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러스 러미스 칼럼-테러와의 전쟁과 '무법'

문탁
2012-08-22 15:34
1182

경향신문 '더글러스 러미스' 의 지난번과 이번 칼럼을 퍼나릅니다.

 

테러와의 전쟁과 ‘무법’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7162119465&code=990100&s_code=ao124

 

더글러스 러미스 | 정치학자·오키나와 거주

 
2001년  9월11일 이후 국제관계가 바뀌었다고들 한다. 나는 큰 변화가 이틀 뒤인 9월13일에 생겼다고 본다. 그날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날이다. 그날 이후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 외교정책의 중심이 됐고, 필연적으로 미군 기지가 있는 많은 나라에서도 외교정책의 중심이 됐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몇몇 국가들은 침공을 받았고, 또 몇몇은 침략 위협을 받았다. 수천명이 죽었고, 수천명이 피란민이 됐다. ‘테러와의 전쟁’은 전 세계 사람들의 생명에 영향을 줬다.

하지만 아직도 ‘테러와의 전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테러리즘은 전술이다. 때로는 국가가, 때로는 반군집단이 쓰는 전술이다. 그 전술은 무작위로 죽임으로써 죽음의 공포효과를 확대한다. 가령 군인만 죽인다면, 민간인들이 두려움에 떨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정치인들만 암살한다면 정치인이 아닌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어떠한 사람’-가령 식당이나 버스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도 죽이는 정책을 쓴다면,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 타깃이 된 집단에 속한 모든 사람은 “다음 순서는 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공포가 일어난다.

 
테러리즘은 반정부 집단이 저지르지만, 국가가 하기도 한다.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방식으로 2차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서 사용된 ‘지역폭격’도 일종의 테러리즘이었다. 누군가를 매도하려는 게 아니다. ‘테러폭격’은 처칠이 영국군의 대독일 ‘지역폭격’을 묘사하기 위해 쓴 정확한 기술적 용어였다.

그러면 테러리즘이라는 전술을 상대로 어떻게 전쟁을 한다는 말인가? 자기 스스로도 쓰고 있는 그 전술을 상대로 전쟁을 할 수 있을까? 2001년 9월13일 이후 미국은 ‘테러’의 정의를 ‘반정부 집단만’ 쓰는 무차별 살상 전술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꾸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새로운 정의로도 그런 집단에 대한 ‘전쟁’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과거엔 국가 정책에서 ‘전쟁’과 ‘법 집행’은 구별됐다. 전쟁은 다른 국가를 상대로 또는 국가 내에서 독립이나 혁명을 위해 싸우는 조직을 상대로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전쟁은 어느 한쪽이 승리하건 평화조약이 맺어지건 결국 평화로 이어진다는 논리 안에 존재했다. 하지만 ‘테러리즘’은 국가도, 조직도 아니다. 그것에는 침략할 중앙본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정전협상을 할 중앙위원회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전쟁이 어떻게 종식될 수 있을까?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최악의 악몽이 시작했다. 바로 출구 없는 전쟁이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어마어마한 실수를 범했다. 동시에 얼마간 이득도 챙겼다. 과거에 비정부 테러리즘은 범죄행위로 간주됐다. 그 말은 테러리즘은 법 집행의 규칙을 따라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에게 테러리즘 의혹을 씌우려면 수사관들은 체포 전에 증거를 모아야 했다. 체포된 사람은 ‘용의자’로서 권리를 가졌다.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권리, 범죄를 입증할 증거를 요구할 권리, 증인 신문을 할 권리,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말이다. 이 모든 것들이 정부로서는 매우 성가신 일들이었다. 게다가 그 용의자가 결국 무죄가 될 수도 있었다.

 
 
 
 

지난번 칼럼에서 나는 미국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이 어째서 전쟁 방식과 법 집행 방식의 어색한 조합인지 밝혔다. 그 논지를 거듭 말하자면, 법 집행의 경우 수사관들은 증거를 찾아, 용의자를 가려내고 그들의 위치를 알아내도록 훈련받는다. 증거가 충분할 경우 그들을 체포하게 된다. 미국 영화에서 수사관들은 종종 용의자를 사살하지만, 실제 세계에서는 저항하지 않는 용의자를 사살하는 것은 살인이다. 용의자는 법정에서 유죄로 선고받은 뒤에야 처벌받는다.

반면 전쟁의 경우, 다른 규칙들이 적용된다. 적군은 범죄자가 아니다. 군인들은 전쟁법을 위반하지 않는 이상 그들이 무슨 행동을 하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군복을 입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상대편 군인에게 합법적으로 죽임을 당할 수 있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적(敵)은 ‘테러리스트’ 또는 ‘불법적 전투원’으로 정의된다. 그 말은 그들이 적군도 되고 범죄자도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어느 쪽의 권리도 갖지 못한다. 그들은 군인과 같이 현장에서 사살될 수 있지만, 생포될 경우 군인과 달리 전쟁포로가 아니라 범죄인처럼 대우받는다.

하지만 범죄 용의자와 달리 그들은 재판이나 인신보호영장 없이도 구금될 수 있다. 따라서 테러와의 전쟁은 새로운 범주의 인간을 만들어냈다. 어떠한 법적 권리도 갖지 못한 사람 말이다.

쿠바 관타나모 미군기지가 이들을 수용하는 미국 감옥으로 선정된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가진 법적 지위 때문이라고 한다. 미군이 100년도 넘게 보유한 그 기지에서 쿠바법은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미국 형법이 적용되지도 않는다.(그곳은 법적으로 미국이 아니다.) 미군 법도 적용되지 않는다.(수감자들은 미군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제법도 적용되지 않는다.(수감자들은 전쟁포로가 아니고, 미국 정부도 그렇게 주장하지 않는다.) 수감자들은 법의 블랙홀에 있는 셈이다. 어떠한 법도 그들에게 가닿을 수 없다.

이 수감자들이 처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수감자와 간수 사이의 대화를 예로 들어보자.

수감자: 왜 내가 재판도 없이 이 감옥에 갇혀 있는 거죠?

간수: 왜냐하면 당신은 재판받을 권리가 없기 때문이죠.

수감자: 왜 내가 재판의 권리가 없죠?

간수: 불법적 전투원이기 때문이죠.

수감자: 내가 불법적 전투원이라는 결정이 어떤 공판에서 어떤 증거에 기반해서 이뤄졌죠?

간수: 당신은 그런 공판에 대한 권리가 없어요. 증거를 확인할 권리도 없고.

수감자: 왜 나는 그런 권리가 없죠?

간수: 왜냐하면 당신은 불법적 전투원이기 때문이에요.

일부 용기있는 미국 인권 변호사들이 이 수감자들의 권리를 되찾아주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의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이 포로들 중 일부를 풀어준 것도 사실이다. 미국이 풀어준 이들은 대개 실수로 잡은 사람들이었다. 인권 사각지대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그리고 사살도 계속되고 있다. 신문들은 미국 대통령과 그의 보좌관들이 그 사살 리스트에 누구를 포함시킬지 논의하기 위해 매주 한 번씩 모인다고 보도했다. 정부의 최고위 관리들은 각각의 용의자에 대해 수집된 정보를 평가한다. 그 정보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스파이와 다른 정보기관에서 나온다. 용의자들은 그런 회의가 열리는지도 알지 못한다. 대통령이 각각의 건에 대해 직접 승인하거나 불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사형 결정이 내려진다면, 그 사람은 로봇 비행기의 로켓에 의해 사살된다. 그 사살 자체는 무작위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 자체를 ‘테러’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이것의 명칭은 ‘암살’이 가장 적당할 것이다

반면, 전쟁의 규칙 아래서는 적군은 전투에서 사살할 수 있다. 생포하더라도 범죄인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들은 전쟁 포로로서의 권리를 갖는다. ‘테러와의 전쟁’ 규칙에는 이 두 가지 시스템이 섞여 있다. 이로써 미국은 법 집행의 규칙 아래에서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다. 바로 용의자를 사살하는 것이다. 거의 매일 미군이 좀 더 많은 ‘용의자’들을 사살했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그마저도 요즘엔 대개 로봇비행기로 한다고 한다. 미국은 또 전쟁법하에서도 할 수 없었던 것을 할 수 있게 됐다. 포로를 범죄자로 취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범죄자들은 일반 범죄 용의자들과 같은 권리를 갖지 못한다. 부시가 도입한 이 새로운 정책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하에서도 기본적으로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댓글 1
  • 2012-08-22 17:27

    법의 블랙홀!

    그래서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힌 이들은

    전쟁포로도 범죄자도 아닌, 법 밖의 지위(호모 사케르)를 갖는군요..

    법은 법에서 배제되는 자를 낳는다는 역설!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말의 역설적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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