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3강 후기

아렘
2019-01-22 00:41
403

   '논리적 중계점' 위치는 너무 높고 험해 보입니다. 그러다보니 신자유주의의 '매니지먼트 원리주의' 안에서  '생물학적 종축' 역할에 순응중인 아렘입니다. 휘발성이 강한 기억력 덕분에 요요샘의 조근조근, 토론시간까지 생략해가며 풍성하게 채워주셨던 소격과 원리주의 이야기들이 살아날까 걱정입니다. 라캉과 르장드르를 불러내 주신 중세 해석자 혁명 부분은 다른분께서 후기를 남겨주시길....(쓰다보니 너무 길어져서 잘라 냈습니다.)


 


   루터를 이야기 하던 사사키 아타루는 시계를 거꾸로 돌려 무함마드와 중세 해석자 혁명으로 우리를 데려왔습니다. 그의 말마따나 많은 길을 에둘러 왔습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네 지금 모습의 모든 연원은 중세 해석자 혁명, 한마디로 기승전 중세 해석자 혁명입니다. 그런데 우리 요요샘은 에둘러 가기로 결심하신듯 합니다. 토론도 필요 없다. 내가 채우리라.....소격과 원리주의를 거쳐서 라캉과 르장드르로 두시간 반을 채워주셨습니다. (열정에 명강의 감사합니다.)


 


   원부신화와 홉스의 만인대 만인의 투쟁은 , 사회 그리고 국가의 기원을 폭력에서 찾을 단골로 끌려 나옵니다. 하지만 그런 사고는 보편적이 아니며, 특정한 시공간에서만 통할 있는 신화일 사실이 아니라고,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이슬람이라는 세상도 있다고 (요요샘 말씀에 따르면) 사사키 아타루는 조용히 중얼거렸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루터가 읽더니 이번 시간에는 무함마드가 읽어버렸습니다. 거기다가 무함마드는 문맹이었는데도 읽었습니다. (15 연상의 부자 부인이 없었으면 어쩔뻔 했을까요?)  제대로 읽은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달랐습니다. 저처럼 읽어 대기만 하고, 읽으면 읽을 수록 편협한 기존 생각만 강화하는 읽기가 아닌 '소격' 읽기였습니다. 텍스트와 텍스트를 읽는 사이의 무한한 거리를 느끼는 '천사적 읽기'였던 셈입니다. 사사키 아타루가 무한 반복하던 읽고, 다시 읽고, 쓰고, 다시 고쳐 쓴다는 말이 의미가 조금은 분명해졌습니다.


 


   안 읽거나, 읽더라도 소격의 읽기가 아닐 경우, 자신과 텍스트를 구별할 없게 경우, 주체 바깥의 이물감, 외재성, 생생한 타자성을 알지 경우 원리주의 위험이 있다고 요요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도 이슬람원리주의가 자동생성되려던 제게,  요요샘은 자신이 옮다고 믿고 행하는 일의 전제도 원리주의가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고 하십니다. 문탁의 소이경전  '증여론' 그렇게 나와 있잖아' 하면 그것도 원리주의가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고 하십니다. 생각해 보니 우리 주변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원리주의가 많습니다. 남성원리주의, 정상인원리주의, 단일민족원리주의, 매니지먼트원리주의. 항상 자신의 근거율을 돌아보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소격의 천사적 읽기가 아니라면 그냥 '생물학적 종축' 뿐이라는 조금은 무서운 자각이 들었습니다.


 


   선하디 선한 보통 사람들이, 악의 없이 대세에 순응할때의 참혹한 결과는 따로 예를

댓글 4
  • 2019-01-23 10:05

    그럼 아렘님이 부탁했던 라캉과 르장드르에 관한 부분을 후기로 적어보겠습니다.  천사같은 요요님의 강의를 열심히 들으며 이해해보려 노력했지만 아직은 그 해석조차도 따라가는게 힘든 저입니다. 잘 이해를 한것인지... 아렘님만큼 강의내용을 재생산할 수 없지만, 요요님의 강의노트 요약본 정도겠네요ㅜ 그럼 적어보겠습니다.

    르장드르의 중세 해석자 혁명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위해서  그가 말하는 '거울' '소격' '텍스트' 에 대한 이해가 먼저라고 하네요^^

    르장드르가 말하는 '거울' 이란? 라캉이 말하는 거울이론에서 부터 시작해 볼 수 있습니다.
    라캉은 유아는거울을 통해 자아를 형성하게된다고  말합니다. 이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내가 아니고 이미지일 뿐인데 이것을 말해주는 것이 상징적 대타자(언어, 법)의 역할이고 이를 통해 나르시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르장드르는 거울은 나의 이미지만 비추는게 아니고 이것은 너가 아니라고 나와 분리시켜주고 소격을 생산하는 상징적인 역할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소격을 생산하는 거울는 자체만으로는 근거율이 없고 거울을 쥐고 있는 권력이 근거를 제시해야합니다. 근거율을 제시해주는 '절대적 준거'로써 신화적 대상으로써 라캉과 르장드르는 팔루스, 상징적 아버지를 제시합니다. 팔루스는 생물학적 성이 아닌 만능의 성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러한 아버지의 상징성이 위협받고있습니다. 논리적 중계점이 아니라 생물학적 아버지로 계보의 원리가 아닌 생물학적 관계로 바뀌고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단지 생물학적 종축이 된다면, 근거율을 제시하고 소격을 재생산하는 거울의 역할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사사키 아타루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소격을 되찾아한다고, 원리주의에 빠지지않고 근거율을 제시해야한다고, 이를 위해 우리에게는 해석자가 필요하다고 텍스트와 자신을 구별시켜줄 소격을 만들 수있는 자라고 말합니다. 문맹이 였던 무함마드가 코란을 읽을수 있게 소격과 조우의 기회를 주었던 천사같은 사람이겠죠~

    여담이지만~ 생물학 연구를 하는 저로써는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캐리어역할로써, 생물학적 종축으로써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도 명쾌했습니다.  존재의 이유가 명확하게 제시되고, 무지에서 벗어난 느낌이였지만,  정보뿐인 인간만이 남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전, 제가 좋아라하는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물리학 박사인 김상욱교수가 한 말이 생각이 납니다.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다".  이말을 되새기면서 앞으로 어떻게 과학을 내 일을 해야할까 잠깐 고민에 빠지게 되네요.

    전 사실 겨우겨우 내용을 따라가고 있어요. 들어도 머리에서 스쳐지나가고 있을 뿐 제 심장에 와닿지 않네요. 제대로 읽어야 안에서 재생산이 될텐데..
    하지만, 좌절하지 않습니다. 다음에 또 조우할 기회가 있을테니깐요^^ 인문학공부하기 입문자로써 흥미잃지않고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칭찬 중 입니다. 어느날 제 심장을 꺼내어 씻을 수 있는 날이 오겠죠?  기대해보겠습니다.

  • 2019-01-23 12:43

    거리 두고 떼어서 보기, "소격". 실천하기 참 힘든 말인거 같아요.

    읽으면 읽을수록 읽고 싶은대로 읽어서 더욱 망가지지 않도록, 거리를 잘 둬야 할텐데 어느 새 또 도돌이표.

    제가 줄치는 문장들에 거리를 두고, 줄치지 않은 문장들을 다시 들여다봐야겠어요.

  • 2019-01-23 13:22

    아!! 다들 너무 진지하셔요. 리스펙트!!

    사사키 아타루를 읽을 때의 생생한 감흥이 있는데

    도움을 드려야 한다는 강박에 강의에서 이런 저런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면서

    그 활발발한 감흥을 확 꺽어놓는 건 아닌가, 자못 걱정스러워요.

    다음 시간이 마지막이네요.

    정보는 확 줄이고, 각자의 감흥을 진솔하게 서로 주고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런 방향으로 고민해 보겠습니다!^^

  • 2019-01-23 22:21

    와우.. 이 집 후기와 댓글 맛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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