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의 법.술.세. 탐구(1) - 법은 왜 존재할까?

두루미
2024-03-26 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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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1년

 

중국 최초 성문법을 공포한 인물은 정자산이다. 정나라는 당시 강대국 진(晉)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끼어서 양쪽 모두에게 조공을 받쳐야 하는 약소국이었다. 이전 보다 두 배로 늘어난 조공을 받치기 위해 농업 생산량의 획기적인 증대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관개용수 개발에 착수했고, 이 개발을 장악하고 있던 지방 호족 간에는 치열한 세력다툼이 벌어졌다. 그는 이때 내란을 안정시킨 공로로 국정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고, 이후 재상이 되었다. 그가 펼친 정책 가운데 가장 주목받은 것은 성문법전의 편찬과 공포이다. 종묘의 제기인 청동명문에 새겨 넣은 구체적인 법조항은 전해지지 않지만, 『좌전』에 “정나라 사람이 형서를 주조했다”는 기록으로 남아있다.

 

귀족 등 지배세력은 자산이 형벌 규정을 성문화하는 것에 반대했다. 대표적인 인물은 진(晉)나라 어진(賢人) 대부로 알려진 숙향이다. 그는 자산이 형서를 주조하자마자 그에게 편지를 보내어, 백성들이 구체적인 법조항을 알게 되면 도리어 다툼(소송)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쩌면 그의 예언은 적중한 셈이다. 오늘날 우리는 법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이후 공자 역시 법으로 다스리면 백성이 법을 피하려고만 하고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며, 귀족뿐 아니라 백성도 예로 다스려야 한다고 당시로는 획기적인 주장을 펼쳤다.(『논어』 「위정」편 3장) 자동차를 쌩쌩 몰다가 과속 카메라 앞에서만 규정 속도를 준수하거나 혹여 라도 속도위반 과태료를 받을라치면 재수 없게 걸렸다는 정도로 치부하는 내 모습을 떠올리면 공자가 법 앞에선 인간의 내면을 상당히 예리하게 파악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유가는 법이 아니라 예법대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귀족에게는 죄를 벌하는 법은 없었지만 예법이라는 강력한 사회적 구속 수단이 있었다. 이것이 유가의 예치이다. 그러나 당시 정나라 귀족이 성문법을 반대한 진짜 속내는 법을 주관적으로 좌지우지하는 자신들의 특권이 박탈되는 막기 위함이었다. 자산이 성문법을 집행한 지 3년 만에 그의 정책은 백성의 지지를 받는다. 그의 성문법은 백성의 억울함을 해소시키고 귀족의 전횡을 막기 위한 수단이었다.

 

한(韓)나라 공자(방계왕자)였던 한비. 그가 나고 자란 한나라는 정자산이 만들어 놓은 법가적 분위기를 물려받은 나라였다. 한나라는 진(晉)나라에서 갈라져 나온 씨족세력들이 춘추시대 막바지 분리 독립한 나라이다. 이후 진(秦)나라와 나머지 여섯 나라(조, 위, 한, 제, 연, 초)가 합종과 연횡으로 대립하는 전국시대가 열린다. 당시 수리관계 기술의 발전으로 곡물 생산을 증대시키기 위해 너도나도 동쪽 화북 대평원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소국이었던 한나라도 이를 위해 정나라를 무너뜨리고 한나라 수도를 신정 등지로 옮겼다. 한비는 이후 100년 뒤 태어났다. 그는 정나라의 문화적 토양 속에서 자란 한나라 사람이었다.

 

 

2. 상앙의 변법 – 귀족의 특권을 박탈하다

 

정자산이 새벽 일찍 외출하여 동장 거리 문밖을 지나다가 아낙네의 곡성을 듣자 마부의 손을 누르고 (그 소리를)들었다. 얼마 있다가 관리를 보내어 그를 신문해 보니 남편을 손으로 목 졸라 죽인 자였다. 다른 날 그 마부가 묻기를 대인께서 어떻게 그것을 아셨습니까? 라고 하였다. 자산이 말하기를 ‘그 울음소리에 두려워하는 기색이 있었기 때문이다...’(『한비자』 「난삼」편 5장)

 

 

이 사건에서 한비는 “자산의 정사가 번잡하다.”고 비판한다. 남편이 죽었는데 아내의 곡소리가 슬프기보다는 두려워하는 기색이라는 점을 자산이 눈치 챘기 때문에 사건의 실마리가 풀렸다. 그런데 그는 왜 자산의 지략을 칭송하기보다는 우려했을까? 자산이 아무리 뛰어난 기량을 갖추었더라도 수많은 사건을 혼자서 해결하려면 번거로울 수밖에 없다. 그는 노자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지려(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리면 나라가 손해를 입을 것이다.” 그는 효율적인 국가 운영을 위해 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런 관점에서 자산은 법을 공포하는데 그쳤을 뿐 절차에 맞는 법집행에는 소홀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산이 여전히 예치에 머물렀다고 비판한다. 예치란 인치(人治), 즉 법이 아니라 사람의 재량에 따른 정치를 의미한다. 만약 자산이 아낙네의 곡성을 듣고 눈치 채지 못했더라면 남편의 억울한 죽음은 영영 밝혀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매번 자산의 지략에 의존한다면 그의 지략이 미치지 못하는 수많은 사건들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한비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될 수 있는 법으로 통치되는 사회를 꿈꿨다.

 

그렇다면 한비에게 법가의 모델은 누구였을까? 「화씨」편에는 법 앞에 귀족들을 무릎 꿇린 대표적인 인물로 상앙과 오기가 소개된다. 초나라 재상이었던 오기는 귀족의 작위와 봉토를 몰수하고, 관리의 봉록을 폐지하는 등 대대적인 개혁을 실시했다. 그로부터 60년 뒤 상앙은 위(衛)나라 출신으로 진나라 효공에게 발탁되었다. 그는 농지개혁을 비롯한 도량형 통일까지 진제국 통일의 기초를 닦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가 효공에게 시대에 따른 변화를 요구하지만, 효공은 주대의 예법을 거스를 경우 세상으로부터 받게 될 비난이 두려웠다. 당시 유가를 제외한 나머지 제자학파들은 고대의 권위에 대해 무조건적인 충성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법가의 경우는 선왕의 유래를 찾는 관례마저 금지시키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를 넘어설 수 있는 법집행의 정당성이 필요했다. 그런 측면에서 그는 상황과 시대의 변화에 맞는 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효공은 ‘선왕의 도가 언제 적 도인데 지금도 유효 하느냐’는 그의 문제제기에 설득되었다. 이로 인해 진나라는 귀족의 특권이 폐지되고 이들에게도 예외 없는 법령이 공포되었다. 또한 공적에 따라 상을 주었기 때문에 공적 없는 귀족은 더 이상 대접받을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법을 바꿔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상앙의 변법(變法)이었다.

 

상앙은 한비에게 법에 의한 지배, 즉 인치(예치)가 아니라 법치의 본보기를 보여준 셈이다. 그가 변법을 시행한지 2년 만에 태자가 법을 어기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에게는 왕위를 이을 태자일지라도 법 앞에 예외일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위에서부터 법을 지키지 않으면 법이 제대로 시행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태자를 직접 벌하지 못하고 대신 태자의 스승을 처벌한다. 이를 보고 백성은 모두 변법을 따르기 시작했고, 여러 해가 지나자 백성은 변법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오히려 귀족들은 법집행이 각박하다며 불평이 많아졌고 급기야 효공이 죽자 상앙은 쫓기는 신세가 되어 죽임을 당한다. 한비는 상앙이야말로 법을 공포했을 뿐만 아니라 절차에 맞게 법집행을 함으로써 나라의 기강을 바로세운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3. 한비의 법불아귀 – 법 앞에 왕도 예외일 수 없다

 

법은 귀한 사람이라 하여 아첨하지 않고 승묵은 나무가 휘었다 하여 굽혀 가며 잴 수 없습니다. 법을 적용하는 데 있어서는 지자라고 해도 변명할 수 없으며 용자라 해도 감히 다툴 수 없습니다. 그 지은 죄를 벌하는 데 있어서는 중신이라 하여 피할 수 없고 선행을 상주는 데 있어서는 서민이라 하여 빠뜨릴 수 없습니다.(『한비자』 「유도」편 9장)

 

법불아귀(法不阿貴), 법은 귀한 사람에게 아첨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말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을 형평성과 공정성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비는 법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법치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것을 간파했다. 따라서 공평무사하게 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왕도 예외일 수 없다. 그는 한나라 왕에게 이처럼 유세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후 한나라가 진나라의 공격을 받게 되자 진에 사자로 보내졌다. 『한비자』에는 왕이 신하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더욱 철저히 법을 지켜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왕은 인재 등용이나 관리의 공적 판단 및 선발을 임의대로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주관적 의지를 배제하고 모든 것을 법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왕조차 법에 따라 통치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당시로는 진보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법조항으로 강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왕에게 얼마나 실효성이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한비의 법불아귀는 법치의 측면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었을까? 그는 법의 적용에 있어서 상벌의 원칙을 강조한다. 이때 왕은 측근과 다른 주변 권력자들에게 자신의 상벌 권한을 나누어주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권력자의 힘은 상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논어』에는 노나라 왕을 업신여기고 전횡을 휘두르는 삼환씨(맹손씨, 숙손씨, 계손씨)가 등장한다. 한비의 관점에서  이들 세력이 막강한 이유는 왕이 신하들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삼환씨가 신하들에 대한 상벌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에 신하들은 왕보다 삼환씨를 추종하게 된다. 사람은 이득이 되는 사람을 따를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벌을 내리는 사람도 두렵기 때문에 따른다. 왕은 상과 벌이라는 두 개의 칼자루를 쥐고 신하(귀족)를 통제해야만 삼환씨와 같은 세력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왕이 상벌의 권한을 독점한다고 해서 그가 임의대로 상벌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상벌에도 왕이 따라야 할 원칙이 있다. 「외저설 우하」편에는 “사물의 이치를 따르는 것”이 상벌의 원칙이자 올바른 통치의 방식이라고 소개한다. 이런 점에서 상벌의 원칙은 법불아귀의 주요한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법을 분명하게 제시하면 지혜있는 자가 어리석은 자를 침탈할 수 없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침해할 수 없으며 다수가 소수를 포악하게 할 수 없다. (『한비자』 「수도」편 3장)

 

일반적으로 한비의 법은 엄벌주의와 중형주의로 유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법가의 법은 냉혹하고 잔인하다는 인식이 오늘날까지 팽배하다. 그러나 『한비자』에는 법의 목적이 약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유가는 현자를 우대하지만, 한비는 이들이 권력을 쟁취해서 약자를 침탈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궁극적으로 법은 돈과 권력, 힘을 가진 사람이 이를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 극악무도한 만행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강자보다는 약자, 가진 자보다는 가지지 못한 자에게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법이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신뢰를 잃게 되면 법은 더 이상 국가 통치의 수단이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법에 대한 신뢰의 측면에서 법불아귀는 중요하다.

 

 

4. 법의 존재 의미

 

춘추전국시대 법가사상이 오늘날의 법치주의와 같을 순 없다. 그럼에도 인치(人治), 즉 사람이 아니라 법이 지배(법치)하는 국가원리를 내세운 점과 법으로 국가권력을 통제함으로써 자의적인 지배를 경계한다는 점에서 둘 다 일맥상통한다. 특히 한비는 인구수가 증가할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대 국가는 대부분 법치주의를 표방한다는 점에서 그의 선견지명은 대단히 놀랍다. 더욱이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 때문이 이 당시 특권을 가진 권력자들에게 법은 환영받지 못했다. 자산의 성문법은 귀족이 마음대로 백성을 벌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고, 상앙의 변법은 무법자로 살아온 귀족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기 위함이었다. 한비는 더 나아가서 왕이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법불아귀를 주장한다. 한비의 법치는 이미 법의 지배를 받던 일반 백성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전횡을 일삼는 특권층에게는 달갑지 않은 통치방식이었다.

 

법치란 무얼까? “법은 원래 그런 거야.”라는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나는 그 말의 기저에는 부정적인 법감정이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피도 눈물도 없는’ 법에는 일말의 기대도 걸지 말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내가 읽은 『한비자』에서 “법은 원래 그렇지 않다.” 다시 말해서 그에게 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약자를 보호하고 권력자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한비의 법치이고, 그에게 법치의 근간은 법에 대한 신뢰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불아귀를 주장한 것이다. 그는 법이 제 기능을 발휘해야 사회가 안정될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법이 신뢰를 잃으면 더 이상 우리는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800원 횡령으로 해고된 버스기사는 그 이후 다시 운전대를 잡지 못하고 막노동으로 떠돌며 다섯 식구를 부양했다고 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권력자는 수백억 원을 횡령하고도 버젓이 특별사면을 받고 원래 자리로 복귀하지만 소시민은 겨우 800원 횡령으로 해고를 당하고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게 된다. 내가 이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충격과 판결에 대한 불신은 몇 년이 지나도 해소되지 않는다. 이처럼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되는 판결이 많아질수록 국민의 법감정은 나빠질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법에 대한 불신은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에게 급선무는 법에 대한 신뢰 회복이 아닐는지.

 

댓글 3
  • 2024-03-26 07:20

    얼마전 지방에서 판사로 일하는 친구를 만났는데 요즘 소액재판이 엄청 많아졌다고 해요.
    살기가 힘들어졌다는 이야기죠.
    음식점에 갔을 때 자기를 쏘아보는 눈빛을 느낄 때가 있는데 재판에 진 사람이래요.
    법의 공정성, 공평성의 문제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모두 다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니까요.

    한비자의 법이야기 다음 이야기도 기대합니다~^^

  • 2024-03-26 11:31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 때문이 이 당시 특권을 가진 권력자들에게 법은 환영받지 못했’던 시대가 있었다니 정말 놀랍네요.
    어제 일리치세미나 <전문가들의 사회>중 ‘변호사의 사법독점’을 읽고 토론했던 터라 더욱 의미있게 다가오는 글입니다.

  • 2024-03-27 13:14

    고전학교 세미나에서 이중텐의 <춘추에서 전국까지>를 읽었는데 '상앙의 변법' 부분에 이런 글을 썼더라구요.
    "따라서 무조건 개혁이 좋다고만 하지 말고 누구를 위한 개혁인지, 무엇을 개혁하는지, 또 어떻게 개혁하는지 살펴야 한다. 마찬가지로 무조건 입법이 좋다고만 하지 말고 누구를 위해 무엇을 입법하는지, 어떻게 입법하는지도 살펴야 한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들을 밝히지 않고 그저 공정함과 엄격한 법 집행만을 논해서는 안 된다."
    자산과 상앙, 한비의 비교가 재미 있습니다.

토용의 서경리뷰
신화가 역사가 되다   정치는 실종되고 ‘심판’만 있었던 총선이 끝났다. 공약이 뭐였는지도 모르겠다. 민생은 아랑곳없이 저들만의 욕망을 채우려는 선거를 언제까지 봐야할지.... 의식주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살 만한 세상, 보통 사람들이 소박하게 꿈꾸는 세상일 것이다. 저마다 각자 살 만한 세상에 대한 감각은 다르겠지만, 동양고전 특히 유가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면 살 만한 세상의 전형으로 ‘요순의 시대’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요와 순은 유가에서 가장 존경받아온 성왕이다. 요와 순이 다스렸던 시대는 태평성대라 불렸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통치자가 누구인지 크게 관심이 없었다. 통치자도 자신들을 특별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연에 따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나라는 원만하게 잘 운영되며 그 속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에 만족하며 살았다. 유가는 이러한 요순의 정치를 이상적인 정치로 생각했다.   이렇게 대단한 통치자 요와 순은 어느 시대 임금이었나? 안타깝게도 실존 인물이 아니라 전설에 존재하는 임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와 순은 중국고대사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중국의 고대신화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신화 속의 요는 반인반수의 모습이라든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나오지 않는다. 마치 어딘가에 살았을 원시 부족의 후덕한 부족장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에 반해 『서경』과 『사기』에서는 요와 순을 역사상 실존한 군주로 기록한다. 『서경』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와 순의 언행을 기록한 「우서(虞書)」, 하(夏)‧상(商)‧주(周) 각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하서」, 「상서」, 「주서」가 그것이다. 「우서」의 처음 <요전(堯典)>과 <순전(舜典)>은 요와 순이 가진 덕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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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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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주역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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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2 | 조회 127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청량리
2024.04.14 | 조회 159
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우현
2024.04.09 | 조회 208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띠우
2024.03.31 | 조회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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