았다. 오늘을 살았다한들 내일 목숨을 기약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렇듯 고단한 현실에서 어떠한 간섭도 없이 정신세계에 침잠하는 것이 장자가 추구한 자유였을까? 과연 객관적인 필연을 깨달은 장자에게 절대화된 자유의 경지란 무엇이었을까? 나는 다음 1234에서 노장철학의 입장에서 장자의 <소요유> 원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앞서 도의 절대성과 절대 자유가 어떤 연관성 갖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계획이다. 이렇듯 절대 자유라는 말에 매달리는 이유는 내가 정말 그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고, 그 의미도 모른 채 가장 널리 알려진 방식이라는 이유로 장자의 자유를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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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주역이야기
  쌀벌레가 나타나야 쌀이 상한 것을 안다 십년이 넘도록 함께 웃고 지내던 동아리에 일이 생겼다. 표면적으로는 멤버 중 몇몇의 술이 과해서 벌인 쌈박질이지만, 그것은 오랫동안 동아리 내에서 묵혀두었던 ‘과거사’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육십갑자가 넘은 사람들이 해도 되는 말과, 절대로 하면 안되는 말을 마구 내뱉었다. 욕설을 몇 번 주고받던 사람들이 급기야 의자를 집어던지고 주먹다짐을 하고 말았다. 장수하는 동아리로, ‘성격 좋은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로 주변의 부러움을 샀었는데, 비록 술기운을 빌렸다고 하지만, 누군가의 가슴 속에 상처가 되는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십년의 우정은 어디로 가고, 곪을대로 곪아버린 관계만이 드러났다. 그것은 주역의 18번째 괘인 산풍고(山風蠱)괘가 형상화한 ‘벌레먹은 그릇’, 바로 그것이었다.   괘명인 고(蠱)라는 한자는 그릇(皿) 속에 많은 벌레가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벌레의 종류를 정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때의 벌레는 쌀에서 생겨나는 바구미 같은 류를 생각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좀 오래된 쌀독을 열었을 때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구미처럼, 우리는 벌레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쌀이 상했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바구미가 튀어나온 순간, 일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고, 시선은 쌀에서 벌레로 옮겨간다.     산 아래 머무는 바람이 하는 일 이렇게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진 데에는 나름대로 원인이 있을텐데, 64괘가 배열된 차례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이 있다. 산풍고괘는 18번째 괘인데, 16번째 괘는 ‘기쁨’을 나타내는 뇌지예(雷地豫)괘이고, 17번째는 ‘남을 따른다’는 뜻을 가진 택뢰수(澤雷隨)괘이다. 그러니까, 기뻐하고 따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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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3.07.04 | 조회 298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문어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피터 고프리스미스, 『아더 마인즈』       나의 문어 선생님 친정집 제사상에는 늘 삶은 문어가 올라왔다. 제사가 끝나면 문어를 먹기 좋게 잘라 음복을 한 뒤 술안주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곤 했다. 그렇게 내게 문어는 특별한 날에만 먹는 숙회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넷플릭스 다큐 <나의 문어 선생님>을 통해 만난 문어는 한낱 먹거리가 아니었다. 문어는 한 인간의 아픔을 치유하고 자연의 신비와 생명에 대한 경이를 되살려 그를 다시 살게 한 신비롭고 놀라운 존재였다.   다시 문어를 만났다. 이번에는 영화가 아니라 책 <아더 마인즈>로. 이 책의 저자인 철학자 피터 고프리스미스 역시 <나의 문어 선생님>의 주인공과 같은 스쿠버 다이버다. 그는 스쿠버다이빙을 하면서 문어를 만났고, 문어를 관찰하고, 문어의 마음에 대해 물었고, 그 물음은 마음의 탄생에 대한 탐구로까지 나아갔다. <아더 마인즈>에서 시작한 그의 물음은 더 심화되어 의식과 마음의 진화 그리고 생명의 의미를 탐색하는 <후생동물>을 쓰게 되기에 이르렀다. 두 권의 책 모두 진화론의 관점에서 마음과 의식의 문제에 접근한다. 그는 인간이 진화의 정점에 서 있다고 보는 관점에 매우 비판적이다. 두권의 책 모두에서 마음과 의식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최근의 과학과 철학의 첨예한 담론들을 건드리며 전개된다. 사실 이 담론들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긴 하지만 이 글에서는 마음과 의식의 진화보다는 문어를 알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마음과 의식의 진화 문제는 살펴보아야 할 쟁점이 많을 뿐만 아니라 관련한 공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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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2023.06.17 | 조회 527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스티븐 핑거, 동녘 사이언스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수 없는 생각들, 웃고 화내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두려움, 걱정, 사랑, 충동이나 욕구 등은 모두가 마음작용이다. 종교나 철학에 대한 신념, 관계의 형성, 그리고 자아에 대한 의식도 마음에서 비롯된다. 마음은 무엇인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그리고 마음을 가진 존재는 어떻게 보고, 생각하고, 느끼고, 상호작용하는가? 20세기 들어 마음을 더 이상 신비 혹은 형이상학의 영역 속에 남겨두지 않고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내려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20세기 중반의 인공지능 연구에서부터 신경생리학을 비롯한 다양한 인지과학 분야의 연구와 최근의 진화심리학까지.     스티븐 핑커가 정의하는 마음이란   스티븐 핑커Pinker는 “마음은 어떻게 작용하는가”How The Mind Works란 책에서 인지과학, 진화생물학 그리고 기타 다른 과학적 논문이나 자료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마음에 관한 과학적 연구 성과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마음은 자연선택이 우리 조상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식량을 채집하는 과정에서 특히 사물, 동물, 식물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정복하는 과정에서 직면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주기 위해 설계한 기관들의 연산체계이다’(p.48)라는 것이다. 좀더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마음은 뇌의 활동이다. 뇌는 정보를 처리하는 기관이며 사고는 일종의 연산이다. 마음은 여러 개의 모듈 즉 마음 기관(Demon,악마)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모듈은 이 세계와의 특정한 상호작용을 전담하도록 진화한 특별한 설계를 가지고 있다. 모듈의 기본 논리는 우리의 유전자 프로그램에 의해 지정된다. 이러한 모듈들의 작용은 인간의 진화사(進化史) 대부분을 차지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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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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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춤추다 배운 연독이위경   기린     연독이위경, 중도를 지키는 삶   좋은 일을 해서 명성이 나는 것도, 나쁜 일을 해서 형벌을 받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시비선악을 넘어 중도의 도를 지키면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고, 부모를 잘 모실 수 있고, 천수를 누릴 수 있습니다. (爲善無近名,爲惡無近刑. 緣督以爲經,可以保身,可以全生,可以養親,可以盡年._낭송장자 78쪽)     위 문장은 지식을 위한 지식을 좇는 위험을 밝힌 「양생주」 1장의 후반부 내용이다. 내편에서 선악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첫 문장인데, 장자는 선과 악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삶에서 양생의 가능성을 본다. 좋은 일이 드러나서 명성을 얻게 되면 그만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나쁜 일로 형벌을 받게 되면 몸을 상하게 된다. 온전한 몸을 유지해야 하는 양생에서 선도 악도 해로울 뿐이라는 것이 장자의 입장이다. 그래서 중도의 삶을 통해 시비선악을 넘을 수 있을 때, 자신과 주변까지 보살피면서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보았다.     원문을 살펴보면 중도의 삶은 연독이위경(緣督以爲經)이다. 직역하면 살피는 선으로써 날실로 삼는다 는 의미인데, 이때 날실은 아래 위로 지난다. 위진시대 곽상은 연독이위경을 “순중이위상(順中以爲常)”으로 주석하였다. 중심을 따름으로써 법도로 삼는다는 것이다. 살핀다는 의미의 독(督)을 가운데(中)로 주석을 달았다. 이러한 주석은 『황제내경』 「영추」편에서 사람에게는 여덟 개의 맥(脈)이 있는데, 그 중에서 독맥(督脈)은 중앙(中)을 흐르는 맥이라는 설명에 따른 영향이라고 한다. 독맥은 꼬리뼈 부근에서 등줄기를 따라 위로 올라가 정수리를 지나 인중에 이르는...
춤추다 배운 연독이위경   기린     연독이위경, 중도를 지키는 삶   좋은 일을 해서 명성이 나는 것도, 나쁜 일을 해서 형벌을 받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시비선악을 넘어 중도의 도를 지키면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고, 부모를 잘 모실 수 있고, 천수를 누릴 수 있습니다. (爲善無近名,爲惡無近刑. 緣督以爲經,可以保身,可以全生,可以養親,可以盡年._낭송장자 78쪽)     위 문장은 지식을 위한 지식을 좇는 위험을 밝힌 「양생주」 1장의 후반부 내용이다. 내편에서 선악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첫 문장인데, 장자는 선과 악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삶에서 양생의 가능성을 본다. 좋은 일이 드러나서 명성을 얻게 되면 그만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나쁜 일로 형벌을 받게 되면 몸을 상하게 된다. 온전한 몸을 유지해야 하는 양생에서 선도 악도 해로울 뿐이라는 것이 장자의 입장이다. 그래서 중도의 삶을 통해 시비선악을 넘을 수 있을 때, 자신과 주변까지 보살피면서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보았다.     원문을 살펴보면 중도의 삶은 연독이위경(緣督以爲經)이다. 직역하면 살피는 선으로써 날실로 삼는다 는 의미인데, 이때 날실은 아래 위로 지난다. 위진시대 곽상은 연독이위경을 “순중이위상(順中以爲常)”으로 주석하였다. 중심을 따름으로써 법도로 삼는다는 것이다. 살핀다는 의미의 독(督)을 가운데(中)로 주석을 달았다. 이러한 주석은 『황제내경』 「영추」편에서 사람에게는 여덟 개의 맥(脈)이 있는데, 그 중에서 독맥(督脈)은 중앙(中)을 흐르는 맥이라는 설명에 따른 영향이라고 한다. 독맥은 꼬리뼈 부근에서 등줄기를 따라 위로 올라가 정수리를 지나 인중에 이르는...
기린
2023.06.13 | 조회 406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대칭적 창조를 위하여       1.   <대칭성 인류학>을 읽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예전에 진행했던 <도시와 영성> 세미나 인터뷰를 했을 때부터였다. 그때 같이 읽는 사람들이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었고, 예전부터 신화나 종교가 궁금했기 때문에 막연히 <대칭성 인류학>이 재밌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읽고 나니 음 재밌긴 한데… 책에서는 생각보다 광범위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었다. 신화와 종교뿐만 아니라 경제와 문화, 고고학, 인간의 마음 등등. <대칭성 인류학>을 포함한 [카이에 소바주* 전집]에는 인간의 사상 전반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시도하려는 신이치의 다양한 ‘시도’들이 담겨있었다. ‘시도’라고 강조하는 것은 신이치가 주장하는 내용들이 굉장히 촘촘하고 세밀한 내용이기보다는 하나의 공리를 제시해보는, 이론을 세워가는 과정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문제의식에는 너무나 깊이 공감이 되면서도 책을 읽는 과정에서 내가 알고 있는 내용 자체를 흔들리며 ‘이게 맞나?’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신이치는 911테러를 목도하고 오늘날 이런 야만적이고 윤리적이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세상의 ‘대칭성**’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슬람 문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야만적이라고 칭하는 미국인들을 보며 아무렇지 않게 보복으로 발생하는 ‘야만’에 대해 질문한다. 인간의 야만스러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경제적 논리에 따라 가로수를 돌보지 않고 그냥 잘라버리는 공공기관들, 공장식 축산으로 불필요하게 도살당하는 수많은 동물들, 정의라는 이름으로 생명과 환경을 파괴하는 전쟁. 신이치는 오늘날의 이 수많은 행위가 과거의 문화가 사라지면서 대칭성과 비대칭성의 균형이 무너져 비대칭적인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어...
  대칭적 창조를 위하여       1.   <대칭성 인류학>을 읽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예전에 진행했던 <도시와 영성> 세미나 인터뷰를 했을 때부터였다. 그때 같이 읽는 사람들이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었고, 예전부터 신화나 종교가 궁금했기 때문에 막연히 <대칭성 인류학>이 재밌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읽고 나니 음 재밌긴 한데… 책에서는 생각보다 광범위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었다. 신화와 종교뿐만 아니라 경제와 문화, 고고학, 인간의 마음 등등. <대칭성 인류학>을 포함한 [카이에 소바주* 전집]에는 인간의 사상 전반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시도하려는 신이치의 다양한 ‘시도’들이 담겨있었다. ‘시도’라고 강조하는 것은 신이치가 주장하는 내용들이 굉장히 촘촘하고 세밀한 내용이기보다는 하나의 공리를 제시해보는, 이론을 세워가는 과정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문제의식에는 너무나 깊이 공감이 되면서도 책을 읽는 과정에서 내가 알고 있는 내용 자체를 흔들리며 ‘이게 맞나?’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신이치는 911테러를 목도하고 오늘날 이런 야만적이고 윤리적이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세상의 ‘대칭성**’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슬람 문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야만적이라고 칭하는 미국인들을 보며 아무렇지 않게 보복으로 발생하는 ‘야만’에 대해 질문한다. 인간의 야만스러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경제적 논리에 따라 가로수를 돌보지 않고 그냥 잘라버리는 공공기관들, 공장식 축산으로 불필요하게 도살당하는 수많은 동물들, 정의라는 이름으로 생명과 환경을 파괴하는 전쟁. 신이치는 오늘날의 이 수많은 행위가 과거의 문화가 사라지면서 대칭성과 비대칭성의 균형이 무너져 비대칭적인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어...
동은
2023.06.13 | 조회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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