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학교> 세 번째 시즌 두 번째 셈나 후기

세션
2022-08-28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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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5일 3장 사유의 이미지 1-3절읽었습니다. 시즌3 들어서면서 빠지신 두분 빼고는 열두분 모두 참석하셨습니다. 생각해보니 모두 오신 건 좀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발제는 '가슴아픔'으로 인상적이셨던ㅋㅋ 아렘샘과 제가 했고요. 정말 발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군요. 지난주 여울아샘이 발제하실 때 대체 이렇게 어려운 책을 어떻게 발제를 하나 생각을 했는데 역시나 예상대로 죽을 맛이었습니다. 걍 읽는 것 만으로도 멘탈 나가는 책을 이야기를 만들고 내용을 이어지게 하려니 거의 고행이라는^^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아렘샘은 공감하실듯, 여울아샘께도 심심한 위로를). ‘발제자의 인권’을 위해 다시 메모와 강독으로 돌아가자고 심각하게 주장하고 싶어졌습니다!!  포기할 수 없는 진도는 어디 갔든지 간에ㅋ. 하긴 이 모든 건 읽기와 쓰기에 어려움이 많은 제 개인에 한정된 이야기이긴 합니다. 그래도 악명높은 차반이니까 앞으로 발제하시는 분들 걍 대충 하시기를 진심 급 제안합니다.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 차반 발제는 정말이지 좀 심하게 힘들었습니다.

 

3장은 개인적으로 붕 떠있는 듯한 챕터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오히려 1,2,4,5장으로 쭉 가면 더 자연스러울 것 같은. 그래도 사유의 발생 역시 인식능력들 간의 강도와 이념의 개입에 의한 것이라는 내용은 차반의 일관된 맥락 아래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셈나에서 중요하게 이야기했던 질문들은 가마솥샘의 칸트의 이성 지성 상상력의 구분에 관한 것과 호수샘의 사실적 차원/권리적 차원의 의미, 그리고 매실샘과 요요샘의 ~밖에 될 수 없는 것, 칸트의 숭고에 대한 질문 등이었습니다. 모두들 셈나에 참여하셨고 위의 이야기들은 꽤 길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내용을 따로 요약하거나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보다 시즌3에 들어서면서 우리 셈나는 들뢰즈의 이론에 대해 다소 회의와 혼돈에 빠져드는 면이 있습니다. (물론 이미 그간 줄기차게 들뢰즈의 선배 철학자들에 대한 천편일률적인 비판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하셨던 아*샘이 계셨었지만 말입니다^^.) 그 혼돈은 우선 재현과 동일성의 철학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들뢰즈조차  심하게 말하면  결국 ‘차이’라는 본질을 내세우는 또 다른 형태의 동일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건 아닌가라는 약간의 회의감에서 시작되고요. 이번 셈나에서 이야기됐던 호수샘의 말씀, 들뢰즈의 ‘역설감’이 혹시 ‘역설감이라는 공통감’은 아닐까 라든가, 정군샘의 질문, 들뢰즈가 주장하는 사유라는 것이 혹시 변형, 파괴 등 또 하나의 다른 공통감을 전제로 하는 현대 예술의 창작모델에 의존하는 건 아닌가 와 같은 문제 제기들이 그런 것들과 무관하지 않겠죠. 하지만, 그보다 더 우리를 혼란스럽고 때로는 무기력한 느낌까지 들게 하는 것은 들뢰즈의 철학을 현재 우리의 정치적, 윤리적 상황에 적용했을 때의 문제들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 시작은 ‘2장 대자적 반복’의 내용일 것입니다. 2장의 내용에 의하면 주체적으로 의식하고 의지하며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는 사실상 주체적 실체가 아니죠. 우리가 하는 생각이나 행동도 우리 힘으로는 전혀 어찌할 수 없는 애벌레 주체의 수동적 종합에 의한 것이고 우리의 인식 방식인 재현이나 재인도 잠재적 사태에서 강도와 이념의 작동들의 효과일 뿐이니까요. 이런 마당에 우리가 의지로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우리가 과연 윤리적으로 능동적 주체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피할 수 없는 질문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래도 그에 대한 답이 아예 벽에 부딪친 건 아니었습니다. 어느 정도 니체나 스피노자, 들뢰즈의 논조에 맞춰 정리되기는 했으니까요.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들뢰즈식 윤리적 주체라는 건 우리의 자유 혹은 윤리를 가능하게 하는 ‘힘’을 의미할 거라는 것이었죠. 그런데 이 논의에 다시 불을 붙이신 분이 있으십니다ㅋ. 지난 시간의 일이기는 하지만, 정군샘은 “그래 좋다. 능동이든 수동이든 들뢰즈식의 윤리를 행했다치고. 그런데 그것이 과연 옳은 건지 어떤 건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들뢰즈는 사실 그 판단의 근거조차 없애 버린 셈인데 그게 과연 좋은 걸까?” 라고 문제 제기하셨죠. 이에 대해 우리는 무슨 답을 할 수 있을까요? 스피노자처럼 옳고/그름과 좋고/나쁨은 다른 문제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아니면 아직도 ‘근거’를 찾는 건 우리가 들뢰즈의 생성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답해야 할까요? 또 아니면 좀 더 정치적으로 나아간 텍스트인 ‘천의 고원’을 읽고 이야기해보자고 해야 할까요? 지금으로서는 뭐라고 답하기 어렵습니다. 그저 이 질문은 아렘샘 말씀대로 앞으로 셈나가 계속되는 동안 우리가 가지고 가야 할 중요한 숙제 중 하나이겠죠. 제게 ‘차이와 반복’은 15년전 했던 <자연학 세미나>의 연장입니다. 주관심사는 늘 자연이지만 인간에 대해서도 관심 가져야 한다면 ‘차이와 반복’의 인간은 우리가 까맣게 잊고 있던 '자연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고민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다 읽고 나면 그에 대해 뭔가 정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거의 불가능해 보이지만요. 후기가 생각보다 길어졌네요. 어려운 챕터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모두 홧팅! 입니다.

댓글 7
  • 2022-08-29 00:00

    "저자가 이미 제시한 기획에 따라 하나의 대단하고 중요한 저작을 온전히 그리고 영구적으로 완결할 전망을 가지고 있을 때, 독자가 그의 노력을 저자와 합하는 것은 독자에게 적지 않은 매력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아마 지금 우리는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이라는 대단하고 중요한 저작에서 그의 그획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한 잠정적 합의 정도는 이루고 있지 않은가 싶네요.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만, 저자는 저작만 남기고 지금 여기에 없습니다. 그가 열어가는 전망을 따라 독자인 우리가 우리의 노력을 조금 더 합쳐 보시지요. 저 말은 제말은 아니고 칸트 말이었습니다. (칸트, 순수 A판 머리말)

    다음으로 인권이 희생됨을 느끼실 두 분 발제자분 고생하셔요 ~~~

  • 2022-08-29 19:44

    감각밖에 할 수 없는 것, 상상밖에 할 수 없는 것, 사유밖에 할 수 없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이 문제와 관련하여 세미나에서 세션님이 '경험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으로 나누어서 생각해보자, '감성적인것과 기억과 사유의 이미지'는 경험적인 것 쪽에,' ~밖에 할 수 없는 것'은 초월적인 것 쪽에 두면 어떨까'라는 이야기를 했는데(맞나요?ㅎ) 그 조언이 제게는 뭔가 그림을 그려볼 수 있겠다는 희망을 주더군요. 

    희망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경험적/초월론적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니, 제가  들뢰즈의 '~밖에 할 수 없는 것'을  여전히 경험적인 관점에서 보려고 하면서 점점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는 걸 알게 된거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대로  '공통감과 양식'을 벗어나서 이 문제를 바라보게 된 건 아니지만요. 다만, 제가 어디서 헤맸는지를 조금 눈치챘다고나 할까요?

    경험속에서 자꾸 예시를 찾아내고, 그걸 통해서 이해하려는 방식이 바로 '사유의 이미지'에 매달리는 방식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칸트의 숭고와 관련해서도 제 질문은 같은 식이었던 것 같아요. '나는 숭고미 앞에서 아무 생각도 안나던데요!' 이런 반론이 뭐랄까, 비판을 위한 비판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들뢰즈가 사실의 차원이 아니라 권리의 차원에서 '사유'의 문제를 생각하자고 하는데, 저는 여전히 '사실의 차원'에서 반박의 여지를 찾는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 들뢰즈가 말하고 싶었던 중요한 건 칸트가 바로 그런 지점, 인식능력들 간의 조화가 아니라 부조화가 일어나는 지점, 그동안 우리에게 잘 작동하던 어떤 것이 폭력적으로 파괴되는 지점을 발견하고 포착했다는 것에서 출발하자는 것이었는데 말이에요. ㅎㅎ

    들뢰즈가 사실의 차원이 아니라 권리의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정초하려고 하는 것의 의미도 세미나를 하면서 좀 더 확실히 감을 잡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혼자서 읽을 때는 그 부분을 살짝 놓쳤었거든요.ㅋ

    3장이 사유의 이미지에 관한 것인데, 사실 우리가 뭔가를 아는 것은 대개가 '이미지' 에서 출발하잖아요. 사유는 이미지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사유의 이미지로 사유를 생각해 왔다는 것, 그런 것도 새롭게 생각하게 되네요. 이렇게 까지 말하고 나니 정말 사유밖에 할 수 없는 게 바로 사유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뭐, 아직 애매하더라도 또 계속 읽어나가면서 차차 알아지게 되겠지요. 어차피 사유는 내가 (능동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부조화의 상황에 직면해서)사유하도록 강요받게 되는 거니까요. 알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없는 것을 읽을 때 비로소 기존의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일테니까요. ^^

    아무튼 새로운 형식에 아주 조금 더 적응이 되는 두번째 세미나였던 것 같습니다.^^

     

    • 2022-08-29 22:22

      세션샘 말씀대로 단어와 문장들을 초월론과 경험론에 각각 던져 놓고 이해하는 방식은 유용합니다만, 다만 한 가지 단서를 붙여야 합니다. 머리말에서 이미 들뢰즈는 자신의 철학을 '초월론적 경험론'이라 밝혀 놓았으니, 아직 경험론이란 말을 조금 살려 둘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초월론의 상대/반대적 의미로 경험론에 단어들을 던질때는 한정어를 붙여야 합니다. 그러니까 초월론쪽의 상대어로 경험론을 언급할 때 이 경험론은 기존 철학이 말하는 경험론 혹은 재현의 영역에서 논해지는 경험론이라고 해야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들뢰즈의 감각 밖에 할 수 없는 것(지난 시간), 상상 밖에 할 수 없는 것(지난 시간), 사유 밖에 할 수 없는 것 (이번 주에 나올 얘기)들이 사실은 기존 철학에서 보자면 들여다 보지 않았거니 보고도 그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감각 할 수 없는 것, 상상 할 수 없는 것, 사유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들뢰즈에게 (초월론에서) '~밖에 할 수 없는 것'은 재현으로 떨어진 기존 철학에서는 모두 '~할 수 없는 것'이란 얘기지요. 좀 기기묘묘합니다만 이런 기기묘묘함이 조금 아름답습니다.  감각밖에 할 수 없는 것 = 감각할 수 없는 것?  ㅎㅎㅎ

  • 2022-08-29 21:03

    저는 텍스트를 읽는 게 힘든 것과는 별개로 들뢰즈가 하고 있는 이야기 자체는 점점 간단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3장에 이르고 보니 더 그런 것 같고요. 지금까지 철학이 대부분 가지고 있던 전제, 동일성('A는 A다')은 오로지 드러난 것만 보여줄 뿐이다, 드러난 것이란 뭐냐? 경험, 기억, 감성적인 것, 자기 자신과 동일한 것들입니다. 철학은 그런 것들이 가능하게 만드는 지반(초월성)을 사유해야 한다는 생각을 들뢰즈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그런 동일성을 가능하게 했던 지반으로 사유되었던 '시간'이 2장에서 완전히 다른 의미로 바뀝니다. 시간 안에서 존재가 구성되는 게 아니라 시간 자체도 어떤 '종합'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죠. 다시 말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 있는 겁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동일한 것이 없습니다. 다들 임시로 살고 있는 것이고요. 그런 이유로 결국엔 모든 것이 바뀌어 갑니다. 그런 이유로 '사유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A의 A임이 중단되는 사태'(세미나 때도 예로 들었던 한남에게 닥쳐온 페미니즘, 어느 노동자의 분신 같은 것이죠. 다른 예들을 더 생각해 볼 수 있을겁니다)라고 밖에 답할 수 없는 것일테고요. 이렇게 놓고 보면 이 모든 발상이 누군가를 생각나게 합니다. '지금까지 서양철학은 오직 존재자에 대해서만 물었다. 물어야 할 것은 존재다'라고 말한 그 사람 말입니다. 

    이야기 자체는 간단한 것 같은데.... 어쩐지 저는 그래서 점점 더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진 능동성보다 더 근본적인 게 우리에게 주어진 수동성이라고 한다면, 능동성은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인지. 어떤 '옳음'에 근거한 '능동성'을 단순히 '가상'으로 결론짓는다면 조금 실망스러울 것 같기도 하고요. 이건 제가 '능동성'에 무슨 애정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이 문제를 생각지도 못한 절묘한 방식으로 해결해 주길 바라는 팬심 때문에 그런 겁니다. 조심스럽게 예측해 보자면 5장 후반부쯤에 이르면 이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마 들뢰즈는 니체가 (도덕을 몰아낸 후 자리를 차지한) 니힐리즘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하고요. 아니면 뭐 아예 뭐라 말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되기' 이야기를 했던 건가 싶기도 하네요. 

     

    새로운 세미나 형식은... 저는 일단 좋습니다만, 분량이 조금 부담스럽기는 하네요. 어떻게든 30쪽을 안 넘기는 방향으로 노력해 보겠습니다. ㅎㅎㅎ

    • 2022-08-29 22:31

      난해함 아래로 심플하게 바탕이 있다는 정군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세미나가 이런 형식, 저런 형식을 고루 시험해보고 있는데, 권리적 차원이 아닌 사실적 차원에서 발제자의 인권이 훼손되고 있는 건 맞는거 같습니다. ㅎㅎ

  • 2022-08-29 22:53

    지난 시즌이 끝나갈 무렵 "그래서 비재현적 사유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들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3장이 지금 독자가 궁금해할 만한 것을 때맞춰 이야기하는 장처럼 느껴져요. 지난 시간 사유하기와 사유의 이미지가 어떻게 다른가에 이어서 그러면 과학적 사고는 사유가 아닌가라는 질문이 나왔어요. 지성이 하는 일은 모두 재인의 영역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사유가 아닌 게 되는가, 이어 자연과학의 기초를 마련한 칸트의 작업이 모두 사유가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가, 라는 참 큰 질문이 이어졌고요. 그래서 사유란 무엇인가... 그런데 다음 세미나 부분을 읽으니 들뢰즈는 "우리가 아직 사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 그리하여 사유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사유라고 말하는 것 같네요. 정말이지 사유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혼란에 빠진 우리의 표정들을 떠올리면 이것은 어리석음, 짓궂음, 광기의 현장이 맞는 것 같습니다. 🙂 

     

    부담스러운 분량은 이번주까지만으로.... 대충 계산을 해보면 매주 스무쪽 내외로 가도 마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ㅎ 

  • 2022-08-30 00:22

    지난 시간 이야기는 충분히 한 것 같아서 거의 안했더니 쌤들께서 보충 설명을 많이 해주셨네요^^.  초월론적 경험론vs 경험적 초월론. 들뢰즈가 전자라면 후자는 칸트에 가깝겠죠. 그렇다고 해도 아렘샘 말씀대로 들뢰즈에서 초월론의 영역과 경험의 차원이  분리될 수 있는 것은 전혀 아니겠죠. 번쩍이는 번개에서 번개를  가능하게 했던 바탕을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요. 다만  우리가 인식할 수 없기에 그 존재를 잊거나  잘 이해하지 못하는 초월론적 영역이나 그것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게 들뢰즈의 중요한 핵심인 것 같아요. 그걸 모르는 건 아닌데 막상 공부할 땐 저도 다시 재현의 영역에서 헤매게 되더라구요. 아마 4,5장을 하면 지금보단 많이 이해하게 되겠죠. 희망사항이기도 하고요.

    초월적>초월론적으로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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