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완이의 쿠바통신 마지막] 결핍 없는 생명의 이야기 : 두 여자 B와 P의 이야기

관리자
2021-06-1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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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 『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 『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그리고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마을의 대모

 

 B는 마을의 대모다. 마을의 모든 갓난아이들이 그의 품에 안겨보았다. 정작 그 자신은 아이도 없이 혼자 사는 싱글인데 말이다. 남의 뒷이야기 하는데 시간을 다 쓰는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은 쉬지 않고 이방인 B를 입에 올린다. 연애는 언제 하지? 결혼은 왜 안 하나?

 

여하튼 마을 사람들은 그를 좋게 보는 편이다. 특히 아줌마들 사이에서 인기가 대단하다. ‘젊은 아가씨’가 어쩜 그렇게 아이들을 잘 돌보냐면서 칭찬을 후하게 퍼준다. 그러나 B는 칭찬의 목적을 이미 간파했다. 그네들은 쌀 배급 받으러 줄을 서거나 손톱을 다듬으면서 수다를 떨 때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기기 위한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아줌마와 할머니들은 유모차를 끌고 그의 사무실을 불쑥불쑥 쳐들어온다. 잠깐만 놓고 갈게! 금방 돌아올게! 처음에는 황당했고 화도 났지만 이제는 체념한다.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장난감도 몇 개 사무실에 구비해 놨다. 그 동안 중요한 업무가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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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B가 이런 캐릭터였던 것은 아니다. 싱글 여성 외국인이 마을 일에 개입할 일이 얼마나 또 있겠는가? 특히 B는 개인주의를 사랑하는 집순이였다. 사생활은 꼭 지켜져야 한다. 야밤의 자유시간은 누구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출근길과 퇴근길을 제외하면 이웃들은 B의 얼굴을 볼 일이 없었다.

 

 B의 루틴이 깨졌던 것은 P를 만난 어느 날 오후부터였다. 그는 안절부절 못하는 얼굴로 사무실을 찾아왔다. 말이 어눌했다. 지갑에는 신분증과 함께 정신지체 3급 판정이 적힌 진료카드가 들어 있었다. P는 임신을 한 상태였고, 아이를 꼭 낳고 싶다고 했다. 가족들은 아기를 지우라며 강경하게 나오는 중이었다. ‘아이’가 아이를 낳는 꼴인데, 감당할 수 없는 일은 벌리지 말라는 것이다. 남자친구는 한결 더 협조적이었다. 낳고 싶으면 같이 키우자고 제안했다고 했다. 그러나 운전수라는 직업상 옆 도시를 수시로 왔다 갔다 해야 하는 그가 주 양육자가 될 수는 없었다. 판단이 느린 P도 그 정도는 알았다.

 

 B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P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고, P도 영문도 모른 채 B를 바라보았다. 얼마간의 침묵이 흐르고, B는 수첩을 탁 닫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요, 우리 한 번 낳아봅시다.”

대모 생활의 서곡을 울릴 한 마디였다.

 

 

흰 가운을 입는다는 것

 

B는 마을의 가족주치의다. ‘마을의 대모’라고 바꿔 읽어도 상관이 없지만 말이다. 쿠바의 가정의학은 안전한 출산에 강박적이리만치 마음을 쏟는다. 주치의는 이 마음의 실행자다. 마음을 몰라주는 마을 산모들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그들을 설득하는 게 주된 일이다. 주치의 제도가 없는 곳에서는 옆집에 의사가 사는 쿠바의 동네 풍경이 이상적으로 보일 테다. 그런데 정작 그런 의사가 나타나면 또 간섭을 피하려고 발버둥치는 게 인간인 것이다.

 

B는 쿠바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병원 밖 난리굿’을 처음 마주했을 때는 표정관리에 처참하게 실패했다. 이게 뭔가? 컴퓨터도 없는 진료소에 산더미처럼 쌓인 일을 뒤로 하고, 오늘도 진료 약속을 쌩까고 클럽 간 청소년 미혼모를 잡으러 가는 이 길이 정녕 ‘훌륭한 의사’의 길인가? B는 기본적으로 상냥한 사람이다. 그러나 엄격하고 예민한 면모도 있다. 어린 엄마들이 지나치게 의존하려 들 때마다 B는 딱 부러지게 말했다. 나는 보모가 아니라 의사다. 당신의 생명과 당신이 낳은 생명은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몫이다.

 

환자들의 어리광이 문제의 전부였다면 B도 곧 기분을 풀었을 것이다. 외국인 의사로서 이곳의 의료 철학을 우선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것 즈음은 그도 알았다. 그러나 무책임한 순간들이 존중의 의지를 꺾어버렸다. B는 흰 가운의 권위에 의존하려는 사람들 못지않게, 흰 가운의 권력으로 생명을 죽이려는 자들도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낮은 영아사망률과 높은 의료 접근성, 쿠바 의료가 자랑해 마지않는 숫자들. 이 통계는 낙태시술로 사라진 아기들을 침묵 안에 묻어버린다. 이곳에서 낙태는 부담 없이 실행된다. 주치의가 사인한 종이쪽지 한 장이면 곧바로 수술 스케줄을 잡힌다.

 

B는 낙태에 결사반대하는 구시대적 의사는 아니었다. 오히려 본국에서는 여성 신체의 자기결정권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쪽이었다. 자신도 여성인데 왜 임신이 여성의 굴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겠는가. 그러나 B의 눈에 쿠바의 성(性)문화는 자유 외에 어떤 윤리도 없어보였고, 낙태 제도는 그 속에서 남용되고 있었다. 청소년들은 어른처럼 일찌감치 섹스에 진입했고, 생리가 나오지 않는다며 애처럼 B 앞에서 울었다. 엄마가 되라고요? 제가 왜요? 나는 키울 수 없어요, 학교에 가야 해요.

 

B는 이 문제에 대해 아예 잊어버리려 노력했다. 객관적으로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쿠바는 낙태뿐만 아니라 미혼모에도 관대한 나라다. 가족들이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낳아서 함께 키울 수 있고, 주치의는 물심양면으로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튼튼한 사회 안전망이 B의 마음을 더 공허하게 했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죽음으로 이끈 생명의 불행을 무슨 이유로 정당화해야 할까?

 

 

엄마가 된다는 것

 

P가 나타난 것은 그 즈음이었다. 온몸이 경직되어 있었고, 목소리는 쓸데없이 컸다. B가 자신을 거부할까봐 미리 겁먹은 것 같았다. 그는 가족과 이웃에게 낙태 권유를 끈질기게 받고 있는 참이었다. 그들은 말했다.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사람이 아이를 낳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다. 하지만 P는 그 이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혼자 사는 법은 모르지만 남에게 도움을 청할 줄은 알았다. 의사표시는 분명했다. 나는 엄마가 되고 싶다(Quiero ser una madre).

 

이처럼 강력한 의견피력은 P의 인생에서 처음인 듯 했다. P는 순하게만 살아왔다. 주변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 이런 성격형성에 영향을 미쳤겠지만, 스스로를 억압한 결과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결핍 없이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이 행복은 관계가 만들어준 것이다. 그를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주는 가족과, 가족이 기댈 수 있는 동네 네트워크가 P를 감싸고 있다. 주치의와 이웃들이 오히려 가족보다 먼저 P의 늦은 정신발달을 걱정했다. P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발달 장애의 전모를 부정할 수 없게 되었고, 마침내 가족들은 큰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정신 지체 3급이라는 진단을 내려주었다.

 

하지만 진단이 무슨 의미가 있었나? 그 후로 P의 인생은 바뀐 게 없다. 그는 계속 똑같은 가족들과 살고 있고, 똑같은 마을 사람들을 만나며, 엄마를 따라다니면서 이 집 저 집 청소 일을 돕는다. 사람들은 P를 놀리기는 해도 해치지는 않는다. 햇살, 낡은 거리, 끈적이는 공기, 채소 장수의 리어카, 푸줏간 아저씨의 칼, 이웃집 할아버지의 담배냄새. P는 자신이 이곳에 속했다고 느낀다.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몸으로 확신한다.

 

성인이 된 후에는 동네에서 남자친구도 여럿 사귀었다. 관계가 오래 가지는 않았지만 특별히 안 좋은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애인들은 동네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행동거지를 더 조심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옆 동네의 마음씨 착한 청년과 연이 닿았고, 관계가 안정적으로 이어졌다. 둘은 청년의 집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동거의 결과가 임신이었다. 아이를 지키겠다는 P의 마음은 초지일관 굳세었다. 가족과 동네 사람들은 P의 낯선 모습에 깜짝 놀랐다. 맹한 줄만 알았는데 이런 생각도 할 줄 아는 아이였던가? 엄마가 되고 싶다는 고집을 피울 줄은 몰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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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의 동행

 

 B만은 놀라지 않았다. P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더듬더듬 말하는 동안, B는 한 번도 말을 끊지 않고 유심히 귀를 기울였다. 경청하는 모습을 보자 P의 얼굴이 점점 편안하게 풀어졌다.

B는 이 상황이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이십대 후반의 여성이 임신해서 애를 낳고 싶다는데, 이게 어디를 봐서 부자연스러운 마음인가? 동네 사람들의 눈에 P는 ‘정신’이 덜 자란 ‘애’로 보일지 몰라도, B에게 P는 자신의 ‘몸’을 책임지려고 하는 ‘어른’이었다. 간만에, 아주 간만에 B는 뱃속부터 유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고생거리를 일부러 만들지 말라고 화를 내는 P의 엄마 얼굴이 머릿속에 잠깐 스쳤지만, 깔끔하게 무시하기로 했다. 의사는 나다. 환자는 내 앞에 앉아있는 이 사람이다. 우리 둘 다 생명을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여기 앉아 있다. 그것 말고 더 필요한 게 있나? 의사 앞에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반박하려는 미친 사람이 있다면 나와 보라지!

 

B는 P에게 임산부가 앞으로 지켜야 할 수칙을 설명했다. 큰 병원에 가서 검진 받아야 할 날짜도 짚어주었다. 그러나 P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머리가 나쁘기 때문에 이런 어려운 말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B는 P에게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P는 동행을 부탁했다. 약속은 절대로 어기지 않겠다고도 말했다. B는 P의 요청을 수락했다. 이 마을에는 B가 P 외에도 돌봐야 할 주민들이 오백 명이나 더 있다. 그러나 의사는 자신의 귀한 시간을 환자의 귀한 마음에 할애하기로 이미 결심한 상태였다.

 

이로써 두 여자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둘은 곧 동네를 넘어서 옆 동네까지 유명해졌다. 한 달에 몇 번씩 손을 꼭 잡고 병원에 함께 방문하는데 모를 수가 없었다. 나이대가 비슷해서 그런지, B가 입은 흰 가운만 빼면 보통의 친구나 자매처럼 보이기도 했다.

 

둘은 섬세하게 역할을 분담했다. P는 매주 월요일마다 B를 찾아왔다. P의 가족은 그의 손에 커피 따위의 간식 선물을 들려 보냈다. B는 P의 이름으로 산부인과 의사와 검진 약속을 잡았다. 약속까지 산모의 건강상태에서 어떤 부분을 체크해 놓아야 하는지 꼼꼼히 신경을 썼다. 따라서 P의 검진 날은 B의 진료소가 문 닫는 날이 되었다. 그날이면 P는 옷을 제대로 차려입고 15분 전부터 약속 장소에서 기다렸다. 약조한대로 시간 약속을 어기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P의 집에는 점점 B의 흔적이 늘어갔다. B는 임산부에게 좋은 영양보충제를 구해주었다. 또 종이를 구해다가 산모가 유념해야 할 항목을 그림까지 곁들어가며 큼직하게 적었다. 이 이상한 포스터는 P의 현관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자리에 부착되었다. B는 옆 도시에서 일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돌아오는 P의 애인과도 안면을 텄다. B는 남편의 정서적인 지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댔다.

 

 P의 가족들의 가장 큰 염려는 태아에게 딸의 장애가 유전될 가능성이었다. 유전자 변이는 정신지체장애가 발발하는 원인 중 하나다. 태아의 유전자 검사를 하려면 세 달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그때 가서 낙태 수술을 결정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을 터였다. B와 P는 평온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순 없었지만, 어떤 아이가 찾아오든 무조건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태아도 편안하게 자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머지않아 검사 결과가 나왔다. 태아의 유전자는 어떤 변이 장애도 없었다.

 

 

결핍 없는 생명

 

십 개월 후, 아기는 무사히 태어났다. P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고, P의 가족들은 손녀를 안아보지 못해 안달이 났으며, B는 온 동네에 ‘천사 같은 대모’로 소문이 나면서 마을 사람들의 부탁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P와 애인은 두 번째 임신을 계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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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P의 고생길은 앞으로 활짝 열렸다. 육아는 임신보다 더 고난이도의 미션이다. 그러나 P에게는 멋진 능력이 있다. 사람들에게 주저 없이 도움을 청할 줄 안다는 것이다. 가족과 이웃은 아기를 구경하기 위해 P의 집을 자주 방문하고, 그때마다 몇 가지 음식과 물건을 두고 간다. 여전히 B와 P는 검진을 위해 정기적으로 만난다. 이제는 소아과 의사에게 아기를 보이기 위해서다. 산부인과 의사와 소아과 의사 역시 그 사이에 P와 안면을 텄다. 이제 P는 문제가 생기면 그들에게도 직접 연락할 수 있다.

 

시간은 흐를 예정이다. 이 사람 저 사람의 도움을 받아가며 아이를 키우다보면, 어느 새 훌쩍 자란 아이가 엄마를 돌볼 것이다. 그 역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면서 살 것이다. 그래서 모자란 생명은 없다. 모든 생명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어차피 시간의 동일한 명령을 받는다. 다들 숨을 받았다가 언젠가 거두게 될 운명이다. 그 사이의 시간은 옆에서 같이 사는 사람들의 존재감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 사람들 틈새에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넘치면 넘치는 대로, 한 숨 한 숨을 함께 이어가는 것의 가치를 아는 삶. 그런 생명은 결핍을 모른다.

  얼마 후 B는 삼 년의 근무 기간을 채우고 이 마을을 떠났다. 후임자가 업무를 원활하게 이어받을 수 있도록 진료기록을 꼼꼼하게 정리해두고 갔다고 했다. P의 진료기록은 유달리 두꺼운데, 거기에는 P와 아기가 어느 시기에, 어떤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는지 작은 역사가 빼곡하게 적혀 있다. 그것은 사실상 편지였다. 다음 번 내 자리를 채우게 될 얼굴도 모르는 동료에게, 이 마을이 함께 낳고 키우는 생명을 기꺼운 마음으로 보살펴달라는 한 의사의 부탁이었다.

 

 

 

 

 

*** 한 편의 프롤로그와 여덟 편의 이야기로 <쿠바 통신>을 마칩니다. 여덟 명의 인생과, 그들의 이름으로 귀속되지 않는 세계의 모습을 이야기 속에 담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제일 많이 배웠습니다. 기회를 주신 길드다와 문탁 네트워크에 감사드립니다.  ***

댓글 5
  • 2021-06-11 09:51

    여덟명의 이야기가 연재되는 동안 읽은 어떤 이야기보다 더 가슴 찡한 글입니다.

    사람이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P와 그녀의 아이가 지구 반대편 쿠바에서 잘 살아가기를..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연재가 계속되는 동안 해완님의 글을 기다리며 읽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또 기회가 있겠지요.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 2021-06-11 16:09

    저는 제일 마음 편안하게 읽은 글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연재 글 모두 좋았습니다. 찡해서 좋았고, 놀래서 또 좋았고, 나를 투영해볼 수 있어서 좋았고,

    편안해서 좋았고, 다름을 접해서 좋았고,  또 다른 상상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좋았고, 또 뭐가 있었었을까요...

    아쉬워요.. 나중에 또 이어가기 해줄 것을 기대합니다. 건강하세요 ^^

     

  • 2021-06-14 18:59

    B와 P 두 사람에게 건투를!
    그간 쿠바통신 읽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1-06-25 09:26

    애기가 예쁘고 똘방져 보이네요.

    엄마도 행복해 보여요.

    글도 잘 쓰시고 그림도 잘 그리시고 그동안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1-07-07 18:10

    지인을 통해 문탁을

    알게되었는데. . 처음보는글이

    쿠바통신글이네요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p가 b가 마음에 그려집니다.