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 단기 세미나] 4월부터 매주 월요일 시작합니다

관리자
2019-03-18 15:38
404

근대사를 공부하는 단기 세미나를 엽니다.

이 세미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작년(2018) 밀양인문학 캠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문탁과 밀양이 함께 한 인문학 캠프 중 한 꼭지가 [역사와 기억: 구미현 삼대의 수난과 근대사]였습니다.

그 시간에 우리는 지난 100년간에 걸친 구미현 선생님 삼대의 가족사를 통해

우리가 잘 모르던 근대사의 한 페이지를 만났고, 많은 의문과 숙제를 안고 돌아왔습니다.

이 만남은 우리에게 '역사와 기억' '권력과 역사'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남겼습니다.

[작년 밀양인문학캠프 후기 참고하세요. http://www.moontaknet.com/migrated?type=doc_link&doc=1031366&board=mt_765kv_board ]

바쁜 공부와 활동을 핑계(!)로 한동안 그 과제를 뒤로 미뤄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겨울, 몇명의 친구들이 밀양농활을 다녀온 뒤 

다시 작년 밀양인문학 캠프의 숙제가 떠올랐고, 

더이상 그 숙제를 미루지 말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직접적으로는 문탁에서 스터디를 하면 같이 공부하고 싶고

구미현샘 자매분들과 함께 길림의 독립운동 유적지를 답사하고 싶다는

밀양의 곽빛나샘의 희망에 자극받은 바 컸습니다.^^

하여 근대사 단기 세미나 예비 모임을 3월 25일, 월요일 오전 11시에 가지려 합니다.

세미나에서 어떤 텍스트를 읽을 것인지, 어떻게 공부하고 어떻게 공부를 갈무리할지 

근대사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여 의논하면 좋겠습니다.

단기 세미나는 3~4개월 진행될 예정이며

4월 첫주 월요일 오전 10시부터 본격적으로 세미나를 시작하려 합니다.

참여하실 분들은 댓글로 이름과 연락처 부탁드립니다.(연락처는 비밀댓글로 올리시면 됩니다.^^)

커리큘럼을 의논하는 예비모임에도 많이 와주세요~~

(문탁의 세미나회비는 월 2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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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구미현 선생님 삼대의 수난사를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아래 글은 2015년 7월, 한겨레 신문 칼럼 [세상읽기]에 실린 이계삼의 글입니다.

근대사와 관련하여 이 글에 등장하는 키워드들은(우리의 탐구과제이기도 하겠지요) 

의열단, 청산리전투, 상해임시정부, 만주지역 독립운동, 무장투쟁, 자치운동, 민족주의, 조선 공산당, 족청, 광복회, 4.3 등입니다.

나는 오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어느 ‘대단한 집안’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집회에 종종 참여하는 사람이라면 세월호 1주년 집회나 쌍용차 집회에서 밀양송전탑 반대 주민들을 대표하여 기품 있는 명연설로 청중을 사로잡던 초로의 단아한 어르신을 기억할 것이다. 단장면 용회마을 주민 구미현, 지난 4년간 송전탑 싸움 현장에서 함께 풍찬노숙했지만, 살아온 이력이나 집안에 대해서는 몰랐다. 누군가가 독립운동가 집안이라는 이야기를 전해주었지만, 본인은 그런 기색을 일절 드러내지 않았다.그러던 구미현이 내게 한달여 전 ‘한번 읽어나 보라’며 두툼한 자료뭉치를 주었다.나는 그 자료를 읽으며 충격을 받았고, 자주 천장을 올려다보며 심호흡을 해야 했다.

구미현의 조부인 일우 구영필 선생은 구한말 영남 보부상 총책이었고, 당시 밀양의 부호였던 한씨 문중과 혼인한 구성백의 맏아들로 1891년 태어났다. 국권 상실 후 구영필의 본가와 외가는 우당 이회영 선생의 일가가 그러했듯 일가 식구 40여명 전원이 만주로 이주하였고,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전 재산을 처분하여 바쳤다. 구영필은 일찍부터 비밀결사 운동에 뛰어들었고, 옥살이 이후 신흥무관학교를 거쳐 대부분 밀양 출신이었던 의열단의 선배 그룹으로 거사에 직간접으로 참여했다. 1919년 상하이(상해) 임시정부의 재무위원과 재무부장을 지냈으며, 만주 지역에서 독립운동가들의 자금을 조달하고 이동의 거점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그러나 청산리 싸움 이후 일본군의 보복전이 전개될 때 무장세력은 피신하고,북만주 지역의 조선인 양민들이 무자비하게 학살당하는 것을 보면서 무장투쟁 일변도의 노선을 회의하게 되었다. 구영필은 길림성 영안현 영고탑 지역에 이주해오는 조선인들을 돌보고, 토지를 개간하여 정착하도록 돕는 자치운동으로 노선을 틀었다. 그는 공산주의자들과 교류하며 학교 설립과 좌익청년단체를 주도하였고, 뒤늦게 이곳으로 자리잡은 김좌진 중심의 우파 민족주의자 그룹인 신민부가 걸어온 주도권 싸움에 휘말렸다. 그는 신민부 보안대원들이 조선인들에게 의무금을 강제 징수하고 폭력까지 행사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고, 갈등 끝에 신민부 보안대장 문우천의 칼에 찔려 절명했다.

그의 아들 구수만 선생은 배재고보를 다니던 1930년, 광주학생운동으로 촉발된 전국적 항일시위의 주모자로 몰려 검거되었다. 이후 조선공산당 영남 지역 대표로 활동했고, 조선공산당 재건운동과 부산항만의 부두노동자 파업을 주도하다 검거되어 끔찍한 고문을 당했지만 지하활동을 이어갔다.
제주 4·3항쟁 당시에는 학살의 진상을 알리는 전단지를 제작하여 배포하다 다시 검거되어 생사를 넘나드는 고문을 당했다. 청년 시절 수차례 이어진 옥살이와 고문으로 육신은 완전히 망가졌고, 40대 이후에는 끝내 실명하고 말았다.

그의 손녀 구미현의 유년 시절은 극빈을 벗어날 수 없었다. 구영필의 독립유공자 서훈은 네 번이나 거부당했다. 그가 피살될 무렵, 말을 타고 집 주변을 밤새 빙빙 돌며 무력으로 시위하던 이가 나중에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족청’의 우두머리이자 히틀러 숭배자이기도 했던 철기 이범석이었다. 1970년대 이후 독립유공자 서훈 심사위원이자 광복회장을 역임하며 수십년간 독립운동사의 ‘판관’ 노릇을 하던 이강훈이 신민부 보안대원이었음을 생각하면 사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유년기의 영양 결핍으로 일생 동안 병치레로 시달리던 구미현은 밀양으로 이주하여 겨우 건강을 회복했고, 편안한 노년을 누리려 할 무렵, 집 뒷산을 지나가는 초고압 송전탑으로 몸에 쇠사슬을 걸고 수천명 경찰력에 맞서 싸우는 할머니 투사가 되어야 했다. 이 ‘대단한 집안’이 겪은 기막힌 수난사를 생각해 보라. 대한민국, 이 우울한 공화국의 ‘정통성’은 대체 누구의 것인가.
원문보기: 

댓글 1
  • 2019-03-19 14:52

    숙제하는 맘으로 참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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