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이 감천이려면.......

가마솥
2023-06-10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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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요일, 합제일(合祭日)이었습니다.

 

올해는 특히 손주 하빈이 녀석이 첫 생일을 맞은 해이어서, 녀석을 조상님들께 인사시키고 싶었습니다. 녀석과 함께 가족묘 앞에서 큰절만 하는 것은 좀 밋밋한 것 같아서, 아들 부부에게 하빈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은 지 편지글을 쓰게 하였습니다. 이를 축문 형식으로 다시 축약해서 조상님께 축원하기 위해서 이지요. 사실, 조상님에게 음복을 비는 형식이지만 아들 부부가 스스로 다짐하는 소원을 만들려고요.

 

어릴 적, 할머니는 우리들 생일이 되면 떡 시루 앞에서 운율을 넣어서 ‘백살기’를 읽습니다.

“삼살제왕이 인간 세상에 내려 오실 제,....”로 시작해서, “AA장군 백살신, OO장군 백살신....” 중국, 한국을 망라한 끝도 없는 장군들이 등장합니다. 장군이니, 백살까지 못 살았을 것이 분명한데 말입니다(사실 장군이라고 호칭하지만 전쟁하는 장군은 아닙니다. 뭐랄까...신당에 모실 법한 장군? <-  정군은 분명히 아님!). 우리 한글 고어채로 쓰인 그 ‘백살기’는 한 30여분 읽는 것 같은데, 어릴 적에는 왜 그렇게 길었는지요. 어서 맛난 떡을 먹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할머니의 축원은 어린 나에겐 그냥 짜증나는 일이었죠.

초등학교 언젠가 손을 싹싹 빌면서 연방 머리를 보아리며 ‘백살기’를 읽는 할머니를 등 뒤에서 보았습니다. 할머니 정성을 보았지요. 꼭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은 하늘을 감동시켜서가 아니라, 대상인 나를 감동시켜서 이루어지는 일인 것인가 봅니다.

 

장인 어른이 쓰시던 지필묵을 꺼냈습니다.

죽은 사람을 위한 죽은(정해진) 축문을 쓰고, 산 사람을 위한 살아 있는(새로 지은) 축문을 썼습니다.

붓질이 서툽니다. 붓글씨를 좀 배워 둘껄......

며늘아이가 축원을 보고,

"이렇게 되면 정말 좋겠어요" 합니다.

난 그 말이 이쁘네요.

 

 

댓글 4
  • 2023-06-11 10:03

    축원문이 참 좋네요!
    하빈이 엄마 아빠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함께 기원해야겠어요.
    우리도 내년에 문탁 축원문 한 번 써볼까요?^^

  • 2023-06-13 08:28

    우와... 너무 멋져요.....!!
    이런 경험을 해볼 수 있다니, 하빈이가 정말 부러운 걸요!^^

  • 2023-06-17 07:55

    선글래시스 착용하고 축문 읽는 모습이 멋지십니다! 조상님들께서 가마솥님을 사이보그라고 하시려나요? ㅎㅎ

  • 2023-06-18 09:22

    축문도 멋지지마, 전 할머니의 지극정성에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 다짐하신 어린 가마솥샘이 더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