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시>를 읽는 것일까? <시경>을 읽는 것일까?

문탁
2019-10-14 09:07
530

&

우리는 <집전>을 읽는 것일까? <좌전>을 읽는 것일까? 

 

1.

지난번에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전, 처음부터, <논어>로 동양고전에 입문하는 그 순간부터, (논어 속에 인용된) 시가 어려웠다고. 어쩌면 생소한 단어들 때문에, 어쩌면 맥락도 없이 단장취의하듯 가져다 쓰는 공자님의 속마음을 헤아리느라, 어쩌면 고대의 ‘시’가 가진 다채로운 용법 때문에 (외교? 문학? 정치? 교화?)... 도대체 공자님은 왜 <서>도 아니고 <역>도 아니고 <시>를 “공부”해야만 한다고 주구장창 주장하셨을까...꺼정.

그리고 이제야 전, 제가 왜 그렇게 <시>를 어려워했는지 좀 감이 잡힙니다. 그것은.... <시>를 읽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공자님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수천편의(으로 짐작되는) 노래들. 바로 <시>!! 그걸 어찌 읽어야 하는지, 그 디딤돌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공부를 좀 해 보니... 삼천년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이 나름 그 디딤돌을 놓았다는 건 알겠지만... 그 디딤돌들이 뭔지는 점점 눈에 들어오지만...여전히 삼천년 전의 노래를 만날 수 있는 저만의 비밀통로는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여, 지금도 여전히 어렵습니다. ^^

 

 

 

2.

3분기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본격적으로 <시경>의 ‘풍(風)’을 읽고 있습니다.<시경> 305편 중에 ‘풍’이 160편. 15개 지역에서 수집한 160편의 ‘민요’ 중에 3분기 동안  [주남] 11편, [소남] 14편을 다 읽고, 한 묶음으로 칠 수 있는 [패](19편), [용](10편), [위](10편) 중 [패]와 [용]을 읽었습니다. 160편 중 54편을 읽었으니 ‘풍’의 34%를 읽은 셈입니다.

 

버뜨..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읽었을까요? 우리가 읽은 것은 <시>일까요? <모시>일까요? <집전>일까요? 아니 <모시>나 <집전>이 아닌 <시>라는 게 있을까요?

 

관저부터 토저까지.. [주남]의 첫 번째 시부터 여섯 번째 시까지는 주인공이 문왕의 부인. 그 시들은 문왕 부인의 덕을 칭송한 글......이랍니다.^^  (그렇다면 이게 왜 ‘송’으로 가지 않고 ‘풍’에? ㅋㅋ)

백주부터 종풍까지... [패풍]의 첫번째 시에서 다섯 번째 시까지는 위 장공이 자신의 정숙한 조강지처 장강을 버린 스토리 (혹은 장강이 버림받은 스토리)이구요,

신대부터 정지방중까지... [패풍]과 [용풍]에 걸친 다섯 개의 시는 위 선공과 선강의 막장 드라마를 다루고 있습니다.

 

고우영의 <열국지> 1권 중

 

네...맞아요....우리가 읽은 것은 <시>라기 보다는 오히려 <좌전>? 아니 정확히는 <좌전>의 시적 리메이크인 듯 싶습니다.(그게 바로 <모시>!!)

그러면 주자는 과연 <모시>와 다른 방법론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전 <시경>을 읽을수록 "음...아닌디..."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자는 <모시>와 근본적 단절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못했습니다. 한나라에 이르러 <경>이 된 <시>, 즉 <시>를 <시경>으로 읽는 한, 모시와 근본적 단절을 행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모든 <경>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정치적 교화를 위해 활용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유가의 이념이고 사대부의 사명입니다.

 

3.

버뜨, 현대에 들어와 더 이상 <시경>(특히 ‘풍’)은 <경>이 아니라 그야말로 민간가요로, 그리고 풍의 대부분은 연애시로 읽힌다고 합니다. (민요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주제가 남녀상열지사, 노동의 고달픔, 가족에 대한 그리움, 위정자들에 대한 원망....그런 것이겠죠?)

그런데 도대체 ‘연애시’로 읽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시경집전>말고 <시경>의 다른 번역본들을 좀 봤습니다. 그런데 음...쩝....좀 거시기 합니다. 

연애시로 해석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연애시라는 게 거의 근대적 주체의 내면, 특히 사랑의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면서 번역하고 있더군요. 

대표적인 연애시(?!)로 일컬어지는 <표유매>를 예로 들자면, "님을 기다리는 안타까운 처녀의 마음을 이렇게 솔직하고 담백하게 표현한 시가 또 있을까?" 라고 해석하는 식입니다.

그런데 삼천년의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텐 미니츠>나 <제발>처럼 읇조려졌을까요?  그들의 짝찟기가  근대인들의 낭만적 연애처럼 이루어졌을까요? 그럴리가 없잖아요....ㅋㅋ.....

 

 

 

      "이런 옛 가요에서 두드러지는 사실 하나는 어떠한 개인적 감정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이런 개성 없는 여인들의 몰개성적인 감정만 표현하고 있다. 사실 가요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감정보다는 차라리 만남, 약혼, 불화, 이별 같은 감정적인 주제들이다...한 개인이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감정만을 노래한 것도 없고, 또 특별한 경우라고 할 것도 없으며, 독특한 방법으로 연애하거나 고뇌하는 사람도 없다. 개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가장 흔한 방법으로 사물을 표현하려고만 하고 있다. " (마르셀 그라네, <중국 고대 축제와 가요>, 살림, p114)

 

하여, <시>를 더 이상 정치적 교화로 해석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을 제대로 다루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모시>도 아니고 <집전>도 아니고 근대의 낭만적 연애시도 아닌 방법으로 '풍'을 해석하는 방법은?

나만의 비밀통로를 만드는 방법은?

4분기도 그걸 붙들고 끙끙거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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